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이탈리아 축구에 대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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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에 대한 인상은 대체적으로 좋지 않다. 2002년에 얽힌 악연, 2006년의 칼치오폴리, 훌리건들의 인종차별 및 난동은 이탈리아 축구 자체에 대한 이미지를 망쳤다.(적어도 우리나라 에서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 4회의 빛나는 전적과 이탈리아에서 나온 전술들이 세계 축구사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여기서는 부정적인 요소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필자가 이탈리아의 축구 문화를 보며 느낀 감상과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이질적 스타일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기복이 심하다. 한 대회 안에서도 기복이 있다. 1994년 이탈리아는 3무를 거둬 와일드 카드로 겨우 16강에 진출했음에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2년에 우승을 차지할 때도 1라운드 성적은 3무였다. 바이날둠이 '주사위형 미드필더'라면 이탈리아 국대는 '주사위형 팀'인 셈이다.

 

잘 살펴보면 이탈리아의 기복에는 패턴이 있다. 조별리그에서는 뭔가 안풀리는 듯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강하다. 가장 최근 사례는 유로 2012.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잡아주며 겨우 토너먼트에 올랐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잉글랜드와 독일을 이겼다. 특히 독일과의 4강전은 세계 축구 팬들의 예상을 완벽히 깨버린 경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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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은 이탈리아 특유의 수비 축구. "가장 아름다운 경기는 0:0 이고 그 다음은 1-0 이다" 이라는 격언마저 있을 정도다. 이러한 격언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탈리아는 유로에서 3골 이상 득점한 경기가 없고, 현재 이탈리아 국대 최다 득점자는 루이지 리바의 35골이다. 문제는 리바는 1974년에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선수라는 것. 최다 득점 기록이 46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수비 지향 전술은 골득실, 다득점을 따져야 하는 조별리그 에서는 불리한 요소지만, '이기면 장땡'인 토너먼트로 가면 이탈리아 특유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탈리아는 역대 월드컵 우승팀과에 대진에서 밀리는 상대가 없다. 그 이유는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강한 팀들은 시드를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별리그 보다는 토너먼트에서 강팀을 만날 확률이 높다. 이는 이탈리아 특유의 스타일이 토너먼트와 강팀을 상대로 효과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조별리그에서 북한, 코스타리카 등 상대적 약팀에게 덜미를 잡히는 경우도 많은데, 수비적 성향 때문에 루즈하게 흘러가다 무승부를 거두거나 선제골을 내주고도 스타일을 고수하느라 그대로 경기를 내어주는 경우다. 강팀에게 강하고 약팀에게 약한 이질적인 스타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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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질적인 스타일은 월드클래스 선수들도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반 데 사르는 유벤투스 시절 아약스에 비해 낮은 수비라인에 적응을 못해 부진했다. 유벤투스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튀랑 역시 높아진 수비라인에 적응하지 못했다. 2006년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칸나바로도 달라진 수비 시스템에 고전했다. 그렇다면 왜 이탈리아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지키는 것을 중점으로 둘까?

역사로 학습한 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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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1866년에야 통일이 되었다.(1871년에야 진정한 통일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 전에는 여러 나라들이 난립하여 서로 싸웠다. 이러한 나라들은 하나의 도시를 거점으로 한 도시국가의 형태였다. 따라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지역색과 애향심이 애국심에 비해서 강하다. 따라서 이들의 라이벌은 ‘이웃 도시’, ‘다른 지방’이다. 북부(밀라노, 토리노 등)와 남부(나폴리, 로마 등)가 으르렁거리는 사이인 것을 생각하면 쉽다. 이웃에게 당하면 그 쓰라림은 배로 큰 법. 이들은 적어도 라이벌 도시에는 지지는 말아야하고, 이는 이탈리아 특유의 수비 중심 전술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갈라진 이탈리아는 외세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당했다. 고트족, 랑고바르드족 같은 수많은 이민족들이 침입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5세의 적극적인 합병 정책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합스부르크 가문에 복속하게 되었으며, 이탈리아 반도의 나머지 지역들도 프랑스 가문들이 지배자로 들어섰다. 독일, 스페인, 교황령의 영향권에 있던 적도 있었다. 이들은 영토를 '지키지 못해' 지배당하는 역사를 가져왔다. 지키지 못해 얻은 패배의 대가는 남에게 지배당하고 자존심을 짓밟히며, 나의 삶의 터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애향심과 축구에 결부시켜보면 내가 응원하는 클럽은 곧 나의 도시가 되며, 축구에서 지는 것은 다른 도시나 나라에 내 도시가 지는 것이 된다. 내 도시의 자존심과 나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내 클럽은 최소한 지킬줄은 알아야한다. 역사적으로 학습된 '지킴'의 중요성이 축구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영광과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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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본능이 완전히 수세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후예를 자처한다.(역사적, 혈통적 사실과는 별개로) 로마가 어떤 나라인가? 수많은 전쟁에서 이기며 지중해 유역과 전 유럽을 장악한 나라다. 이러한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지키는 성향과는 별개로 그들이 최종적으로 쟁취해야 할 것은 승리다. 따라서 팀의 리더인 감독은 반드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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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나치오, 조나 미스타, 압박축구 등 세계 축구에 획을 그은 전술이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탈리아 감독 지망생들은 코베르치아노(이탈리아 스태프 연수원)에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이들 중에는 트라파토니, 카펠로, 사키, 안첼로티, 리피도 있었다. 만치니, 알레그리의 논문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코베르치아노에는 계속해서 전술 논문이 누적되고 있다. 이탈리아 감독들은 전술적으로 뚜렷한 색깔을 가질 수 있으며, 기존 전술을 보완, 재해석하여 색다른 전술을 사용해 볼 수도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었다던 뉴턴처럼 이탈리아 감독들은 코베르치아노와 선대 전술가들의 어깨 위에 있다.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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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전쟁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부터 르네상스의 여러 예술가들을 거쳐 현재는 패션의 중심지다. 그들은 예술가를 우대하는데 익숙하다. 모순적이게도 축구는 그들에게 전쟁이지만 그들이 우대하는 것은 전사가 아닌 예술가다. 지키는 축구는 롱볼축구로 흐르기 쉽고, 때로는 그게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NO.9' 유형의 공격수는 우대받지 못한다. 심지어 지키는 축구를 표방하는데도 불구하고, 수비수들도 '파이터'타입의 선수보다는 '리베로', '커맨더'타입의 선수가 높이 평가받는다. 이러한 예술가 타입의 선수를 작정하고 육성하는 것 처럼, 각 포지션 별로 이런 유형의 선수 계보가 있을 정도다.

