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해축백일장] 일주일만 일찍

도심에서 약 30분, 버스를 타다 보면 지붕 위에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르는 판자와 타이어를 얹은 판잣집들 사이로 코카콜라 광고판만 홀로 드높게 서있는 동네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내가 살고 일하는 곳이다. 그 커다란 광고판 아래에 있는 우리 슈퍼 주위는 판잣집이 넘쳐났지만, 물론 그런 판잣집만 있는 건 아니다. 이 곳에서도 학교와 성당은 있었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잿빛 시냇물도 있다. 또한 아이들의 등과 배에 새겨진 각종 마크와 이름들은 이 세계의 모든 문자를 구경할 수 있는 움직이는 글자 박물관 역할도 한다.

 

개중에는 하루걸러 자취를 감추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 들어오는 외국말을 쓰는 가족들도 있다. 아마 전자의 경우엔 반군에게 끌려갔거나, 정부군에 밉보인 게 있을 거라 생각해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산다. 하지만 후자는 그럴 수가 없는데, 가뜩이나 좁은 마을에 숨 쉴 여유조차 주질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을 위해서라면 도둑질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하는 주제에 이 마을에서 돈을 쓰는 꼴을 본 적이 없는 그 사람들을 대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중에 하나 신기한 애가 있는데, 어디서 돈을 구했는지도 모르고, 프랑스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아무튼 일주일에 두어 번은 와서 사탕이나 술을 봉지에 담고 담배 가판대에 있는 담배 중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늘 똑같은 1000프랑 지폐를 들고 온다. 그것도 오기 직전에 급하게 꼬깃꼬깃 구겨 헌 지폐인 척 하는 신권으로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빳빳한 원래 모습대로의 돈이었는데, 뭔가 이상해 말을 걸었다.

 

꼬맹아, 술이랑 담배는 누가 사오라 했니?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대꾸가 없다. 하기야 프랑스어를 모른다면 뭘 말할 수 있겠나. 그리고 빳빳한 돈 만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나름대로 행운 아닌가? 나는 그냥 가라고 답을 했고, 그래도 가라는 말 정도는 아는지 조용히 슈퍼를 떠났다.

 

그리고 그 애를 다시 본 것은  공터에서였다. 아이들이 다 찢어진 축구공을 주워들고 와서 축구를 하는 모습은 늘 볼 수 있지만, 보통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애들과 그게 아닌 애들끼리만 하지 섞여서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쉬운 모습은 아닌데, 아마도 한쪽에서 먼저 공을 들고 온 덕분에 어쩌다 섞여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애는 거기서도 별 말이 없었다. 조용히 수비수 사이에 서서 언제든 밀치고 나아갈 준비를 하고, 실제로도 그랬다.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크로스된 공을 받더니 바로 수비수 둘을 튕겨내고 슛을 뻥 하고 날린다. 골키퍼를 보던 애는 공을 쳐내려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쓰러지면서, 공은 대충 그린 골대 라인으로 딱 걸친 다음에 벽에 맞고 튕겨져 나오면서, 가만히 담배를 물며 구경을 하던 어른부터 직접 뛰던 아이들까지, 다들 공이나 쓰러진 애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골을 넣은 그 애는 담담히 공을 줍고 다시 센터 서클로 뛰어가며 잠깐 나를 슬쩍 쳐다봤을 뿐이었다.

 

아주 잠깐 눈을 마주한 게 전부지만 그 표정은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다. 그렇게 강한 슈팅을 하면서 그 정도로 의욕이 없는 얼굴은 처음이었다. 보통 축구를 한다면 그때만큼은 어떤 시간보다도 신나고, 특히 골을 넣었다면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다들 그렇고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마치 끌려와서 일이라도 한다는 듯이, 그냥 묵묵히 센터서클에 공을 놓고선 다시 패스할 곳을 찾고 있었다. 나는 경기가 여기서 더 진행될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해 술을 살 몇 손님들을 꼬시고 가게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슈퍼 문을 닫기 전에 정부군과 관련해서 흉흉한 소식을 하나 접했는데 오늘 밤 이 곳에 숨은 반군 조직을 일괄 색출해낸다는 것이었다. 분명 공터에 사람을 끌고 나와 하나하나 마체테로 팔을 자르거나 배를 갈라 죽일 테니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애들이 공차는 모습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해 무서움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어차피 시신이야 다음날 반군에서 트럭을 보내 회수해가니 굳이 우리가 처리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는 그 아이가 또 어떤 슈팅을 날릴 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말이다.

 

밤 11시쯤부터 계속해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총성도 들려왔다. 정부군이 작정하고 세게 나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텔레비전을 끄고 바닥에 누웠다. 어차피 가게 문을 두들길 일은 없으니까. 우리 가게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이 나라에서 산다는 건 그런 거다.

