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독한 형사 <3장 14화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

1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비를 퍼붓던 장마는 잠시 쉬고 오겠다는 듯 범죄 현장 곁을 슬그머니 떠났다.

길게 이어진 폴리스 라인을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궁금해서 찾아온 사람, 정말 사실인지 확인하러 온 사람 등 다양했다.

사건 현장입니다, 멀리 떨어지세요.

다른 동료들보다 늦게 현장에 도착한 공 반장이 자기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살짝 밀치면서 말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인 후 경계선을 위로 쳐올린 다음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피해자가 쓰러졌던 자리에는 표식의 흔적으로 사람 형태의 그림이 그려진 상태다.

공 반장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자기 옆에 있는 정 순경에게 브리핑을 해보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이름 박은비…나이 32세…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는 무직이라고 합니다…사망 추정 시간은…

그게…지난번 사건…기억나세요? 국과수 다녀와서 피해자 부검한 날…그 사건 피해자와 동일한…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로…사인은 출혈성 쇼크…입니다……."

 

"뒤통수엔 부딪친 흉터가 있겠구먼."

 

"네…1차 사건과 동일하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뒤 칼로 여러 번 복부를 찌른 것 같습니다……"

 

"남명성, CCTV랑 블랙박스는 확보했어?"

 

사건 명칭을 이제 '1차', '2차'로 구별짓기 시작한 정 순경.

공 반장의 시선이 남명성에게 날아들었다. 남명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보는 했는데…지난 사건과 똑같아요…장갑…마스크…모자…커스텀 된 옷…이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왜 다른 시간도 아니고…하필 낮이어야 했을까요?"

 

중간에 이재웅 형사가 끼어들었다.

 

"날씨를 이용한 거겠지…비도 오니까…이런 골목이라면…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을 테고…

있다고 해도…잘 나오지도 않을뿐더러…결정적으로…우비를 썼으니…튀지가 않잖아?"

 

"재웅이 말대로라면…1차 사건과 2차 사건은…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으니…

용의자도 그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는 소리인데…탐문 수색이라도 해볼까요…반장님?"

 

"그러는 게 좋겠어…재웅이 너는 사무실로 돌아가서 수사 자료 챙긴 다음에…청사 좀 한 번 다녀와라……."

 

반대편에서 이를 들은 정 순경이 눈치를 살폈다.

마치 서울지방경찰청엔 왜 보내느냐는 눈빛.

공 반장의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너희도 알다시피…우리가 가진 정보는 고작 자료 몇 개뿐이야…하지만 이런 패턴 범죄는…

반드시 용의자가 자신도 모르는…무언갈 남겨놨을 거라고…청사에 내가 잘 아는 프로파일러가 있어…

그 사람을 좀 만나봐……."

 

"그럼 사무실부터 다녀오겠습니다……."

 

 

 

2

 

사무실로 돌아온 이재웅이 문을 덜컥 열었다.

모두가 현장에 나가있는 사이 홀로 사무실을 지킨 한 여성이 있었다.

바로 대국일보의 서유미 기자.

그녀는 이 형사의 책상에 올려진 수사 자료를 슬쩍 보았다가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자

넙죽 의자에 앉아선 전화받는 척 연기하였다.

그러나 베테랑 형사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성큼성큼 다가가 손으로 어깰 툭툭 건드렸다.

 

"전화하는 척 그만하시고…제 자리에서 그만 나오시죠……."

 

"너무…뻔했나? 그런데…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봐서 아시잖습니까…연쇄 살인이죠 뭐……."

 

"그 보니까…범인 이상한 취향이 좀 있는 거 같던데……."

 

이 형사의 오른손 검지가 그녀에게 향했다.

그럴 줄 알았어, 읽은 거 맞네!

그녀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들켜버린 이상 더 숨길 이유가 없다.

