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레전드돌아보기]Rey León(사자왕) Gabriel Batistuta - 1편 남미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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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드리는 말씀-

-커뮤니티 가입한지 얼마안된 신입입니다. 잘부탁드리며 앞으로 시간나는대로 아래의 두개의 정규시리즈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제가 직접본 레전드들은 [레전드돌아보기]

-저 역시 보지 못한 레전드들에 대해선 [레전드바로보기] 

-이 시리즈는 단순히 스탯이나 결과만 고려하는게 아니라, 레전드들의 세세한 스토리를 파고들어 보다 심층적으로 레전드선수, 그리고 그 당시 축구계를 돌아보자는 의의에서 시작했습니다.

 

 

*지난칼럼*

[레전드돌아보기] Roberto Baggio 1편 

[레전드돌아보기] Roberto Baggio 2편

 

[레전드바로보기] 펠레편 

 

 

 

 

 

안녕하십니까 [레전드돌아보기] 시리즈 컬럼의 두번째 시간, A.C.Milan님께서 추천해주셨으며, 바지오편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 대해 

오늘 이야기해보려합니다.(A.C.Milan 님 요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칼럼같은 것을 공개적으로 처음 써보는 것이라 오탈자나 제가알고있는 것과 사실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티골이 더 일찍 올라와야 했는데..원래 경기분석은 지루해 하는 분들이 많아서 잘 안쓰는데 뮌헨바르샤 경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분석칼럼을 써버렸네요. 

 

*덕분에 바티골의 칼럼이 늦어진..ㅇㅅㅇ..

 

거두절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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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축구에 나라에서 태어난 축구에 관심없던 아이.

 

1969년에 여러분들은 어떤 해로 기억하고 계시나요?

 

냉전체제의 절정? 인류최초의 달정복, 혹은 원시인터넷(ARPNET)의 등장도 있겠습니다.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은 그 지독했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의 끝난 해로도 기억하실 겁니다.

 

생각외로 현대사에서 굉장히 다사다난했던 69년에 오늘 컬럼의 주인공이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내륙, 산타페 주 레콘기스타에 사는 부부로부터 시작됩니다.

부부의 이름은 Osmar Omar Batistuta, Gloria Zilli..

두 사람 사이에서 2월 1일에 태어난 네번째 아이이자 남자아이였습니다.

 

이름은 Gabriel Omar Batistuta, 훗날 우리가 바티스타로 부르게 된 주인공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는 이 아이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image.png.jpg

Gabriel Omar Batistuta의 어린시절, 귀공자스러운 외모와 다르게 그는 시골소년이었다.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는 축구뿐만아니라, 여러 스포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스포츠강국이었고, 구기종목에서 축구를 제외하면 농구역시 상당한 실력과 인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전업운동선수는 생각도 안하고 있던 바티스투타의 유년기는 학업에 열중하던 시골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또래보다 키와 덩치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건 축구가 아닌 농구였습니다. 

 

이때까지 바티스타는 축구에 관심이 없는 조금은 특이한 '아르헨티나'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소년시절의 운명은 78년 고국에서 열린 월드컵덕분에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2. 아르헨티나의 홈에서의 첫우승, 그리고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축구.
 
 
image.png.jpg
결승전에 골을 넣고 환호하는 마리오 켐퍼스, 그는 70년대 남미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다.
 
 
 
우루과이가 초대월드컵우승자라는 것은 많은 축구팬들이 알고있지만, 그 상대가 아르헨티나이며 초대득점왕 스타빌레도 아르헨티나인인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축구가 최고인기종목인, 아르헨티나인들의 월드컵의 열망은 대단한 것이었죠. 
 
이 우승은 당연하게도 아르헨티나의 축구계의 큰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했습니다. 
 
 
 

image.png.jpg

아르헨티나 최악의 독재자 Jorge Rafael Videla Redondo.
 
 
78년은 34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함께 역대최악의 월드컵으로 손꼽힙니다. 
20세기 초 경제적으로 부유한 아르헨티나는 경제대국이었지만, 대공황이후 몰락하면서, 후안페론이 빈민구제정책을 통해 경제를 회생시키는 와중에 군부의 비델라의 쿠데타로 독재정권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자국의 회사들을 헐값에 미국등 외국에 팔아넘기며 외화를 벌어들입니다. 그 돈의 상당부분이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였죠.
거기다 문제인것은 나머지 것들도 경기부양을 쓰인게 아니라 국민들의 환심을 돌리기위한 눈속임에 쓰여집니다.
 
