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해축백일장] 콘 사감과 러브레터

밀라노의 한 I 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콘 사감이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야소군으로 유명하다. 오십에 가까운 노총각인 그는 다 벗겨진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심은 애처로운 머리카락과 사내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훨렁 벗겨진 이마를 감추기 위해 머리를 심은 것은 물론이요, 어찌됐든 벌써 늙어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고집스럽고도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심은 머리카락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I 학교의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콘 사감이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소위 러브레터라 불리우는 '계약제안서'였다. 실력있는 축구학교 기숙사라면 으례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학교로도 유명하고 또 뛰어난 실력의 기숙생이 많은 탓인지 모르되 하루에도 몇 장씩 너를 영입하고 싶어서 죽느니 사느니 하는 구애 타령이 날아들어 왔었다.

 

기숙생에게 오는 사신을 일일이 검토하는 터이니까 그따위 계약제안서도 물론 콘 사감의 손에 떨어진다.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편지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아무 까닭 없이 그런 편지를 받은 선수들이야말로 큰 재변이었다. 시즌 종료하기가 무섭게 그 학생은 콘 사감에게로 불리어 간다.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 모양으로 쌔근쌔근하며 방안을 왔다갔다하던 그는, 들어오는 선수를 잡아먹을 듯이 노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코가 맞닿을 만큼 바싹 다가들어서서 딱 마주선다. 웬 영문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콘 사감의 기색을 살피고 겁부터 집어먹은 선수는 한동안 어쩔 줄 모르다가 간신히 모기만한 소리로,
 

“저를 부르셨어요?”

 

하고 묻는다.

 

“그래 불렀다. 왜!”

 

팍 무는 듯이 한 마디 하고 나서 매우 못마땅한 것처럼 유니폼을 마구잡이로 구겨서 한쪽 구석에 철썩 내던졌다가 그저 서 있는 걸 보면,

 

“니가 골대냐? 왜 멍하니 서서 앉지를 못해!”

 

하고 또 소리를 빽 지르는 법이었다. 사감과 선수는 조그마한 책상 하나를 새에 두고 마주앉는다. 앉은 뒤에도,

 

“네 죄상을 네가 알지!”

 

하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눈살로 쏘기만 하다가 한참만에야 그 편지를 끄집어내어 선수의 코앞에 동댕이를 치며,

 

“이건 어떤 새끼들한테 오는 거냐?”

 

하고, 문초를 시작한다. 앞장에 제 이름이 쓰였는지라,

 

“저한테 온 것입니다.”

 

하고, 대답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발신인이 누구인 것을 재차 묻는다. 그런 편지의 항용으로 발신인의 성명이 똑똑치 않기 때문에 주저주저하다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내대일 양이면,

 

“너한테 오는 것을 네가 모른단 말이냐?”

 

고, 불호령을 내린 뒤에 또 사연을 읽어 보라 하여 무심한 선수가 나즉나즉하나마 너를 너무나 영입하고 싶다는 구절을 입술에 올리면, 콘 사감의 역정은 더욱 심해져서 어느 놈의 소위인 것을 기어이 알려 한다. 기실 보도 듣도 못한 구단의 한 노릇이요, 자기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 것을 변명하여도 곧이 듣지를 않는다. 바른대로 아뢰어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방출을 시킨다는 둥, 필연 다른 구단에 에이전트를 이용해 꼬리를 쳤다는 둥...

 

하다못해 어디서 한 번 만나기라도 하였을 테니 어찌해서 그 구단과 접촉을 하게 되었냐는 둥, 자칫 잘못하여 프리시즌에 주최한 친선경기에서 혹 보았는지 모른다고 졸리다 못해 주워댈 것 같으면 그 구단 스카우터의 보는 눈이 어떻드냐, 표정이 어떻드냐, 무슨 말을 건네드냐, 미주알 고주알 캐고 파며 얼르고 볶아서 넉넉히 십 년 감수는 시킨다.

 

두 시간이 넘도록 문초를 한 끝에는 다른 구단의 스카우터놈들이란 믿지 못할 것, 우리 선수단을 잡아 먹으려는 마귀인 것, 이적이 자유이니 고유한 권한이니 하는 것도 모두 더러운 라돼지새끼같은 슈퍼 에이전트들이 지어낸 소리인 것을 입에 침이 없이 열에 띄어서 한참 설법을 하다가 닦지도 않은 방바닥(침대를 쓰기 때문에 방이라 해도 마루바닥이다)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말끝마다 하느님 아버지를 찾아서 더러운 라돼지새끼와 멘데스같은 슈퍼 에이전트들의 유혹에 떨어지려는 어린 양을 구해달라고 뒤삶고 곱삶는 법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I 축구학교의 회장인 스티브장의 설유까지 들었건만 그래도 그 버릇은 고치려 들지 않았다.

