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아랍 부자들이 K리그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 -2-
- 부산빠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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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layus.com/football_k/19512895 (1편에 이어 계속.)
4. K리그에 만수르가 뛰어들지 않는 이유 - 한국의 지방정부와 부동산은 만수르가 필요없다.
3번까지의 이야기를 읽고 반색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령 부산만 해도 개발해야 할 구도심은 널려 있고, 관광업도 발달한 도시이기에 '만수르느님께 구도심 개발권 넘기고 겸사겸사 부산 아이파크도 투자받았으면 좋겠다 ㅜㅜ..' 뭐 이런 류의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비단 부산 뿐만 아니라 인천이나 강원도 등 관광업은 발달했으되, 지자체 재정이 쪼달리고 구도심이 널린 곳이며 K리그 팀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모두 적용 가능한 상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정확히는 만수르가 원하는 대로 한국 지자체를 비롯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만수르가 뛰어들 공간이 한국엔 없다.
왜?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유럽의 지방자치와 달리 한국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에 지극히 의존적이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중세 봉건제를 토대로 사회가 구성되어 왔으며, 근대 중앙집권제를 잠시 겪었으나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체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께 중앙집권제의 아성이 약해지고, 다시금 지역색이 강해지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형식상 군주인 덴노를 제쳐놓고 실권자인 쇼군과 다이묘들로 봉건사회 기틀을 유지해온 일본도 마찬가지. 반면 한국은 전통적으로 고려시대 초기 이전 역사를 제외하면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1천년 넘게 유지했으며 특히 정부의 안위가 곧 국민의 안위로 여겨졌던 군사정권기를 극복한지 이제 겨우 30년 지났기에, 여전히 중앙정부 & 관치의 아성이 강력하게 남아있다.
때문에 유럽/일본 지방정부들은 중앙 정부 지원을 쳐다보기 보다는 각자도생을 모색하며 만수르의 지갑을 열기위해 수쿠크 발행 감내나 이에 준하는 개발권 헐값 양도와 같은 호구딜 마저 불사하는 반면, 한국 지방정부들은 중앙 정부의 지방 교부금이란 꿀단지를 매년 기다리기만 하면 되기에 만수르의 투자 같은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타격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중 하나가 지방교부금의 비중이다. ‘한(韓)·일(日)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태 비교 연구’ 논문에 의하면, 강원도의 일반예산 내 지방교부금의 비중은 2014년 기준 44.66%에 달했다. 아마 평창올림픽 개최 확정 이후 중앙에서 SOC 예산 편성이 쏟아졌으니, 지방교부금 비중은 더욱 뛰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반면 일본 도야마현은 같은 시기 지방교부금 비중이 24.74%, 강원도의 거진 절반 수준이었다. 여기에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가리키는 지방재정자주도, 즉 '강원도가 맘놓고 쓸 수 있는 예산이, 전체 강원도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또한 강원도는 75%에 달한 반면, 도야마현은 50%에 그쳤다. 쉽게 말해 강원도는 지방교부금으로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확보한 덕분에, 비교적 자유롭게 예산을 쓸 수 있었던 반면, 도야마현은 돈 들어오는 구멍도 별로 없고하니 예산의 자유로운 운영 또한 한국에 비해 어려웠다는 얘기가 된다.
전국 평균으로 따졌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4년 한국의 지자체 전국 평균 지방교부금 비중은 35.89%였던 반면, 일본의 현 평균은 20.61%로 역시 한국의 60% 수준에 그쳤으며 지방재정자주도는 한국 74%, 일본 51%로 역시 차이가 컸다. (아쉽게도 한국 지방정부 vs 유럽 지방정부, 특히 스페인이나 잉글랜드 지방정부 재정 비교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 지방정부보다 안습이면 안습이지, 더 나으리라 보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 한국 지방 정부가 매년 적자네 뭐네해도 타국 지방 정부들에 비하면 여유가 있는 셈. (당장에 스페인 모 지방정부가 도저히 적자를 갚을 길이 없어 한 해 예산을 꼴아박아 로또를 시원하게 긁었다는 과거 기사를 떠올려보자..) 이처럼 지방정부가 움직이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만수르의 야심찬 플랜(?)이 들어와도 지방 정부 관계자들 눈이 뒤집히기 보다는, 일단 계산기를 두들겨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산기만 두드려보면 현재가치만 따져봤을때 이게 얼마나 호구딜인지를 알게되고, 투자가 1차 저지되는 셈이다.
둘째, 한국은 만수르가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곳이 못된다. 한국 부동산 관련 규제와 특수성이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K리그를 오래 봐온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법한 규제 중 하나가 '프로축구단이 운동장을 직접 소유할 수 없다' 일 것이다. 즉 민간사업자들이 경기장을 새로 짓거나 부대 시설을 확충하더라도 그 소유권은 지자체가 갖게되며, 사업자들은 기부채납 형식으로 지자체에 소유권을 넘기고 사용권만 받는 구조인데... 이는 회계상으로 봤을때 상당히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쉽게 말해 경기장을 짓더라도 이게 자산이 되는게 아니라 비용이 된다는 얘기다. 아래의 <1번 분개>와 <2번 분개>를 살펴보자.