그 정책의 절정이 바로 '월드컵'
 
스포츠에 정치적 개입을 싫어하는 요즘 세태에서도 공공연한 뒷거래가 만연하고, 당시 피파회장 주앙아벨란제는 피파회장 중에서 가장 부패한 사람으로도 손꼽히는 사람이었고, 국민들의 혈세의 대부분이 월드컵에 들어가면서 사회적으로 불만은 팽배해져 갔습니다.
 
그렇기에 이 독재정부를 위해선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고, 당연하게도 무조건 우승만이 필요했습니다.
 

image.png.jpg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최종승자는 알비셀레스테, 그러나 이 우승은 부정부패로 얼룩져버린다.
 
세계최강급의 선수단을 가지고 충분히 노려볼법한데, 군부의 개입으로 이 우승엔 부정한 우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이는 앞서 언급된 34년 이탈리아월드컵과도 같죠.
 
재밌는게 이 월드컵으로 인해서 국민들은 열광하며 불만이 가라앉았다는 겁니다.
결국 독재정부는 지속되었고, 이당시 정부가 초토화 시킨 경제기반은 두고두고 현재까지도 아르헨티나의 발전을 방해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부메랑은 후에 바티스투타의 커리어에 큰 사건으로 돌아오게 되죠.
 
 
그런 혼란한 상황속에서 10살의 바티스투타에게 장발을 휘날리며 국민영웅으로 떠오른 마리오 켐퍼스의 플레이는 인상적이었고
자연스레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아직은 농구를 하는 와중이었지만, 아주아주 무관심한 상황에서 축구로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은 분명 변화라고 할만한 것이었습니다.
 
 
가족 전체가 축구를 좋아하던 와중에, 관심이라는 조그만 불씨를 가지게된 바티스투타는 금방 농구클럽을 관두고, 곧바로 지역 Platense 주니어 팀에 합류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지역축구클럽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3.젊은 광인과의 만남, 그리고 순탄치 않는 성장.
 

 

image.png.jpg

Platense 주니어 팀의 바티스투타, 이때까진 단순한 동호회 활동수준에 불과했다.
 
 
바티스투타는 17세까지도 학업에 열중하며 축구를 취미활동으로 즐겼습니다.
그렇게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음에도, 바티스투타의 강력한 피지컬, 그리고 천부적인 득점감각은 평범한 또래들을 압도했습니다.
 
 
그의 나이 18세에 산타페 주의 대회 결승에서 만난 프로팀 산하의 주니어팀 뉴웰스와의 경기에서 바티스타는 두골을 넣으며 주챔피언에 팀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당시 상대팀에는 유소년감독으로 일하고 있던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image.png.jpg

비엘사는 25세에 나이에 은퇴한다. 그는 별볼일 없는 선수였지만, 축구적인 시각은 매우비범했다.

 

 

뉴웰스의 유소년감독이었던 비엘사는 얼마뒤 바티스투타를 찾아가 영입제의를 합니다. 메노티즘이라는 전술적 신봉자인 비엘사에게 어울려 보이지 않는 바티스투타였지만, 비엘사는 자신의 눈을 믿었고, 얼마뒤 바티스투타는 87년 뉴웰스 유스팀에 들어가게됩니다.

 

 

image.png.jpg

단발의 바티스투타, 장발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어색하고 귀한 사진이다.

 

 

뉴웰스에 옮긴 바티스투타는 새로운팀에 와서 들뜬 마음이 있었지만 그렇게 진지한 마음이 있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축구계가 그렇듯, 마시고 싶을때 마시고 먹고싶을때 먹으며 무분별한 식습관과 방만한 운동관습이 넓게 퍼져있던 시기였고, 이런 생활로 인해 어울리는 비대한 몸을 가지고 있던 바티스투타를 보고 비엘사는 마음에 들어할리 없었습니다.

 

여자친구와 숙소에서 자다 들키기도 했던 바티스투타를 비엘사는 훗날 자신의 별명 '광인'에 걸맞게 혹독한 코칭에 들어갑니다. 

그는 바티스투타에게 '비오는날 실내에서 훈련하는법', '올바르게 먹는법', '올바르게 쉬는법' 등 여러가지를 가르쳤고, 바티스투타 '그는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라고 술회하며 여전히 은사로서 비엘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몸상태가 올라온 바티스투타를 보고선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가져옵니다.

 

Deportivo Italiano(현 sportivo Italiano)라는 하부리그(당시 2부리그)로 임대되고, 2부리그의 컵대회에 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3골을 넣으며 지난시즌 1부리그에 있던 이 팀에서도 제대로된 역할을 해냅니다.

 

 

image.png.jpg

Deportivo Italiano(현 sportivo Italiano) 시절 바티스투타('89) 이때부터 머리를 조금씩 기르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덕분에 뉴웰스 2군 생활과 임대를 성공적으로 보낸 바티스투타를 캐치한 팀이 있었습니다.

