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지난 주말 받아챙긴 FC서울 플라스틱 컵에 대한 소고

아주 예전 일이지만, 환경보호를 기치로 건 어느 집단에서 나에게 

 

'콩기름 인쇄'를 할 수 있는 인쇄소를 급하게 소개해달라던 일이 있었다.

 

책자로 된 자신들의 홍보물을 인쇄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소신은 콩기름 잉크도 석유계 잉크만큼의 환경오염을 발생시킨다는 입장이었지만,

 

어쨌든 온갖 오지랖을 부려서 인쇄소 한 곳과 연결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잊고있던 어느 날, 사무실로 그곳에서 만든 책자 몇권이 배달되었다.

 

포장을 뜯어서 그 안에 든 물건을 요리조리 살펴본 후, 나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표지 한켠에는 

 

"이 책자는 콩기름잉크를 사용하여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인쇄되었습니다."

 

라고 자랑스레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글자가 인쇄된 면 위에는 무광 라미네이팅, 

 

속된말로 '무광 코팅'이 되어있었고,

 

표제와 표지를 가르는 일러스트 위에는 올록볼록한 형태의 에폭시처리까지 되어있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일인가.

 

 

 

사실, 책이라는 놈을 만들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이 100이라면, 

 

석유계 잉크를 사용함으로서 오는 오염이 약 5, 

 

약품으로 가공된 인쇄용 종이를 사용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오염이 약 20,

 

책을 만든기 위한 재료들과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운송하는데서 발생하는 오염이 약 30정도다.

 

그리고 나머지 45정도는 모두 코팅이나 에폭시 처리와 같이 플라스틱류를 덧씌우는 후가공에서 발생한다.

 

게다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은 종이는 모두 재활용이 된다고 생각에 모두 친환경적이라 생각하지만,

 

반질반질 코팅을 덧씌운 종이는 다시 한번 에너지를 소비하며 

 

종이와 플라스틱을 분리하는 가공을 거쳐야 비로소 재활용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담당자에서 책을 잘 받았다며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왜 코팅을 했는지.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저희도 고민을 했는데, 코팅을 안하면 책이 너무 쉽게 낡는다고 하더라구요."

 

나는 말했다.

 

"책자 안에는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고 적혀있던데, 너무 자가당착적이네요. 콩기름 인쇄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다.

 

친환경이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나의 편리함을 버리고 또 내가 닿고자 하는 목표에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또 비용을 더 지출하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만약에 자신들조차 그걸 감수할 수 없다면 그 허울좋은 구호는 버리는 게 맞다. 

 

자신들이 내세운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결과물이 쉽게 낡는 걸 감수해야했고,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걸 당연시해야 했으며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 작은 불편함을 참아야 한다고 알리는게 맞았다.

 

 

 

'친환경'이 대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나는 이런 자가당착을 쉽게 목격한다.

 

'친환경 캠페인'은 너무 쉽게 기획되고 소비된다.

 

일회용컵을 줄이기 위해 권장되는 텀블러는 어떤가?

 

텀블러의 재료는 무엇이고, 그것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수백개의 일회용컵 만큼의 오염을 발생시킨다는 건 어떤가?

 

친환경이라 이름붙은 '크라프트지'의 무분별한 사용은 또 어떤가?

 

크라프트 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백색용지를 생산하는 과정과 비등한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사실은 왜 간과하는가?

 

이 모든게 그저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진짜 불편함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 아닌가.

 

차라리 안하는 것만 못한, 그저 생색내기에 급급한, 죄의식을 덜어주는, 자기만족만을 주는.... 

 

시대의 아이러니다.

 

 

 

 

 

 

 

그리고 나는 지난 주말 축구장에서 이런 괴상한 캠페인을 또 목격했다.

 

주인공은 구단에서 나눠준 "리유저블 세미텀블러"였다.

 

PP플라스틱으로 만든 하얀색 컵 위에 FC서울의 검빨 무늬와 엠블럼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컵 한켠에는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재사용이 가능한 친환경 리유저블 세미텀블러 입니다. 본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재정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자가당착.jpg

 

 

그래, 의도는 알겠다.

 

축구장에서 사용되는 일회용기, 특히 그 맥주를 담아주는 일회용컵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이다.

 

좋은 의도다.

 

그런데 막상 이 캠페인을 기획한 구단이나, 돈을 댄 문체부 그리고 공단은 지난 주말 이 컵들이 어떻게 소비되었는지 알까?

 

아니, 어떻게 소비될지 예상이나 했을까? 

 

못했다면 바보겠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서울의 엠블럼이 새겨져있는만큼 그걸 기념품으로 집으로 가져왔다.

 

물론, 그들의 의도대로 이걸 다시 경기장에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걸 자신의 자리에 그냥 두고오거나 쓰레기통에 버렸다.

 

친환경으로 포장된 캠페인에서 또 다른 플라스틱 오염을 발생시킨거다.

 

그리고 아마도 매점에서 소비된 일회용컵의 소비는 줄지 않았을거라 확신하다.

 

캠페인을 벌였으면, 책임지고 계산을 한번 해보라!

 

 

굉장히 작은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아쉽다.

 

축구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이 빈번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 원인이 무엇일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일회용 컵이다.

