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클린스만의 축구철학과 전술 분석, 그리고 위험한 이유.

 

 

1. 클린스만의 축구 철학 = 능동적 축구, 18/19 리버풀

 

"앉아서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리고 반응하는 수동적 축구 대신 상대에게 게임을 강요하는, 보다 적극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올 것이다."

 

2011년 6월, 클린스만이 미국대표팀 감독에 취임하며 밝힌 전술 철학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수동적인 축구가 아닌 능동적인 축구를 하겠다는 말이죠. 역습 중심으로 운영했던 전임 감독인 밥 브래들리와 대비되어 클린스만의 비전은 미국에서 매우 환호받았습니다.

 

실제로 클린스만은 높은 위치의 압박과 수비 라인을 앞으로 당기며 브래들리 축구와 다른 모습을 바로 보여주기도 했어요.

 

이게 과연 클린스만 본인의 철학일까, 아니면 다른 코치의 철학을 주입받은 것이 아닐까란 의심이 드시죠?

 

2019년 11월, 클린스만이 헤르타 베를린 감독 취임 시 가장 이상적인 클럽으로 뽑았던 팀이 리버풀이었습니다. 활기차고 매력적인 축구가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리고 있다며, 롤모델로 꼽았죠.

 

18/19시즌 리버풀의 축구가 볼소유권을 되찾기 위한 빠른 압박의 정석을 보여준 축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클린스만이 원했던 축구는 궤가 비슷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독일 대표팀을 이끌며 분데스리가의 템포는 느리다면서 빠르고 공격적이고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뢰브의 도움이 컸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지만, 2006 독일월드컵에서 이전 독일대표팀과 다르게 빠른 템포의 축구를 보이며 3위에 오릅니다.

 

김판곤이 2018년 파울로 벤투를 만나기 전에 왜 클린스만을 접촉했던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2022 카타르월드컵을 거치며 스트라이커의 뒷공간 움직임과 결정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앙에서의 기회보다 윙에서 기회를 만드는 효율성이 올라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 철학에 이런 인식이 반영되는 수준일 것으로 보입니다.

 

 

 

2. 클린스만의 전술 운용

 

클린스만이 헤르타 베를린과 미국 대표팀을 이끌었을 때의 전술을 부분적으로 집어본다면,

 

 

(1) 4-2-3-1, 4-4-2, 4-1-3-2, 3-4-3 그리고 4-1-4-1

 

위의 포메이션은 클린스만이 사용했던 포메이션입니다. 4-2-3-1 부터 3-4-3까지는 미국에서 썼고, 4-2-3-1, 4-1-4-1은 헤르타 베를린에서 사용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투볼란치와 센터백을 통해 후방 빌드업을 합니다. 그래서 4-1-3-2를 하더라도 공격형 미드필더가 많이 내려와 4-4-2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4-2-3-1도 4-4-2와 비슷한 움직임으로, 디테일이 잡는데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혼란을 주기 위한 페이크인지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3백이 문제인데, 클린스만이 3백을 썼던 의도는 2명의 중앙 미드필더까지 공격으로 올려 공격 숫자를 확보하기 위함으로 보였습니다. 이는 공간에서의 수적 우위보다 선수들을 1대1로 붙여놓아 개인 기량을 최대한 살린다는 개념으로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이 전술 변경은 선수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클린스만의 미국은 그 전까지 공간을 만들고 패스하여 기회를 창출하는 개념으로 접근해왔는데 갑작스레 컨셉을 바꾸면서 이에 대한 디테일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경기에 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공통적인 부분은 수비라인을 끌어올려 강력한 체력과 스피드를 통해 지속적으로 상대진영에서 볼을 소유하고 압박으로 공격권을 되찾으려 하며, 공격에 숫자를 밀어넣으려했다는 점입니다.