 

image.png.jpg

 

바로 아르헨티나의 양대명문 리버플레이트

 

 

이팀의 캡틴은 은퇴한지 6개월 되지않은 아르헨티나의 전설 '캡틴' 다니엘 파사렐라였다.

image.png.jpg

강력한 카리스마로 대표팀을 이끌었던 전설은 곧바로 코칭경력을 시작한다.
 
 

리버플레이트의 눈에띈 바티스투타는 이적하게되고, 아르헨티나 전설 파사렐라의 밑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게된다. 

 

 

image.png.jpg

리버플레이트 당시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장발이 어느정도 모습을 이루고 있다.
 
 
팀의 기대와 달리 바티스투타는 16경기에 나와 단 3골만을 집어넣으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유는 뉴웰스를 떠나와 앓게된 향수병이 원인이었는데요. 바티스투타가 훗날 팀을 옮기기 싫어하는게 이때의 경험때문일 거라는 흥미로운 추측도 있었네요.
 
이유야 어찌됬던 당연히 팀은 실망했고, 바티스투타를 처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것을 덥썩 문 팀이 리버플레이트와 수페르클라시코를 이루는 라이벌 보카 주니어스였습니다. 
 
 
 
4.야생을 떠돌던 어린 수사자, 마침내 세상을 향해 자신의 발톱을 드러내다.
 
 

image.png.jpg

El SuperClasico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최대더비, 부유층의 리버와 빈곤층의 보카주니어스의 경쟁심은 전세계 최고를 다툰다.
 
 
 
보카 주니오스는 라이벌팀의 선수를 사온다는 쾌감을 위해서 이 향수병으로 고생하는 선수를 사오려 했을 까요?
아니었습니다. 왜 라이벌팀의 실패한 선수에게 접근했는가를 알기 위해선 우린 80년대 중반 - 90년대 초반 보카의 상황을 간단히 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카주니오스는 84년 재정난으로 2부강등을 당하는 등 80년대 중반 - 90년대 초까지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기속에서 클럽의 역사를 되살리는 한 축구경영인이 오게됩니다.
 
 

image.png.jpg

故 Antonio Alegre 前 보카주니오스 회장, 파산직전의 클럽을 되살린 전설적인 축구경영인(스페인의 B-구단에게 필요한 인재.)
 
 
레바논 출신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건설노동자부터 시작하여 성공한 사업가까지 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이 최고의 아르헨티나 사업가는 빈곤한 어린시절부터 함께한 자신의 클럽을 되살리기위하여 구조조정과 재정개혁을 하게 됩니다. 
 

image.png.jpg

알레그레 회장의 취임 당시 보카주니오스는 153건에 달하는 경제적인 소송에 시달리고 있었고 시설은 낙후된 상태였다.
 
알레그레 회장은 자신의 사업체를 일부매각하여 25만달러를 구하고 이를 담보로 하여 80만달러에 이르는 모기지론을 추가로 단행하며 153건의 소송을 해결하고, 더불어 이후 클럽의 재정적 수익모델 창조에 나섭니다.
 
아르헨티나의 내수경제로 팀을 되살리기엔 힘들었으며 구식경기장의 개조는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축구구단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노릴 수 있는 재정적 수익모델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image.png.jpg

군소리그 클럽의 대표적인 모범 운영 사례, 네덜란드의 아약스.
 
 
바로, 유럽에서도 방귀깨나 클럽으로 존재하는 명문 아약스였고, 알레그레의 초점은 아약스가 유럽최고로 손꼽히는 부분에 주목합니다.
 
"어린재능을 발굴하고 키워서 내보낸다"
 
바로 재능을 키워내는 능력이었습니다. 보카 주니오스는 아르헨티나의 최고의 명문중 하나였기에 그 명성으로 남미의 재능들을 모셔우기 용이했고, 가장 빠른 시일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재능팔이'를 모델로 보카주니오스를 개편해나가는 상황이었고, 우연히 라이벌팀의 경기를 보게됬습니다.
 
 

바티스투타리버.gif

리버플레이트시절 바티스타의 강력한 각력이 들어나는 호쾌한 대포알 슛. 90년도 자료라서 화질이 떨어지는데도 강력함이 느껴진다.
 
그곳엔 강력한 킥력으로 득점을 하며 사자머리를 휘날리며 포효하는 젊은 바티스투타가 있었습니다.
비록 리버에서 부진한 성적이었지만, 보카수뇌부들은 바티스투타의 3골에서 그의 재능을 가늠할 수 있었고, 곧바로 시즌 종료 후에 곧바로 라이벌 리버에게 접근합니다.
 
