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아이리시맨(The Irishman, 2019)

아이리시맨.jpg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https://youtu.be/VGI04ICfquQ

영화의 시작과 결혼식, 끝을 장식하는 음악.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1. 연출/출연진
화려하기 짝이 없는 연출/배우진이 아닐 수 없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로버트 드 니로라니! 알 파치노라니! 조 페시까지? 이들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늙은 생강의 내공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표정과 자세, 몸짓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연기 그 자체다. 이름값 이상으로 넉넉하게 남는다.

 

다만 고령의 배우가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어색함이 많이 느껴졌다. 리뷰를 남긴 사람들은 로버트 드 니로가 가게 주인을 폭행하는 장면에서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러셀과 프랭크가 처음 만나는, 트럭 고장을 고쳐주는 장면이 가장 어색했다. '젊은 시절 이야기'라는 설정이 이해되긴 했지만, 동시에 '누가 봐도 나이 드신 영감님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 나이가 칠팔십이다보니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다시 저 배우들이 모여 연기할 날이 있을까.

 

 

2. 러닝 타임
세 시간 반이라는 러닝 타임은 정말 친절하지 않다. 평범한 관객들은 모두 중간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나와 함께 영화를 보신 아버지께서는 영화가 끝난 후 지친다고 말씀하시면서 러닝 타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셨다. 다른 사람들도 이에 대한 불평이 많은 것 같지만, 나는 그 연출이 이해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 마피아의 노년을 그리는 장면들에 꽤 많은 시간을 쓴 감독의 의도는 적절하고 합당했다고 생각한다.

 

 

3. 이야기의 구성과 세 가지 시대적 배경
영화는 세 가지 시점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1) 요양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 (2000년대 초)
2) 트럭 노조 변호사이자 러셀의 사촌인 윌리엄 버팔리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서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사흘 정도의 여정 (1970년대)
3) 프랭크와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의 만남, 그리고 2차대전 참전 군인이자 가난한 노동자였던 프랭크 시런이 마피아의 일원으로 변해가는 과정(1950년대)

 

사건의 중심 인물인 트럭 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와의 이야기는 195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쭈욱 이어진다. 케네디 가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나열하면서도 관객의 관심과 집중은 유지시키는 연출력이 대단하다. 몰입감이 탁월한 영화.

 

 

4. 프랭크의 가족과 종교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가 공유하는 카톨릭이라는 종교적 요소가 나름 의미를 가진다. 시간의 흐름과 프랭크의 가족이 늘어나는 것은 딸들이 태어나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아이리시맨' 프랭크의 삶은 가족들을 위한 삶도, 종교적인 삶도 아니었고, 그는 결국 초라하고 외로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프랭크의 가족들 중에서도 딸 페기(아역 페기는 어찌나 귀여운지)는 아주 예민한 아이다. 페기의 시선은 영화에서도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페기는 사람을 해치는 마피아들을 잘 구별해내며, 변해버린 아버지 역시 두려워한다. 프랭크 시런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나왔을 때에만 뉴스에 신경을 쓰기에, 이를 통해 페기는 아버지의 범죄 행각에 대해 짐작하고 있는 바가 있다. 특히 그녀는 지미 호파와 깊은 교감을 나누었기에 결국 나중에는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리고 용서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5. 여담
- 영화 초반에 트럭에 실린 화물을 몰래 팔아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 아버지께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서 꽤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컨테이너 가득 솜을 압축해서 실어 놓으면, 중간에 다른 업체에서 조금 빼가더라도 티가 안 난다고 한다. 물론 아버지께서 그러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버지는 컨테이너를 싣고 다니는 트럭(트레일러)을 30여 년째 운전하고 계신 분.

 

- 훗날 실존인물이 죽게 되는 이유를 자막으로 표기해주는 연출은 관객의 뇌리에 깊게 박힌다. 이 성공을 누리고 있는 듯한 마피아들의 삶이 실제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나 다름없으며, 그 끝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잘 보여준다. 자막을 자세히 보면 다들 오래 살지도 못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천수를 누린 사람은 손에 꼽는다. 프랭크 시런과 영화 중반 토니가 체포당하는 장면에 아주 잠깐 등장하는 앤서니 "토니 잭" 자칼리노까지 2명 정도? 그나마 앤서니 자칼리노는 '두루 사랑받다 수명이 다하여' '2001년에 사망'했다는 자막이 적혔으니,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최후를 맞은 사람이라 하겠다.

 

-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니었다면 아이리시맨이 글든글로브와 아카데미를 싹 쓸었을 것.

