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짧고 굵은 전성기를 끝으로 사라진 클럽 - 그레트나 FC

GretnaFC_crest.png

오늘 소개해드리고 싶은 구단은 제목에서도 언급된 그레트나 FC입니다.

 

그레트나는 2016년 기준으로 인구가 3천명을 겨우 넘는, 잉글랜드와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레트나 FC는 1946년 창단되어 오랫동안 잉글랜드 리그에 참여해오고 있었습니다. 1993년과 1999년 두 차례 스코틀랜드 리그 참가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던 그레트나는 2002년, 재정난으로 파산한 에어드리 유나이티드를 대신하여 3수끝에 스코틀랜드 3rd 디비전(4부리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의 첫 시즌은 평범했습니다. 2002/03시즌, 그레트나의 스코틀랜드 리그 데뷔전이자 리그 1라운드였던 그리녹 모턴 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첫 4경기를 3승 1무로 시작했지만 그 뒤 13경기에서 1승을 거두는데 그치는 등 부진했고 최종 11승 12무 13패, 승점 45점으로 스코틀랜드 리그에서의 첫해를 마쳤습니다. 최종 순위는 6위.

 

2003/04시즌은 이전 시즌과는 반대의 흐름이었습니다. 첫 9경기 2승에 그치며 주춤했지만 그 뒤 7경기에서 6승 1무를 거두며 반전에 성공했고 최종 성적 20승 8무 8패, 승점 68점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리그 3위로 지난 시즌보다 확연히 나아진 성적이었죠.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레트나의 짧고 굵은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956093.jpg.gallery.jpg

이웃 뻥글랜드의 사업가이던 브룩스 마일슨이 이 작은 구단을 인수한 것입니다. 칼라일 유나이티드의 서포터즈이기도 했던 마일슨은 원래부터 스코틀랜드 축구와 소위 말하는 "풀뿌리 축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던 사업가였습니다. 휘트비 타운 FC의 회장이자 노던 리그의 스폰서이기도 했고 본인이 서포팅하던 칼라일을 비롯해, 던디 유나이티드, 베릭 레인저스, 던디 FC, 에어 유나이티드 등의 서포터즈 트러스트에 많은 기부를 하기도 했죠.

 

그리고 그랬던 그가, 그레트나를 인수하고 이 작은 구단에 아낌없는 재정적인 지원을 제공하면서 팀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2부리그 팀에서 은퇴를 앞둔 노장 선수들과, 타팀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던 젊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여 스쿼드를 강화했습니다.

 

투자의 효과는 바로 인수 다음 시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04/05시즌 개막전에서 알비온 로버스를 6-0으로 대파하며 시즌을 시작한 그레트나는 시즌 중 13연승 한 번을 기록했고 22라운드 피터헤드 원정 패배 이후 14연승으로 시즌을 끝냈습니다. 최종 성적은 32승 2무 2패, 승점 98점. 2위 피터헤드에 무려 승점 20점을 앞선 압도적인 1위였고 36경기 130골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홈에서 치뤄진 18경기에서는 단 한 번의 무승부나 패배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mainMediaSize=0x425_type=image_publish=true_image.jpg

사진=그레트나의 공격수 케니 도이처. 04/05시즌 34경기 38골을 기록한 팀 승격의 일등공신이었다.

 

덤프리스 갤로웨이의 작은 구단 그레트나가 스코틀랜드 리그 합류 3년만에 3부리그 승격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2005/06시즌에도 그레트나의 돌풍은 계속됐습니다. 개막전에서 포파 애슬래틱을 상대로 5-1 완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무려 17경기 무패로 리그를 시작했습니다. 18라운드 포파 애슬래틱전에 패하며 무패 행진이 끊어진 이후로도 단 한 번의 연패나 무승 행진 없이 꾸준히 선두 자리를 지켰고 최종 성적 28승 4무 4패, 승점 88점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 2시즌 연속 승격에 성공했습니다.

 

리그에서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스코티시컵에서의 돌풍을 뺴놓고는 05/06시즌의 그레트나를 이야기할 수 없겠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3부리그팀 신분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1,2라운드에서는 각각 6부리그, 5부리그 소속인 프레스턴 애슬래틱과 코브 레인저스에 6-2, 6-1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3라운드에 진출했습니다. 3라운드에서는 그 해 2부리그 2위를 차지했던 세인트 존스턴을 1-0으로 제압했고 4라운드에서는 역시 2부리그 구단이던 클라이드와 맞붙게 됩니다. 클라이드 원정으로 치뤄진 4라운드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그레트나의 홈에서 치뤄진 재경기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8강까지 오르게 됩니다. 8강에서는 그 해 2부리그 우승팀이 될 세인트 미렌을 1-0으로 제압했고 4강에서는  또 역시나 2부리그 팀인 던디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하게 됩니다. 스코틀랜드 축구 역사상 최초의, 3부리그 구단의 스코티시컵 결승 진출이 이뤄진것입니다.

