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악마와의 거래인가? 신의 강림인가? 기적의 골키퍼,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맨 밑에 요약 있음. 추천은 힘이 됩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가 누구인가? 

 

답은 이미 모두가 알고있다. 바로 레프 야신이다. 

 

그렇다면 축구 역사상 단일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골키퍼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의견이 많이 갈릴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안하는 정답은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다. 아마 대부분이 보기에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내가 단 한줄로 납득시켜주겠다. 

 

 

 

 

챔스 결승 승부차기에서 4번의 슛을 모두 막아 우승으로 이끈 골키퍼 

 

 

 

 

 

 

 

 

 

 

 

image.png 악마와의 거래인가? 신의 강림인가? 기적의 골키퍼,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헬무트 두카담 (Helmuth Duckadam) 

 

생년월일: 1959.04.01. 

국적: 루마니아 

신장: 193cm 

 

클럽 커리어 

1977-1978 콘스트룩토룰 아라드 

1978-1982 UTA 아라드 

1982-1986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1989-1991 바고눌 아라드 

 

국가대표 커리어 

루마니아 2경기 0골 

 

 

 

 

 

 

 

 

I. 기적이 일어나기까지의 생애 

 

헬무트 두카담은 루마니아 아라드 지역의 셈락에서 태어나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지역 유소년 클럽들을 거쳐 프로 데뷔한 두카담은 UTA 아라드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루마니아 내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1982년에는 루마니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경기를 뛰기도 했다. 그 후 루마니아 최고의 명문팀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로 이적한다. 

 

스테아우아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간 두카담이지만, 당대 자국 최고의 골키퍼는 우니베르시타테아 크라이오바의 주전 골키퍼 실비우 룽의 것이었고 두카담은 룽에게 밀려 국가대표팀으로 뛰지 못했다. 

 

 

 

 

 

image.png 악마와의 거래인가? 신의 강림인가? 기적의 골키퍼,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당대 루마니아 최고의 골키퍼였던 실비우 룽. 루마니아 역대 최고의 골키퍼를 논할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도 두카담 역시 충분히 뛰어난 골키퍼였고, 스테아우아는 지속적인 전력 강화를 통해 1984-85시즌 리그와 컵 더블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 스테아우아는 디비지아A 우승팀 자격으로 유러피언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이 시즌 리그 2연패에 성공하고 유러피언컵에서도 결승전까지 오르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자세한 과정은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므로 나중에 따로 다뤄볼 생각이다.) 

 

결승전 상대는 다름아닌 FC바르셀로나. 결승전 장소는 세비야의 경기장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당연히 바르셀로나가 정배였고 스테아우아는 역배였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화려한 구단 명성과는 반대로 유러피언컵 우승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강팀들보다도 절실한 상태였다. 

 

 

 

image.png 악마와의 거래인가? 신의 강림인가? 기적의 골키퍼,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1986 유러피언컵 결승전 선발 라인업. 위가 스테아우아, 아래가 바르셀로나.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름인 베른트 슈스터의 존재만 보더라도 바르셀로나가 더 강했지만, 스테아우아도 충분히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루마니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루마니아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인 라슬로 뵐뢰니가 팀의 중심을 잘 잡고 있었고, 마리우스 러커투슈, 가브릴 발린트, 빅토르 피투르커로 이루어진 공격진도 강했다. 그 외의 다른 선수들도 클럽의 영광과 조국의 인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렇게 그들은 혈전 끝에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갔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일어나기도 했다. 현역 시절 스테아우아와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선수였고 훗날 감독으로도 맹활약한 앙겔 이오르더네스쿠는 당시 스테아우아의 수석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상태였는데, 이 경기 72분에 교체로 투입되어 남은 시간동안 뛰었다.  
 

 

 

image.png 악마와의 거래인가? 신의 강림인가? 기적의 골키퍼,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훗날 감독으로 스테아우아와 루마니아에서 모두 성공한 앙겔 이오르더네스쿠. 




 

 

연장전도 득점 없이 마무리되었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우승컵의 향방을 가리게 된다. 참고로 이 경기는 유러피언컵 역사상 최초로 득점이 나오지 않은 경기였다. 

 

여기서 스테아우아의 우승을 가져온 이는 벨로데디치도, 뵐뢰니도, 러커투슈도, 발린트도, 피루르커도, 이오르더네스쿠도 아니었다. 

 

 

유럽 변방의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지 못하던 골키퍼, 헬무트 두카담이었다. 

 

 

 

 

 

 

 

 

 

II. 세비야의 영웅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용량제한때문에, 영상을 나눠서 다 올리지 못합니다. 이 문단 하단의 유튜브 링크를 대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ㅠ 

 

선축은 스테아우아였다. 1번 키커 미하일 마자루가 바르셀로나 골키퍼 하비에르 우루티코체아를 상대로 첫번째 킥을 찼다.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찼고, 우루티코체아에게 힘없이 막히고 말았다. 선방 이후 우루티코체아는 '역시 우리가 이긴다' 라는듯이 여유있게 페널티 박스 밖으로 걸어나왔다. 

