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수원 vs 탄화 직관 후기
- 알도반도남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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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 경기장
솔직히 경기장 가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길도 미끄러운데, 중간에 4중 추돌사고도 있어서 괜히 심장도 벌렁거리고 그랬거든. 고속도로에서 차를 돌릴 수 없으니 꾸역꾸역 수원까지 도착. 경기장 자체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는게, 사실 대학생활을 수원에서 해서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자주 갈 수 있었고, 그래서 큰 감흥이 없었어. 오늘 같은 날도 사람들이 참 많구나. 그 정도?
그라운드 상태는 의외로 괜찮았음. 눈이 오다 말아서 더이상 쌓이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제설차가 금방 눈을 쓸어내버리더라고. 제설하다가 경기가 시작되어갖고 제설하다 만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수원
솔직히 오늘 경기결과만 놓고 보면 당장 리그를 씹어먹을 것 같겠지만, 상대팀과의 전력차가 너무 큰 상황이라 경기력 자체를 가늠하긴 어렵다고 생각해. 아무래도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경기력이 주 관심사일텐데, 경기장에서 볼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크리스토밤이었어. 탄화 공격이 왼쪽으로 쏠린 감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일수도 있는데, 공격장면에서도 몇 차례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대체로 크리스토밤의 경기력이 좋았다는 점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함. 바그닝요 역시 좋은 선수지만, 바그닝요 자신이 직접 골을 만들었다기보단 공격진 전체가 기회를 잘 만들어줬던 듯.
눈에 들어왔던 선수는 아무래도 전세진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데뷔를 했다는 점도 그렇고, 경기장에서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했음을 실제로 느끼니 더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어. 앞서 나가는 상황이니 실수에도 관대할 수 있었을텐데, 전세진이 실수했을 때 좀더 욕을 더 하는 느낌? 물론 혼자 드리블하면서 공을 끄는 상황에 대해서는 누가 그랬어도 욕먹었을 것 같지만...
탄화
TV 중계에서도 느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탄화는 20번이 공수 전반을 이끄는 팀이었어. 대부분의 약팀들이 그렇겠지만 20번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고, 20번에게 공을 몰아주는 공격패턴을 매크로처럼 반복하는 팀이었어. 이 경기는 어차피 질 것이니 약속된 플레이나 성공시켜보자는 느낌? 결국 경기 막판에 만회골을 성공시켰고, 그 득점 상황도 미드필드 진영에서 수비 -> 측면으로 역습 전개 -> 2선에서 쇄도해들어오는 20번의 마무리라는 매크로 플레이의 결과물이었으니까. 20번의 기술이나 앞뒤좌우로 뛰어다니는 활동량이 인상었는데, 정상적인 팀에서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는 상황이었다면 더 좋은 기량을 보여줬겠지. 팀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선수라는 건 대단하게 비춰지는 한 편, 서글퍼 보이는 일이야. 한 명이 모든 역할을 다 하는 팀은 형편 없는 약팀이고, 그런 방식의 축구를 하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비슷한 수준의 팀들에게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데얀
오늘 경기를 보러간 건 랜덤블루를 입은 데얀이 보고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매번 볼 때마다 이 선수가 왜 팬들에게 사랑 받는지를 알게 됨. 팬들의 환호에 하나하나 응답해주고, 어린 선수들을 독려하면서 공격을 이끄는 베테랑의 존재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선수였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함. 물론 워낙에 출중하니까 외국인 선수임에도 왠만한 한국인 베테랑 이상으로 평가받는 거겠지만. 데얀 스스로 좋은 찬스를 맞은 건 기대보다 많지 않았지만 중앙에서 측면 공격수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려고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어. 경기력만 따지고 보았을 때는 대신할 선수가 많겠지만, 데얀은 데얀이니까. 리그에서 존재 자체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공격수는 그리 많지 않잖아.
여담
경기장은 X나 추웠고, 앉아서 경기 보기 힘들었음.
뒷자리 애엄마는 혼자 애를 데리고 축구장에 와서 대단하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남편놈 혼자 서포팅하러가고 혼자 애 떠맡은 거였음. 어지간하면 처자식이랑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