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기사 풋볼 레전드 스토리 7편 - 칸타브리아의 광풍 프란체스코 헨토

서문

 

 

2022년 1월 18일,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레전드 중 한 명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모두 이룬 저승사자 군단의 마지막 생존자였으며 그가 떠남으로써 저승사자 군단은 완전히 역사 속의 일이 되어버렸다. (비록 호세 산타마리아가 아직 살아있지만 그는 중간에 입단해서 5연패를 이루진 못했다.)

고인은 비록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라는 거물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줬지만 유럽을 휩쓴 저승사자 군단 세대와 이후 저승사자 군단의 주축들이 세대교체로 물러난 뒤 스페인 라 리가를 독주한 Yeye 마드리드 세대까지 두 세대에서 모두 주도적으로 활약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스페인과 유럽 최고의 구단이 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고인은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선수로 챔피언스리그를 여섯 번이나 우승했으며 많은 축구 평론가로부터 축구 역사 상 최고의 레프트 윙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오늘은 그를 기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프란체스코 '파코' 헨토

 


프로필

 

 

사진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선수이름: 프란시스코 헨토

생몰년: 1933년 10월 21일 ~ 2022년 1월 18일 (향년 88세)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8cm / 78kg

포지션: 레프트 윙

 


커리어

 

 

헨토는 어린 시절 소를 치는 목동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헨토 역시 아버지를 도와 소를 키우는 일을 병행했다. 소를 잡는 일을 하면서 그는 빠른 스피드를 겸비하게 되었다. 이후 헨토는 유망주 시절 라싱 산탄데르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프로 데뷔에 성공했다.

이때 스페인 축구의 판도는 쿠발라 라슬로를 영입한 바르셀로나와 에레라 감독이 지휘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주도하고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디 스테파노를 영입했으며 그를 보좌할 유망주로 헨토를 영입한다.

1953-54 시즌 후반기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한 헨토는 미겔 무뇨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과 함께 맹활약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21년 만의 라 리가 우승을 도왔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1954-55 시즌에도 우승해 라 리가 2연패를 달성하며 주가를 올렸다.

스페인 대표팀은 1954 스위스 월드컵 예선에서 축구 변방국 터키에게 탈락하는 굴욕을 당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창 세대교체의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때 기존에 아웃사이드 레프트에서 주전으로 뛰던 빌바오의 레전드 가인자 대신 한창 주가를 올리던 헨토를 주전으로 기용한다.

대표팀 입성에도 성공한 헨토는 라 리가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명성을 떨친다. 1955-56 시즌 첫 유러피언 컵에서 활약한다. 8강에서는 1차전에 유고의 강호 파르티잔을 4-0으로 대파했으며 헨토는 이 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득점을 기록한다. 비록 2차전에선 3-0으로 패했지만 득실차로 진출했으며 준결승에서는 노르달과 리드홀름, 스키아피노가 있는 AC 밀란을 상대로 두 경기 합 5-4로 이겼다. 결승에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수비수 종케와 공격형 미드필더 코파가 이끄는 스타드 랭스를 상대로 4-3으로 이기는데 공헌한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언 컵을 우승했음에도 라 리가에서 3위에 그쳤다. 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전의를 불태우고 1956-57 시즌에는 라 리가 타이틀을 탈환했다. 그리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니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연파하고 결승에 올라 이탈리아 챔피언 피오렌티나를 디 스테파노의 페널티킥 골과 헨토의 벼락같은 골로 결승에서 꺾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디 스테파노의 발롱도르를 축하하는 헨토


이후 비얄롱가 감독이 사임하고 루이스 카닐리아 감독이 부임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수 호세 산타마리아와 공격형 미드필더 레이몽 코파를 영입하며 라 리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이어서 유러피언 컵에서도 다시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닐스 리드홀름과 후안 스키아피노가 이끄는 AC 밀란이었다. 59분에 스키아피노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74분에 디 스페타노가 동점골을 넣었다. 그리고 77분에는 밀란의 공격수 그리요가 득점했으나 79분에 다시 리알이 동점골을 넣으며 연장으로 흘러갔다. 연장전에 다들 지쳐있었을 때 헨토는 힘을 더 내서 후반 2분에 결승골을 넣고 팀의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끌었다.