 

결승에서 맞붙은 상대는 그 해 레인저스를 제치고 SPL 준우승을 차지했던 하츠, 이전에 만났던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팀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반 39분, 하츠의 루돌프 스카첼에게 선취골을 허용하며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닐슨의 롱 드로인이 그레트나 수비수의 머리에 맞고 떨어졌고 이를 스카첼이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 득점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 뒤로도 1대1 찬스를 놓치는 등 시종일관 끌려가던 그레트나는 후반 36분 PK를 얻어내며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얻습니다. 키커로 나선 라이언 맥거피가 찬 공은 처음에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지만 흘러나온 세컨볼을 맥거피가 침착하게 골문 안으로 집어넣으며 동점에 성공한 것입니다.

 

gettyimages-831943096-612x612.jpg

사진=동점골 이후 환호하는 그레트나 선수들

 

결국 경기는 연장전 120분을 넘어 승부차기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더 이상 그레트나의 편이 아니였죠. 그레트나는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하며 끝내 스코티시컵을 들어올리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팬들은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다신 없을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던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러웠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레트나의 돌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압도적인 리그 우승과 2부리그 승격, 스코티시컵 준우승, 구단 사상 첫 유럽 무대 진출이라는 기쁨속에 맞이한 2006/07시즌. UEFA컵 예선에서는 데리 시티에 1,2차전 합계 3-7로 완패하며 광탈했지만 리그에서는 해밀턴과의 개막전에서 거둔 6-0 완승을 시작으로 4연승을 거두며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부리그에서의 시즌은, 3,4부리그 시절만큼 호락호락 하진 않았죠. 그뒤로 상당한 기복을 선보이며 시즌 최종전까지 승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5라운드 던디전 0-4 완패를 시작으로 7경기 1승 3무 3패에 그치다가 그 뒤 12경기 9승 1무 2패로 치고 나가는듯 했지만 그 뒤 12경기에서는 다시 3승 5무 4패로 주춤, 세인트 존스턴과 엎치락 뒤치락 하는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시즌 최종전. 2위 세인트 존스턴과의 승점차는 단 1점차였기에,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상대는 그 해 리그 최하위로 강등 당했던 로스 카운티로 그리 어렵지 않은 승부가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후반 추가 시간이 될 때까지 양팀의 점수는 2-2. 이미 세인트 존스턴은 리그 최종전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상황이었고 이대로면 승격이 좌절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반 추가 시간 제임스 그래디의 극적인 역전골이 터졌고 세인트 존스턴에 승점 단 1점차로 앞서며 3시즌 연속 승격, 그리고 구단 사상 최초의 1부리그 승격을 확정짓게 된것이죠. 이런 작은 구단의 기적과도 같은 행보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열광했고 이들의 스토리를 영화화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GD19855935.jpg

사진=3년 연속 우승을 축하하는 그레트나 선수들. 사진에 나온것처럼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던 그레트나는 축구를 통해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모두의 기대 속에 1부리그에서 맞이하게 된 첫 시즌이었지만 그레트나의 07/08시즌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홈구장인 레이데일 파크가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규정을 통과하지 못하며 자신들의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하게 된것입니다. 대신 그레트나에서 약 75마일이 떨어진 마더웰의 홈구장 퍼 파크에서 '홈경기'를 치뤄야만 했죠.

 

그레트나는 퍼 파크에서 '홈경기'로 치뤄진 폴커크와의 리그 1라운드 경기에서 0-4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첫 6경기를 1무 5패로 시작했습니다. 7라운드 던디 유나이티드 전에서 감격의 SPL 첫승을 거두었지만 그 뒤 9경기 연속 무승행진에 빠졌죠. 16라운드까지의 성적은 1승 3무 12패, 승점 6점. 역시 1부리그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더 큰 문제가 구단을 강타해왔습니다.

 

