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나의 K리그에 대한 애정은, 콜롬비아에서 시작됐다.
- 뱃놀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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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골수개축팬이 되기 전에 나는 평범한 라이트팬이었다. 어쩌다 생각나면 인천 경기 하이라이트 찾아보고 순위표 체크하고, 할 일 없을 때 마침 인천이 경기 하고 있으면 보는 딱 그 정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축구를 엄청 좋아했다. 하지만 축구를 보는 것보다 하는 걸 훨씬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좋다고 난리치는 유럽 축구도 잠 안 오는 날 아니면 거의 안 봤다. 때문에 직관이라는 걸 생각조차 안 해봤었던 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첫 직관은 그나마 경기를 조금씩 챙겨보던 인천의 숭의아레나가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이루어졌다.
2015년, 나는 중남미를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5월,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었다. 도착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을까, 머물던 호스텔의 남자직원이 오늘 축구장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남미 챔피언스리그)가 있다고 축구 좋아하면 보러가라고 나에게 넌지시 알려줬다.
홈팀은 콜롬비아 보고타의 클럽인 'Santa Fe'였고 원정팀은 아르헨티나 라플라타를 연고로 하는 'Estudiantes' 였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6강 2차전이었다.
중남미와 축구는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중남미의 축구장은 상상만해도 엄청난 열정으로 가득차 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콜롬비아에서 “Do you know James?” 혹은 “Sabes James?"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두유노 지성팍?”처럼 말이다. “두유노 싸이?”처럼 “두유노 샤키라?” 정도는 한번 물어볼 법도 한데, 뭔 만나는 사람마다 하메스 아냐고 그렇게 물어봤다. 당연히 안다고 그러면 자랑스러워하는 눈빛이 가득한걸 보니 사람 사는건 다 똑같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뭐에 홀렸는지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 축구 보러 갈래 어디서 해?” 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여직원이 갑자기 말리기 시작했다. 말리는 이유는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경기장이 낙후된 지역에 있어서 치안이 매우 불안정하다.’
‘1차전에서 2대1로 지고와서 만약 오늘 탈락하면 너희들이 화풀이 타겟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런 말로 말리기엔 이미 축구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버린 상태였다. 여행지에서 만나서 함께 다니던 동생과 우리는 꼭 가야겠다고 꼭 보고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직원은 한숨 푹 쉬더니 다시 일러줬다.
‘그러면 카메라 다 놓고 가고 혹시를 대비해 폰도 한명만 들고가.’
‘위험하니까 카드도 가져가지말고 돈도 딱 쓸 만큼만 챙겨가.’
‘만약 질 거 같은 분위기면 경기 끝나기 전에 미리 나오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뭐, 이런거까지 말 안 듣고 갈수는 없었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하고 경기장으로 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에스투디안테스는 이름 꽤나 들어본 클럽이라 혹시 아는 선수가 있나 찾아봤는데 아는 선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는 이름이 그 밑에 한명 딱 보였다.
Head Coach : Gabriel Milito
맞다. 당시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만했던 밀리토 형제의 가브리엘 밀리토였다.
시간이 되자 아는 선수라고는 한명도 없는 경기장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팀들의 경기를 보러 그렇게 경기장으로 향했다.
아는 건 원정팀 감독 이름 하나였다.
호스텔 여직원이 위험하다는 말을 하도 강조해서 그런지 핸드폰 꺼내서 사진 찍을 엄두가 잘 나지도 않았다. 그냥 조심조심 경기장으로 발을 재촉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티켓부스에서 파는 티켓보다 암표상이 파는 티켓이 더 쌌다. 자리는 별로 안 중요했기에 그냥 암표상한테 티켓을 사고 경기장 앞에서 파는 머플러 하나씩 사서 경기장에 입장했다. 이 날만큼은 홈팀의 광팬이 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우리를 보는 사람마다 치노~~~ 라면서 연신 손을 흔들어댔다. 치노는 중국인이라는 뜻인데 그냥 동양인만 보면 다 치노라고 그런다. 치노 아니라고 했더니 하뽄? 이런다. 일본인이냐는 말이다. 더 기분 나쁘다. 꼬레아노 라고 알려줘야 꼬레아노 환영한다고 소리질러준다.
경기장 출입하는데 짐 검사가 엄청 까다로웠다. 라이터도 못 들고 들어가게 했다. 뭐 애초에 들고 간 게 폰이랑 조금의 현금이었으니 뺏길 물건은 없었다. 경기장에 들어서니 경기 시작이 아직 조금 남아서 그런지 한산했다.
이제 좀 안심이 돼서 사진을 찍고 놀다보니 경기장이 점점 사람들로 메워져 갔고,
경기가 시작하니 대형 현수막이 올라왔다.
처음 와보는 축구장, 홈팀 산타페의 서포터즈들은 놀라웠다. 내 자리는 서포터즈석 섹터 바로 옆이었는데, 뭐 예를 들어 서포터즈석이 S석이라고 하면 S석과 맞닿아있는 W석 끝쪽이었다. 홈 팀 서포터즈들 응원을 얼마나 열광적으로 뛰면서 하는지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90분 내내 내가 앉아있는 의자가 울릴 정도였다.
(내가 찍은 거다)
그리고 나는 그날, 지구 반대편의 처음 와본 축구장에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경기가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서포팅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많은 콜롬비아 아저씨들, 아이들과 껴안고 환호했으며 가사는 잘 몰랐지만 들리는 대로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 34분 코너킥 상황에서 Francisco Meza의 헤딩골, 후반 35분 Yamilson Rivera의 추가골로 산타페는 승리를 확정지었다.
최종 합계 스코어 3:2로 1차전 결과를 뒤집고 8강에 진출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에 알았는데. 이 경기 홈 팀 산타페에 이번 월드컵에 콜롬비아 대표팀으로 참가한 예리 미나가 있었다.)
경기장을 빠져 나오며, 사람으로 꽉막혀있는 복도에서는 노래가 가득했고, 경기장 밖에서도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한동안 울려퍼졌다. 눈에 띄는 두명의 동양인들은 수많은 현지인들에게 하이파이브와 포옹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경기장의 열기로 무더웠던 콜롬비아 보고타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꽤 오랜시간동안 중남미를 떠돌았던 시간중에 가장 강렬한 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유럽 축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이렇게 열광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6년, 한국에 돌아온 나는 '내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7월 17일 북패와의 홈경기에 처음으로 숭의를 찾았다.
경기장이 가득차지는 않았지만 14000여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마지막에 케빈이 PK를 실축하면서 1:2로 역전패 당했지만, 모든 선수들과 팬들이 하나된 경기장의 뜨거움은 나에게 콜롬비아의 기억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했다.
경기장 밖에 나오니 원정석부터 도원역까지 경찰들이 쭉 늘어서있었고, 인천강등을 외치는 북패팬들에게 달려들다 제지당하는 인천의 아저씨들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계만 가끔보던 라이트팬이 아닌 직관러가 되었고,
2016년 11월 5일, 기적적인 잔류를 달성하고 온 관중이 경기장으로 뛰어들던 그 날, 한 명의 개축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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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웃겼던건 내 배낭에 축구화도 들고다녔음 ㅋㅋㅋㅋㅋㅋㅋ 남미오면 애들 길거리에서 다 축구하고있을줄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