 

 

 

 

 

첫 시작부터 바르셀로나가 승기를 잡고 간 것이다. 

 

 

 

당연히 두카담의 부담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상대 1번 키커는 바르셀로나에서만 13시즌을 뛴 수비수, 호세 라몬 알렉산코였다. 

 

알렉산코는 왼쪽으로 찼고, 두카담은 이를 미리 읽어낸듯이 몸을 날려 막아냈다. 한바퀴 구른 뒤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는걸 보여주었다. 

 

 

 

 

 

무득점으로 끝난 경기가, 승부차기에서도 골키퍼들의 선방 싸움으로 이어졌다. 

 

 

 

스테아우아의 2번 키커는 라슬로 뵐뢰니. 킥이 강하기로 이름난 선수다. 왼쪽으로 강하게 찼지만, 우루티코체아는 몸을 날려 막아냈다. 분한 마음에 튀어나온 공을 대포알처럼 강하게 차서 골망을 갈랐지만, 이미 한번 막힌 공이었다. 실축은 바뀌지 않는다. 우루티코체아는 또 한번 기쁜 표정으로 일어나 걸어나왔다. 

 

 

 

 

 

 

 

이때 두카담이 느꼈을 중압감은 쉽게 헤아릴 수조차 없다. 

 

 

상대의 2번 키커는 앙헬 페드라사. 알렉산코와 같은 방향 같은 궤적으로 찼고 두카담은 이번에도 그쪽으로 몸을 날려 막아냈다. 공을 막고 잠깐 무릎을 꿇은 뒤 일어나서 포효하는 모습에서 엄청난 포스가 느껴진다. 

 

 

 

 

 

 

양팀 통틀어 4번의 승부차기 슛이 있었지만 단 한개도 골이 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당시 루마니아 최고의 공격수였던 마리우스 러커투슈가 키커로 나섰다. 뭔가 좆됐음을 직감했는지, 우루티코체아도 전보다 긴장한 표정으로 골대 앞에 들어섰다. 

 

러커투슈는 상남자답게 강슛을 선택했고, 그가 찬 슈팅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골라인을 넘어 땅에 떨어졌다. 분위기를 역전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골이었다. 

 

 

 

 

 

 

 

image.png 악마와의 거래인가? 신의 강림인가? 기적의 골키퍼,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이름과 외모, 플레이 스타일 모두에서 간지가 흘렀던 명선수, 마리우스 러커투슈. 

 

 

 

 

 

 

이제 두카담은 조금 숨통이 트일 상황이었다. 막으면 역전이지만 먹혀도 본전이다. 상대의 키커는 피치 알론소. 왼쪽으로 낮게 찬 공을 두카담이 이번에도 몸을 날려 막아냈다. 

 

 

 

 

 

선방 이후 공을 하늘로 냅다 걷어차고, 기도하고 두 손을 모은 뒤 땅에 엎드려 절하는 두카담의 환호. 자신의 손으로 역전을 가져왔다는 그 기분이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스테아우아의 4번 키커는 공격수 가브릴 발린트. 이번에 넣으면 많이 유리해지는 상황이기에 발린트는 침착하게 왼쪽으로 깔아찼고, 골키퍼를 완벽하게 속이며 임무를 완수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두카담에게 운명이 맡겨졌다. 막으면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종료. 먹히면 스테아우아의 5번 키커에게 임무가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이때 상대 키커는 마르코스 알론소. (동명의 첼시 선수의 아버지이다) 

 

 

동료들이 왼쪽으로만 차다가 크게 당하고 만것을 지켜본 마르코스는 이번엔 오른쪽으로 찼지만, 압박감이 컸던 것인지 공은 애매한 위치로 낮게 날아갔고 가볍게 두카담에게 막히고 말았다. 

 

 

 

 

 

 

 

선방하자마자 두카담은 공을 들고 일어나 뛰었다. 너무 기뻐서 머릿속이 가득찼나보다. 공을 차지도 않고 그냥 위로 있는힘껏 던져서 날려버리고, 양팔을 벌리고 달렸다. 그리고 동료들과 포옹하며 그 기쁨을 나눴다. 

 

바르셀로나의 구단 첫 유러피언컵 우승은 다음 기회로 멀어졌고, 스테아우아는 동유럽 구단 최초로 유러피언컵을 우승하며 유럽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게 말이 되는가? 상대가 승부차기에서 찬 슈팅이 4개다. 이걸 전부 다 막아낸다는게 상상이 되는가? 그야말로 신의 강림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승부차기 동영상 링크 

 

 

 

 

 

 

자국에서도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지 못하던 선수, 당연하게도 유럽에서는 그냥 듣보잡 그 자체였던 선수. 그러나 유럽 최고의 팀을 가리는 무대의 정점에서 그는 축구의 신이었다. 

 

 

이는 축구계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충격이었고, 이거 하나만으로 두카담은 1986년 루마니아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했고 1986년 발롱도르 8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그 직후에 있었다. 

 

 

 

 

그는 그 경기 이후로 다시는 그라운드에 돌아오지 못했고, 팀에서도 방출당했다. 

