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베르크 - 서정 모음곡

317px-Alban_Berg_(1885–1935)_1930_©_Max_Fenichel_(1885–1942).jpg

 

아놀드 쇤베르크와 제2비엔나학교는 당대에 "무조음악"이라는 파격적인 음악을 작곡해나가며 아방가르드 음악계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하지만 쇤베르크는 약간 복잡하고 어려운 무조음악을 옛 바로크 시대같이 논리적이고 깔끔하게 정리해야할 필요성을 느꼈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20세기 클래식계의 최고 업적중 하나인 "12음기법"을 탄생시키기 까지에 이른다.

피보나치 수열에서 힌트를 얻어 발명된 12음기법은 한 옥타브내의 모든 12개의 음계를 

최대한 무조적으로 배치하여 이를 기반으로 전개하는 음악을 의미한다.

이 기법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고 제2비엔나학교 멤버들을 시작으로

점차 너도나도 따라하면서 2차세계대전이 지나면 엄청난 유행으로 번지게 된다.

심지어 그들과 대립하던 "아론 코플랜드"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또한 시간이 지나 

결국 12음기법의 매력에 끌리게 되면서 그들만의 12음 음악을 쓰기에 이른다.

나중에 12음기법은 더 확장되어 "총렬주의"음악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376px-Arnold_Schoenberg_la_1948.jpg

(아놀드 쇤베르크의 모습)

 

쇤베르크의 제자 둘인 "알반 베르크"와 "안톤 베베른" 또한 역시 12음기법, 음렬주의 음악을 작곡했다. (그것도 쇤베르크 다음으로 가장 먼저)

하지만 이 둘은 같은 12음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꽤 다른 길을 걸었다.

베베른은 쇤베르크보다 더 나아가서 12음기법을 최대한 함축적이고 경제적으로 활용하여

일명 "점묘법"이라고 불리는 극한으로 함축된 12음기법을 사용했다.

반면 베르크의 경우는 더욱 보수적이어서 옛 고전 시대와 낭만 시대등의 조성적인 음악을 그리워하였고

그는 12음기법을 최대한 조성적이고 낭만적으로 사용해나갔다.

다소 보수적으로 활용했다보니 당시 아방가르드계에서는 다소 반발이 있었지만

여전히 옛 낭만주의의 길을 걷던 보수적인 선배나 동년배 음악가들에게는 많은 찬사를 들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는 이제 보수적이라는 반발은 거의 없어졌고 

베르크의 12음기법 또한 다른 음악가 못지않은 파격적이고 독특한 결과물로써 많은 인정을 받고 있다.

 

서정 모음곡은 1926년에 작곡된 알반 베르크의 현악 4중주이다.

전작 현악 4중주로부터 무려 15년만에 작곡된 후속작이기도 하며, 그가 작곡한 마지막 현악 4중주이기도 하다.

이 곡은 베르크가 최초로 "12음기법"을 사용한 상당히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곡이다.

다만 정확하게는 바로 작년에 가곡에서 12음기법을 활용한 곡이 있었지만 이는 미발표곡으로 사후에서야 출판된 곡이다. (일종의 습작으로 추정)

뛰어난 작품성과 파격성으로 당대에 많은 충격을 안겨주며 호평받았고

특히 "벨라 바르톡"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줘 그가 현악 4중주 3,4번을 작곡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음악은 베르크의 동료 작곡가였던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에게 헌정이 되었다.

제목 또한 쳄린스키의 "서정 교향곡"을 오마쥬한 "서정 모음곡"으로 지었으며

중간중간 그의 "서정 교향곡"에서 인용한 멜로디가 사용된다... 만

사후에 알려지기를 이 곡에는 뒤에 "비밀 헌정자"와 "비밀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비밀의 정체는 무려 베르크와 불륜(...)관계 였던 여인 "한나 폭스 로베틴"을 가리키고 있다.

베르크는 이미 "헬레네 나호스키"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었고 

그녀와는 베르크가 개종까지 해가면서 로맨틱하게 결혼한 일화까지 존재했지만

그런 그녀 뒤에서 이런 불륜을 저질렀다는 게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나마 한나와의 관계는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다보니 헬레네는 이 불륜 관계를 끝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고 한다.

 

394.jpg

(한나 폭스 로베틴의 모습)

 

곡은 총 6악장으로 이뤄져있어 꽤 규모가 커보이지만 생각보다 각 악장들이 길지 않아서 모두 연주하면 약 30분정도이다.

악장들은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이 계속 교차하는 식으로 배치되있다. (빠름-느림-빠름-느림-빠름-느림)

각 악장의 특징이라면 빠르기 지시에 특정한 "감정 지시"가 있다는 점이다.

1악장은 "gioviale(기쁘게)", 2악장은 "amoroso(사랑스럽게)", 3악장은 "misterioso(신비롭게)"와 트리오는 "estatico(황홀하게)",

4악장은 "appassionato(열정적으로)", 5악장은 "delirando(광란하듯이)"와 트리오는 "tenebroso(우울하게)",

그리고 피날레 6악장은 "desolato(슬프게)"라는 지시가 있다.

즉 인간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 감정들이 모두 "사랑"과 어딘가 연관된다는 점은 특징으로 이 곡의 비밀 프로그램을 암시한다.

"서정"이라고 써두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서정과는 살짝 거리가 있고 전형적인 표현주의의 음악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곡부터 베르크의 12음기법이 활용되는데 모든 악장은 아니고 1,3,5,6악장만 사용되고 

2,4악장은 12음기법이 없지만 (다만 무조음악이다.) 선율의 연관이 있다.

