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천하제일야식대회] 까오니어우 마무앙
- 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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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이건 또 다시 옛날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아주 푸르다 못해 투명했던 시절, 축구로 치자면 홍명보와 황선홍이 현역이었고 박주영이 급식을 먹던 시절, 나는 생애 처음으로 방콕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다.
딱히 방콕을 여행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항공기 노선의 수도 적었거니와, 있다고 해도 그 가격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였다. 방콕에 가면, 아니 카오산 로드에 가면 목적지로 나를 데려다 줄 덤핑 티켓들이 널려 있다고 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내 입맛에 맞는 티켓을 산 뒤, 식당 2층에 있는 골방에 짐을 버려둔 채 비행기 시간만 기다리면 되는 일정이었다.
당시 카오산 로드는 지금과는 달랐다. 2년 전 마지막으로 가본 그곳은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낯선 풍경들을 구경하는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마치 이태원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의 그곳은 아니었다. 걸인과 걸보이(트랜스젠더), 떠나는 자와 도착하는 자, 주변 국가에서 후송되어 온 약쟁이들이 뒤섞여 휘청이며 걸어다니는, 아시아의 시궁창이라는 말이 더 적당한 곳이었다.
그곳에선 어둠이 곧 빛이었고 빛이 곧 어둠이었다. 그림자가 길어지면 팟타이를 파는 노점들과 함께 골목 사이사이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와 한산했던 거리를 가득 채웠다. 가장 북적이는 곳은 길 중간쯤 있었던 세븐일레븐이었다. 모두들 그곳에서 술과 담배를 산 뒤 아스팔트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중 제 흥을 이기지 못한 몇몇이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기차놀이를 시작하면, 그 기차의 꼬리 어디쯤에선가 새벽이 따라왔다. 그렇게 거리에 빛이 내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밤새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게워내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나의 첫 날도 그랬다. 배낭을 파는 상점을 지나, 과일 노점상이 있던 자리에서 길을 잃었다가, 모퉁이를 돌고 또 돌아서 배낭을 던져놓은 그 골방 방향으로 걸었다. 중간중간 속이 메스꺼워 벽을 부여잡고 한참을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배가 고프다.”
방콕에 도착한 뒤 내가 먹은 건 손바닥 반만큼 덜어주는 팟타이 한 그릇과 맥주 여러 병 밖에 없었다. 무언가 먹어야 눈을 좀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쌀밥이 필요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나는 다시 문을 연 식당을 찾아 골목을 헤맸다. 하지만, 이른 아침 방콕은 배고픈 취객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있다는 것도 이상할 일이었다.
내가 까오니어우 마무앙을 만난 것은 식당 찾기를 반쯤 포기한 채 숙소로 걸어 들어가던 길에서였다. 골목 한켠에 세워진 노란 수레위에 면보로 덮어놓은 커다란 스테인레스 그릇이 실려 있는게 눈에 띄었다. 수레 옆을 스쳐 지날 때 향긋한 밥 냄새가 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수레로 다가가 면보를 살짝 들춰 그 안을 확인했다. 밥 이었다. 이제 수레의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주인은 곧 나타났다. 두 손 가득 노란 망고를 들고서 말이다. 아마도 시장에 밥과 망고를 팔러 나가는 길이었을 게다. 반가움도 잠시. 술냄새 풀풀 풍기며 손짓발짓으로 밥을 갈구하는 내게 그가 건넨 것은 밥 위에 망고를 올리고 허연 액체를 듬뿍 뿌린, 너무도 이상한 음식이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하지만 몸은 밥을 원하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짧았던 삶을 반추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밥과 망고는 내 입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맛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그 맛을 잊지 못해 몇 년 후 방콕으로 날아가 일주일짜리 요리학원에 등록했던 일로 그 맛을 설명할 수 있을까? 요리 선생을 앞에 붙잡아두고 커리큘럼에도 없던 까오니어우 마무앙을 알려달라고 졸랐던 일로 그걸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내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니들이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라고. 자, 이제 시작한다.
재료
재료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찹쌀, 코코넛크림, 설탕, 소금, 망고 끝. 사실 판단잎이라는 향신료가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그거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태원 포린마켓에서 파는데 그냥 빼고가자. 그리고 이 레시피는 딱 4인분용이다. 근데 내 기준으로는 2인분임.