 

 

 

 

 

 

 

III. 영웅에게 찾아온 비극 

 

유럽 챔피언이 되고 돌아온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선수단은 지금까지의 유럽 챔피언들과 확실히 달랐다. 그들의 나라 루마니아가 공산주의 군사 정권이 독재하는 국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마니아 축구선수들은 자유주의 국가의 선수들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팀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는 원래 루마니아 군부 산하의 스포츠 팀이었다. 그래서 자국 내에서 독보적인 지원을 받고 막강한 전력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독재자와 군부의 기대치도 숨막혔다. 결승전 직후 차우셰스쿠는 스테아우아 선수들 면전에 대고 그들이 더 잘했다면 정규 시간 내에 이겼을 것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원래 스테아우아 선수들에게 유러피언컵을 우승하면 최고급 자동차를 주겠다고 격려했었다. 그러나 정작 우승 2개월 후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군대에서 쓰던 중고차들이었다. 선수들은 그것마저도 기쁘게 받은 후 목자들에게 싼 가격으로 판매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높으신 분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성과를 요구했는데, 그것은 바로 스테아우아에서 리그 득점왕이 나오는 것이었다. 

 

유러피언컵 결승전 몇주 뒤 열리는 리그 마지막 라운드는 그 득점왕을 가리는 중요한 경기였다. 상부에서는 주전 선수들의 전원 참가를 요구했지만 두카담은 그 경기 출전을 거부했다. (아마 이때부터 몸의 이상을 느꼈던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 경기에서 스테아우아의 스트라이커 빅토르 피투르커는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득점왕 경쟁자는 최종 라운드에서 더 많은 골을 넣으며 리그 31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여담이지만 그 선수는 21세의 게오르게 하지이다. 

 

 

image.png 악마와의 거래인가? 신의 강림인가? 기적의 골키퍼, 그에게 바치는 일대기
루마니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게오르게 하지의 FC 스포르툴 스투덴테스크 시절 모습. 
 

 

 

 

여튼 경기 거부로 인해 두카담은 2주치 훈련 금지라는 징계를 받았고, 육군 장성 일리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최악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동생) 에게 직접 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 2개월치 임금에 해당하는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기적을 만든 영웅에게는 너무 가혹한 대우였다. 

 

 

 

그에게 닥친 시련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오른팔에서 동맥류가 발견되었고, 그는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차우셰스쿠는 "축구를 할 수 없다면 군대에서 떠나라" 라고 명령했으며 두카담은 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기적 직후에 일어난, 더더욱 믿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 심지어 혈액 장애가 발생한 부위도, 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그의 팔이었다. 

 

 

 

이것 때문에 그의 인생이 더 극적인 것이고, 현대 축구팬의 시선으로 볼때 마치 악마와 거래한것과 같은 충격을 주는 것이다. 

 

 

 


IV. 여생
 

그렇게 그의 존재는 잊혀졌지만, 1989년 루마니아에는 드디어 자유가 찾아왔다. 루마니아의 축구선수들은 이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축구를 할 수 있었고,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은 더 수준 높은 리그로 떠나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며 뛰었다. 그러나 병으로 커리어가 중단된 두카담은 그렇지 못했다. 1989년 2부리그의 바고눌 아라드에 입단하며 축구계에 복귀했지만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1991년 쓸쓸하게 은퇴했다. 

 

1999년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국경 경찰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헬무트 두카담 축구 학교를 설립하여 유소년 육성에 힘썼다. 

 

 

2008년, 그는 루마니아 대통령 트라이안 버세스쿠에게 훈장을 받으며 뒤늦게나마 과거의 명예를 회복했다. 2년 뒤에는 그가 기적을 썼던 팀의 후신인 FCSB의 명예 회장이 되었고 2020년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는 지금도 루마니아의 전설로서 존경받고있다. 

 

 

 

 

 

 

 

 

 

V. 요약 및 결론 

 

1. 헬무트 두카담은 루마니아의 뛰어난 골키퍼였지만, 자국 최고의 키퍼에게 밀려 국가대표팀에서는 거의 뛰지 못했다. 

 

2. 1986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났는데, 승부차기에서 바르셀로나가 찬 4번의 슈팅을 두카담이 모두 막아낸다. 

 

3. 이러한 임팩트로 두카담은 그 해 발롱도르 8위에 오른다. 

 

4. 그러나 그 경기 이후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압박과 오른팔의 동맥류로 인해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못했다. 

 

5. 그 이후 국경 경찰이 되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 학교를 설립했다. 

 

6. 국가 훈장을 받고 구단의 명예 회장이 되는 등, 뒤늦게나마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그는 이후의 삶을 대가로 그날 세비야에서 영웅이 되는 것을 악마와 거래한걸까? 아니면 단지 그 순간 신이 내려온 걸까? 이 두가지가 아니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과도 같은 경기였다. 

 

 

나는 이처럼 극적인 선수를 아마 다시 보지 못할것같다. 

 

 

 

 

 

 

 

추천은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5

블루스 2021.09.19. 18:26
진짜 추천 마려운 양질의 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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