1958-59 시즌에는 매직 마자르의 리더 페렌츠 푸스카스와 1958 스웨덴 월드컵 골든볼과 우승의 주역인 브라질의 지지가 합류했지만 디 스테파노와의 불화로 별로 출장하지 못했다. 라 리가에서는 이것이 악영향을 미쳐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바르샤에게 리그 우승을 내줬지만 유러피언 컵에서는 이런 라커룸의 분위기랑은 다르게 4강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서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결국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디스테파노와 갈등이 있던 디디와 푸스카스 모두 나오지 못했으며 헨토는 어김없이 선발 출전해 결국에 퐁텐이 이끄는 랭스를 또다시 이기며 유러피언 컵 4연패에 공헌한다.

이후 1959-60 시즌에는 헨토, 디 스테파노와 함께 저승사자 군단의 시작을 알렸던 미겔 무뇨스가 감독으로 돌아왔다. 지지는 디 스테파노와의 불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브라질로 돌아갔지만 푸스카스는 디 스테파노와 화해하며 환상의 콤비로 활약했으며 헨토는 이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비록 라 리가에서는 바르셀로나에 밀려 우승에 실패했지만 유러피언 컵 4강전에서는 바르셀로나와의 두 경기에서 모두 3-1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2차전에는 1-1 상황에서 헨토의 골로 레알 마드리드로 균형추가 기울었으며 푸스카스가 추가골을 넣어 3-1로 이기며 총합 6-2로 대승을 거둔다. 결승전에서는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7-3으로 대승하는데 공헌한다. 골은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가 다 넣었지만 헨토도 프랑크푸르트의 핵심 수비수 프리델 루츠를 괴롭히며 계속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1960 유러피언 컵 우승멤버들



유러피언 컵 5연패라는 금자탑을 달성한 헨토는 1960-61 시즌부터 팀 동료 사라가로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받는다. 헨토는 주장 완장을 차고 젊은 아웃사이드 라이트 아만시오 아마로와 함께 라 리가에서 5연패를 달성하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으며 1961-62 시즌에는 그간 인연이 없었던 코파 델 레이에서도 우승을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같은 노장들이 은퇴한 뒤에도 헨토는 계속 마드리드에 남아있었다.

헨토는 주장으로 라 리가 5연패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지만 그가 주장이 된 이후에도 레알 마드리드는 고전적인 WM 전술을 고집했다. 그게 원인이 되어 유러피언 컵에서는 4-2-4 시스템을 앞세운 벤피카나 카테나치오 시스템을 앞세운 인터 밀란에게 연달아 패하며 고배를 먹는다. 무뇨스도 이 점을 인지해 결국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브라질과 벤피카를 벤치마킹해 4-2-4 시스템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1965-66 시즌, 리그에서는 새 틀을 다지느라 우승컵을 놓쳤지만 유러피언 컵에서는 준결승에선 디펜딩 챔피언이자 카테나치오의 상징 인터 밀란을 꺾었고 결승전에서는 유고의 강호 파르티잔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헨토는 드디어 주장으로 빅 이어를 들게 된다. 이 때의 레알 마드리드를 Ye-ye 마드리드라고 한다.

 

1965-66 시즌, 주장으로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하다.