 

 

(2) 센터백 후방 빌드업, 아니면 사이드 롱볼

 

이를 위해 패스가 되는 미드필더들을 수비라인으로 포지션 변경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중앙 미드필더였던 모리스 에두, 저메인 존스같은 선수들을 센터백으로 썼습니다. 저메인 존스는 운동능력이나 신체조건은 나무랄데 없었으나 수비 동작이나 포지셔닝이 센터백에 적합하지 않은 선수였죠. 클린스만은 여타 센터백보다 우월한 그의 패스 기술을 활용하는 동시에 저메인 존스의 전진까지 전술로 생각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김민재가 있고, K리그 센터백 중 최고의 전진능력을 보여준 박지수가 있죠.

 

 

(3) 풀백의 기술과 볼배급 능력

 

미국 대표팀 임기 말년, 캘린 아코스타의 기용도 주목할만합니다. 아코스타는 중앙 미드필더였으나 클린스만은 좌우 사이드백으로 기용한 바가 있습니다. 아코스타가 지구력도 갖췄지만, 가장 중요한 기용 요소는 볼소유를 유지하는 능력과 후방에서 풀어내는 기술과 빌드업 능력을 우선한 결과였다고 봅니다.

 

이 기용은 풀백의 윙 전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윙어가 좁히고 풀백이 사이드로 벌려주는 형태에서 공격작업을 시작하거든요.

 

모든 풀백에게 이런 스타일을 요구했던 것은 아닙니다. 주전 왼쪽 풀백 다마커스 비즐리는 올해의 수비수도 수상할정도로 좋은 수비수지만, 빠른 스피드와 크로스가 특장점이기도 했으니까요.

 

 

(4) 스피드와 지구력 강조

 

"경기 시작 후 20분만이 아니라 90분 내내 지속적으로 더 높은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 말은 속도와 지구력을 동시에 강조하는 클린스만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클린스만은 그의 팀이 정확한 패스로 공을 계속 소유하고 수비수로부터 최전방을 통해 지속적으로 템포를 높이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빼앗기는 즉시 근처 선수들이 압박하길 원하고 미드필더들과 풀백들이 수비 블록을 형성하기 위해 공격에서 수비로 돌아오길 원하죠.

 

클린스만의 베를린은 미국에서와 다르게 압박의 위치가 다양하게 움직입니다. 미국에서는 끊임없는 전방압박을 강조했다면, 베를린에서는 압박을 전방에서부터 강하게 넣기도 하고, 하프라인에서부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대신 수비 간격은 좁히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수비라인을 완전히 뒤로 물리지 않아 공격부터 수비 간격도 좁아지지만, 주목할 것은 수비 시 좌우의 폭도 상당히 좁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좌우의 폭을 좁히는 만큼 측면 공간을 내주는데 이에 대한 대처를 윙어의 수비가담으로 측면 공간을 없애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역습 상황에서는 위에 남겨진 2~3명의 선수를 향해 수비에서 한번에 나가는 롱패스를 주고 이 볼을 받은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PA로 접근합니다. 이 때 중앙 미드필더들은 따라 올라가 PA 밖에서 옵션을 늘려주고 풀백도 올라와 언더래핑이나 오버래핑을 해줍니다. 전체적으로 체력도 좋고, 상대보다 빠른 스피드를 갖고 있다면 더욱 효과적일 수 밖에 없는 전술을 씁니다.

 

팀 단위 압박의 단계, 지능적인 움직임과 세부적인 공간 배분이 뒤따른다면 체력을 절약할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인 스피드와 체력에 대한 강조가 더 크게 느껴지는 감독입니다. 우리나라가 부족한 것이 체력이란 점을 생각하면, 체력에 대한 강조 및 체력 위주 선발이 더 강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 강력한 점유율로 기회는 많이 만들지만..

클린스만의 생각대로 미국이 경기를 주도할 때는 볼을 점유하면서 압박이 들어가니 상대 공간에서 볼이 많이 머물며 지속적으로 키패스가 들어가는 지배적 경기 양상을 펼쳤습니다. 문제는 이 기회가 골로 바뀌는 결정력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점점 압박이 되지 않고 점유율까지 잃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다른 전술로 타개해보려는 즉흥적 시도가 오히려 팀을 흔들었습니다. 추구하는 바는 알겠지만, 그를 실현하는 코칭 능력과 디테일이 있는가에 의문이 있습니다.

