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아직 미완성인 <연인>을 보다가 생각난, 영영 미완성으로 남은 것

 사실 소개하려는 작품이 '미완성, 미완결'이라는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진 잘 모르겠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죽어가는 드라마국을 살린 작품이 갑작스럽게 미완성으로 남을 가능성은 없다시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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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찌됐건 오늘 17회 방영을 앞두고 있는 20부작(연장 검토 중이다) 드라마는 2023년 11월 4일 기준으로 미완성이 맞긴 하니까. 그리고 분명 평이했던 이 드라마가 내게 가져다준 특이한 생각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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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드라마를 보게 된 이유는 뻔하다. 남궁민이 나오니까. 시놉시스를 보는 눈이 뛰어난데다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기에 평소에 관심이 없던 사극이어도 한 번 보기로 했다. 초반 내용이 뻔했는데도 참았다. 남궁민이 선택했으니까, 마냥 평범한 극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병자호란이 극중에서 벌어짐과 함께 드라마는 격한 추돌과 더 격한 사랑, 그리고 그보다도 격한 어긋남이 이어진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핵분열과 같은 연쇄반응과 분열을 동반한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갈등의 서사인 것처럼, <연인>은 알고 보니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과 그에서 비롯된 엇갈림이 계속해서 반복되며 폭발력을 만들어내는 서사를 가졌다. 시청자들은 서로 죽고 못 사는, 너무도 사랑하는 게 보이는 이장현(남궁민 분)과 유길채(안은진 분)가 자꾸 헤어지니 분통을 터뜨리지만 20부작 드라마에서 10회 혹은 15회부터 둘을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당시의 보수적 가치관과 전쟁으로 개인에게 남은 헤아리기 힘든 상처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는 거의 모두 납득이 된다. 만족은 안 돼도 납득은 되니까 여론의 분노가 시청층 이탈로 이어지지 않았을 테고. 

 

 드라마에서 특기할 만한 지점은 '말이 안 되는 걸 주제를 통해 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장현은 갑주를 차고 전쟁에 나가는 순간 어지간한 무관, 장수보다도 강한 칼놀림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는 싸움을 좋아하거나(드라마로 치면 청 세력이라 할 수 있겠다) 명예와 국가를 중시하는(극중의 남연준(이학주 분)이 이쪽이다) 당시의 전통적인 남성관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청나라 병사들을 썰면서(?)도 "지금쯤 아랫목에서 궁둥이나 지지고 있어야 하는데!"라며 한탄할 정도로 그런 가치관을 싫어한다. 그런데도 그가 굳이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기며 칼을 든 건 순전히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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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현은 유길채를 사랑한다. 남연준을 꼬실 작정으로 그네 타던 유길채를 만나서 '꽃 소리가 들리는' 평생 다시 없을 체험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평소에 하던 상인 노릇으로 얻은 약삭빠른 판단력을 십분 활용하며 남쪽으로 피난부터 갔을 것이다. 그러나 능군리 마을 사람들이 청군의 침략 경로 위에 있기에, 다시 말해 길채가 전쟁에 엮일 위기에 놓였기에 장현은 전혀 반대되는 선택을 한다. 누군가를 위해 전쟁에 뛰어든다는 건 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과 같다. 백 쌍의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면 딱 그만큼의 양태가 있을 사랑에 우열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지만, 이장현은 다신 살아서 아랫목에 못 가도 좋다는 가장 절박한 사랑을 참전으로 표출한다. 

