야구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유일의 '천람시합'(天覧試合)
- 쿠로카와아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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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군주제가 존재하는 일본에는 천람시합(天覧試合)이라는 개념이 있음
말 그대로 천황이 관람하러 오는 시합이라는 뜻
스모 같은 경우는 무려 1925년부터 천황배가 하사되던 근본 대회인데다가 히로히토가 개인적으로 스모를 좋아하기도 했던 점 등등이 겹쳐서 천람시합이 엄청 잦고
아마추어 야구도 쇼와시대에 소케이센에서 두 번(1929, 1950) 사회인야구에서 두 번(1947, 1969) 천람시합이 있었는데 프로야구는 1950년대 후반까지 천람시합이 없었음
그리고 사상 처음으로 천황 부부가 프로야구장을 찾은건 1959년 6월 25일
지금은 철거된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근본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 간의 시합이었음
당시 교진 감독이던 미즈하라 시게루는 아침에 목욕을 두 번이나 하고 말수가 확 줄어들 정도로 크게 긴장을 했다고 하고
육성응원도 금지돼서 경기장 자체도 되게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함
이 경기는 니혼TV와 NHK종합TV에서 중계됐는데 니혼TV 같은 경우는 원래 야간 시합은 8시부터 중계하던 자체적인 관행을 깨고 경기 시작 시간인 7시부터 중계를 편성했음
경기 개시 전에는 선수, 심판, 코칭스탭이 모두 경기장에 도열해 천황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시작됐던 이 날의 경기는
귀하신 몸이 굳이 시간들여서 행차하신 경기답게 경기 내용도 흥미진진했는데
교진은 후지타 모토시(1959시즌 27승 11패, 1.83), 한신은 코야마 마사아키(20승 16패, 1.86)라는 두 에이스 투수를 출격시켰고, 그럼에도 적당히 점수가 나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으로 경기가 전개됨
통산 타율 .157, 9홈런, 1959시즌에도 타율 .205에 1홈런 6타점을 기록하는 등 투수 치고는 타격을 꽤 잘했던 코야마가 3회 답내친을 시전하면서 한신이 선취점을 냈지만
교진이 5회 나가시마 시게오와 사카자키 카즈히코의 연속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함
한신은 6회 미야케 히데시의 적시타와 후지모토 카츠미의 홈런으로 다시 4대2로 앞서나가지만
7회 왕정치가 동점 투런을 때려내며 경기는 다시 원점
이 점수가 유지되며 경기는 9회말에 접어들었음
9회 돌입 시점에서 시간은 9시를 넘겼는데 천황 부부가 야구를 관람하기로 한 시간은 오후 9시 15분까지였고 이대로 연장이라도 가게 되면 그들이 경기 결과를 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구장을 떠나게 생긴 상황이었음
그리고 21시 12분
"미스터 자이언츠" 나가시마 시게오가 좌측 폴대 쪽으로 살짝 넘어가는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며 이날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고
천황 부부는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돌아가게 될 수 있었음
사실 이때는 비디오 판독은커녕 구장 조명 시설조차 열악하던 시절이라 이게 홈런인지 파울인지 확실하게 분간이 안됐는데 심판이 홈런을 선언한거였고
끝내기 홈런을 허용한 투수 무라야마 미노루는 이게 파울볼이라고 꾸준히 주장하면서 훗날 통산 1500번째 탈삼진을 나가시마로부터 뺏어낸 이후 인터뷰에서 "이걸로 천람시합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코멘트할 정도였다고
근데 훗날 끝내기 홈런 장면을 컬러화하고 화질도 높여서 확인해보니깐 빼박 홈런이긴 했다고 함
여담으로 시합 종료 후에는 양팀 관계자들이 천황이 하사하는 담배인 "은사의 담배"(恩賜のたばこ)를 배부받기도 했다고
NHK 다큐멘터리 "그 때 역사가 움직였다"의 2005년 2월 9일 방영분에서 천람시합 개최 경위가 구체적으로 밝혀졌는데 사실 처음부터 교진-한신전에서의 개최가 정해진건 아니였고 퍼시픽리그 측도 천람시합 개최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고 함
근데 천황이 어느 날 고라쿠엔 구장이 있는 스이도바시 쪽을 바라보면서 "저 불빛은 무엇인가?"라고 시종한테 묻고 "프로야구의 야간 경기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흥미를 보였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요미우리 신문사주이자 교진 구단 오너인 쇼리키 마츠타로가 "야구 인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진전에서 천람시합 개최가 필요하다"며 1959년 1월부터 궁내청 측과 교섭을 시작했고
퍼시픽리그 측도 영화 시사회에 히로히토를 초청하기도 했던 다이에이 사장 나가타 마사이치가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즈(現 치바 롯데 마린즈)와 니시테츠 라이온즈(現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경기를 천람시합으로 개최하기 위해 마이니치신문의 황실 출입기자를 통해 설득했다고 함
그리고 6월 19일 궁내청 측으로부터 "6월 25일 오후 6:45 출문(出門). 프로야구 관람을 위해 고라쿠엔 구장에 나오십니다."라고 공식적으로 화답이 오면서 6월 25일 교진-한신전에서의 천람시합 개최가 확정되었고 퍼시픽리그에서의 천람시합 개최를 위해 움직이던 나가타도 "천황이 프로야구를 보는 것은 구계를 위해서도 명예가 된다. 말썽을 부릴 수는 없다"며 수긍함
그리고 이날 경기가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천람시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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