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서 내게 무해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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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최은영 작가의 책 (모음집 제외)을 전부 다 읽었다.

 

2018년에 출판된 이 책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녀의 서사 능력은 쇼코의 미소보다 한결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최은영 작가의 책을 읽고싶다면 그냥 순서대로 (쇼코의 미소 -> 내게 무해한 사람 -> 밝은 밤 -> 애쓰지 않아도 -> 내게 무해한 사람)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내게 무해한 사람의 책 제목은, 따로 책에 있는 단편 소설의 이름이 아니라, 이 책을 관통하는 말이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대비 인물 (주인공의 반대 편에 서 있는 인물)을 묘사하는 이야기이다. (601,602 제외)

 

 

무해하다는 말은 해롭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이 꼭 득을 준다는 말은 아니지만,

 

최소한 곁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지는 인물이란 말도 된다.

 

그 사람이 무해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므로.

 

 

무해한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고 우린 살아간다. 

 

기억 속의 가장 강한 등장인물은 아니더라도, 나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 여름에서는 내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해준 전 연인에 대해,

 

601, 602은 조금 이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 중 예외적인 작품인데, 아들을 귀히 여기는 옆집의 친구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어지는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나가는 밤에서는, 싸우고 헤어졌지만 끊어내지 못하는 자매의 이야기,

 

모래로 지은 집에서는 고등학교 커뮤니티에서 만난 스스로를 잠근 친구의 이야기,

 

고백에서는 커밍아웃 이후 외면당해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

 

손길에서는 나의 가장 친한 어른이자 친구였던 숙모를 이해하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아치디에서는 대마에 절어살던 청년이 인생에 절어버린 한국인 여성과 친구가 되며 함께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그 여름'에서 주인공은 친구로 인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지만, 반대로 '고백'에서는 친구의 성 정체성을 말살해버리고 후회한다.

 

하지만 이 두가지 모두 성 정체성이란 매개를 통해 인간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성 정체성을 찾음으로서 자신의 본질에 대한 자각을 하기도 하고, 친구의 자살에서 타인의 성 정체성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각을,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각성을 한다.

 

 

601, 602는 이 책에서 가장 재밌진 않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게 되는데, 

 

아들을 바라는 집, 아들을 왕으로 떠받드는 집의 딸들이 친구가 되며, 결국 서로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뻔한 플롯이지만, 마지막의 묘사가 일품이었다.

 

 

'지나가는 밤'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구를 표출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동생, 그리고 이를 속으로 억누르는 언니의 이야기 속에서,

 

그렇지만 가족이다. 라는 전통적인 베이스를 깔기보단,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 서로에게 무해한 사람, 그래서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모래로 지은 집'의 경우, 모래성 같은 관계 (커뮤니티에서 만난)로,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다,

 

관계가 깊어져 서로의 실명을 부르다, 종국에는 다시 닉네임으로 부르는 친구들이,

 

서로를 감추고 숨기고, 끝끝내 말로는 보여주지 못하다 결국 글로 이야기하고,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피상적으로 보이는 관계 속에서 서로는 과연 서로에게 무해했을까, 알지 못한 채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그러나 그 관계는 깊어질수도 있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

 

 

'손길'에서 숙모는 자신의 작은 조카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나이와 경험의 한계로 웃음만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던 숙모를 되짚으며,

 

그랬기에 웃음을 보여줄 수 없는 순간 자신을 떠나버린 그 숙모에게서 안타까운 인간의 이해를 느끼고, 

 

또 그 숙모에게서 마지막에 손을 내밈으로서, 이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치디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괜찮은 소설이었는데, 

 

위에서 이야기했듯 대마에 절여진 청년과 인생에 절여진 타인들 (브라질 인, 한국 인)의 서로에게 기대어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서로는 서로에게 온전한 감정을 내밀기 보다 그저 곁에서 바라보아주고 바라는 것 없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삶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은영 작가의 2018년 작품이라 생각하면 또 괜찮기도 했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들은 확실히 이때보다 나았다.

 

같은 서사를 하더라도 표현이 좋았다.

 

아치디에서를 읽으며, 밝은 밤의 전초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은영 작가를 내가 왜 좋아했나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 중간에 낀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앞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그 과정의 사람을. 그래서 변화의 연결고리가 되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으면 과거의 남성적이라고 표현되던 거칠고 강한 시선들에서 최근의 섬세한 시선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

 

설명은 거칠고, 결론은 섬세하다. 이 두가지가 모두 가지고 있기에, 얼마 전 읽은 김지승 작가의 짐승일기와 많이 비교되었다.

 

그 책은 철저하게 섬세했다. 

 

 

이렇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재작년에 밝은 밤으로 맞이했던 가을을 올해는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맞이했다.

 

내게 그녀는 무해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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