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광주FC의 첫번째 프랜차이즈 스타 '이승기' 그를 추억하며

 

 

최근에 광주FC 구단의 홈페이지를 가보니 광주FC의 10주년을 기념해서 그동안 광주FC에서 뛴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들만 뽑은 광주FC 역대 BEST XI을 팬투표를 통해 선정하고 있었다.

후보군들을 보니 반가운 이름들이 많이 보였다. 2014년 광주FC의 첫 번째 승격의 핵심이자 광주의 아들이라고 불렸던 김호남, 2016년 우리에게 가장 화려한 순간을 선사해준 정조국 등 그동안 광주FC를 거쳐간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선수는 광주FC의 창단 맴버이자 우리의 첫 번째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승기였다.

워낙 유명한 선수이기 때문에 2011~12시즌에는 광주FC를 알지 못했었던 팬들도 이승기라는 선수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선수가 그냥 '과거에 광주에서 뛰었던 선수' 혹은 '예전에 광주에서 잘했던 선수'정도로만 기억된다면 많이 안타까울 것 같아서 이번기회에 광주FC 시절의 이승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이승기는 광주FC에 입단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금호고시절 고등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면서 프로팀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을 정도로 특급 유망주였으나 발목 부상으로 인해 프로에 직행하지 못했으며, 울산대학교 시절 울산현대와 2년뒤 프로진출에 대한 약속을 받았었지만 울산현대가 우선지명권을 포기하면서 프로 입단이 무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고 대학교 졸업을 앞둔 2010년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득점왕(6경기 11득점)을 차지하면서 많은 팀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때의 활약 덕분에 기존에 이승기를 영입하지 않았었던 울산 현대를 포함한 많은 팀들이 이승기에게 관심을 가졌으나 때마침 광주광역시에 시민구단인 광주FC가 창단되면서 광주FC가 우선지명을 통해 광주의 로컬보이이자 대학교 최고레벨의 선수인 이승기를 영입하게 되면서 이승기와 광주FC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승기의 센세이션한 등장 신생팀 광주FC의 돌풍을 이끌다.

(선수단 대표로 광주FC의 창단식에서 선서하는 이승기)

이승기는 광주FC 창단식에서 팀 선수들을 대표해서 선서를 했으며 프로 경험이 없는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등번호 7번을 받았을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는 선수였다. 시즌 시작전 연습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1달간의 공백이 있었으나 4월 9일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에서의 활약을 시작으로 이승기의 K리그 첫 번째 시즌이 시작되었다.

이승기가 처음으로 축구팬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경기는 자신의 프로 데뷔 3번째 경기였던 4월 24일 fc서울과의 홈경기였다. 당시 fc서울은 디팬딩 챔피언이으로 2011시즌 강력한 우승후보였기에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누구도 신생팀인 광주FC가 fc서울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으나 이승기의 발끝에서 이변이 시작되었다. 이승기는 후반 34분 하프라인에서부터 볼을 몰고 올라오면서 주앙 파올로에게 패스를 주었고 주앙파올로가 이것을 골로 연결지으면서 이승기는 프로 데뷔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이날 경기에서는 이 골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면서 팀의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를 통해 이승기라는 이름을 K리그 팬들에게 각인시켰으며 바로 다음경기였던 대전과의 경기에서 프로데뷔 첫 득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첫 연승을 이끌었었다. 6월에는 지난시즌 ACL 챔피언이었던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기도 했으며 7월달에는 강원FC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트리면서 팀을 2대0 승리로 이끄는 등 시즌 내내 팀의 에이스로써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프로데뷔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 8골 2도움으로 팀내 최다득점과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또한 이승기가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었던 7경기에서 단 한 경기도 지지 았을 정도로 (5승 2무) 이승기의 득점과 도움은 모두 팀에게 승점을 안겨주는 귀중한 공격포인트였다.

리그에서의 활약 덕분에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조광래의 눈에 들게 되면서 10월달 첫 A매치 명단에 선발되었다. 비록 10월달에는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다음달인 11월 A매치에 또 소집되었고 이때는 2경기 모두 출전해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 조광래호는 대부분 해외파 선수들로 구성되었을 정도로 K리그 선수들이 기회를 쉽게 받지 못했으나, 이승기는 이러한 환경속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국내축구 팬들에게 본인의 이름을 각인시키게 되었다.