이후로도 헨토는 세 번의 라 리가 우승과 한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추가하고 1971년에 은퇴한다. 비록 대표팀에서는 번번이 월드컵 예선이나 조별 리그에서 고배를 마셨고 1964년에 열린 유로 대회에선 선발되지 못하며 대표팀의 우승을 집에서 보는 처지가 되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24개의 크고 작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클럽

1952-1953 라싱 산탄테르 10경기 2골
1953-1971 레알 마드리드 602경기 182골

클럽 통산: 612경기 184골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1955-1969  43경기 5골

 


플레이 스타일

 

 

'질풍 같은 스피드와 자로 잰 듯한 크로스'

 

 

오른발잡이였지만 왼발도 잘 다루었으며 100미터를 10초대에 주파하는 압도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드리블과 전문 윙어 치고는 높은 득점력을 앞세운 아웃사이드 레프트였다.

그리고 굉장히 날카로운 크로스를 동료들의 머리로 배달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디 스테파노가 직접 헨토가 없었다면 우리도 이렇게 많은 골을 못 넣었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 윙어임에도 30대 중반의 나이로 주전으로 뛰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 통산 출전 횟수 6위와 레알 마드리드 통산 득점 8위를 기록했다.

이런 엄청난 스피드의 비결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목동일을 하면서 소를 추격하며 단련된 스피드라고 한다.

 

드리블하는 헨토

 


여담

 

 

레알 마드리드는 산 마메스 원정에서 아틀레틱 클럽에 5-0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아틀레틱의 서포터들은 경기 종료 후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고,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간 이후에도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의 부회장인 사포르타는 선수들로 하여금 다시 경기장에 들어가 인사를 하도록 했다. 그러자 관중들은 더 큰 박수와 환호로 답례를 해 왔다. 다시 선수들이 퇴장을 시도했지만 박수 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러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헨토, 관중들이 너에게 보내는 박수다. 나가 봐라."라고 말했다. 헨토가 경기장으로 나오자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 사건은 스페인의 모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이후 그는 '칸타브리아의 광풍(La Galerna del Cantábric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노년의 헨토

 


수상 이력

 

 

레알 마드리드

라 리가: 12회 우승

1953-54 시즌 라 리가 우승
1954-55 시즌 라 리가 우승
1956-57 시즌 라 리가 우승
1957-58 시즌 라 리가 우승
1960-61 시즌 라 리가 우승
1961-62 시즌 라 리가 우승
1962-63 시즌 라 리가 우승
1963-64 시즌 라 리가 우승
1964-65 시즌 라 리가 우승 (라 리가 5연패)
1966-67 시즌 라 리가 우승
1967-68 시즌 라 리가 우승
1968-69 시즌 라 리가 우승 (라 리가 3연패)

유러피언 컵: 6회 우승

1955-56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1956-57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1957-58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1958-58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유러피언 컵 5연패)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주장으로 우승)

기타 대회

1955년 라틴 컵 우승
1956년 스몰 클럽 월드컵 우승
1957년 라틴 컵 우승
1960년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61-62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1969-70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통산 2회 우승)

 

프란시스코 헨토는 여섯 개의 빅이어를 획득한 축구사에 유일무이한 선수다.

 


개인 수상

1957 발롱도르 투표 12위
1958 발롱도르 투표 12위
1959 발롱도르 투표 8위
1960 월드 사커지 선정 베스트 일레븐 선정
1960 발롱도르 투표 11위
1961 월드 사커지 선정 베스트 일레븐 선정
1961 발롱도르 투표 9위
1962 월드 사커지 선정 베스트 일레븐 선정 (3회 연속 선정)
1962 발롱도르 투표 25위 (후보 6회 연속 선정)
1971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헌액
1999 부트발지 선정 20세기 베스트 일레븐 선정
2004 골든 풋 레전드 어워즈
월드 사커지 선정 100인의 위대한 축구선수
IFFHS Legends

 

 

레알 마드리드 명예회장에 취임했던 프란시스코 헨토

 


블로그 박수용의 토르난테 관리자
페이스북 페이지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페이스북 Futball Creator United 회장
다음카카오 브런치 작가

박 수용

 

원문: https://dongneazesoccer.tistory.com/15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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