 

 

6. 명대사

"I heard you paint houses...."
듣자하니 자네가 페인트칠을 한다던데
- 원작이 되는 책의 제목이자, 작품 내에서도 의미심장한 대사

 

"Whenever anybody says they're a little concerned, they're very concerned.“
'좀 걱정된다'는 건 골칫거리라는 뜻이야
"And when they say they're more than a little concerned... they're desperate."
'그 이상'이라는 건 절망적이라는 뜻이고
- 영화 내내 마피아의 화법이 자주 등장한다. 러셀 버팔리노를 맡은 조 페시의 화법과 연기는 특히 압권.

 

Russell Bufalino: I get the feeling she don’t like me. Like she’s afraid of me.
러셀 : 잘은 모르겠지만, 애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아. 내가 무섭나 봐.
Frank Sheeran: No, no. That’s the way she is. 
프랭크 : 아뇨. 쟨 원래 그래요.
She’s afraid of me at times too. So, uh, it’s just she’s a sensitive kid, but that’s all it is.
저도 무서워하죠. 예민해서 그래요.
Russell Bufalino: I can understand her being afraid of me, but she shouldn’t be scared of you, Frank.
러셀 : 난 그렇다 쳐도 자넬 무서워하면 안 되지, 프랭크.
-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페기로 대표되는 가족과 프랭크 사이에 거리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

 

“What kind of man makes a phone call like that?”
어떤 남자가 그런 전화를 하겠소
- 신부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노년의 프랭크가 내면에 간직하고 있던 죄책감의 편린이 드러나는 한마디.

 

“Don't shut the door all the way. I don't like that. Just leave it open a little bit.”
문을 완전히 닫지 말게. 영 싫어서 말이야. 약간 열어두게.
- 영화에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약간 열어두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이것은 지미 호파의 습관이었다.

 

 

7. 개인적인 감상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인간이다. 무엇을 희생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그 결과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인가. 

 

프랭크 시런은, 마피아들은 성공을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가. 그들의 대차대조표는 어떠한가.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속에서, 그들의 장부는 빨간 글씨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최후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비참하고, 초라하다. 감독은 이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의 전부는 아니다. 시대적인 메시지도 다수 존재한다.)

 

이 메시지에 집중할 때, 프랭크 시런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노년을 외롭게 보내던 허풍선이의 관심병인지, 자극적인 이야기를 출판해 딸들에게 인세라도 남겨주려는 부성이었는지는 상관이 없다. 케네디의 암살이 거물 마피아들의 소행이었는지, 지미 호파가 마피아에 의해 제거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감독은 영화가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말을 아예 빼버렸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감독이 악당들의 삶에 박한 점수를 주었다 해도, 현실도 그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들 중 일부는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다 떠난다. 흑막으로 여겨지는 진정한 거물급 마피아 보스들 중 직접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안젤로 브루노'만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을 뿐, 다른 보스들은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사마천은 도척을 이야기하며 하늘의 도가 옳은가 그른가를 외쳤다. 반사회적 인물들이 만족스러운 삶을 누린 사례를 접할 때, 사회는 할 말을 잃는다. 선량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비극적인 최후는 역사까지 뒤져볼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까지 얻고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가. 무엇까지 희생시켜도 괜찮은가.

 

인생에 정답은 없다.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타고 났으며, 가치를 두는 지점도 다르다. 어떤 이의 행복한 삶은 다른 이에게 끔찍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을 제안하거나 쥐어줄 수는 없다.

 

묻건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길은 얼마나 좁은 길인가.

 

 

※ 참고자료
https://youtu.be/vY85DXUs4yo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아래 유튜브를 추천한다. 미국 마피아에 대한 설명과 음모론, 영화 속 나오는 실존 인물들에 대한 해설 등이 나오기에, 영화를 감상한 후에 본다면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댓글 17

EVERGLOW 2020.08.11. 00:32
 EVERGLOW
마틴 스콜세지의 시대극/마피아 느와르 장르물 하나만 골라 잡아도 이야깃거리가 참 많죠!
댓글
EVERGLOW 2020.08.11. 00:38
 금개구리
마침 운동 끝나고 딱 샤워하고 나와서요.ㅋㅋ
댓글
금개구리 작성자 2020.08.11. 00:36
 EVERGLOW
그럼 하나 쓰시죠 ㅎㅎㅎㅎ
댓글
EVERGLOW 2020.08.11. 00:39
 금개구리
작품 선정 로딩중...
댓글
Nord 2020.08.11. 00:40
제게 아이리시맨은 누아르 영화로서도 좋지만
음식 영화(빵과 스테이크)와 멜로영화로서의 느낌도 좋았음ㅋㅋ
댓글
금개구리 작성자 2020.08.11. 01:54
 서수진

그 편이 좋을 듯 ㅎㅎ
댓글
조현수 2020.08.11. 08:47
조 페시라는 배우를 나홀로집에로만 기억하고 있던 저로서는 충격적이었던 작품ㅋㅋㅋ길긴했지만 배우들 연기가 몰입감이 쩔더라구요 리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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