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글챌린지 신자유주의와 비서구의 부상 - 박노자

애당초부터 좌파는 신자유주의에 결사 반대합니다.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노동에 대한 초착취의 '자유'일 뿐이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란 결국 공해와 저임금 일자리 수출 등을 의미해 왔기 때문입니다. 좌파로서 신자유주의를 긍정할 일이라고 당연 없을 것입니다. 한데 신자유주의 시대가 초래한 지경학적 (geo-economical) 변화들을 객관적으로 보다보면 재미있는 부분들이 조금 보입니다. 비록 레이건과 대처가 의도한 바야 절대 아니었겠지만, 사실 신자유주의 시대야말로 서구의 패권 시대를 끝내는 데에 아주 큰 견인차 역할을 한 바 있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본격화 이전의, 예컨대 1980년의 세계를 한 번 상상해봅시다. '미소 양극 체제'라고 하지만, 소련과 그 위성 국가, 내지 그 당시 중국의 그 진영 바깥에서의 세계적 영향력은 사실 미미했습니다. 소련의 세계 총생산에서의 비중은 약 10% 안팎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소련은 동구권 이외의 국가에다 거의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이죠. 소련/동구권/중국/북한/베트남 등을 제외한 세계에서는 구미권과 일본의 영향력은 거의 모든 방면에 절대적이었습니다. 세계 총생산이나 세계 제조업 총생산에 있어서의 미국의 몫은 약 30%로, 단연 가장 컸습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서독과 영국, 프랑스 등은 특히 IT 등을 위시해서 최첨단 기술을 거의 독점했습니다 (단, 무기나 원전, 우주공학 등 일부 분야에서 소련도 세계적 노우하우의 일부를 보유했습니다). 소련권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우수 대학들은 전부 다 구미권과 일본에 있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 대만 등을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차관과 시장 접근 공여 등을 통해서 "키우고 있었던" 과정이 있었지만, 이게 어디까지나 냉전의 상황에서 "필요해서" 한 것이었습니다. 극소수의 신흥 산업국 이외에는 첨단 자본주의는 구미권과 일본의 독점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신자유주의적 공장 이전, 저임금 국가 투자 집중, 구미권/일본 자본의 세계적 확산과 현지에서의 공업 투자 등의 40여년 동안의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과정이 잇따랐습니다. 물론 구미권/일본 자본가들이 "선심"을 쓴 것이 아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들에게 "폭리"를 노려서 이 과정에 들어간 거죠. 한데 좌우간, 한 번 오늘날 세계를 점검해봅시다. 미국 경제의 세계적 비중은 무려 23%로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17%를 차지하게 된 중국은 이미 제조업 등의 여러 분야에서 미국을 사실상 추월했습니다. 제조업으로 이야기하면 미국의 몫은 16%밖에 안되고, 중국은 그것보다 거의 2배나 되는 비중을 차지합니다. 첨단 기술로 치면, 반도체 분야에 있어서 중국이 미국과 대만 등의 수준에 머지 않아 도달할 가능성이 있기에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에 돌입한 것입니다. 즉, '추월'의 현실적 위험성이 있어 미국이 부득불 선수를 친 셈입니다. 사실 1980년의 세계에는 그런 위험성은 존재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첨단 사업이었던 컴퓨터 제작 등에 있어서는 소련은 미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었던 것이죠. QS 세계 대학 랭킹 등을 보면 여전히 최우수 100개 대학은 주로 구미권/일본에 있지만, 17위가 청화대가 되고 18위가 북경대 된 것 역시 1980년의 세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KAIST가 41위나 된 것도 40년 전에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고요.

중국 등 신흥 시장에 막 홍수처럼 밀려간 구미권/일본 자본이야 '폭리'를 노렸을 뿐이지만, 이 투자/무역 붐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중국이나 걸프 국가, 그리고 인도나 터키, 인도네시 등 비교적 '강성'인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역이용해 어느 정도 "부상"에 성공한 것입니다. 물론 이와 함께 과거의 "제3세계"는 부익부빈익분식으로 양분되고 말았습니다. 중국 등처럼 외자를 이용해 빠른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한, 보다 약한 많은 국가들은, 결국 점차 중국 자본의 경제 식민지 위치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동남아의 라오스부터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 아프리카의 잠비아나 앙골라 등 그런 경우들도 수두룩합니다. 주변부의 강한 국가들에게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어느 정도 '기회'가 되었던 반면, 보다 약한 국가들에게는 경제적 재식민화의 함정이 열린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일반적 법칙인 약육강식은 이 경우에도 적용된 것입니다.

세계화가 지속되면 서구 패권이 장기적으로 위기에 빠진다는 사실을 드디어 눈치 챈 미국은 이제 탈세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의 산업 정책들은 이제 신자유주의라기보다는 1930년대식 보호주의에 더 가깝습니다. 한데 세계는 이미 바뀌고 말았습니다. 43년 전에는 구미권과 일본은 세계 총생산의 약 65%를 차지했지만, 지금 그 비중은 40%에 불과하고 경향적으로 감소돼 갑니다. "서구 패권 이후"의 세계의 윤곽은 이미 점차 잡혀가고 있습니다. 40-50년 후의 세계에서 펜타곤과 하버드, 국제어로서의 영어 등이 현재와 같은 위치를 갖고 있지 않을 것은 어디까지나 분명한 일입니다. 이런 패권 쇠락이 가능해진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자살 골'이 되고 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이었습니다. 물론 이 '자살골'을 놓게 된 이유란, 구미권/일본에서의 경향적 이윤율의 저하이었죠. 한데 이 세계화의 결과란, 구미권/일본 지배자들의 예상과 결국 상당히 다르게 나왔습니다...

 

 

 

[출처] 신자유주의와 비서구의 부상|작성자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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