바로 구단이 4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있다는 보도가 나온것입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구단에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던 마일슨 구단주가 2008년 2월 12일 뇌 감염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 구단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버렸습니다. 2월 18일에는 선수들을 포함한 구단 구성원들에 제때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결국 그레트나는 법정 관리에 들어갔고 SPL 사무국으로부터 승점 10점 삭감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구단을 살리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이 시작되었죠. 고액 연봉자들과 불필요한 선수들을 방출하며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자 노력했습니다. 3월 25일에는 구단의 주장이던 크리스 이네스가 방출되었고 다음 날에는 8명의 성인 선수와 11명의 유소년 선수가 구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결국 그레트나는 시즌 종료 후 파산하게 되죠.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이렇게 고통받던 그레트나는 축구 내적인 부분에서도 당연히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SPL 사무국에서 내린 승점 10점 삭감 징계로 인해 28라운드 기준 승점이 단 6점에 불과하게 되었고 결국 3월 29일 세인트 미렌 전 패배로 강등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 5일 인버네스 전에서는 단 431명의 관중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스코틀랜드 1부리그 역사상 가장 적은 관중을 동원한 경기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죠. 리그 최종전이던 하츠와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시즌을 마무리하긴 했습니다. 최종 성적은 5승 8무 25패, 승점 13점, 골득실 -57. 1부리그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즌은, 이렇게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더한 비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법정 관리자 측에서는 그레트나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최종적인 파산 절차로 돌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5월 29일에는 재정적인 문제로 2부리그에서 3부리그로의 강등이 확정되었고 6월 1일에는 홈구장인 레이데일 파크가 매각되었습니다. 6월 3일에는 구단 측에서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의 탈퇴를 선언하였고 결국 끝끝내 구매자를 찾지 못한채 8월 8일, 공식적인 파산 절차에 들어가며 그레트나 FC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300px-Gretna_2008_FC_Crest_New.png

팬들도 가만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구단의 파산을 막기 힘들다는 것을 인지한 그레트나 서포터들은 '뉴 그레트나 풋볼 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앤턴 호지를 회장으로 임명해 새로운 구단 창단을 위한 작업을 착착 준비해나갔죠. 그리고 이 구단이 현재 5부리그 격인 로우랜드 풋볼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그레트나 FC 2008입니다. 서포터즈와 지역 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이사회에서 팀을 운영하는 시민구단이죠. 로우랜드 풋볼리그 출범 이후에는 최고 성적이 3위, 올시즌에도 리그 11위에 머무르고 있어서 당장에 SPFL에서 이 구단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4,5부리그는 운영 주체가 달라서 승격하기가 굉장히 빡세서 5부리그 팀은 우승을 해도 승격을 못할 수 있거든요. 근데 당장에 우승에 도전을 하기도 힘든 구단이 되어버렸으니...  

 

2000년대 중반 스코틀랜드 축구계를 뜨겁게 했던 그레트나 FC의 후예들을, 언젠가는 SPFL에서 볼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댓글 7

아방뜨 2019.01.22. 12:20
크 여기도 오고가면서 이름 들어본 것 같은데, 파란만장했구먼.. 펨미 ㄱ?
댓글
PollokFC 작성자 2019.01.22. 12:21
 아방뜨
ㅇㅋㅇㅋ 펨미 가는건 항상 영광이여
댓글
아방뜨 2019.01.22. 12:26
 PollokFC
아조시 혹시 블로그도 하시나여
댓글
PollokFC 작성자 2019.01.22. 12:28
 아방뜨
한 3,4년전에 잠깐 해보려다가 접음ㅎㅎ
댓글
Giallorossi 2019.01.22. 12:31
그레트나 이름 보자마자 이건 닥추다 하고 들어왔읍니다
네이버 기사로 접했던 팀인데 현재는 5부였군요
댓글
PollokFC 작성자 2019.01.22. 12:34
 Giallorossi

파산 후 재창단 한 구단들은, 그레트나도 에어드리도 그렇고 항상 5,6부따리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역사도 승계받고 4부리그부터 시작한 레인저스는 진짜 얼마나 특혜를 받은건자;;

댓글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이벤트 해축백일장 수상작 발표 (8, 9회차 공동) 3 Giallorossi 265 9
이벤트 야근에 찌든 이벤트 주최자로 인해 또 시작되는 파리 올림픽 승무패 이벤트(~7/24 22:00) 4 Giallorossi 4550 11
츄또공지 해외축구갤러리 츄르토토 규칙+츄사장 명단 3 Giallorossi 1654 11
공지 CHUGGU 해외축구갤러리 공지사항 20240615 1차 개정판 42 강미나 10322 56
인기 이새끼들 후반에 왜 걸어잠근다고 ㅋㅋ Giallorossi 10 2
인기 유버지 마ㅍㅐ박는다고 쇼무처쓰셨네 1 Giallorossi 7 2
인기 유로파리그 매치데이1) 토트넘:카라박 토트넘 존슨 선제골!! Koinu 7 2
축구칼럼
이미지
프리드 124 14
축구칼럼
이미지
강미나 385 34
축구칼럼
이미지
varclub 481 9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178 4
축구칼럼
이미지
두줄풋볼 234 5
축구칼럼
이미지
두줄풋볼 233 6
축구칼럼
이미지
두줄풋볼 521 6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188 7
축구칼럼
이미지
두줄풋볼 172 4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208 10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170 5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186 6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260 9
축구칼럼
이미지
뚜따전 304 20
축구칼럼
이미지
프리드 264 24
축구칼럼
이미지
뚜따전 406 5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210 3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267 4
축구칼럼
이미지
호날두 375 14
축구칼럼
이미지
포르테 26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