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레전드바로보기]오렌지혁명가, 축구를 영원히 바꿔놓다.(크루이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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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드리는 말씀-
-커뮤니티 가입한지 얼마안된 신입입니다. 잘부탁드리며 앞으로 시간나는대로 아래의 두개의 정규시리즈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제가 직접본 레전드들은 [레전드돌아보기]
-저 역시 보지 못한 레전드들에 대해선 [레전드바로보기]
-이 시리즈는 단순히 스탯이나 결과만 고려하는게 아니라, 레전드들의 세세한 스토리를 파고들어 보다 심층적으로 레전드선수, 그리고 그 당시 축구계를 돌아보자는 의의에서 시작했습니다.
*시리즈 지난칼럼*
[레전드돌아보기] Gabriel Batistuta 1편
[레전드돌아보기] Gabriel Batistuta 2편
[레전드돌아보기] Gabriel Batistuta 3편
1.서론
지난번 펠레편에서 축구황제 펠레는 어째서 축구황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펠레 이후 우리가 비로소 현대축구라고 부를 수있는 다수의 변화들이 촉진이 되었으며, 선수보호제도에 대해서 협회가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죠.
물론 실력적으로도 그시대와 윗세대의 선배들보다도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습니다.
펠레는 득점으로만 평가할 수없는 유형의 선수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현역시절과 가장 비슷한 유형으로 '메시'를 꼽았었는데요.
축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메시가 골만 많이 넣어서 최고라는 칭호로 불리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펠레가 들인 노동에 비해 많은 경기가 비공식이 되어서 기록이 소실되었어도 엄청난 스탯과 커리어를 자랑하는 것을 빌미로 그의 축구인생과 당대의 축구환경을 돌아보았습니다.
공격뿐만아니라 모든 포지션에서 월등한 활약을 보여줬던 펠레의 활약은 축구계에 많은영감을 불어 넣었습니다.
이탈리아에게는 수비적인 영감을, 그리고 축구의 변방이던 네덜란드에는 또다른 영감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시대를 촉진시키죠.
오늘의 주인공은 축구의 중심에 있던 이탈리아가 아닌 여태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네덜란드에서 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 알프레도 스테파노, 펠레. 육신에 토탈리즘을 품고 있던 지존들.
엄청난 명성만큼이나 모든 포지션에서 최상의 기량을 선보였던 두 선수 스테파노와 펠레.
이후 호건은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거쳐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올림픽대표팀을 맡아 준우승까지 시키는 성적을 보여줍니다. 이후 이 위대한 토털리즘의 분화는 그가 지도자의 전성기를 보낸 헝가리에서 다시금 새로운 변화를 이끕니다.
*M-M전술, 토탈리즘을 향한 두번째 몸부림.
40년대 말, 지미호건의 축구를 보며. 영감을 얻은 헝가리의 축구인 부코비 감독이 당대의 유행 전술 WM을 뒤집어 MM전술을 만들어냅니다. 4-2-4의 전형이었죠. 이역시 센터포워드가 아래로 내려와 플레이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펄스나인형태였고, 당연히 지미 호건의 오스트리아에 많은 영감을 얻은 전술이었습니다.
이를 받아들인 구스타프 세베스 헝가리 국가대표팀 감독과 함께 ELO 국가대표 역대 최고점수를 기록한 매직 마자르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후 브라질 펠레의 등장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카테나치오역시 이러한 변화의 한축을 담당합니다. 네레오 로코로 촉발된 카데나치오는 펠레의 산토스마저 인상적으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전술의 지평을 열었고, 그란데 인테르의 에레라감독으로 인하여 지아친토 파케티라는 풀백의 공격가담, 즉 오버래핑이라는 최초의 개념을 선보이게 됩니다.
수비수의 수비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카데나치오라는 수비적 전술혁명덕분에 탈피하게 된것이고, 이는 분명한 토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전술적 진화였죠.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의 위대한 주장 지아친토 파케티, 그의 공격가담(오버랲)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술적 진화를 지켜보고 있던 한 오스트리아인이 축구변방의 감독으로가게되면서 새롭게 시작됩니다.
