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독한 형사 <3장 16화 - 독한 형사> (완)

 

1

 

전 여자친구의 남동생이 수감되어 있는 ○○ 교도소를 들른 이재웅은, 김재혁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때 마침 문이 열렸고 창틀 너머로 김재혁의 모습이 보였다.

예전에 비해서 낯빛이 상당히 밝아졌다.

상대방이 나타나자 이재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재혁은 고개를 저었다.

앉아도 된다는 뜻.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잘 지냈어?"

 

"그럼…형은 좀 어때…똑같지?"

 

"형사가 뭐 그렇지……."

 

그는 눈치를 살폈다.

언제, 어느 때에 본심을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니라.

하지만 그걸 당사자인 김재혁이 모를 리 없었다.

함께한 세월이 몇 년인가, 계속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형의 모습을 보곤 고심이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김재혁은 "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뭔데 또…이번엔 뭐가 고민이실까……?"

 

"티…많이 나냐?…크흠…다름이 아니고…그……."

 

말을 계속 더듬는다.

김재혁은 상체를 기울였다.

조금 더 안면을 들이대면서 그에게 말했다.

 

"형…다른 사람은 몰라도…난 못 속여…뭔데…설마…형……."

 

"으…으…응?"

 

"좋아하는 여자…생긴 거구나?"

 

"그…좋아하는 게 아니고…내가 좀…말을 심하게 한 거 같아서……."

 

김재혁은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가 죽은 뒤로 가장 크게 웃어보는 그.

 

"우리 누나는 그렇게 잘 꼬셨으면서…왜 그 사람한텐 빌빌댈까…형…이 한 마디만 할게…잡아…

설령 나와 내 누나…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 때문이라면…그냥 잡아…저기 있는 누나가…아마 형을 봤으면…

멍청이야…그 사람 안 잡고 뭐해…라고 말했을걸?"

 

재웅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마음속에서 느껴졌고 이를 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주먹을 움켜쥐곤 말을 이어갔다.

 

"정말…괜찮겠냐……?"

 

"형…형이 늘 입에 달고 사는…형사의 촉으로서 말하는 건데…그 여자 놓치지 마…어떻게든 잡아……."

 

이재웅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늘나라로 떠난 여자친구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연기처럼 사라진 애인을 떠올리자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를 한 번 훌쩍거리고는 말을 더듬었다.

 

"…맙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고맙다' 라고 말한 게 분명하다.

김재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씩 웃으면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2

 

조용했던 대국일보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데스크톱 앞에서 일을 하던 기자들 사이로 대뜸 형사 한 명이 나타나선 서 기자 자리가 어디냐고 묻는 것 아니겠는가.

어느 여 기자의 대답, 어디 갔는지는 잘 모르겠고 자리는 저기예요

그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가족과 찍은 사진 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자리를 잘 찾은 것 같다.

문제는 당사자가 없다는 것.

그의 시선이 살짝 가라앉았다.

 

"유미…만나러 오신 거예요?"

 

놀란 이재웅 형사가 황급히 돌아섰다.

대국일보에서 서유미와 술 친구 하는 성서희 기자다.

그녀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쯧" 하고 혀를 내둘렀다.

 

"이거 어쩌지…지금 강남 경찰서 취재하러 갔거든요…따로 연락드릴까요?"

 

"강남 경찰서…가…감사합니다…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저…저…저기요!"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는 그.

그를 잠시 불러 세워보려 했건만 어지간히 급한가 보다.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구나…유미가 좋아한다는 그 사람…….'

 

 

 

3

 

회견실에서 경찰관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노트북으로 기사를 작성하던 서유미 기자가,

제 할 일을 마치고는 기지개를 쭉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시는 것 같은 기분. 그녀는 인상을 팍 구겼다.

한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기자회견은 예정 시각보다 늦어져서 두 시간이 돼서야 끝이 났다.

방을 나온 서유미는 복도를 뚜벅뚜벅 걸었다.

경찰서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지나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층계를 전부 내려왔을 때쯤 갑자기 왼쪽에서 사람 손이 불쑥 - 하고 나타났다.

그녀는 놀라서 고개를 휙 돌렸다.

 

"이재웅 형사님?"

 

"출출하실 텐데…크흠…이거라도 드시죠……."

 

은박지에 포장된 김밥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눈동자를 굴려 그것을 바라봤다.

 

둘은 장소를 옮겼다.

분수가 나오는 공원에 가서 김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가 김밥을 한 입 먹은 후 눈길을 찬찬히 옮겼다.

 

"저…그…제가…온 이유는…지난번에…오지 말라고 했던 말……."

 

입안에 있는 김밥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녀가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흠" 하고 헛기침했다.

 

"제 말은…아예 오지 말라 했던 게 아니라…그…그러니까…그냥 오십시오…대신……."

 

"……."

 

"대신…평소처럼 취재도 하시면서…가끔은…저도 봐주십시오……."

