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오심 대신, 태도에 관하여

 홍명보 울산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전한 바 있다.

 “팬들은 경기 결과로 1주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축구팬의 간절한 마음을, 프로축구선수가 왜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를 잘 요약한 명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90분으로 1주를 살아가는 것보다도 한술 더 뜨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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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리터>와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당신들은 꼭 읽어보셨음 한다. 내가 딜리터를 못 읽었으니까.

 

 조금 전 서점에 다녀왔다. 꼭 책을 사지 않아도 좋으니 서재를 구경하며 과제에 녹아버린 머리를 식히기 위해 1.5km 정도를 걸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아직 안 읽은 소설을 만날 수 있었고, 단박에 선택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책을 내려놓았다. 지난해에 겪은 안 좋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여름, 광역버스와 카페에서 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수원FC 원정을 떠났던 기억이 났다. 동점 골을 넣고 단 1분 만에 다시 실점해 0:1도 아니고 1:2도 아니고 2:3도 아닌 ‘3:4’로 패한 경기였다. 경기만 졌다면 차라리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경기 종료 직후 이 글에 자세히 밝힐 수 없는 나쁜 일을 겪는 바람에 같이 축구장에 갔던 사람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내일은 수원FC와의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다. 그날 그 작가의 비슷한 등장인물을 다루는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오늘 읽고 싶던 책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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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도 선덜랜드"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축구는 당연히 종교일 것이다.

 

 축구는 그런 것이다. 유럽인들은 축구를 종교라 한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 같은 옷을 입고 모여 정해진 노래를 부르는 건 종교의식과 닮아있다. 축구는 누군가의 1주를 결정하고, 다른 누군가의 생활 방식을 좌우하기도 한다. 어디에 있고 얼마나 축구를 좋아하느냐는 중요치 않다. 팬들은 사소한 것 하나 조심할 정도로, 종교에 비견될 정도로, 90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을 축구장 안에서 얻은 기분으로 살아갈 정도로 축구를 경건하게 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수요일 경기가 끝나고 적잖이 화가 났다. 오심이 있었고 그 때문에 응원팀이 졌다는 사실에도 화가 났지만, 해당 경기의 주심이고 책임을 지거나 부과해야 할 사람들이고 축구에 그리 진중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 더 크게 화가 났다. 

 

“삑! 삑… 삐비비비빅!”

 

https://youtu.be/WLCZyuRI54U

-'🤐🤐🤐'

 

 혼전 상황이나 경기 종반 같은 경기의 승부를 가를 수 있는 상황에서는 휘슬을 먼저 부는 대신 플레이를 기다리는 것이 하나의 필수적 경향이 됐다. 꼭 그런 중요한 상황까지 갈 것도 없이, 시간대와 관계없이 명확한 오프사이드 상황조차 플레이가 모두 끝난 후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 최근의 축구고 판정이다. VAR의 도입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의 주심은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김영권이 넣은 선제골이(이 골은 VAR 도입 이전이었다면 오프사이드로 판정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정되고도 햇수로 5년이 지난 시점에서 혼전 상황을 바로 중단시켰다. 주심은 해당 판정이 정심이었어도 “왜 VAR이 존재하는데도 바로 휘슬을 부느냐”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장면을 만들었는데, 심지어 오심이었다. 본인도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건진 모르겠지만 팔로세비치가 골망 안쪽으로 간 슛(골로 기록되지 않았기에 그 슛을 골이라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정말 갑갑할 뿐이다)을 할 때, 마치 누군가가 부상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을 때 나오는 듯한 연속적 휘슬소리가 울린 건 가관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오심도 문제고 VAR을 원천봉쇄한 결정도 문제지만 “어? 여기서 들어가면 나 X되는데?” 라는 것만 같은 해당 상황 직후의 진행 또한 큰 문제로 느껴졌다. 이게 어딜 봐서 축구와 판정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인가? 