 

 이후에도 장현의 죽을 고비는 계속된다. 17:1로 칼싸움을 벌이다가 등을 베이고, 청나라까지 가서 노예시장 상인과 주먹을 주고받으며 어쩌다 청나라 황녀 각화(이청아 분)와 엮여 기마 사냥에 능한 그의 활을 얻어맞기도 한다. 그런 생사를 가를 위기에 자꾸 걸어들어가는 건 순전히 길채 때문이다. 17명의 청나라 병사를 모두 베지 못하면 길채가 칼에 맞았을 것이다. 우락부락한 노예시장 상인과 싸우지 않았다면 길채가 정체 모를 곳에 팔려갔을 것이다. 각화의 화살을 자신이 맞지 않았으면 촉은 길채의 머리를 뚫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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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장현의 헌신을 얄궂게도 조선에서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한 뒤에야 깨닫게 된 길채는 결혼과 청나라 납치로 본인의 정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끝내 장현을 이해하게 된다. 지난 주 토요일 방영된 16회에서 장현에게 연정을 품은 각화가 질투심에 "유길채를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면 조선인 포로를 전부 묻어버리겠다"고 하자, 장현은 포로와 길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간호하겠다는 길채에게 조선 귀국을 강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해야 사랑하는 사람이 안전해질 수 있는 상황. 결국 자신이 해온 모든 행동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부인께 매달려도 봤고 부인 때문에 죽을 고비도 넘겼어요. 원없이 다 해 보았으니 이제 내 마음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그러니 돌아가시오. 게다가 매번 날 밀쳐내는 부인에게 질렸어요. 예, 이제 아주 싫증이 납니다. 그러니 돌아가시오 제발. 서방까지 있는 여인이 염치라는 걸 모르시오?

 

 길채로서는 자신을 위해 목숨도 던졌던 사람에게 가까워졌다 생각했을 때 이런 차가운 말을 듣는 게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줘도 밀어냈던 과거와는 다르게 한 번에 장현의 진심을 이해한다.

 

 조선에 가자. (장현이) 그걸 원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어.

 

 마음이 상해서 조선에 가는 게 아니다. 장현이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모진 말을 들어도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는 건 들은 말이 진심과 거리가 멀다는 걸 이미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큰 사랑은 있는 그대로 말해도 밀어내던 사람을 반대로 말해도 알아듣게 한다. 

 

 아직 드라마가 안 끝났기에 미완성인, 그러나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끼는 둘의 사랑을 보고 아예 미완성이 된 내 과거를 떠올렸다. 2월에 헤어진 게 이제 반 년을 지나 일 년을 향하고 있다. 처음엔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 천 일을 넘게 봐놓고 어느 날 갑자기 메신저 한 줄로 끝을 말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 그러나 시간의 마모를 거치며 원망도 연해졌다. 그런 일이 있을 정도면 애초에 더 봤을 때 서로 고통스러웠겠지, 하며 넘어가는 단계를 밟았다. 지금은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러는 나는 과연 마음을 다했나?  

 

 <연인>의 황진영 작가는 "사랑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뭣까지 할 수 있는지"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어떤 평론가는 운명적인 사랑을 두 번 하면 인생이 망한다지만, 어찌됐건 사랑하는 도중엔 그렇다 믿고 행동하는 걸 지향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흐려지고 이유가 깎여나간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전쟁에 낑겨들어가지 않으면 연인이 죽어나가는 시대는 아니어도 내가 과연 그런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는지를 생각한다. 

 

 언제는 끝이 온 것 자체를 원망했지만, 이젠 그랬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상대가 차가워질 때 나는 아직 뜨겁다고 설득하려고 하는 대신 그런 상대를 인정하려고 애썼다. 나를 눈앞에서도 외면할 때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서운하다고 하지 않고 눈치를 봤다. 상대가 내 선의를 전부 저버리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할 때 나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고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나는 어디까지 가지도 못했고 뭣까지 하지도 못했다. 사랑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죽을 만큼 끌리는 내 마음을 표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전자는 호구처럼 했어도 후자는 포기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걸 포기한 대가는 우스운 미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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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의 금토드라마 <연인>은 아직 미완성인데도, 종영까지 4+@회를 남기고도 한때는 지워진 게 억울했던 내 감정이 왜 당연한 미완성이었는지를 납득하게 만들 만큼 강고한 이야기와 그림을 가졌다. 오늘 밤 9시 50분 17회가 방송된다. 

댓글 2

Carmine 2023.11.04. 16:16
미완성이라기엔 결국은 완결이 나는게 확정이지만...
그래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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