재료에서 중요한건 찹쌀과 코코넛 크림이다. 그냥 찹쌀로 해도 되는데 나는 인디카종 찹쌀을 추천한다. 이걸 어디서 구하냐고? 인터넷만 두드려봐라. 나온다. 심지어 우리 동네 홈플러스에서는 이걸 판다. 찾아보도록. 인디카종 찹쌀은 우리가 흔히 안남미라고 부르는 훨훨 날아다니는 쌀인데 찹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긴게 다르다. 사진 오른쪽은 김포 고시히카리쌀이고 왼쪽은 인티카종 찹쌀이다.
코코넛크림은 마트에서 판다. 이게 가서 보면 코코넛 크림과 코코넛 밀크가 있는데, 꼭 크림을 사야한다. 뭣도 모르는 것들이 인터넷에 망고밥 레시피라고 올려놓으면서 코코넛 밀크를 쓰라고 하더라. 아니다. 코코넛 크림이다. 한 통에 4000원 정도 한다.
그리고 진정한 맛을 위해서 계량컵이랑 계량 스푼도 준비하도록 하자. 없으면 그냥 눈대중으로 하면 됨. 자 이제 재료 준비가 끝났으면 출발이다.
레시피
1. 찹쌀 1과 2분의 1 컵을 계량한다.
2. 쌀을 잘 씻어서 최소 3시간에서 최대 12시간 정도를 불려 놓는다. 나는 이게 먹고 싶으면 밤에 쌀을 씻어놓고 잠을 자거나 아침 출근길에 씻어놓고 출근한다.
3. 적당히 불려진 쌀에 물을 따라내고 찜기에 면보를 덮은 뒤, 그 위에 쌀을 올려 약 25분- 30분간 쪄준다. 찔 때 뚜껑을 닫아야 하는걸 잊지 말아라. 중간 중간 뚜껑을 열어 밥이 잘 되었는지 확인해라. 정해진 시간은 없다. 먹어봐서 찐득찐득 밥이 먹을만하면 다 된거다.
4. 밥이 되는 동안 소스를 준비하자. 코코넛크림 3분의 2 컵을 준비하자.
5. 코코넛크림을 냄비에 붓고 설탕 6큰술, 소금 2티스푼을 넣고 불을 켜자.
6. 불은 약불이어야 한다. 절대 불이 세면 안된다. 그리고 충분히 저어주면 된다. 나는 흑설탕을 썼더니 색깔이 구리다. 니들은 백설탕을 써라. 자 이제 냄비에 소스가 끓으려고 할거다. 그럼 불을 꺼라. 절대 끓으면 안된다. 끓으면 탄다. 그냥 부르르 하는 순간 불을 꺼라.
7. 밥은 다 됐을거다. 그럼 밥을 적당한 보울에 담은 다음 준비된 소스를 그냥 부어주자. 그리고 마구 섞는거다. 그냥 골고루 섞어라. 그 다음에는 아까 밥을 쪘던 면보를 덮어서 15분 정도를 식히자.
8. 거의 식은 밥을 다시 한번 저어주자. 꼭 다시 저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10분 정도의 휴지기를 가지자. 이 음식은 절대 따듯하게 먹는게 아니다. 그냥 상온에서 먹는거다.
9. 밥이 식는 동안 망고를 준비하자. 망고를 자르는 법은 인터넷에 보면 다 나온다. 마구잡이로 썰지말고 꼭 인터넷을 보고 썰어내도록. 참고로 슈퍼에 가면 망고가 두 종류일거다. 필리핀 망고랑 태국 망고. 꼭 태국 망고를 사라. 필리핀 망고는 작고 섬유질이 질겨서 이 요리에 적당하지가 않다.
10. 끝났다. 밥을 적당히 덜어담고, 그 옆에 썰어놓은 망고를 올려준다. 여기서 팁은 볶은 참깨를 곁들이면 진짜 존맛 개맛이라는거.
11. 맛있게 먹어라.
참고로 소스를 레시피보다 2배 정도 더 만들어서 위에 끼얹어서 먹는게 정석인데 이게 좀 보기에 그래서 뺐다. 니들은 그렇게 먹어보도록. 소스를 얹으면 이런 느낌이다.
결론
자, 이제 니들도 이걸 맛보았으니 되었다. 어서 포를 내놓거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만, 3등이라도 좀 시켜주라. 샛긔들아.
끝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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