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충남아산의 빨강 유니폼, 꼭 ‘이렇게’ 써야 할까?
- 럭키금성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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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아산FC가 ‘또’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
충남아산FC는 2일 오후 7시 열린 천안시티FC와의 리그 16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빨강색 유니폼을 입은 채 출전했다. 엠블럼에 들어간 구단 상징색이 파랑과 노랑인데 난데없이 빨강을 쓰는 구단 때문에 시즌 내내 골치를 썩고 있는 충남아산 팬들은 물론, 본인들의 홈 경기니 상대 구단이 당연히 흰색 원정 유니폼을 입을 거라 생각했을 천안 팬들까지 당황케 만든 처사다.
자신들의 홈 개막전부터 유니폼 색깔로 팬들을 실망케 한 충남아산은 응원 보이콧, SNS 상에 퍼진 반대 메시지 등으로 홍역을 치렀음에도 빨간 옷을 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처음 문제가 불거졌던 3월에는 “홈 유니폼을 파랑, 빨강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고 해명했다가,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지는 원정 경기에 해당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며 혼란만 키우는 중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빨강 유니폼에 대해서 다른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어떤 구단이라도 이미 만들어진 유니폼을 반대 여론이 크다 해서 당장 폐기하긴 어렵다. 비용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온 유니폼을 ‘잘 쓰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데, 충남아산은 이 길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이미 존재하는 유니폼이라면 의미 있게 쓰는 게 비판을 줄이고 팬들을 안심케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구단은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의외로 자신들의 상징색과 종목에 따라 홈, 원정 유니폼으로 용도가 달라지는 흰색 외에 다른 색을 띠는 유니폼을 입는 사례 자체는 흔하다. ‘얼트 유니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트 유니폼은 홈/원정 색상이 아닌 다른 색의 유니폼을 뜻하는 단어다. 여기까지만 보면 ‘충남아산의 레드 유니폼도 얼트 유니폼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얼트 유니폼의 추세는 충남아산의 우격다짐과도 같은 빨간 유니폼 착용과는 거리가 멀다. 얼트 유니폼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담는 마케팅이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연고지, 역사적 사실, 위인 등을 기념하는 얼트 유니폼은 많은 스포츠팬들의 지갑을 메마르게 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충남아산이 붉은 유니폼 기획의도로 밝힌 인물과 같은 상징을 담은 유니폼이 야구계에도 있다.
KBO 리그 NC 다이노스는 연고지 창원시에 해군교육사령부가 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내 ‘충무공 유니폼’을 제작했다. 검정색을 메인 테마로 삼았기 때문에 블루, 민트, 네이비 등 한색 계열을 상징색으로 삼는 기존 구단 유니폼과는 거리가 멀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의미를 담았기에 반발은 없었다. 또한 해당 유니폼을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과 8월 초 한산도 대첩이 있던 기간에만 착용하며 이야기를 더했다. 덕분일까? 충무공 유니폼은 <더그아웃매거진>에서 진행한 ‘팬이 뽑은 최애 유니폼’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입는 홈 유니폼, 구단 고유 컬러가 담긴 원정 유니폼을 모두 밀어내고 과반 득표로 1위를 차지했다. 상징색에서 멀어졌다고 비판받기는커녕,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니폼이 된 것이다.
필자가 안타까운 점은 충남아산의 붉은 유니폼도 얼마든 그런 용도로 활용될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충남아산은 시즌 전 새 유니폼 발표 보도자료에서 붉은 유니폼을 두고 “아산에서 6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성웅이순신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붉은색 유니폼을 제작했다”며 “장군복의 붉은색 색상을 바탕으로 장군검 모양을 은은하게 삽입했다”고 밝혔다. 기획의도만 놓고 보면 NC의 충무공 유니폼과 아예 똑같다.
때문에 충남아산이 붉은 유니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었다. 성웅이순신축제를 기념한다면 축제 기간인 4월 말에 붉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면 된다. NC처럼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몇몇 해전일을 꼽아 착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순신 장군이 군인이었으니 야구의 ‘밀리터리 유니폼’처럼,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 입는 것도 괜찮은 구색이었다. 그렇게 했다면 붉은색이 환영받진 못해도 최소한 ‘특별 유니폼’이라는 식으로 팬들이 납득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충남아산은 기회를 스스로 날렸다. 해당 유니폼을 무슨 의도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게 활용했다. 성웅이순신축제까지 한 달 하고도 3주를 남긴 홈 개막전 날 붉은 유니폼을 착용하며 겨우내 개막과 응원만 기다렸을 팬들에게 응원 보이콧을 하게 만들었다. 이후 푸른 유니폼으로 돌아가나 싶더니, 천안과의 ‘충남 더비’나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수원과의 경기 등 주목도가 높은 날에만 붉은 유니폼을 착용하며 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주장하던 상징성은 포기했고, 팬들에게는 더 큰 스트레스를 준 것이다. 더구나 붉은 유니폼을 입는 날에는 해당 유니폼을 입는다는 공지조차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원정 경기에 ‘그 유니폼’을 꺼내 들어 홈 구단과 팬들까지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이 유니폼이 도대체 왜 만들어졌는지는 논란의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따지고 보면 총선이 끝난 후 더 많이 입는 판국이 돼버린지라 무조건 정치적 의도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워졌다. 분명한 건 붉은색 유니폼이 이미 충남아산의 2024시즌 공식 유니폼으로 등록돼서 경기 착용, 판매 등 그 지위를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어차피 나온 유니폼, 잘 쓰려고 노력이라도 했어야 한다. 본인들의 기획의도를 반영하는 방식이 뭐였는지 고민해야 했고,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도 얼마든 있었다. 그러나 충남아산은 그런 방법을 찾지 않았다. 대신 여태껏 자기 팀 팬들이 오늘 경기에서 무슨 유니폼을 입고 나올지도 알지 못하는 구단을 만들었다. 하필 천안전, 수원전 등 팬들 입장에서 의미가 클 경기만 골라서 붉은 유니폼을 입히는 건 덤이다. 가뜩이나 몇 번의 팀 해체 위기와 데이트폭력 선수 영입 논란을 딛고 응원하는 아산 팬들은 무슨 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