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해축 백일장] 충치.

1
"이가 간지럽군."

붉은 사내가 찡그린 표정으로 멈추어 섰다.
현장직의 붉은 사내,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집중력과 인내심이다.
간지러운 치아는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완치가 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거 난감한 걸?"

사내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날이면 으레 모든 일이 꼬이곤 했던 것이다. 3년 전에도 이랬다.

2
"그는 마치, 좀비와 같았죠. 제가 감염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바칼 씨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오한이 온다.
동공이 풀린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짐승의 몰골은 밤마다 그를 괴롭히곤 한다.

3
붉은 사내의 시선 끝에는 작업장 표식이 있었다.
오늘 작업장의 표식은 푸른색 라카였다.

"고약한 작업이 되겠군."

대개는 작은 균열이라도 있게 마련이었다. 그래야 할 터였다.
정신이 아득하다.

 
4
이바노비치 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평소 믿음직했던 동료가 하루종일 찡그린 표정으로 서 있더니, 급기야는 자신을 관찰하며 헛소리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자네, 괜찮은가? 갑자기 헛소리까지 하고,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떤가?"

그가 찡그린 표정의 사내의 동공이 풀려가고 있음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5
머리가 아프다. 치아가 간지러운 뒤에는 늘상 이래왔다.
하지만 오늘 작업의 책임자로서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따라 작업이 너무 더딘 것이 꼭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

'균열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 아닌가? 시간도 많지 않은데 서둘러야겠군.'

6
작업소장이 다급히 찾아왔다.
이바노비치 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이봐, 자네 무슨 짓을 한겐가?"
"아니, 저는 단지 오늘 작업을 서두르려다가..."
"듣기 싫네, 사유서 작성해서 내일 아침 사장실로 동행할 것일세."

각서에 서명하고 오는 사내의 표정이 개운하지 못하다.
억울하였다. 정신이 아득해져 나온 실수였다.
사장은 그에게 무급 휴직과 10개월 감봉 조치를 취할 것임을 통보하였다.

7
10개월이 지났다.

사내는 다시 사장의 신임을 사고 중간 관리 실무진으로 승진하였다.

이제 승승장구하는 일만 남은 듯했다.
 

8

세계 실무자 포럼에까지 참석하다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PT준비도 완벽하다.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될 터이다.
키엘리니 이사만 설득하면 모든 일이 완벽하게 풀릴 것이다.

"오늘따라 치통이 신경쓰이는걸?"

하필이면 오늘 진통제가 없다.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발걸음을 떼는 사내.
하지만 오늘은 왠지 참을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