 

눈을 떠보니 비가 내리는 중이었고, 냇물이 넘쳤는지 갈색 구정물이 문밖에 깔려 있었다. 잿빛이 아닌 이유는 어젯밤에 총성으로 대강 접했으니 그러려니 하고 공터로 나섰는데 대략 한 30명 정도가 대충 널브러져 있었고, 그 아이도 거기에 있었다. 정부군이 애들까지 죽인다는 소문을 들어보기야 했지만 직접 본 건 또 처음이었다.

 

클락션 소리가 들린다. 반군의 트럭일 것이며 그 예상은 언제나 적중했다. 마치 정해진 연극이라도 치루는 듯이 정 반대의 상황일 때도 이런 절차를 따랐다. 트럭은 공터 앞에 섰고, 나는 가장 먼저 내린 반군 병사에게 물었다.

 

저 애는 대체 뭘 했다고 정부군한테 총살을 당한 겁니까?

 

연락책으로 참 좋은 앤데 아쉽게 됐어요. 벙어리라서 이상한 소릴 꺼낼 일도 없이 조용히 명령만 잘 수행했거든요. 그래도 죽을 때까지 말을 안 했으니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죠.

 

그렇군요.

 

나는 한마디 말만 남기고 인사를 한 후에 담배를 물었다. 그런 표정을, 그토록 강렬했던 슈팅을 다신 보지 못한다 생각하니 아쉬웠다. 그 애라면 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다신 빳빳한 1000프랑을 보질 못할 테니까.

 

공터는 그로부터 며칠 지나고 피가 전부 마른 뒤에야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들렸고, 저녁에 무언가 중요한 발표가 있으니 그때 다들 텔레비전을 보라는 말을 건너건너 전해 들었다.

 

“여러분, 단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드록바였다. 드록바가 저렇게 말 해봤자 뭐가 달라지나 싶다. 결국 이 동네는 또 누군가가 빠져나가는 대로 들어올 것이며, 정부군과 반군은 서로 절차를 지켜가며 사냥에 나설 것이다. 텔레비전을 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어리 하나가 어딘지도 모를 몸통 한 구석에서 밖으로 도망치려 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상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덩어리가 도저히 빠져나오질 않았다. 때마침 싱글벙글 웃으며 한 손님이 들어왔다. 드디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아주 좋다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고르고 1000프랑을 내밀었다. 빳빳했다.

 

드록바가 일주일만 일찍 저 말을 했으면 그 아이는 축구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손님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댓글 32

best Miracle유아 2020.03.26. 14:27
명작이나, 드록바를 욕보였으니 당신은 20년간 솔로가 될것입니다
best IZONE장원영 2020.03.26. 14:20
문과의 힘이다
다비드데헤아 2020.03.26. 14:20
 케이팝모델섹스머신
제가 올린 거하고는 느낌이 아예 다르잖아요
댓글
케이팝모델섹스머신 작성자 2020.03.26. 14:22
 다비드데헤아
아니 그야 님은 해축갤의 정체성에 충실한거고,,,, 저는 걍 쉬불 쓰다가 이상해지니까 대강 끼워맞춘거고 그게 같나요?
댓글
다비드데헤아 2020.03.26. 14:22
 케이팝모델섹스머신
문학도로서 아주 맘에 드는 글이야요
댓글
케이팝모델섹스머신 작성자 2020.03.26. 14:23
 EVERGLOW
원래 드멘을 쓰레기처럼 만들 생각이 없었으나... 쓰다보니 이게 어쩔 수 없이 저렇게라도 만들어야 어떻게 축구랑 관련된 결말을 낼 수 있기에...
댓글
4ever 2020.03.26. 14:24
 케이팝모델섹스머신
댓글
4ever 2020.03.26. 14:26
 케이팝모델섹스머신
네. 뭐랄까 내전중인 국가의 슬럼가를 다룬 영화 포스터도 생각나고
댓글
4ever 2020.03.26. 14:29
 케이팝모델섹스머신
댓글
4ever 2020.03.26. 14:27
 케이팝모델섹스머신
댓글
best Miracle유아 2020.03.26. 14:27
명작이나, 드록바를 욕보였으니 당신은 20년간 솔로가 될것입니다
댓글
케이팝모델섹스머신 작성자 2020.03.26. 14:27
 Miracle유아
이미 솔로인데 그나마 킹예로운 죽음이 가능했군요... 그보다 따로 드멘께 용서를 빌겠습니다...
댓글
BTID 2020.03.26. 14:29
여윽시 전공자..
댓글
BTID 2020.03.26. 14:34
 케이팝모델섹스머신
머단하네유
댓글
로동-맹-엑샤 2020.03.26. 15:25
아니 근데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일것 같아서 감명깊게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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