 

 

 

3. 클린스만은 생각보다 잘할 것이다. 그런데 왜 클린스만이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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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자철의 말에 클린스만이 왜 우려스러운지가 잘 담겨있다고 봅니다.

 

클린스만은 미국대표팀 시절에도 그랬지만, 선수들에게 자신의 훈련과 전술적 지시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에 의문 부호가 붙는 감독이었습니다.

 

이 문제가 재임기간이 짧았던 헤르타 베를린 시절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있었던 5년 5개월이라는 시간에는 말이 많았죠. 그의 훈련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수들과 포지션 변경을 납득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전술 변화가 있지만 사전에 충분한 훈련을 거치지 않아 선수들에게 전술 의도를 주지시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전술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선수들에게 전술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여 이를 실전에서 보이는 과정은 주어진 시간이 짧은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매우 필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표팀 이후 이렇다 할 감독 활동이 없는 클린스만이 과연 팀 관리 능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저는 의문 부호가 붙습니다.

 

그가 전술 트렌드에 뒤쳐졌느냐는 오히려 후순위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년 간 다져진 전술과 쌓아놓은 선수풀은 클린스만이 추구하는 전술적 지향점을 구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클린스만호의 초기 성적과 경기 내용은 생각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클린스만은 자신이 다르게 시도해보고 싶은 전술들을 꺼내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즉흥에 가까울 정도로 선수들에게 갑작스레 제시될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클린스만은 고정적인 라인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미국 대표팀 말년에는 거의 매 경기 선수들이 바뀌었고 고정적인 출전 선수는 선수들은 조직력을 갖지 못한채로 새 전술과 포지션에 적응해야해 온전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또 무한경쟁으로 보는 시선도 생겨나겠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세계축구 혹은 월드컵에서 나타난 트렌드라며 제시한 클린스만의 철학은 많은 축구팬들을 공감시키기에 충분하겠죠. 또 그의 최근 경력이 피파 TSG(기술 연구 그룹)으로 월드컵 전술 분석팀이었으니 그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분명 다른 전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기력이 저하되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러나 클린스만이 제시한 비전에 동감하는 사람들은 그가 벤투를 넘어 트렌드에 맞는 축구를 입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슬럼프' 정도로 생각할 것이며, 이는 대표팀 선수들이 그 도전에 준비되지 않았거나, 트렌드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죠.

 

감독은 자신이 구상한 전술을 이행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비판하고,

선수들은 전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경기를 뛰어 감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전술, 또는 선수들의 제각각 움직임에 감독과 선수 모두에게 비난을 쏟아 붓게 되죠.

 

이때부터 한국축구의 불행과 위기가 시작된다고 봐야할 겁니다.

 

미국 대표팀의 클린스만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댓글 6

바티골 작성자 2023.03.06. 10:19
 죽순기현
감사합니다.
댓글
익수민성종신 2023.03.06. 00:49
흐릿하게 생각하던것들이 너무 잘 정리된 글이네요.. 혼자 끙끙 뭔지 고민하던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바티골 작성자 2023.03.06. 10:19
 익수민성종신
글 쓴 보람이 있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댓글
설인아길레온 2023.03.06. 11:13
예전에 벤투가 우리나라에 취임하기전 면담때
2018러시아월드컵을 포함해 한국경기를 보고
경기마다 전술이 바뀌던데 선수들의 역할이
그렇게 자주 바뀌면 안된다고 지적했다네요
클린스만이 오면 좋을때 헤어지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도 어쨌든 16강 달성한적이 있었던만큼
다음 월드컵 결과내고 헤어지면 서로 윈윈이겠죠
댓글
바티골 작성자 2023.03.06. 23:57
 설인아길레온
전술의 기조가 바뀌는데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벤투도 전술을 유연하게 가져가기 위해 기반이 되는 전술을 마련한 다음 압박의 강도를 달리 할 수 있도록 진행했으니까요.

본문에서는 어두운 전망을 썼지만 다음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그 후로 또 다른 길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오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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