네덜란드역사상 최고의 패서 로 꼽히는 Hanegem, 폐에노르트의역사상 최고의 선수 Moulijn과 함께 있는 Ernst Hapel
지미호건의 오스트리아가 어떤축구를 보였는지 똑똑히 지켜본 오스트리아의 에른스트 하펠은 페예노르트에서 클럽 최고의레전드들과 함께 매직마자르를 계승한 축구로 네덜란드 최초로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리고, 인터콘티넨탈 컵까지 들어올리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때의 거의 원초적인 토탈풋볼이라고 할 수 있는 축구를 구사한 페예노르트를 보고있던 것은 라이벌 암스테르담의 아약스였습니다.
3.장군(General), 천재를 만나 전환을 이루다.
축구역사상 최고의 감독, 리누스 미헬스.
네덜란드는 오스트리아 대표팀이 진델라를 필두로 원시적 형태의 토털풋볼, 그리고 그것이 카데나치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꾸준히보면서 자국축구에 적용시키며 연구해 왔습니다.
이미 1940년대 지미호건의 영향을 받았던 잭 레이놀즈 감독이 아약스의 지도자로 와서 지금의 아약스가 추구하는 토털리즘의 씨앗을 뿌려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국권 감독의 사상을 이어받은 해리포츠라는 감독이 지미호건의 고향 번리로 돌아와 이런 축구로 잉글랜드 풋볼을 우승하죠.
당시 해리포츠는 "where every player could play in every position"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토털리즘의 사상적 토대가 60년대에 구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당시 해리포츠의 말은 선수가 더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여야 한다는 취지에 가까웠지만 말이죠.
그리고 아약스의 레이놀즈 밑에서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리누스 미헬스 역시 이러한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965년 아약스를 맡은 리누스 미헬스는 다재다능한 것을 선수의 플레이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추구하는 플레이 자체가 다재다능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초기엔 어느정도 생각만 할 수있었지만, 그가 아약스의 감독이 되고나서 시니어팀에 데뷔한 어린 선수를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건방진 애송이 johan Cruyff. 그는 리누스 미헬스의 철학에 고무되며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산업혁명 역시 증기기관만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쌓여온 행정적, 사상적 토대위에 기술이 방점을 찍은 것이다.
메시와 호날두이전 이 최고의 라이벌의 만남은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73-74시즌 아약스는 마침내 유럽챔피언에서 내려왔고 그것을 차지한 것은 지난시즌 아약스를 상대로 패배했던 베켄바워의 뮌헨이었습니다.
수비수가 이렇게 돋보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베켄바워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마침내 뮌헨을 독일의 첫 유럽챔피언으로 만든 것이죠.
72년 앙리들로네, 그리고 74년의 빅이어까지 완수한 베켄바워.
71,73년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자신이 더 우세한 것을 알린 크루이프.
결국 이 두 천재의 대결은 좀더 큰 무대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6.운명의 결전 1974년 서독 월드컵.
리누스 미헬스의 사상을 체득하여 직접 완성시킨 오렌지 '혁명가' 크루이프.
마찬가지로 토털리즘의 분화인 파게티의 오버랲을 통해 리베로 혁명으로 응수한 '황제' 베켄바워.
이 둘이 오늘날 메시 호날두와의 라이벌리와는 다른점은 이둘은 자웅을 겨룬 가장 중요한장소가 월드컵이었다는 것입니다.
월드컵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결스에서도 맞붙지 못한 두사람과 다르게 이들은 세계최고의 무대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이끌고 운명을 가르는 대결을 한 것이었습니다.
크루이프에게 어떻게 보면 서독은 참 묘한 상대였습니다.
20년전, 당대최강의 매직 마자르 헝가리는 전후 신음하던 서독의 영리한 축구에 무너지며 월드컵을 내줘야 했고 이후 월드컵 우승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직마자르의 전술적 후계자는 누가봐도 서독이 아닌 크루이프의 네덜란드였습니다. 천재적인 재능만큼이나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크루이프는 대회에 임하며 자신은 과거 헝가리와 다르게 독일에 무릎꿇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74년 서독 월드컵을 맞이합니다.
리누스 미헬스와 아약스에서 함께 완성시킨 토털리즘은 지난 3년간 오렌지군단에 잘 녹아든 상태였고, 조별리그 3조에서 우승후보 우루과이를 2대0으로 관광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입니다. 물론 서독역시 반대편 조에서 서독이 동독과 함게 무난히 1라운드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서독은 라이벌 동독에게 석연찮은 패배로 인해서 조2위로 진출이었죠. 이걸로 조편성은 완전히 변화하게 됩니다.
조1위 네덜란드의 2라운드 A조, 1위로 마무리해야 결승전으로 향한다. 우승후보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눈에 띈다.
