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로마 제국의 첫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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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20세기 초까지 존속했던 로마 제국은 격동의 19세기를 보냈다.

제국 국경 바깥에서는 서유럽 열강들의 대대적인 약진-제국주의 시대-를 보내며 수많은 자국 영토를 상실했으며,

제국 국경 내부에서는 다민족 제국이었던 로마 제국은 아랍인, 이집트인, 그리스인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들의 '민족주의 열풍',

그리고 개혁파와 보수파의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큰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세계사 시간에나 배우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로마 제국에서 축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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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져 있는 로마 제국에서 창단된 최초의 축구팀은 'FC 스미르나(Smyrna)'일 것이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 거주하고 있던 영국인들에 의해 축구가 소개된 이래로,

최초로 개최된 축구 경기는 1875년 셀라니크(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의 FC 스미르나의 경기였다.

축구는 셀라니크에서 알음알음 제국에 전파되었고,

이후 축구는 아나돌루 반도의 서안에 위치한 도시 이즈미르, 그리고 코스탄티니예까지 전파되었다.

 

1897년 당대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이즈미르 팀과 코스탄티니예 팀이 처음으로 맞대결을 가졌고,

두 팀은 꾸준히 정기전을 가졌다. 결과는 FC 스미르나의 멤버들이 계속해서 유입되었던 이즈미르 팀이 항상 이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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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로마인'이 축구팀에 참가한 것은 1898년 이즈미르 팀이었다.

그간 축구팀에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영국인 등이 대다수였던 걸 생각하면 로마인의 참가는 상당히 특기할만한 요소.

최초의 로마인 축구선수는 군인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푸앗 '바비' 휘스뉘 카야칸(Fuat 'Bobby' Hüsnü Kayacan)이었다.

 

그가 '축구선수'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비 휘스뉘는 1899년 '블랙 스타킹스 FC'를 창단하였다.

그렇지만, 당대 로마 제국의 황제 압둘하미드 2세의 시대에는 (무슬림들의) 어떠한 단체운동도 금지되어있던 시기였고

블랙 스타킹스는 언제나 서슬퍼런 제국 경찰(잔다르마)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훈련을 해야만 했다고.

 

블랙 스타킹스 FC의 첫 경기는 1901년 11월 8일 한 그리스인 팀과 벌어졌고, 이 경기에서 블랙 스타킹스는 5대1로 참패했다.

기념비적인 팀 역사상 첫 골을 넣은 것은 바비 휘스니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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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기를 치루다가, 제국 비밀경찰들이 경기장을 급습했고 수많은 선수들을 잡아넣었다.

바비 휘스뉘는 군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군사재판을 받아야했고,

그의 기소된 죄목은 '골대를 설치하고, 그리스인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었으며, 공을 발로 차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로마어로 '축구공'은 'top', '골'은 'kale'로 명명되었는 데,

같은 단어에서 'top'은 대포알, 'kale'은 궁성이라는 뜻이 있었기 때문에 '공을 차서 골을 넣는다'는 게 '궁성에 대포를 쏜다'는

지극히 '반체제적인' 단어라는 꼬투리까지 잡히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비 휘스뉘는 가벼운 벌만 받고 풀려날 수 있었는 데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래도 바비 휘스뉘는 축구경기를 열기 위해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했는 데, 축구규정집을 정리해 보고하는 한 편,

축구에 관한 모든 것이 제국의 체제에 저항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해명하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바비 휘스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고, 축구에 대한 로마인들의 열정을 일깨웠다.

거기에 바비 휘스뉘는 블랙 스타킹스 뿐만이 아니라 영국-그리스 연합팀인 '카디퀴 FC' 같은 팀에서도 활동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모다 FC', '엘피스 FC', 'HMS 이모진 FC' 등의 축구팀들이 탄생하였고,

1904년 코스탄티니예 축구리그가 창설되어 최초의 체계화된 경쟁시스템이 제국 내에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팀들은 어디까지나 외국인들, 특히 영국인들이 주축이 된 클럽이었고, 로마인들을 위한 축구팀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코스탄티니예 축구리그는 로마인들의 참가가 제한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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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만 재미보고 우리는 손가락만 빠는 꼴을 로마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 중에서는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에서 무슬림을 배우던 학생 알리 사미 옌(Ali Sami Yen)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인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며 열광적인 축구팬이 된 알리는 1905년 축구팀을 창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괜시리 '까만 양말'같은 튀는 이름을 써서 어그로를 끌고 싶지 않았던 알리는 축구팀의 이름을

'갈라타사라이의 신사들'이라고 지었다.

 

알리의 목적은 "영국인들처럼 축구하고, 고유의 이름과 상징색을 갖고, 비로마인 축구팀들을 이긴다"는 숭고한 것이었다.

그리고 '갈라타사라이의 신사들'은 최초의 무슬림 다수팀으로써 코스탄티니예 축구리그에 참가하였다. 비록 첫 참가때는 

단 1승도 거두질 못했지만.

 

본래였다면 제국에서는 당연히 이 '갈라타사라이의 신사들'을 가만히 놔둘리가 없었지만

운이 좋게도 당시 절정의 위세를 과시하던 제국 청년장교들, 민족주의세력들인 '청년 튀르크당'이 '갈라타사라이의 신사들'의 뒷배가

되어주었고, 1908년 이들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로마 무슬림들의 축구리그 참가를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코스탄티니예에서 '페네르바흐체'가 창단되었고(1907년), 1903년 아마추어 체육구락부였던 베쉭타쉬가

1911년 축구리그에 본격적으로 참가한 이후, 지금까지도 코스탄티니예를 삼등분하는 대표적인 세 로마팀인

빅3(üç büyükle)가 이 무렵쯔음 형성되게 된다.

 

한 편, 최초의 로마인 축구선수 바비 휘스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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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타사라이에서 뛰다가 나중에 쫓겨나서 페네르바흐체에서 코치를 했다고 한다.

 

 

댓글 2

이세라 작성자 2021.05.21. 19:57
 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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