 

이 콘 사감이 감독하는 그 기숙사에 금년 여름 들어서 괴상한 일이 '생겼다'느니보다 '발각되었다'는 것이 마땅할는지 모르리라. 왜 그런고 하면 그 괴상한 일이 언제 '시작된' 것은 귀신조차도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밤이 깊어서 새로 한 점이 되어 모든 선수들이 달고 곤한 잠에 떨어졌을 때 난데없는 깔깔대는 웃음과 속살속살대는 말낱이 새어 흐르는 일이었다. 하루 밤이 아니고 이틀 밤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소리가 잠귀 밝은 선수의 귀에 들리기도 하였지만 잠결이라 뒷동산에 구르는 마른 잎의 노래로나, 달빛에 날개를 번뜩이며 울고 가는 기러기의 소리로나 흘러들었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풀릴 때는 왔다. 이때 공교롭게 한 방에 자던 선수 셋이 한꺼번에 잠을 깨었다. 니콜라 바렐리아가 소변을 보러 일어났다가 그 소리를 듣고 스테파니 센시아와 로베르티나 갈리아르디니아를 깨우고 만 것이다.

 

“저 소리를 들어봐. 아닌 밤중에 저게 무슨 소리야?”

 

하고 바렐리아가 휘둥그레진 눈에 무서워하는 빛을 띠운다.

 

“어젯밤에 나도 저 소리에 놀랬었어. 도깨비가 났단 말인가?”

 

하고, 스테파니 센시아도 잠오는 눈을 비비며 수상해 한다. 그중에 제일 나이 많을 뿐더러(많았자 스물 여섯밖에 아니 되지만) 필드에서 삽질 잘 하고 골대 앞에서 홈런을 치기도 하는 등 짓궂은 짓 잘하기로 유명한 갈리아르디니아는 동료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이슥히 귀를 기울이다가,

 

“너무 수상한걸. 나는 언젠가 한번 들어본 법도 하구먼. 잠 못자는 애들이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닐까?”

 

이때에 그 괴상한 소리는 땍대굴 웃었다. 세 선수는 귀를 소스라쳤다. 적적한 밤 가운데 다른 파동 없는 공기는 그 수상한 말 마디를 곁에서 나는 듯이 또렷또렷이 전해 주었다.

 

“오! 콘테! 그러면 언제가 좋을까요.”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감독에 푹 빠진 여성의 목소리다.

 

“캉테씨가 좋으시다면 내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아, 오직 캉테씨에게 바친 나의 타는 듯한 가슴을 인제야 아셨읍니까!”

 

영입하고 싶어 정신줄을 놓은 수많은 구애의 감독의 목청이 분명하였다. 한동안 침묵…

 

“이제 그만 놓아요. '훈련 참관'이 너무 길지 않습니까...? 행여 다른 사감이 보면 어떻해요.”

 

완전히 감독에게 푹 빠진 여성이 감독에게나 쓸 법한 말씨.

 

“길수록 더욱 좋지 않아요.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훈련 참관'을 하여도 길다고는 못하겠읍니다.”

 

감독의 피를 뿜는 듯한 이 말끝은 선수의 자지러진 웃음으로 묻혀버렸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서로 데려오고 싶어 안달난 감독과 선수의 허무러진 수작이다. 타 에이전트들의 구애를 막아내던 지독한 이 기숙사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세 선수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녀들의 얼굴은 놀랍고 무서운 빛이 없지 않았으되 점점 호기심에 번쩍이기 시작하였다.

 

그녀들의 머리 속에는 한결같이 '누군가의 이적'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안에 있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 데려오기 위해 학교 근처를 뒤돌고 곰돌던 슈퍼 에이전트와 기타 스카우터, 감독들의 눈을 피해, 공공연히 콘 사감이 찍어뒀던 지상최강 귀요미 캉테 양을 불러냈는지도 모르리라.

 

어쩌면 우리가 잘못 들은 것일수도 있다. 모든 불이 다 꺼지고 오직 밝은 달빛이 은가루처럼 서리인 창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슈퍼 에이전트 라돼지새끼가 흰 수건을 흔들어 이 I 축구학교 최고의 실력자 마르첼라 브로조비초바와의 계약을 위해 부른지도 모르리라.

 

세 선수들의 뺨은 후끈후끈 달았다. 괴상한 소리는 또 일어났다.

 

“난 싫어요. 당신 같은 감독은 난 싫어요.”