 

"여기 사진 보시면…첫 번째 사건하고…지금 형사님이 손에 들고 있는 두 번째 사건…

피해자가 색만 다르지…동일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고 있잖아요…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예요……."

 

순간 뒤통수가 얼얼했다.

단단한 얼음으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것처럼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동안 본인도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 부분을, 그녀가 콕 집어서 얘기해 준 것이다.

그는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내가 뭘 잘못했냐며 일부러 눈빛을 피했다.

 

"저랑 잠시 청에 좀 다녀옵시다…따라와요……."

 

"경찰청이요? 아니…잠시만요! 같이 가요!"

 

그녀가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고 따라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 1층 로비에 있는 조그만 카페.

개인이 운영하는 곳인지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와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그녀는 아메리카노를 홀짝 마셨다.

한편 서유미 기자 옆에 앉은 이재웅은, 오른쪽 다리를 덜덜 떨면서 양팔을 꼭 껴안았다.

곧 있을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때 마침 출입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두 사람과 만나기로 한 경찰청 직원 중 한 명으로, 현재는 프로파일러로 활동 중이다.

흰머리가 무성하고, 살짝 두꺼비처럼 생긴 인상을 가진 남성이 뚜벅뚜벅 걸어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도봉서 이재웅 형사님 되십니까? 서울지방경찰청 권용이라고 합니다……."

 

"아…도봉서 이재웅입니다…이쪽은 절 도와주는…서유미 순경입니다……."

 

서유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가 누굴 돕는다고? 거기다 왜 나를 형사로 소개하는 건데?

권용 프로파일러가 의자에 앉았다.

 

"흠…이게 이번 사건 수사 자료군요…잠시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이재웅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권 프로파일러가 건네받은 자료를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서유미와 이재웅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한껏 긴장했는지 얼굴빛이 상당히 어둡다.

왼손으로 파일을 덮는 권용 프로파일러.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용의자는 사전 연습을 여러 번 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비록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피해자의 어디를 공격하면…쉽게 제압할 수 있는지…수차례 연습한 것으로 보이고…굉장히 섬세하면서…

신중한 면을 갖춘 성향으로도 보입니다……."

 

"섬세하면서 신중하다는 건……."

 

"유독 비가 많이 오는 날에만 범죄를 저지른 것…피해자의 급소를 찔러서 제압한 것…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으려고 의류를 커스텀 한 것까지…이 모든 게 다 범행을 준비하기 위한…섬세한 작업이자…

신중한 선택이었다는 거죠…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뒤에 이어질 말은 과연 무엇일까? 이재웅의 시선이 살짝 가라앉았다.

 

"지나치게 섬세해서 작은 것에도 흔들릴지 모른다는 점…그게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약하게 건드리기만 해도…격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겁니까?"

 

"그렇죠…이런 사람은…자신의 범행이 뉴스에 나올 때는…아무렇지 않다가…

본인이 조금이라도 불리해질 것 같은 정보가 나오게 되면…즉시 불안에 떨게 되는 겁니다……."

 

이재웅은 턱을 괴었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조금 생긴 것 같다.

 

프로파일러와 짧은 회담을 마친 후 경찰청을 나온 이 형사는 자신의 승용차에 다시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은 서유미 기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흠…의외로 쉽게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좋은 방법이 떠오르긴 했는데……."

 

자동차 시동을 켜면서 상대방 얘기를 들은 이재웅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서유미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미끼가 될게요…그 근처에 산다매요…그럼 분명 자주 범행 현장을 돌아다닌다는 거고…

아까 프로파일러님이 그러셨잖아요…범인은 분명 범행을 위해 열심히 체력을 키웠을 거라고…

타깃을 물색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고……."

 

장차 몇 시간이고 돌아다닐 체력을 소유한 용의자.

그 사람을 잡으려면 스스로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서유미 기자.

운전대를 잡은 그의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쉽게 할 수 없는 결정.

 

"일단…서로 돌아가서 반장님께 말씀은 드려볼게요……."

