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개초경] 첫 사랑의 짜릿함, 걱정말아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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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한다. 난 김승대의 영입에 큰 마음의 동요가 있지도 않았고, 심지어 한 켠에 그를 향한 미안함과 불편함이 있었다. 돈과 퍼포먼스가 모든걸 대변해주는 게 프로의 세계라지만, 국내 다른 구단에서 엄청난 로열티를 보여주는 선수가 우리 팀으로 온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일이다. 김승대의 영입은 포항에 금전적이고 미래에 투자할 펀더멘탈을 제공한 셈이겠지만, 포항 팬들의 마음에 남긴 상처는 너무나 진하다. 와주는 게 고맙긴 했지만, 그런 이별을 보며 괜찮을까하는 그런 걱정도 안 들 수 없다. 루머와 오피셜을 보며, 김승대란 캐릭터가 어떤지, 플레이가 어떤지보다는 관계적인 문제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우리가 흔히 보던 이별처럼 그렇게 냉랭하거나 아픈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

 

몇년을 살던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건 직장인들에겐 이직으로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속 한켠엔 영원이란 낭만이 있다. 사랑을 속삭일때도, 우정을 확인받을때도, 우린 항상 영원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우린 알지 않는가, 영원이란 있을수야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그 역시 고민 끝에 그런 현실을 받아들였으리라. 그리고 그걸 아는 나 역시 미안하게도 마음을 다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이 경기가 있던 토요일 오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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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전반은 이제까지 보던 축구였다. 서울은 강하게 문선민과 로페즈를 다뤘고, 임선영과 정혁은 열심이었지만 미안하게도 창조적이지는 않았다. 공격에서 짜임새보다 후루꾸를 노려야 할 정도로 서울의 수비는 순간의 여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세트피스를 활용해 한 골을 득점했지만, 허점을 틈타 알리바예프는 측면의 배후를 노렸고, 박동진의 골을 만들어냈다. 그냥 이렇게 지리한 게임을 하다 끝나겠구나 하는 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었으리라. 한 켠에서 몸을 풀기위해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김승대는 낯선 곳에서의 전반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항상 불리는 서울의 걱정말아요 그대는 그냥 공허하게 들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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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사랑은 8시부터 시작이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김승대는, 기존의 이승기와 임선영, 손준호와 정혁이 보여주던 메짤라의 그것과는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승기의 탈압박, 임선영의 안정감있는 볼 운반, 손준호와 정혁의 수비가담과 하드워킹과는 다른 궤를 가진 10번의 등장이었다. 상대 진영에서 더 볼을 소유하며 순환시켰고, 후방의 미드필더를 활용한 원투패스, 백힐까지. 전반기의 모라이스가 보여주던, 김신욱과 이동국을 축으로 한 종적이고 수직적인 움직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승대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다른 팀원의 공기도 달라졌다. 손준호와 정혁은 공간에 대고 찔러대기 시작했고, 역으로 김승대가 공간로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이동국이 나간 이후, 킥으로 때로는 움직임으로 김승대는 공격의 악셀 페달을 연신 밟아댔고, 로페즈와 문선민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되든 안되든 서울의 배후공간을 향해 때리는 끊임없는 노크는 한 순간 그들을 헐겁게 만들었고, 김승대는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S석의 4천 관중이 첫 눈에 반한 그 순간이다.

 

윙어를 비롯한 공격 2선의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기회를 창출하던 닥공이 1기라면, 에두와 김신욱을 위시한 중앙공격수를 축으로 한 공격으로 밀집수비를 벗겨내는 방식이 2기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공간을 노리고 공격의 템포를 끌어올릴 수 있는 김승대를 축으로 한 새로운 버전의 공격타입이 창출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을 준 한판이었다. 모라이스는 어쨌든 공격패턴의 다변화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호흡을 맞춰가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더 무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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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걱정은 있다. K리그에서 맞상대할 팀들은 그 날의 서울처럼 마냥 공격적이지만은 않다. 때로는 버스 두 대로 잠궈세우기도, 때로는 거칠게 다루며 감정적인 게임을 유도하며 원치않는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깟 공놀이 때문에 지켜보는 우리도 뛰는 그들도 화도 나고 마음에 안든다고 뭐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 된 거 아닐까. 우린 항상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자리에서 열심히 해주는 걸 우선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지켜보던 김승대는, 적당히 껄렁하면서도 할건 다 하는 친구였다. 못할것 같지도, 실망시켜줄것 같지도 않다. 

 

그의 심연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은 남아있을 것이고, 품는 우리 역시 그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난 전심을 다하지 못할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게 뭐 어떠냐며 걱정말라고 말해준 건 고맙게도 김승대였다. 축구만 잘하면 됐지라든지, 결과만 좋으면 됐지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적어도 난 전심을 다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는 동안엔 그저 지난날에 대해서는 모른척하며 살았으면 한다. 있는 동안에만 한눈 안팔면 그걸로 된거다. 서울을 하나로 묶은 걱정말아요 그대의 떼창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을 향한 힐링의 곡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 18

postk 2019.07.22. 19:59
소개받은 낯선 여자와 마주앉아 이런저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비추
댓글
postk 2019.07.22. 20:01
 해설특급킹상윤
정독하다 갑자기 딴 길로 새네요
댓글
해설특급킹상윤 작성자 2019.07.22. 20:03
 postk
뭔가 관계의 허망함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망햇네요 ㅋ.ㅋ
댓글
postk 2019.07.22. 20:05
 해설특급킹상윤
성관계 후 현자타임을 은유하시네요
댓글
belong 2019.07.22. 20:02
 postk
비추 누르려다 그러면 또 탈퇴할거 같아서 참음
댓글
belong 2019.07.22. 20:05
 해설특급킹상윤
아니 진지 댓글 달고 있는데 욕하네;;ㅋㅋ
댓글
belong 2019.07.22. 20:05
김승대와 우리와의 관계는 로맨스가 되기엔 그가 포항과 갖고 있는 감정 공유폭이 너무 깊어서 깔끔한 거래의 관계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고, 포항 고별사에서부터도 그런 분위기를 풍겨서 걱정 안함.
댓글
해설특급킹상윤 작성자 2019.07.22. 20:06
 belong
여기서 잘만 하면 그걸로 땡이지, 그냥 그것만 생각하기로 ㅋ.ㅋ
댓글
belong 2019.07.22. 20:10
 해설특급킹상윤

그래도 그 로맨스 덕택에 우리한테 올 수 있었으니...

전성기 시절에 왔으니 서로 깔끔하게 좋은 추억만 남았으면.
댓글
belong 2019.07.22. 21:04
이거 다시 보니까 내가 언제 내 감정을 이렇게 잘 써봤는지 기억도 안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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