 

축구장에서는 알루미늄 캔에 담긴 음료를 '굳이' 일회용컵에 다시 담아가는 걸 강제한다.

 

왜냐, 경기장 내 투척문제 때문이겠지.

 

안전과 직결된 문제니까 말이다.

 

경기장 내 안전을 위해 마련한 장치가 환경오염을 발생시키는 것이 불가항력적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식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왕도가 아니라는 거다.

 

차라리 그 비용을 '강력한 형태의 경기장 내 투척금지 캠페인'이나 

 

'투척자에 대한 강력한 불이익' 같은 인식전환에 투자했으면 어떨까?  

 

그정도 비용이나, 그정도 기획을 할 수 있는 인재들이라면 

 

지금처럼 "경기장 내 투척이나 화약류 사용은 금지되어있습니다"라고 

 

한장짜리 이미지를 전광판에 잠깐 띄우는 형태에서 벗어난

 

뭔가를 고민할 수 있지는 않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 구단이나 팬들이나 모두 불편함을 느낄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정도 불편함을 요구하는 것이 '눈가리고 아웅'식의 '친환경'캠페인의 결과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애초에 경기장에서 맥주캔 하나, 음료캔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친환경'적인게 아닌지 고민해보자는 말이다.

 

 

 

아쉽다.

 

물론, 이해한다.

 

이건 실제로 이미지의 싸움이라는 걸.

 

본질이야 어떻든 기획자 입장에서 책자 위에 새겨진 '콩기름 인쇄를 하였습니다'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는 걸.

 

'리유저블 컵'이라는 생색이 더 중요한게 현실이라는 걸 이해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플라스틱 컵 쪼가리를 나눠주는 것보다  

 

구단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심지어 실천까지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더욱 많다고 생각한다. 

 

 

아주 미시적인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예를들어, 플라스틱 현물 시즌권이나 종이티켓 발매 대신 

 

웹 시즌권이나 웹 티켓을 확대시키는 캠페인 같은 것 말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적극 활용하자는 거다.

 

그것이 제작되고 발송되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여보자는 의도로 말이다.

 

물론 거기에 약간의 할인정책까지 함께한다면 금상첨화아닐까.

 

그럼에도 소장욕구가 큰만큼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수 없겠지만 

 

거기에서 얻어지는 미세한 환경보호 효과와 이미지 재고 효과는 

 

버려지는 컵 쪼가리보다 나을거다 확신한다.

 

 

또 이런건 어떨까.

 

물론 지금도 구단에서 간간히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 같은걸 적극적으로 펼쳐보는 것 말이다.

 

지금처럼 북측 광장에 "대중 교통이용 캠페인"이라 써진 커다란 천막을 쳐놓고 홍보물이나 나눠주는 형태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 경기장에 도착한 팬들에게는 적극적으로 티켓을 할인해주는 정책 같은 게 좋겠다.

 

비용은?

 

이미 구단에 부과되고 있는 교통유발부담금에 관해서 시 당국이나 구청과 함께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인 감면 혜택을 논의해보면 안될까?

 

그게 아니라도 CSR 측면이나 홍보 측면에서 분명히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지만 말이다.

 

 

그리고 구단에서 내놓는 굿즈를 통해서도 방향을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 

 

(이건 개인적인 기호가 분명히 작용한 부분이지만)

 

텀블러나 친환경 재질로 만든 굿즈 같은 것 말고 보다 적극적인 형태가 필요하다.

 

예를들어, 경기장 2층에 둘러놓았던 통천의 필요가 끝난 이후에 

 

그것을 그대로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리싸이클 굿즈를 만들어 파는 것 같은 활동 말이다.

 

구단에서 쓰고 버리는 것 중에 

 

축구팬이라는 사람들의 '이상한 구매 취향'을 자극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게 이상적인가?

 

힘든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 더 속 편한가?

 

플라스틱컵의 효과를 수치적으로 확인할 필요 없이 

 

주어진 눈먼 돈을 쉽게 소비하는 게 더 나은가?

 

그래, 당신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경기장에서 나눠주는 '클래퍼'다.

 

경기장에서 대표적으로 쉽게 쓰여지고 버려지는 것.

 

거기에 일단 그 반짝거리는 유광 코팅만은 하지 말아달라.

 

어차피 쓰고 버려지는 물건이라면, 재활용이라도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부탁이다.

 

당신들은 "쉽게 찢어지고 너무 빨리 낡는다"는 이유로 거기에 약간의 돈을 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것은 당신들이 고민할 부분이 아니라,

 

그걸 보관하려는 사람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플라스틱쪼가리.jpg

 

 

 

하지만 나는 안다.

 

다음 주에도, 그리고 다음 시즌에도 코팅된 클래퍼가 나와 함께 할거라는 걸.

 

그리고 문체부에서 후원받은 돈이 떨어질 때까지 플라스틱컵 쪼가리를 또다시 내 손에 쥐어줄 거라는 걸.

 

아쉽다!

 

정말.

 

댓글 5

츠바쿠로 2019.07.23. 11:25
그냥 더 단순하게 독일처럼 경기장에 그물망 깔아놓으면 던져도 피치로 날라갈 일은 없지 않을까요
댓글
Kaka22 2019.07.23. 11:36
초딩때 소고 자주 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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