 

"좋아요…참 저…회사까지만 좀 바래다주실래요? 잠시 국장님께 보고할 게 있어서요!"

 

오늘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그녀가 유일하게 건넨 부탁.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못해줄 이유가 없었다.

시동을 켠 자동차가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3

 

경찰서로 돌아온 이재웅은, 반장에게 가서 그녀가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공 반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용의자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도 민간인을 끼어들게 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의견.

이재웅은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생각을 좀 하는가 싶더니.

 

"저도…처음엔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지금이 아니면…녀석을 잡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저희가 최대한 기자님 곁에 가까이 붙어서…있으면…큰 피해는 막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반장님……."

 

남명성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사무실 의자를 쭉 당기면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명성이…탐문 수색 어떻게 된다고 했지?"

 

미끼를 이용해서 범인을 잡는 방법은 도무지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남명성 쪽으로 눈길을 옮겨 물었다.

남명성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용희랑 주변 일대를 다 뒤져서 물어봤는데…단 한 명도 아는 사람…본 사람이 없답니다……."

 

"반장님…그리고 내일…또 비가 내린다고……."

 

컴퓨터로 날씨 예보를 확인한 정 순경이 말끝을 흐렸다.

공 반장은 상체를 기울였다. 양손으로 턱을 괴고선 곰곰이 생각했다.

 

"하…재웅아…이거 잘못되면…우리 다 직위 해제급이야……."

 

이재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등 뒤에 있던 양손에 힘을 꽉 주면서 말했다.

 

"압니다…하지만…빨리 잡아야 한다면…지금이 낫지 않겠습니까?"

 

공 반장은 '쓰읍' 하고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젖혔다.

최대한 피해가 없게 잘 준비해서 빠른 시간 내에 검거하잔 의미.

 

 

 

4

 

오랜만에 직장 동료 성서희를 만난 서유미 기자가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성서희는 방긋 웃는 그녈 보곤 씩 웃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국장님께 보고했더니…아주 좋대?"

 

"뭐…그것도 있고…요즘 나…거기 있으면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미를 단 번에 알아챈 성서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너…거기 계신 형사님 한 분 좋아해!?"

 

서유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쑥스러운지 술잔을 슥 내밀었다.

성서희가 술을 건넸다.

소주를 한 잔 따라주곤 말을 이어갔다.

 

"어머 어머…얘가 완전 정신을 못 차리네……."

 

"헤헤…그리고…나…범인 잡으러 간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서유미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이벤트 마지막 날이니 손글씨 이벤트 운석열 183 11
이벤트 헌혈 이벤트 6 jacksonville 449 18
공지 미디어/도서/음악 갤러리 통합 규칙 8 리나군 927 20
이벤트 도서 구입 / 영화 예매 / 음반 구매 / 공연 및 전시 인증 이벤트 3 리나군 884 7
공지 후원내역 (2024/05/26) 리나군 721 3
공지 추천시 최소한의 정보는 주세요 안녕안녕반가워 1026 15
잡담
기본
ChenchoGyeltshen 98 10
뮤직
이미지
운석열 84 8
잡담
기본
꼰대 52 6
잡담
파일
아이린애들러 57 7
뮤직
이미지
꼰대 53 6
잡담
기본
꼰대 52 6
OTT
기본
리나군 51 6
잡담
기본
Rocket 42 8
잡담
기본
리나군 61 9
잡담
기본
mrfeelgood 69 8
잡담
기본
사실은이렇습니다 59 9
잡담
기본
운석열 72 8
잡담
기본
비에이라 71 11
잡담
기본
꼰대 44 4
잡담
이미지
운석열 59 6
이벤트
이미지
럭키금성황소 56 8
뮤직
이미지
Jarrett 42 6
잡담
기본
운석열 84 7
잡담
기본
설윤 56 7
잡담
이미지
너넨먼데 6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