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치부책

헌병대 조용한 사무실에서 나와 독대한 군무원이 말했다.

"지금 XXX 중령님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는 게 있는데, 몇 가지 질문만 좀 할게요. 혹시 관련 있는 사항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면 먼저 이야기해줘도 됩니다."

"아, 네."

"X중령님이 공금에 손대거나 그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 본 적 없습니다."

...

조사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정말 몇 가지 질문만 던진 후에는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내 눈치를 살짝 살피는 듯하던 군무원은 별로 나올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금방 돌려보내주었다.

그가 원하던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예산을 돌려 만든 부대 비자금 치부책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관리하고 있었다. 비교적 많이 나오는 예산 일부를 현금화시켜 언제 어떻게 썼는지를 기록한 장부 2권이다. 부대 이름으로 나오는 모든 예산을 내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 말고 걸릴 것이 없는 건 확실하다. 이 장부들은 이전 대대장 X중령이 만든 것은 아니고 훨씬 이전부터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금액이 워낙 소소하긴 하지만 나도 횡령의 공범인 것인가?

아마 부대를 출입하는 업체 중 하나가 걸렸거나, 그 흔한 진급 경쟁 상대를 탈락시키기 위한 투서이거나, 뭐 그런 것일 게다. 내가 장부를 제출했더라도 아마 나는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득을 본 것도 없고(일이 늘기만 했지), 지시에 따라 관리하고 작성하기만 했을 뿐이니. 3년짜리 단기 장교가 징계가 두려울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른 부대에까지도 일 많이 시키기로 악명 높았던 전 대대장이 이뻐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이 귀찮아질까봐 그랬던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얼마 안 되는 금액조차도 부대 회식비에 보태는 등 소소한 용처 몇 군데를 제외하면, 아무리 수리 요청을 올려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장비 수리나, 아무리 구매 요청을 올려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망가진 비품 구매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뭐 다른 부대에 있을 때 크게 해먹은 게 걸린 것일지도 모르지. 이런 장부들은 아마 부대별로 다들 있을 거다. 내 책상 서랍에 있던 크고 작은 장부 2권은 이번 사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가능성도 크다.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X중령을 만났다. 경례를 붙이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받아준다. 아마 마지막 진급 기회였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물건너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진급을 포기한 지휘관만큼 무력하고 온순한 군인은 없다. 예전 대대장 시절 불호령을 내리던 X중령의 그런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오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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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치부책의 의미로 쓰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틈새시장을 공략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