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왜? 왜? 왜? - <보호자> (정우성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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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내게는 징크스가 있었다. 남이 고른 영화는 망하고 내가 고른 영화는 괜찮았다는 거. 영화관에 자주 가는 성격이 아니어서 몇 년 전까지 돌아가지만 최근에 남이 고른 영화가 <백두산>과 <반도> 그리고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였고, 내가 고른 영화가 <라라랜드>(재개봉)와 <헌트> 그리고 <오펜하이머>였다. 영화를 불신할 만하고 동시에 내 안목을 과대평가할 만한 라인업 아닌가. 그래서 만용을 부렸다.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을 했다.

 

 "이정재가 만든 영화가 이렇게 좋은데, 친구가 만든 영화도 궁금한 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영화에서 서사는 완전히 실종되어 있다. 주인공은 왜 징역형을 살 정도로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렀는지, 그래놓고 왜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하는지, 여자친구란 사람은 왜 한심한 건달 혹은 자신의 안위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조폭인 남자친구를 감옥에 가고도 기다려주는지, 보스는 왜 주인공을 필요로 하는지, 2인자는 왜 주인공을 담그려고 난리치는지, 킬러는 왜 도심 한복판에서 못을 총알로 쓰는 총을 쏘고 교회를 폭파하며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지, 자신에게 학폭을 가한 무리를 죽이려고 불을 질렀지만 기실 불타 죽은 건 자기 할머니였다는 킬러의 과거는 왜 만들어졌으며 어디까지 사실인지, 사실이 아니라면 왜 긴박한 상황에서 그런 소릴 했는지, 각본가는 무슨 생각으로, 왜 주동인물 전부의 전사를 생략한 채 영화를 전개했는지, 정우성은 왜 굳이 이런 영화의 감독을 그것도 중간투입으로 맡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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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왜? 왜?

 

 <백두산>에 대해 누군가는 덱스터 스튜디오의 CG에 대한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했다. 서사는 없고 그래픽만 빛나는 영화였으니까. 보고 나서 충격을 금치 못하고 두 달 동안 곱씹기만 하던 나는 이제서야 이 영화에 대해 대략 비슷한 평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랜턴을 칼에 부착한 채 어둠 속에서 벌이는 액션신이나, 폭발물을 활용한 차량 추격신 그리고 킬러가 써먹는 온갖 불법 총기류와 사제폭탄에 대한 영화적 묘사는 참신하긴 했다. (거기서도 왜가 빠져있지만. 왜 굳이 머리가 아니라 칼에 랜턴을 달고 싸워야 할까? 그것도 사방이 어두운 곳에서 말이야) 이 연출팀 내지는 무술감독 혹은 미술감독은 이런 장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라는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였다. 영화에서 꼽히는 좋은 장면, 역사에 남을 신은 결국 쌓아올린 서사 위에서 폭발했기에 빛을 발한다. 그게 없는데 분절돼버린 장면들이 참신하든 화려하든 무슨 소용인가. 영화를 보면서 그나마 가치있었다 할 만한 건 상술한 자동차 추격신 뿐이었다. 폭탄을 떨궈도 자동차는 가는 것처럼, 영화가 아무리 말아먹은 영화라도 시간은 앞으로 가는 것처럼 저런 영화를 돈 주고 본 게 분해도 내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고 그 순간 졸려다가 눈이 번쩍 떠졌다. 열받아서 그랬다. 

 

 <백두산>은 가족들이 골랐고, 나머지 두 영화는 이제 다시 볼 일이 없을 옛 지인이 골랐다. 나는 그 영화들을 시간낭비였다 생각했기에 은연중에 별로였다는 느낌을 내비쳤다. 그게 정말 미안했다. 더한 걸 골라놓고 어디서 큰소리야. 영화를 넘어 스스로가 더없이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https://youtu.be/QTUOvBS4dsI?si=_-EnieS8FoGQuxyv

 

 

 영화를 잘 보지 않는데도 영화에 대한 관심이 최소한이나마 있는 이유는 어떤 영화평론가의 글과 생각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분의 해당 영화에 대한 평을 끝으로 글을 줄인다.

 

 "예상대로 진행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모두 당혹스럽다.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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