동독과의 충격패는 잊은듯 서독은 B조에서 양민학살을 선보인다. 물론 경쟁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기도 했다.
펠레가 은퇴한 브라질이었지만, 지난 역사와 카리스마 그리고 강력한 실력을 가진 팀이었습니다.
히벨리뉴, 자일징유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건재한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70년대회와 다른 점은 펠레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차이였죠.
지난 대회에서 펠레와 함께 신의 축구를 선보였다고 평가받았던 브라질을 맞붙어서 크루이프는 2대0 완승을 기록합니다.
물론 브라질의 강력한 공세가 운이 나빴던 것도 있지만, 전술적으로나 축구변방 네덜란드의 플레이는 신시대의 상징 그자체였습니다.
미리보는 결승전으로 점쳐진 브라질과의 명승부를 승리로 장식한 크루이프와 네덜란드는 결승으로 향했고,
그곳엔 반대편에서 수월하게 결승에 진출한 홈팀, 베켄바워의 서독이 있었습니다.
월드컵이란 결승에서 다시보게된 두 양웅, 황제와 혁명가라는 상반되는 별명을 가진 두 선수가 주장으로서 치열한 승부를 다짐한다.
묀헨 글라트바흐의 전설적 수비수 베르티 포그츠와 베켄바워, 그리고 크루이프.
아무리 크루이프가 특출났다고 하더라도 당대 최고의 수비수중 한명인 포그츠의 맨투맨을 뚫고 활약하기란 버거웠죠. 게다가 상대 베켄바워는 맨투맨을 하기가 힘든 최후방에서 날뛰고있었습니다.
토털풋볼의 엔진이자 두뇌 크루이프의 봉쇠령을 완벽히 수행한 포그츠, 그사이 베켄바워는 그 네덜란드를 자신의 늪에 빠트리며 허우적 거리게 만듭니다.
얼마안가 서독은 다시 PK를 얻어 뮐러가 성공시켜 동점을 만든뒤, 전반 종료직전 다시 게르트 뮐러의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판을 반전시킵니다.
네덜란드역시 네스켄스, 아리에한 수어비어같은 당대의 선수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베켄바워의 지휘아래 서독대표팀에게 그대로 묻혀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후반전 역시 베켄바워의 손바닥안에서 논 네덜란드 대표팀은 그렇게 자신들의 첫 월드컵 우승에 실패하고 맙니다.
축구역사상 최고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그들의 여정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러나 토털풋볼의 유행시킨 네덜란드의 크루이프는 그해 74년 당시로선 전무후무한 3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해냅니다.
아마 상대 독일의 리베로가 베켄바워 수준의 리베로가 아니었다면 네덜란드는 수월하게 독일의 방패를 부쉈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아니면 다행스럽게도 상대는 최고의 라이벌 베켄바워가 있었죠.
이후 크루이프는 대회 MVP를 수상하고 사람들은 최고의 팀과 최고의 선수인 크루이프가 우승했어야 한다며 말을 했었습니다.
물론 베켄바워는 "강한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자가 강한것이다."라는 말로 멋지게 응수합니다. 그야말로 독일과 베켄바워의 정신이 잘 녹아있는 말이었죠.
70년대 카데나치오 혁명도 펠레의 브라질에 무너졌지만, 네덜란드의 토털풋볼 혁명 역시 베켄바워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축구황제라는 이명을 지닌, 펠레와 베켄바워였죠. 혁명가들이 성공했다면 혁명가로 그치지 않았을 테니 어떻게 보면 다행이겠죠?(아닌가요?ㅋㅋ)
월드컵 이후, 크루이프는 은사 리누스 미헬스가 있던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우승컵을 선사하고 베르나베우 참사를 선사하며 바르셀로나에서도 전설이 됩니다.
그리고 78년 여전히 절정이던 그는 아르헨티나 월드컵 불참을 선언합니다. 사람들에겐 아르헨의 독재정부에 반항하는 의미에서의 불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가족들의 납치로 인해서 가족과 떨어질 수 없었기때문에 네덜란드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었던 것이죠. 물론 네덜란드는 강했습니다만, 부패한 월드컵 중하나인 78년 아르헨 월드컵에서 다시한번 아르헨에게 승리를 내주고 맙니다.
그렇게 네덜란드의 첫번째 황금세대는 막을 내리고 이후 크루이프도 선수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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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크루이프랑 메시랑 많이 닮았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