 

이번에는 매몰스럽게 내어대는 모양.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를 살려 주어요, 나를 구해 주어요.”

 

감독의 애를 졸리는 간청…

 

“우리 구경 가볼까?”

 

짖궂은 갈리아르디니아는 몸을 일으키며 이런 제의를 하였다. 다른 선수들도 그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따라 일어섰으되 의아와 공구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을 서로 교환하면서 얼마쯤 망설이다가 마침내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왔다. 쌀벌레 같은 그녀들의 발가락은 가장 조심성 많게 소리나는 곳을 향해서 곰실곰실 기어간다. 컴컴한 복도에 자다가 일어난 세 선수의 실루엣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움직였다.

 

소리나는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찾고 나서는 나무로 깎아 세운 듯이 주춤 걸음을 멈출 만큼 그녀들은 놀래었다. 그런 소리의 출처야말로 자기네 방에서 몇 걸음 안 되는 사감실일 줄이야! 그 방에 여전히 사내의 비대발괄하는 푸념이 되풀이 되고 있다…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의 애를 말려 죽이실 테요. 나의 가슴을 뜯어 죽이실 테요. 내 생명을 맡으신 캉테 당신의 입술로…
 

갈리아르디니아는 대담스럽게 그 방문을 빠끔히 열었다. 그 틈으로 여섯 눈이 방안을 향해 쏘았다. 이 어쩐 기괴한 광경이냐! 전등 불은 아직 끄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는 선수들에게 온 소위 그 러브레터라 불리는 계약제안서의 봉투가 너저분하게 흩어졌고 그 알맹이도 여기저기 두서없이 펼쳐진 가운데 콘 사감 혼자 - 아무도 없이 제 혼자 소파에 누워 캉테의 경기를 보며 혼자 되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image.png.jpg

 

누구를 유혹하려는 듯이 두 팔을 벌리고 안경을 벗은 근시안으로 잔뜩 한 곳을 노리며 그 굴비쪽 같은 얼굴에 말할 수 없이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는 고작 화면을 통해 '훈련 참관'을 기다리는 것 같이 지긋이 바라보며 상남자의 목청을 내어가면서 아깟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그 넋두리가 끝날 겨를도 없이 급작스리 앵돌아서는 시늉을 내며 누구를 뿌리치는 듯이 연해 손짓을 하며 이번에는 톡톡 쏘는 계집의 음성을 지어,

 

“난 싫어요. 당신 같은 감독은 난 싫어요.”

 

하다가 제물에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러더니 문득 계약제안서 한 장(물론 선수에게 온 '계약제안서'의 하나)을 집어들어 얼굴에 문지르며,

 

“정말이에요? 나 이 캉테를 그렇게 영입하고 싶어요? 당신의 목숨같이 나를 훈련시켜줄거에요? 나를, 이 캉테를?”

 

하고 몸을 추수리는데 그 음성은 분명 울음의 가락을 띠었다.

 

“아 ㅆㅂ 저게 뭔짓거리야!”

바렐리아가 소곤거렸다.

 

“아 쳐돌았나 진짜, 븅신이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리고 있을꾸.”

센시아가 맞방망이를 친다…

 

“어휴 씨발....”

하고, 갈리아르디니아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댓글 11

best 갓센시오 2020.09.26. 04:10
와 B사감과 러브레터를 이렇게 쓸줄이야 ㅋㅋㅋ
best 첼시 2020.09.26. 08:53
“아 ㅆㅂ 저게 뭔짓거리야!”

“아 쳐돌았나 진짜, 븅신이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리고 있을꾸.”

“어휴 씨발....”
피카츄Alter 2020.09.26. 02:48
콘테는 여러모로 미친게 분명해.

이런 글로는 일부 밖에 볼 수 없지만,,,, 언젠가 그의 뵨태적인 내면을 음미하고 싶다....
댓글
다비드데헤아 2020.09.26. 03:14
머장도 미쳤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best 갓센시오 2020.09.26. 04:10
와 B사감과 러브레터를 이렇게 쓸줄이야 ㅋㅋㅋ
댓글
best 첼시 2020.09.26. 08:53
“아 ㅆㅂ 저게 뭔짓거리야!”

“아 쳐돌았나 진짜, 븅신이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리고 있을꾸.”

“어휴 씨발....”
댓글
EchteLiebe 2020.09.26. 09:25
자기가 이벤트 열고 자기가 종지부 찍네 ㅋㅋㅋㅋㅋㅋㅋ
댓글
LosBlancos 2021.11.15. 17:40
선수들 이름 여자이름으로 바꿔놓은거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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