(차) 운동장 (유형자산) 100 / (대) 현금 100 → 규제만 없다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분개이다. 편의상 <1번 분개>라 하자.
(차) 운동장 건설비 (비용) 100 / (대) 현금 100 → 현재 한국에서는 규제상 다음과 같이 분개해야 한다. 편의상 <2번 분개>라 하자.
<1번 분개>가 가능하다면, 만수르는 한국에 있는 종합운동장 아무거나 때려부수고, 그 위에 으리으리한 전용구장을 지을 수 있다. 이 때 돈을 많이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모두 자산의 취득원가로 계상되어 만수르의 자산이 된다. (곁다리 소리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중견기업 단계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위치 쯤에 있는 기업들은 건설사를 인수한다. 건설사를 이용해 자사 본사나 계열사 건물을 짓는데 돈을 들이면 들일수록 그 돈이 그대로 유형자산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서류상으로는 2천억을 건물 짓는데 들였다고 유형자산 +2000억을 해놓고 실제로 건설에 1천 8백억만 돈을 쓴다면, 2백억은 비자금으로 꿍쳐놓는게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2번 분개>만 가능하기 때문에 만수르가 전용구장에 돈을 들일수록, 이는 고스란히 손실로 계상해야 한다. 같은 행동을 했는데 한쪽은 자산이 되고 한쪽은 적자가 된다면 누가 <2번 분개>만 인정하는 곳에 경기장을 짓겠는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질 않는다. 앞서 '3. 만수르식 돈벌기 - 축구팀 투자와 채권/부동산 투자의 쌍두마차' 챕터에서 얘기했듯이, 만수르는 수쿠크 발행의 논리로 현재가치가 크게 할인된 가격에 채권을 사든, 부동산을 사든 실물자산을 확보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만수르의 제의는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부산구덕운동장 주변 부동산과 개발권을 합쳐서 공정가치가 1조원 정도라 가정해보자. 근데 만수르가 와서 해당 개발권을 8000억에 사겠다고 한다면 이 제의를 받아들이는 지자체가 있을까? 당연히 없다.. 왜냐하면 개발권 가치가 명목상으로는 1조이지만 개발해서 빌딩을 짓고 건물을 올리면 10조든 50조든 천정부지로 뛸 것이라 한국 사람들은 믿기 때문이다. 즉 적정시세보다 웃돈을 줘도 모자랄 판국에 만수르는 '난 명목이자 안받으니까 더 싸게 사야돼 ㅎㅎ' 라고 접근하면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꺼져 오일놈들아' 대답만 나오게 되는 것이다.
즉 한국은 개개의 건물 가치가 계속해서 평가증된다. 건물이 지어지고 나면 그 순간부터 감가상각으로 가치가 하락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가치가 증가하며 (청약 당첨자 분양가와 실거래가 간 격차가 심심찮게 몇억 이상 차이나는 사례들을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부터는 낡은 건물들의 가치가 더 높아지기까지 한다. 재개발이 될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이나 미국의 개개 건물들은 사용되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시작된다. 때문에 10억에 새집을 사더라도 팔때는 3~4억에 팔야야 한다. 그러니 만수르가 유럽 등지에서 10억짜리 집을 8억에 사겠다고 하면 어느 정도 말이 되겠지만, 한국에서 10억짜리 집은 8억은 고사하고 12억에도 못살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요컨대 만수르는 1억짜리 부동산 10000개를 8천억에 싸게 산 뒤, 재개발하여 도시 가치 자체를 끌어올리고 5조 / 10조짜리 신도시 구획을 만들어 돈을 벌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은 1억짜리 부동산을 8천만원에 살 수도 없거니와 누구든 자기네 부동산이 개발만 되면 5조 / 10조짜리가 될 수 있다고.. 만수르와 똑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돈버는 비법은 나만 알고 있을 때 의미가 있는 법.. 따라서 만수르 식 돈벌기는 한국에 적용되기 어려우며, 이런 특수한 시장에 뛰어들려면, 자신의 방법론을 전면 수정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만수르식 돈벌기에 쌍수 들어 환영할 곳이 전세계에 널려있다. 때문에 한국은 그냥 거르고 넘기는 것이다.
.... 하 벌써 2시 넘었다. 나머지는 다음에 쓸게. 뭐 이제 세법 얘기만 좀만 더 하고 결론지으면 되는거긴 한데.. 그래도 3시 넘겨서 자고싶진 않아. 오늘은 여기까지.
댓글 19
고마워 ㅋ 근데 희한하네. 프로스포츠 법인의 경기장을 유형자산이 아닌, 비업무용 부동산이라 분류하는게 이치에 맞는건가? 뭐 어차피 관리비 손금처리 해봐야 법인세 22% 경감되고 나머지는 다 부담해야하니 차라리 자산 넘기고 관리비 보전받는게 더 낫다는 심산일지도. 생각해보니 포철이 포항전용구장이나 광양전용구장 지을 당시에는 프로 축구단 법인이 따로 존재한게 아니라 포항제철 법인 내 운동경기시설로 등록했을테니까 현 상황에 대입하는게 가능한지도 좀 아리송하다. 일단 세법이나 회계기준을 좀 더 파봐야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