 
당연히 라이벌의 접근을 탐탁치 않아 했던 보카였지만, 나이도 어느덧 스물이 넘고. 향수병으로 고생하는 바티투스타는 골치덩이었기에 큰 고민없이 그를 놓아주게 됩니다.
 
그렇게 보카주니오스로 오게된 바티스투타는 팀의 핵심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좋은재능(팔릴수있는)으로 평가받으며 대우받게 되고 리버에서의 부유한 문화가 아닌 보다 서민적인 팀문화를 가진 보카에서 심정적인 안정을 찾습니다.
 
그렇게 제2의 마라도나로 각광받던 디에고 라토레를 비롯한 보카가 먼저 모은 젊은 재능들과 함께 새로운 시즌을 시작합니다.
 
 

image.png.jpg

보카가 야심차게 키우던 젊은 재능 바티와 첫번째 제2의 마라도나, 디에고 라토레.
 
 
그리고 안정된 바티스투타는 또래의 재능들과 새로운 시즌 자신의 재능을 아르헨티나 전국에 드러냅니다. 
 

바티골보카1.gif

호쾌한 왼발킥으로 골망을 찢는 바티스투타

 

바티골보카2.gif

수페르클라시코, 즉 지난시즌 자신이 뛰었던 팀에 통렬한 골을 넣는 바티스투타.
 
 
재능을 폭발시킨 바티스투타는 제대로뛴 첫시즌에 17골을 넣으며 리그득점왕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리그에서 활약은 당연하게도 알비 셀레스테에 승선으로 이어집니다.
 

image.png.jpg

명예로운 국가대표가 된 젊은 사자 바티스투타.
 
91코파아메리카에서 주포로 낙점된 바티스투타는 약물파동으로 국가대표에서 제외된 마라도나를 대신할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바티스투타인코파.gif

우승을 확정짓는 칠레전 골

 

바티골브라질.gif

숙명의 브라질전, 팀의 3번째 골이자 결승골을 넣는 바티스타,젊은 그가 장발을 휘날리며 공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사자 같다.
 
그는 첫 국제무대인 코파아메리카에서 신입다운 기색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6골을 넣으며 첫 국제대회에서 득점왕을 하며 1959년 코파 아메리카 이후 조국에 32년만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컵을 안깁니다.
 
 

image.png.jpg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에서 활약으로 우승과 동시에 스타덤에 오른 바티스투타.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한 바티스타의 머리역시 수사자 처럼 어느덧 젊은 수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킬 만큼 풍성하고, 위엄이 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젊은 수사자의 포효를 지켜보던 곳이 있었으니....
 
 
 
 
다음편에 계속---
 
 
 
 
-----------------------------------------------------------------
음 주말약속이 늦게끝나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글을 쓰게 됬습니다.
제가 처음 연재해보는 컬럼이라 두서도 없고, 실력이 부족하니 감안해서 봐주시고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바티스투타의 활약은 전성기 97년 부터 봐왔기에 바티의 초창기에 대해 저도 많이 공부하는 계기가 됬습니다.
 
*지난 1편이 사진과 글뿐이라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움짤다수 추가중입니다. 혹시 다른 컬럼들과 비교하면 제가 사족도 많고, 분량이 많은 편이던데, 
 분량을 줄일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면 여러편으로 나눠서 분량을 줄여야할까요?
*좋은 의견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은 주말 평안하세요.

댓글 11

neerg 2020.08.16. 04:55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잘 보고 있어요^^
댓글
13aggi0 작성자 2020.08.16. 16:35
 neerg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
댓글
Gareth 2020.08.16. 05:03
어렷을때 처음으로 좋아했던 축구선수..좋은 글 감사합니다
댓글
13aggi0 작성자 2020.08.16. 16:36
 Gareth
스토리와 실력, 스타가될 매력을 갖춘 선수였죠. 부족한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3aggi0 작성자 2020.08.16. 16:37
 천사시체
저당시도 지금도, 로망을 보여주는선수들을 보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플러스 알파의 감정을 품게하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댓글
A.C.Milan 2020.08.16. 11:13
저 슛팅....개쩐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3aggi0 작성자 2020.08.16. 16:38
 A.C.Milan
초창기 아르헨시절의 영상들은 너무 화질이 안좋은데도 강력함이 느껴져서 놀랍더군요.
저야말로 부족한글 읽어주셔서 감샇바니다.
댓글
13aggi0 작성자 2020.08.16. 16:39
 서윤경
지금도 미중년인 바티..
다만 축구를 본격적으로 늦게 시작해서, 기본기가 좋지 않았던게 흠이었죠 ㅎㅎ
그래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으니... 여러모로 매력적인 선수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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