 

리그의 갈라파고스, 심판위원회

 며칠이 지나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나 프로축구연맹 같은 관련 단체의 입장이 공개됐을 때는 더 큰 화가 밀려왔다. 요약하면 “사과는 하지만 공개하진 않을 것이며, 해당 주심은 주말 경기 배정을 긴급정지했고 추가적 징계는 나중에”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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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는 자기 잘못도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리는데 누구는 '비공개'를 운운한다. 같잖은 일이다.

 

 세상에 비공개 고백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들을 사람이 없는데 무슨 고백을 한다는 건가? 사과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설악산 대청봉을 혼자서 오른 후 한 손을 앞으로 뻗으며 “미안하다!”라고 외치는 걸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비공개 사과란 그런 것이다. 사과를 들을 구단, 선수단, 팬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사과를 어떻게 한다는 소린가? 주심 본인이 됐든 심판위가 됐든 연맹이 됐든 본인들 귀찮고 쪽팔린 게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보다 중요하다는 소리를 하는 걸까. 

 주말 경기 배정 중지는 그렇다 치자. 경기 결과를 심판이란 자리에서 뒤바꿨다면 응당 받아야 할 징계가 언제 결정되고 어느 정도의 수위인지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것대로 큰 문제다. 잘못은 벌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벌은 공개된다. 하다못해 삼성전자의 회장 이재용 씨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왜 들어갔는지, 어느 정도 있다가 나올 건지는 온 국민에게 공표됐다. 심판위원회와 심판들은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원칙이나 그것이 알려진다는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을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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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잘못 아닌 일에 눈물을 훔친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참고로 이날 잘못했던 사람은 60일이 되지 않아 K리그1에 복귀했다.

 

 벌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게 아니다. 축구팬을 폭행해 ‘영구제명’을 받은 심판은 현재도 축구장에 출근하고, 지난해 울산:서울전에서 VAR을 시행하고도 페널티킥 오심으로 경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심판은 ‘무기한 배정정지’를 받고 두 달도 되지 않아 K리그1에 복귀했다. 징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두루뭉술하게 부과한 후 징계한 심판을 필드로 돌려보낸 전례는 이미 존재한다. 거기에는 심판위원회의 투명하지도 못하고 상식적이지도 못한 징계 과정이 영향을 미친다. 평가소위의 수요일 장면에 대한 입장은 ‘만장일치 오심’이다. 그렇게 결정됐다면 다음 주까지 상황을 지켜볼 이유는 존재하는가? 그동안처럼 관심이 줄어들 때 ‘무기한 배정정지’ 같은 두루뭉술한 조치를 하고 보는 눈이 더 줄면 복귀시키겠다는 건지 의심스러운 흐름을 심판위는 자초하고 있다. 

 비공개 사과도, 이미 정해진 잘못에 대한 징계를 다음 주로 미루겠다는 것도, 심판 징계에 대한 전례도 엄중하지 못하다. 축구를 본업 삼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축구가 여가고 주말인 사람들보다 못하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내일 경기가 수원에서 펼쳐지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경기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팬이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선수들은 시즌 내내 훈련하며 코칭스태프와 프런트는 어떻게 해야 경기를 이길지 머리를 싸매는 그 모든 노력이 실력 아닌 휘슬 한 번에 좌초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렇다. 그들이 겪은 과정과 마음을 결정짓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들보다 못하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렇다. 수원종합운동장은 걸어서 30분이다. 비가 오는 게 별 일 아닌 것 같을 정도로 안 갈 만한 핑계가 없다. 그런데도 경기장에 가기 싫다. 팬과 선수단, 구단 밖에서 경기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렇다면 경기에 쏟은 노력이 또 부당하게 물거품이 되지 않는단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https://youtu.be/aDN7vNLKqdM

 

  실패라는 결과가 우리의 몫이 아닐 때, 그런 상황을 만든 존재의 태도가 우리만큼 진지하지조차 않을 때 우리는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까?

댓글 1

best MonAmiStift_Jeju 2023.04.28. 22:43
글 맛나게 잘 쓰네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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