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해축문학상] KEEP THE FAITH

수능끝나고 할거없어서 티비보고 있는데 2002년 영웅! 우리 이영표 선수가! 아스날과 경기할거라는 광고를 보았다. 오 북런던더비라니! 거기에 우리나라 선수가 뛰다니! 기대하면서 경기 당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영표는 선발이 아니었다. 후반에 교체투입되었고 흔한 FC코리아 팬처럼 분노했지만 금방 가라앉았다. 킹갓황스날이 3대0으로 정의구현을 했기에. 그 길로 아스날의 팬이 되었다. 이젠 그때의 강력함을 볼 수 없고 어떤 사람들에겐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렸지만 지금도 계속 꾸준하게 팬질을 하고있다. 아스날을 응원하는 문구 중 하나인 keep the faith 처럼.

 

에펨코리아를 정말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았고 재미있는 일들을 접하다보니, 돈과 시간을 들여 이벤트도 하고, 게시판도 만들어서 운영도 하고, 연재 컨텐츠도 써보고, 떠나지 말라고 잡아도 보고... 이만큼이나 사랑했지만 등돌리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나는 조상을 치러가는 사마의의 심정으로 '레드카드'라는 사이트를 개설했고 그대로 레드카드 받은 제라드마냥 퇴갤하였다. 나는 사마의가 아니라 조상이었다.

 

그 후 가만히 조용하게 살고있었다. 그 사이 에펨코리아에 또 무언가 사건이 터진다. 전에는 나를 거들떠도 안보던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서 도와줄테니 믿고 만들자고 한다. 그렇게 등떠밀리면서, 아무생각없이, 어쩌다보니 총대를 매개 되었고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로 에펨네이션이 만들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이거 6개월 유지하면 진짜 오래가는거지"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나의 엄청난 의지로 만든 사이트가 개망해버린 경험에 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면서 만든 공간이 내 예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오래 유지되었다. 동시에 운영자-사람의 관계가 아닌 사람-사람의 관계로 회원들을 대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터넷 세상의 트렌드는 혐오와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아직 진행형이다. 분명히 에펨네이션도 그 노선에 합류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 싫었다. 언젠가 사람들이 이 트렌드에 지쳐서 좋은 에너지를 받기를 바랄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키보드로 타이핑 된 위로일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기쁨이 된다면, 많이들 알고 있는 정보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을 위해주고 또 다른 정보와 생각들을 나누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계속 키워서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사이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때문에 당장 재미없고 회원이 너무 느리게 늘어나더라도 그냥 그렇게 유지해왔다. 이 생각들은 신념이 되었다.

 

요즘 사이트가 점점 성장한다는걸 느낀다. 여기서 조금만 더 커지면 분명히 혐오와 충돌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고 나 역시 천진핑이냐 달빛기사단이냐 페미니스트냐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을거다. 그것과 마주하기 싫어서 사람-사람의 관계로 회원을 대하지 않고 운영자-사람의 관계로 찍어누를까봐, 적당히 혐오와 타협해서 신념을 버리고 그냥 내 몸과 마음이 편한 것만 쫓을까봐 걱정이다.

 

에펨네이션을 처음 만들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던게 자주 생각난다. 지금은 그때 그 사람들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빈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며 계속 도와주는 분들이 있다. 사이트 운영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는데 나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을 저버릴 수 없어서 유지해왔다. 10년이 넘도록 아스날을 지킨것처럼 힘들긴 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운영 신념을 지키는건 아스날과 에펨네이션을 지키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될거같다.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염치없이 회원들에게 또 도움을 요청해본다. 만약 앞으로 내가 저 신념들을 저버리고 타협하려 한다면 '여기도 변했네..' 라며 외면하면서 떠나지 말고 따갑게 비판해주기를 바란다. 에펨네이션은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사이트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이트가 되고 싶어했었다고, 그러니까 힘들어도 keep the faith 하라고.

 

 

펨네 매거진 12월호 인터뷰에 올린 글입니다..

매거진이 올라왔기에 해축문학상 이벤트에도 올려봅니다

https://www.flayus.com/69335003

댓글 11

EVERGLOW 2020.12.18. 14:17
Too strong, Too big, Too emotional.
댓글
DameTime 2020.12.18. 14:44
감동이다....애드블럭 꺼야겠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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