 

그녀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납작해졌다.

사납고 거칠었던 그한테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

그녀는 김밥을 꿀꺽 삼켰다.

 

"그 말은……."

 

"기자님과…잘…지내보고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고백을 받아줄 의향이 있다면 잡아주고, 그게 아니라면 잡지 말아달라는 의미.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고백…참 서투르시네요……."

 

그러고는 손을 꼭 붙잡았다.

 

 

 

4

 

도봉서 강력반 사무실 안이 호통치는 소리로 가득하다.

화가 잔뜩 난 이재웅 형사가 의자를 박차며 일어났다.

 

"이 xx가…하…아…미안 미안…내가 애하고 부인한테 약속했거든…앞으론 욕설과 폭행을 저지르지 않기로……."

 

범인을 때리려다 손을 거두는 그.

자신을 때리는 줄 알고 움찔한 용의자.

이재웅의 시선이 책상에 올려진 결혼식 사진 쪽으로 옮겨간다.

사진 바로 옆엔 자신을 그린 팬아트가 있었다. 전 여자친구 김지윤의 작품이다.

액자를 슬쩍 들여다본 재웅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용희야…네 차례다……."

 

정 순경, 아니 정 경장이 용의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용의자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형사와 정 형사를 한 번씩 쳐다본 후 말하였다.

왜 그러세요, 저한테!

정 경장의 폭행이 이어졌다. 머리채를 붙잡아 책상에다 얼굴을 내리꽂았다.

예전, 본인이 하던 방식 그대로를 답습한 정 형사를 보자 흡족한 지 이재웅은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공 반장이 이를 발견하곤 언성을 높였다.

 

"야, 정용희! 너는 배울 게 없어서…아이고…진짜……."

 

자기 자리로 와선 말을 잇는다.

 

"적당히 좀 패라…아 그리고…오늘…다들 잊지 않았지?

서대문서로 발령 난 재웅이를 축하하기 위해…회식하기로 한 거…

다들 뺄 생각하지 마…알겠어?"

 

"네!", 정 형사가 곧장 대답했다.

 

남명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점 친구를 닮아가는 후배를 보자 가슴이 갑갑해진 것이다.

 

늦은 저녁 시간,

강력반 4인방이 식탁을 가운데 두고 모여 앉았다.

 

"재웅이…가서도 가끔 놀러 올 거지!?"

 

이모가 반찬을 옮기며 말했다.

이재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들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럼요…다음엔…재혁이하고 둘이서 오겠습니다……."

 

김재혁과 전 여자친구 김지윤을 데리고 자주 왔었던 그 고깃집이다.

그녀가 히죽 웃었다. 마음껏 먹고 가라며 등을 한 번 두드려주곤 주방으로 돌아갔다.

 

"자…그럼 서대문서로 발령 난…재웅이를 위해 건배!"

 

"건배!"

 

잔 네 개가 쨍 - 하고 부딪쳤다.

 

"크아…달다 달아!"

 

재웅이 오른손으로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선배님들…저기……."

 

벽걸이에 걸린 텔레비전 쪽으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네, 오늘 낮이죠…서부지검에서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는데요…일정에 없던 기자회견으로…그 주최자는…

서부지검이 아닌…북부지검 서이도 검사로…최근 불거진 유성주 서부지검 검사 사건과 관련하여…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였는데요…서 검사는…더불어…….

 

서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어느 검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재웅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양팔을 끌어모으고는 고개를 살짝 젖혀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스크린을 보는 그의 시선이 영 예사롭지 않다.

 

 

 

5

 

동료들과 헤어진 이재웅은 밤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 선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가죽 지갑이었다. 지갑을 확 펼쳐 그 안에 있는 사진 몇 장을 꺼내었다.

부인,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그는 "후" 하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사람을 잃고 나서 그 아픔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모든 것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니까 그럴 수 있다고 믿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렇게 살다간 내 소중한 이들이 영영 내 곁에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실 그동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쭉 도망만 다녔던 것일지도 모른다.

애인을 떠나보내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그런 겁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할 수 있다.

경찰로 지내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는걸.

그게, 내가,

독한 형사인 이유이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네온 사인으로 가득한 서울 야경 사이를 가로지르며 그는 계속 걸었다.

앞으로 끝없이 펼쳐질 수많은 사건에도 굴복하지 않겠노라는 맹세를 하며.

 

-끝-

 

https://youtu.be/LDFc5ajdkeQ?si=-Qte4nGPcEAg6nD1

 

 

<에필로그>

 

서부지방검찰청이라고 적힌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운전석 쪽에서 문이 덜컥 열렸다.

어두운색의 정장을 입고선 한 손에 사무용 가방을 든 키 큰 남성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승강기 앞에 선 그의 눈엔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마치 앞으로 있을 많은 범죄를 앞두고 만날 '피고인'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서이도 검사는 승강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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