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푸른치의 울산이바구] 머리는 후니볼을 이해하는데 가슴이 후니볼을 이해하지 못하네요: 강원FC전 리뷰②
- 푸른별이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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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udozing.blogspot.com/2019/11/fc.html
이번 글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이겨도, 저렇게 이겨도 같은 승점 3점. 그러나...
파이널 라운드. 한 시즌의 성패를 결정지을 마지막 5경기. 어떻게든 승점을 따내야 하는 시기. 내용보다 결과. 울산의 입장에서 이번 강원전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이런 표현이 많이 사용될 것이다. 좋지 못했던 내용이지만 어떻게든 따낸 승점 3점이 시즌 막판 우승 경쟁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밀렸던 경기 내용을 '이겼으니 됐지, 뭐'라고 넘기는 것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음 라운드 서울전, 그리고 그 이후의 경기에서도 이런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울산은 왜 강원에게 밀렸을까? 왜 울산 팬들은 이기고 있는 팀에게 "정신차려, 울산" 콜을 했어야 했을까?
올시즌 울산팬들에게 울산에 대한 불만을 물어보면, 아마 십중팔구는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경기 어느 시점부터 수비 라인을 내리고 경기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내주는 것. 그 불만의 연장선상에는 지난 시즌부터 심심찮게 펼쳐진 극장승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지난 시즌까지 가지 않아도, 울산이 후반전 막판에 실점하며 승점을 잃은 경기는 많다. 최근의 경기 기록만 살펴봐도 7월 24일 상주전(90+5분 윤빛가람 PK골, 2-2무), 8월 11일 대구전(84분 에드가 골, 1-1무), 9월 1일 인천전(90+3분 무고사 골, 3-3무), 9월 14일 경남전(90+2분 제리치 PK골, 3-3무) 10월 6일 포항전(90+3분 이광혁 골, 2-1패)까지. 울산은 리드를 점하고도 마지막 10여 분을 지켜내지 못해 결과를 바꾼 적이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경기에서, 울산은 꽤 긴 시간 동안 수세에 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강원전을 보고 있던 울산 팬들의 머릿속 한 켠에서 '또 이러다'라는 말이 떠올랐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울산은 거의 후반전 내내 강원에게서 공격권을 빼앗아오지 못했다. 울산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은 무엇일까.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
공격권을 빼앗아오지 못한다. 수비를 해야하는 시간이 많다. 조금 더 중계에 자주 사용될 만한 표현으로는 '상대에게 점유율을 내준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점유율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어느 팀이 공을 더 오래 소유하고 있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상대보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점유율 싸움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우리 팀의 점유율을 높이면 자연스레 상대 팀의 점유율은 낮아진다. 201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티키타카' 전술은 짧고 정확한 패스로 점유율을 높여 경기 주도권을 잃지 않는데 목적이 있었다. 공을 잃지 않으면 우리의 공격권을 이어갈 수 있다. 공을 잃지 않으면 상대가 공격할 기회도 없다. 점유율은 곧 공격권이자 경기 주도권인 것이다.
그렇다면, 점유율은 티키타카처럼 공을 오래 소유하는 방법으로만 높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점유율 싸움은 제로섬 게임이다. 우리 팀의 공 소유 시간을 늘리는 방법도 있지만, 상대 팀이 공을 오래 가지고 있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90분이라는 한정된 경기 시간 중에, 상대가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자연스레 우리의 공 소유 시간은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공을 소유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바로 압박이다.
공격하는 팀 입장에서는 이 압박을 이겨내고 공격권을 유지하며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전진해야만 득점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압박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선수 개인의 드리블을 통해 압박을 뚫고 전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팀 전체의 패스 템포를 높여 압박이 오기 전에 공을 전개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압박이 심한 지역을 피해 일단 공을 소유하며, 보다 좋은 기회를 노리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최근 많은 팀들이 공격 전술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후방 빌드업이 바로 그것이다.
발렌티노스와 이호인의 후방 빌드업, 이현식과 강지훈의 템포 빠른 패스 워크, 빌비야의 드리블 돌파 |
강원과 울산은 후방 빌드업을 공격 전술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팀들이다. 두 팀의 공격 전개는 최후방의 센터백들로부터 시작된다. 압박이 덜한 최후방에서 공격의 방향을 결정하고, (긴 패스에 비해 성공 확률이 높은) 짧은 패스로 전진시키면, 전방의 자원들은 패스와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를 끌어당기고 수비 블록에 공간을 만들며 전진한다.
비슷한 전술을 사용하는 두 팀인데 왜 경기는 강원이 주도했을까? 왜 울산은 점유율을 높이지 못했을까? 필자는 두 팀의 차이가 전방 압박이었다고 생각한다.
후방 빌드업 VS 전방 압박
울산의 두 번째 골은 현대 축구 감독들이 왜 후방 빌드업을 선택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압박이 덜한 후방 지역에서 공을 건네받은 박용우가, 오른쪽 측면의 이동경에게 긴 패스를 연결해준 것이 득점 장면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장면에서 빌비야가 전방 압박을 시도했다면, 과연 박용우는 반대쪽 측면 공간으로 달리던 이동경을 발견할 여유가 있었을까? 상대방이 달려드는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고, 반대쪽 측면의 이동경에게 중장거리 패스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두 번째 실점 이후, 김병수 감독은 강원의 선수들에게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지시했다. 강원의 최전방 자원들은 울산의 깊숙한 진영까지 올라가 빌드업을 방해하려 했다. 물론, 울산이 그 전방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울산은 골키퍼 김승규까지 빌드업에 가담하며, 강원의 압박을 피해 공격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특히, 이 날 박용우는 후방지역에서 정확도 높은 중장거리 패스들을 여러번 보여주며 울산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전방 압박을 하기 시작한 강원의 선수들과, 김승규-박용우로 이어지는 공격 전개 |
후방 빌드업을 통해 2점차 리드를 만들었다. 강원이 전방 압박을 시작했지만 골키퍼 김승규와 박용우에 힘입어 해결했다. 전반전 울산의 공격 전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럼 왜 울산이 강원에게 밀렸을까? 전방 압박은 체력적인 소모가 많은 수비 방법인데다가, 강원의 공격 전술은 최전방 자원들의 넓은 활동범위를 요구한다고 했으니,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강원이어야 하는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울산에는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만한 고질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울산의 최전방 공격수, 주니오 이야기다.
주니오 덕분에 이겼지만, 주니오 때문에 밀렸다.
67분, 이미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는 듯한 주니오 |
세컨드 볼이 다시 상대의 소유가 되면 공수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수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니 상대 공격수들은 울산 진영의 깊숙한 곳에서 물러날 이유가 없다. 이제 울산에게는 '압박이 덜한 후방 지역'이 없다. 후방 빌드업은 불가능해지고, 급하게 걷어낸 공은 다시 상대의 소유가 되어 수비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승점 3점, 그래도 1위
댓글 4
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려요 ㅎㅎ 다음 번에 올릴 칼럼도 즐겨주신다면 더 감사하구요!
또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우승권에서 멀어졌을 수도 있겠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