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TV 채널마다 가득한 저 먼 곳은 와닿지 않았다

나는 원래 우리 동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먹을 것은 프랜차이즈뿐인 도시, 버스노선의 절반이 구도심의 4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느라 매일 길이 막히는 도시

 

 

마지막으론 오원춘이 토막살인을 저지르고, 야산에서 토막난 사체가 발견되는 도시.

 

 

이런 곳에서 산다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TV 채널마다 가득한 저 먼 곳을 갈망했다.

 

 

국내에서는 부산이나 전주같은 곳을, 해외로 눈을 돌리면 아일랜드나 캐나다같은 곳을.

 

 

 

 

그런 내게 다른 지평을 열어준 것은 축구였다.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팀의 경기를 보러 다녔고,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아니었던 어느 팀의 응원가에 빠져들었다.

 

 

 

 

TV 채널마다 가득한 저 먼 곳의

 

 

90분의 이야기는 전혀 와닿지 않아

 

 

우만의 거리 위에 너와 나의 집에서

 

 

우리들의 드라마를 계속 이어나가자

 

 

 

 

이 가사를 종종 흥얼거리면서 동네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나갔던 것 같다.

 

 

이를 넘어 어느새 약간의 장점도 찾을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를들어 구시가지엔 이런 7-80년대에 지어진 단독주택이 넘쳐나고

 

 

 

 

다른 도시에선 보기 어려운 거의 온전히 보전된 옛 성곽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100년 된 초등학교를 부셔버리고 복원한 옛 임금의 행궁이 있다.

 

 

 

 

집에서 5분 거리에는 오리가 사는 하천이

 

 

 

 

15분 거리에는 중국식 정원이 있는 공원이

 

 

 

 

옛날엔 파도풀장이 있던 유원지 자리에는 그럴듯한 호수공원이 자리잡고, 그 뒤엔 내 돈으론 살아볼 일이 없는 거대한 아파트가 있다

 

 

 

 

집 앞 5분 거리에는 큰 공연 무대가 있는 공원이 있으며

 

 

 

 

전국에 10개 뿐인 프로야구 팀도 있으며

 

 

 

 

매주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축구장 두 곳 중에 하나를 골라서 갈 수 있다.

 

 

생각보다 할 것도 볼 것도 많은 동네인 셈이다. 다만 이를 외면하고 TV 채널마다 가득한 저 먼 곳만 바라보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모든 걸 결정지을 뿐.

 

 

물론 나는 수원이라는 도시를 뜰 가능성이 높다. 취직을 하기 위해선 지방이라도 가야 할테니까.

 

 

그래도 나는 수원에 있는 축구팀과 야구팀을 응원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 종종 수원에 올 것이다.

 

 

 

 

TV 채널마다 가득한 저 먼 곳에 있는 90분의 이야기는 전혀 와닿지 않으니까.

 

 

 

 

나는 다음주가 되면 또 카메라를 들고 축구장에 갈 것이다. 그리고 또 경기에 졌다며 감독 욕을 하고, 왜 이놈의 도시는 축구팀이 두개나 있어서 두배로 슬퍼지는 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만동이냐 조원동이냐를 가리지 않고 너와 나의 집에서, 우리들의 드라마를 계속 이어나가며 이 도시에 대한 소속감을 앞으로도 유지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