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축협 나으리들, 지금 장난하세요?

 

호수_파도.jpg

 뒤숭숭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리창과 같이 잔잔하던 한국 축구라는 호수의 표면이, 던져져선 안 됐을 쓰레기 뭉치 하나 때문에 뒤숭숭해졌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가 어제(28) 저녁 5시 반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년도 제2차 이사회를 통해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조작범 48명을 포함한 축구인 100명에 대한 징계 사면을 결정했다.

 

 승부조작이 장난인가?

 말 같지도 않은 일이다. 이 결정이 얼마나 잘못됐고 말이 안 되는지는 설명하기조차 싫다. 설명을 붙이는 게 시간 낭비기 때문이다. 살인이나 강간을 저질러선 안 된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축구는 살인이다.jpeg

 스포츠계에서 승부조작은 살인과 같은 일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자세히 설명하기 싫을 정도로 기본적인 일이라는 앞 문장을 지키기 위해 사건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진 않겠다. 축구를 하거나 가르치던 사람들이 죽었다. 이적료를 주고 영입한 주전 골키퍼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팀이 있었다. 스쿼드가 반파된 팀도 있었다. 팔자에 없는 장갑을 사건으로 인해 끼우는 어이없는 경험을 했음에도 "군인은 시키면 다 합니다"라며, 자신의 당혹을 엄혹했던 공기 앞에 감춰야 했던 필드플레이어가 있었다. 축구를 하거나 본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고 괴로워했다. 가장 중요한 건 편법이 가진 자의 특권인 필드 바깥의 세상보다는 공정하다 여겼던 피치 안이 그렇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사람들이 항구적으로 떠안아야 했다는 것이다.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이 축구판에 합법적으로 돌아올 길을 다름아닌 축협이 활짝 열었다. 이걸 축구계의 통합을 위한 조치라고, 좀 더 양보해서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해줘야 하나?

 

 

 

 진심은 왜 빚진 게 없는 사람만 가지고 깨지나?

 승부조작으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그리고 죄짓고 빚진 게 없음에도 끝없이 의심에 맞서야 했다.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야 했다. 승부조작 따위는 하지 않았고 따라서 언제나처럼 자신의 플레이와 팀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됐던 선수들은 마치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용서를 구해야 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팀원을 돌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신뢰로 거듭나겠습니다.jpg

 자신이 신뢰를 잃은 것이 아닌데도 신뢰로 거듭나겠다고

 

 따지고 보면 그런 큰 사건이 있을 때 가장 놀라고 화나고 괴로울, 가장 심리적으로 소모될 사람은 조작범의 팀 동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계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뒤에서 보고 응원한 것밖에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의 무대가 각본 없는 드라마에서 짜인 판으로 전락한 축구팬, 정확히 이야기하면 K리그를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겐 조작이나 하는 리그를 왜 보냐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비난이 가해졌다. 원래부터 좋아하던 팀을 힘든 일이 있을 때 지키는 게 전부였던 사람들은, 좋아하는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지켜봐야 했던 피해자들은 바깥의 무지 어린 시선에 죄인이 됐다. 수십 번을 팀에 남은 선수들은 그러지 않았다 해명해야 했고 그보다 많은 시간을 분노와 허탈감에 직면해야 했다. 충격받고 깨어진 감정은 소모되기에 무엇 하나 돌아오지 않음에도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 시간들을 이겨냈다.

 

 하지만 십여 년 전의 악몽은 어제 다시 손잡고 언덕을 넘은 사람들을 산사태가 되어 덮쳤다. 축협은 가장 힘들 때 자신들을 지켜준 존재들보다 조작범과 비위 행위자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이걸 정상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모론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조직, 대한축구협회

 오죽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면 몇몇 축구팬들은 아예 음모론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승부조작이 아닌 다른 사유로 징계를 받은 누군가를 사면하기 위해 조작범을 미끼로 썼다는 것. 이것의 내용이 가진 설득력이나 진위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축구팬들이 음모론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저녁 식탁에 음모론자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누가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무슨 그런 가짜뉴스를 퍼뜨리냐고. 하지만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킹리적 갓심이라는 반응이 그런 정상적인 반응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팬들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잘못됐다고? 절대 아니다. 음모론조차 믿게 만들 정도면 음모론의 대상이 되는 단체의 행실이 도대체 어떤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소리다. 축협은 승부조작범 사면이라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한 핑계로 무려 월드컵 16을 들었다. 또한 해당 사안을 미디어도 팬들도 경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A매치 당일에 날치기 통과시킨 후 발표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정상적이지 못한 일을 벌이는 집단에 대해 정상적인 시선과 반응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음모론이 거부반응 없이 그럴 만도 하다는 시선을 얻는 곳, 얼마나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되면 그것이 마치 합리적 의심처럼 느껴지는 곳. 지금의 축협은 그런 곳이다.

사면 현장.jpg

 축협을 일순간에 그런 수준 낮은 집단으로 만든 분들께 꼭 좀 물어보고 싶다. 지금 장난하냐고. 승부조작이, 사람들을 죽게 하고 다치게 하고 눈물짓게 했으며 축구판 자체를 뜯어버릴 수도 있던 일이 탁상에서 공론도 아니고 날치기나 하고 앉아있는 나으리들 눈엔 장난으로 보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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