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홍콩과 김판곤의 이별, 그리고 홍콩이 나아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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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김판곤 감독 

사진=스포츠조선


 약 한 달여 전 쯤, 김판곤 홍콩 감독이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의아했다. 김판곤이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김판곤 감독이 위원장이라는 낮선 직함을 달고도 그 명패가 주는 무게감을 잘 견뎌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에도도 이 소식에 의아해했던 이유는 ‘과연 겸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의심에서 비롯됐으랴. 그리고 그 의심은, 김판곤 감독이 절대로 홍콩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기반이 됐으랴. 그 정도로 나에게 김판곤과 홍콩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의 대명사였다. 그들의 관계가 그만큼 끈끈했기 때문이다.


 2000년, 김판곤과 홍콩이 처음 인연을 맺은 년도이다. 울산과 전북에서 뛰었었던 ‘선수’ 김판곤은 2000년 새 도전을 위해 홍콩 더블 플라워스에 입단했다. 김 감독은 3년 간 더블 플라워스에서 67경기에 나서 19골을 득점한 후 2003년 홍콩 레인저스의 부름을 받아 플레잉 코치로 1년을 더 뛴 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선수 커리어의 마지막과 지도자 커리어의 처음을 홍콩에서 이룬 셈이다.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가 3년 간 부산 아이파크 수석 코치를 지낸 김 감독은 2008년 다시 한 번 홍콩의 부름을 받게 된다. 홍콩의 명문 팀 중 하나인 사우스차이나가 그에게 감독직을 제의한 것. 김 감독은 그 제의를 수락했고, 8년 동안 우승이 없던 팀을 이끌고 리그 2시즌 연속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끌어낸다. 이런 김 감독의 활약을 지켜 본 홍콩축구협회는 2009년, 그를 국가대표 팀으로 선임하고, 지금에 이르게 된다. 단순 연속 햇수로만 따지면 18년, 중간에 한국으로 귀국한 햇수를 빼도 무려 12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축구로 홍콩과 연을 맺은 셈. 그 곳에서 선수와 클럽 팀 감독으로도 활약했으니, 어찌 보면 한국과 히딩크의 그것보다 더욱 끈끈할 것이다. 


그가 내비친 Die For Hong Kong이라는 문장은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전체의 슬로건이 되었다.

사진=Offside.hk



 그가 홍콩에서 이룬 업적이 평범했다면 오랫동안 한 팀에서 감독직을 지속할 수가 없었을 터. 홍콩 국가대표 팀의 감독이었던 10년 동안 김 감독은 정말 큰 족적을 남겨왔다. 2009년 동아시안 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고, 2010년과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선 16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예선에서 중국을 상대로 두 번의 무승부를 이루어 낸 것도 매우 큰 사건이었다. 홍콩 축구계는 그런 김 감독을 매우 사랑했다. 2009 동아시안 컵 당시 그가 내비친 문장, ‘Die For Hong Kong’ 은 대표팀 전체를 관통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2차예선 중국 전 당시에는 홍콩의 축구 팬들이 그의 얼굴을 본 딴 가면을 삼삼오오 들고 와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홍콩의 언론들은 그의 이름 앞에 ‘Sir’ 을 붙여 언급하기 시작했고, 홍콩 축구협회는 그에게 전반적인 홍콩 축구를 통솔하는 기술위원장 자리를 내어주었다.


 홍콩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나온 KIMOUT 슬로건. 

사진=01體育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애정은 없나 보다. 아쉽게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하고 돌입한 2019 UAE 아시안 컵 3차예선, 그 대회에서 홍콩 대표팀의 퍼포먼스는 아쉬움 그 자체였다. 5경기에서 단 4득점, 1승을 거두며 3위. 아시안 컵에는 각 조 1, 2위가 진출하는데, 한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2위 북한과 승점 3점차이다. 탈락이 확정된 상황은 아니지만 마지막 경기가 북한 홈임을 감안할 때 역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내심 아시안 컵 본선 진출을 바랐던 홍콩 축구팬들은 대표팀의 졸전에 실망감을 내비쳤다. Die For Hong Kong을 외치던 목소리는 김 감독의 사퇴를 외쳤고, 김 감독 가면을 쥐던 손은 Kim Out이 적힌 현수막을 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김 감독이 12월 26일, 홍콩에서의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대한축구협회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으니 말이다.