그외에 다양한 모티프들이 인용되고 있지만 이는 아래에서 하술하겠다.

 

1. Allegretto gioviale

 

1악장은 "gioviale(기쁘게)"라는 지시에 걸맞게 활기차게 움직이는 악장이다.

12음기법이 사용되다보니 다소 무작위적으로 들리지만 꽤 들뜬 분위기라는 건 확실하다.

일종의 소나타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다소 변형되어있으며 길이는 3분정도로 짧다.

1악장에 사용되는 12음열행은 다음과 같다.

540px-Lyric_Suite_Movement_I_tone_row.svg.png

 

 

2. Andante amoroso

 

2악장은 느린 악장이다.

amoroso(사랑스러움)이라는 지시처럼 무조로 뒤틀려져있지만

이 속에서 정말 기이하게 우아하고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선율을 가지고 있어 

후일 작곡하는 베르크의 오페라 "룰루"를 연상시킨다.

이 곡의 비밀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이 악장은 일종의 세레나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Allegro misterioso - Trio: estatico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이며, 다시 12음기법이 사용되고 함께 "A-B-H-F 동기"가 사용되고 있다.

A-B-H-F 동기는 이름처럼 "라-시플랫-시-파"가 연주되는 동기인데(다만 음악 흐름에 따라 반대로 돌리거나 배치를 바꾸는 식으로 변형을 한다.)

이 의미가 바로 비밀 프로그램인 Alban Berg(알반 베르크) 이름의 이니셜과 그의 불륜 상대인 Hanna Fuchs-Robettin (한나 폭스 로베틴)의 이니셜이다.

즉 이 곡은 이 둘의 불륜관계를 음표로 쓰인 암호로 암시하고 있는 악장이다. 

A-B-H-F 동기와 misterioso(신비롭게)라는 지시를 통틀어 보면 아마 베르크의 한나와의 비밀의 사랑을 뜻할것이다.

스케르초 파트는 현악기들이 약음기를 낀채 마치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그로테스크한 음형을 연주하는 이상한 음악으로 과연 misterioso라 할 만하다.

트리오(1분 23초)는  앞의 다소 답답한 스케르초를 뒤로 하고 estatico(황홀하게)라는 지시처럼 강렬하고 열광적인 선율을 폭발시킨다.

다만 그리 길지 않고 다시 처음의 스케르초로 돌아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 조용히 마무리한다.

3악장에 사용되는 12음열은 다음과 같다.

 

540px-Lyric_Suite_Movement_III_tone_row.svg.png

1악장의 음열과 동일하지만 4번째 음열과 10번째 음열의 위치를 교차시킨다.

 

4. Adagio appassionato

 

4악장은 다시 2악장처럼 느린 악장이다.

다만 비록 느린 악장이여도 appassionato(열정적으로)라는 지시처럼 

굉장히 기복이 심하게 다이나믹하고 극적으로 전개가 되고 있어 생각보다 느린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은 마치 열정을 다하여 하얗게 불태운 듯 고요해지면서 끝난다.

12음기법은 사용되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무조음악이다.

또한 쳄린스키의 "서정 교향곡"에서 따온 멜로디가 중간에 등장한다.

 

5. Presto delirando - Tenebroso

 

5악장은 3악장과 마찬가지로 스케르초 악장이다.

스케르초는 그야말로 광란의 음악으로 앞에 곡들도 못지않게 정신 나갔지만

매우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음표들과 불협화음들로 가득찬 정신사납고 광기어린 음악이다. 

과연 빠르기말에 delirando(광란하듯이)라고 할 만하다.

반면 트리오는 갑작스럽게 무서울정도로 조용해지더니 tenebroso(우울하게)라는 말처럼 음산하면서 우울한 음악을 고요하게 연주하고 있다.

스케르초 형식에 따라 트리오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광란의 스케르초로 돌아와 끝맺는다.

여러모로 조울증 환자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악장이다.

이 악장의 12음기법은 트리오에서만 사용되며 음열은 다음과 같다 -> C#-C-G#-D-F-A-E-B-H-E♭-F#-G

berglyricsuite5.PNG

악보도 상당한 광기를 자랑한다.

 

6. Largo desolato

 

마지막 6악장은 느린 악장 피날레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의 피날레 전통을 잇는 무겁고 슬픈 피날레 악장이다.

우울하고 퇴폐적인 조용한 음악과 절규하듯 감정이 격하게 고조되는 음악이 교차하면서 등장하여 꽤 기복이 심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흐느끼면서 떠나가듯, 사라지면서 서정 모음곡을 끝낸다.

비밀 프로그램을 말이암아 보면 아마 불륜에 대한 깊은 죄책감을 표현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악장에 사용되는 12음열은 이렇다.

Berg',s_Lyric_Suite_Mov._VI_tone_row_1-P.png

중반에는 저 음열을 반전하여 이렇게 바꾼다.

Berg',s_Lyric_Suite_Mov._VI_tone_row_2-P.PNG

 

 

마지막 6악장에는 베르크가 옵션격으로 "소프라노"를 깃들일수 있도록 해놓았다.

피날레에 소프라노 투입을 하는 것은 베르크의 스승 

"아놀드 쇤베르크"가 현악 4중주 2번에서 선보인 아이디어인데 이를 따라한 듯 하다.

가사는 샤를 보들레르의 시에서 따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프라노 추가 피날레가 더 마음에 든다.

 

 

 

음반정보 

Juillard String Quartet

소프라노 버전만 Emerson String Quartet, Renée Fleming

 

 

 

 

 

 

 

 

 

 

carmine_quiet.jpg

가기전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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