중앙수비수 : 시레아 - 바레시 - 네스타

미드필더 : 불가렐리 - 알베르티니 - 피를로 - 베라티

공격수 : 메아차 - 리베라 - 바조 - 델피에로&토티 - 키에사&베르나르데스키&자니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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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판타지스타'라 불리는 공격수 계보의 선수들의 위상과 인기는 절대적이다. 메아차, 리베라, 바조, 델피에로, 토티 등의 선수들의 플레이와 커리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이 강렬하고 비극적일수록 사랑받는다. 이들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말이 있다. “바조는 라파엘로와 같다. 델피에로는 그의 제자이므로 핀투리키오가 된다.”

 

축구에도 사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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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같은 것은 없다. 표현 기법이나 화가의 스타일에 따라 예술은 각기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탈리아 호사가들은 축구도 선수의 스타일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미술에서 비슷한 스타일을 묶어 ‘인상파’, ‘야수파’ 등으로 부르듯, 그들도 선수들을 비슷한 스타일대로 분류하고 같이 묶어 부른다.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포지션과 관련된 대표적인 용어들이다.

리베로(Libero) : 이탈리아어로 자유. 스토퍼보다 자유로운 위치에서 활동 후방에서 팀원들을 지휘하다가, 타이밍을 잡아 공간을 장악하는 유형

Ex) 가에타노 시레아, 프랑코 바레시, 프란츠 베켄바워, 마티아스 잠머, 홍명보

레지스타(Regista: 이탈리아어로 연출가. 패스를 바탕으로 경기를 조율하는 미드필더.

Ex) 안드레아 피를로,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사비 알론소, 미랄렘 피아니치

메짤라(mezzala: 이탈리아어 mazzo(half) + ala(wing)의 합성어. 중앙에서 기본적으로 활동하나, 측면공격에도 원활히 참여하는 미드필더

Ex)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폴 포그바, 앙헬 디 마리아

트레콰르티스타(Trequartista) : 이탈리아어로 3/4. 그라운드의 3/4 위치에서 활동하는 1.5선의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EX) 디에고 마라도나, 미셸 플라티니, 프란체스코 토티, 카카

판타지스타(Fantasista) : 빼어난 실력으로 관중들을 매혹시키는 선수. 포지션을 설명하는 용어라기 보다는 극찬의 의미이며, 주로 이탈리아 국적의 공격형 미드필더나 세컨 스트라이커에게 붙는다.

Ex) 주세페 메아차, 지아니 리베라, 로베르토 바조,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축구가 그라운드에 펼쳐지는 예술이라고 한다면,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을 미술사조 분류하듯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별로 분류하는 것도 당연해보인다. 이탈리아 땅에서 펼쳐진 예술이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듯, 이들이 만든 용어도 전 세계 축구팬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특히 나카타의 영향으로 세리에A가 인기가 많았던 일본의 경우 더 많은 포지션 세분화를 하기도 하고, 다른 국적의 선수들에게도 이 용어들을 적용시키기도 했다. 마이클 오언을 '스트라이커형 판타지스타'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이다.

전쟁과 아트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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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 문화는 축구를 '전쟁'으로 보는 시각과 '예술'로 보는 시각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뭔가 모순적이지만 그 모순에서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축구를 예술로 본다는 면에서 이탈리아는 브라질과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 지향점이 공격인지 수비인지 그 차이점만 있을 뿐, 극과 극은 통한다는 예시일 수도 있다.

 

 

댓글 1

쯔위교수님 2021.04.23. 22:13
공격을 잘하는 팀은 팬을 불러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트로피를 불러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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