홍콩 영자신문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타이틀. Kim Pan-gone! 이라는 임팩트 있는 제목이 눈에 띈다.

사진=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



 퇴진 요구를 강력히 했던 홍콩 팬들이지만, 막상 실제로 이별이라는 결과물을 받아 들이니 충격을 감추지 못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충격은 김판곤 감독이 떠났다는 그 자체가 아닌, ‘중요한 경기를 앞둔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이 사임’ 이라는 사실에 기반한 충격이 더 큰 듯 하다. 홍콩의 대표 영자신문인 사우시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Kim Pan-gone! 중요한 아시안 컵 예선 경기를 앞두고 홍콩 대표팀의 감독이 사임하다’ 라는 타이틀을 뽑아냈다. 역시나 사임 그 자체 보다는 북한과의 예선 경기에 초점을 더 맞춘 제목이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북한과의 경기는 3월 27일 치러진다. 고작 3달 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 감독이 이탈한 것이다. 월드컵 첫 경기가 3달 남은 시점에 신태용 감독이 모종의 이유로 사임을 결정했다고 생각해 보아라. 게다가 김판곤 감독은 그냥 ‘대표팀 감독 1’ 이 아니다. 홍콩 축구를 한 층 올린 주인공이고, 홍콩 축구의 미래를 총괄하는 기술위원장이었다. 그러니 그 충격이 더욱 배가 될 수 밖에 없으랴.


 

찬유엔팅 감독은 여성으로는 최초로 1부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일궈냈다.

사진=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홍콩축구협회이다. 사임 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인데도 아직 그들은 김 감독의 대체자를 찾지 못 했다. 당장 북한 전은 감독 대행 체제로 치르더라도, 앞으로의 홍콩 축구를 위해 김 감독을 이어 홍콩 축구의 백년대계를 걱정할 새 적임자를 하루 빨리 선임해야 한다. 사실, 홍콩에 김 감독의 대체자로 적합한 인물은 여럿 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1부리그 타이틀을 거머쥔 찬유엔팅 감독이 가장 유력한 인물이다. 1516시즌 이스턴 SC를 이끌고 홍콩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거머쥐고, 그 다음 시즌 ACL에서 광저우 헝다, 수원 삼성, 가와사키 프론탈레라는 강호들을 만났음에도 후회없는 당당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녀 자신이 김판곤 감독의 감독 육성 프로젝트의 결과물이고, 김 감독의 철학을 물려받은 점은 큰 어드벤티지이다. 다만, 아직 많이 젊고 이스턴의 감독직에서 사임한 이유 -코칭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를 생각하면 그녀가 이 중책을 수락할 지는 미지수이다.


현 홍콩 최고의 감독, 알렉스 추.

사진=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


 킷치 SC의 알렉스 추 치 퀑 감독도 고려해 봄직 한 인재이다. 1516시즌을 제외하고 1011시즌부터 1617시즌까지 홍콩 1부리그 우승 컵은 모두 추 감독의 차지였다. 현재 진행 중인 1718시즌에도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김판곤 감독 이후 홍콩 리그에서 제일 성공적인 감독을 뽑으라 하면 홍콩 축구 팬들은 단연 추 감독을 뽑을 것이다. 나이도 51살로 나름의 젊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찬유엔팅 감독에게 부족한 경험을 채워 줄 감독이다. 다만, 추 감독 하에 큰 성공을 거둔 킷치가 그를 놔줄 지, 혹은 반대로 생각해 그가 이미 이룬 것들을 다 내려 놓고 새 도전을 행할 지 의심되는 건 사실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중추가 뽑혀나갔다. 이제 칼자루는 홍콩축구협회가 쥐고 있다. 김판곤 감독이 구축해 놓은 육성 계획을 물려받아 잘 실행할 적임자를 선택하는, 간단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중책을 짊어 진 상태이다. 홍콩 축구계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을까. 몇년 후 이 칼럼을 읽게 됐을 때, ‘아, 잘 극복해냈구나’ 라는 소리가 나, 그리고 독자들의 입에서 나오길 바라본다.

댓글 7

stupidmc 2018.01.21. 20:10
헐..완전 프로 기자 수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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