리그에서의 활약 그리고 대표팀에서의 활약 덕분에 2011시즌 신인왕 투표에서 57표를 받으면서 신인왕 타이틀을 수상했고 이러한 활약 던분에 시즌 종료 후 여러 팀들이 이승기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이승기는 인터뷰에서 "다른 구단의 이적제의에 흔들리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 잔류를 할 것을 선언했으며 광주FC 구단측에서도 이승기를 절대 팔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2012시즌에도 광주FC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

2012시즌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자리잡았으나..

2012시즌 광주FC는 많은 변화를 맞이했었다. 2011시즌 수비력은 좋았으나 공격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복이,슈바 등 외국인 공격수를 영입하면서 공격력 강화를 시도하면서 이승기의 플레이스타일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2011시즌에는 마무리를 지어줄 선수가 부족했기에 중앙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플레이를 주로 했다면 2012시즌에는 중앙과 측면에서 장신 스트라이커들의 공격을 지원해주는 역할로 변경한 것이다.

시즌 초반에는 이러한 변화가 제대로 맞아떨어졌었다. 광주FC는 시즌 초반 4경기에서 3승 1무를 기록하면서 잠깐이지만 리그 1위자리에 오르면서 상승세를 타기도 했으며 이승기 개인도 6월달 전남 드레곤즈와의 홈경기에서 도움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바뀐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K리그 올스타전 명단에도 들게 되었으며 A대표팀에도 꾸준히 소집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1년 이승기의 첫 A매치 선발 경기였던 레바논 원정 이후 조광래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최강희 감독이 들어오면서 선수단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이승기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시즌막판 강원과의 경기에서 선재골을 넣고 서포트자 앞에서 좋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승기의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복이,슈바 등 기대를 모았던 공격수들의 부진 그리고 수비진이 흔들리는 등 광주FC의 상황은 점점 안좋아지고 있었다. 결국 팀은 시즌 중반 이후 계속 하위권을 맴돌게 되었고 결국 1경기를 남겨놓고 강등을 확정짓게 되었다.

비록 팀은 강등되었지만 이승기 개인의 기록만 놓고봤을 때는 첫번째 시즌에 비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종 성적 4골 12도움으로 도움 부분에서 몰리나(19) 에닝요(13)에 이은 3위를 기록했었다. 이때 이승기의 기록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때 도움 1위였던 몰리나에게는 31골을 넣은 데얀이 있었고 2위인 에닝요에게는 26골을 넣은 이동국이 있었던 것과 달리 광주FC는 팀내 최다득점자가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은선(8골)이었을 정도로 도움을 쌓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도움 2위자리를 놓고 에닝요와 마지막까지 경쟁했기 때문이다.

2012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다른 팀들에서 이승기를 향한 구애가 계속되었는데 이러한 환경속에서도 이승기는 중반 이승기는 시즌 중간에 구단과 재계약을 논의하면서 고향팀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이승기도 광주FC 구단도 서로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했지만 2012시즌 광주FC의 강등이 확정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이승기는 팀이 강등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에 남고 싶다.'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잔류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광주FC 구단측에서는 이승기를 팔아서 구단 운영비를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가장 많은 이적료를 제시한 전북현대로 이적하게 되면서 광주FC와 2년간의 짧은 인연은 아쉽게 마무리되었다.

(이승기는 2012시즌 종료 후 13억원의 이적료로 전북현대로 이적하게 되었다.)

사실 이승기가 광주FC와 함께한 시간은 고작 2년이다. 이승기가 광주FC를 떠난 것도 벌써 7년전의 일이며 이제는 K리그 팬들에게 '광주의 이승기'보다는 '전북의 이승기'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승기가 광주FC에서 보여준 2년간의 활약은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도 잊지못할만큼 강렬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승기는 실력적으로도 광주FC 역사상 손가락안에 꼽힐 정도로 최고의 선수였으며 팀을 사랑하는 마음도 각별했기에 오랜 기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FC 팬들에게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는 것 같다.

이승기는 광주FC의 팬들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광주FC의 첫번째 프랜차이즈 스타 첫 신인왕 그리고 광주FC의 초창기를 상징하는 선수였으며 가슴아픈 이별을 한 모습까지도

원래 첫사랑은 다 아픈거고 결국에는 헤어지는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시 인연이 된다면 광주FC의 유니폼을 다시 입는 이승기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점에서 내려오고 더 이상 전북에서 주전급으로 뛰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다시 고향팀으로 돌아와서 선수생활을 마무리짓기를 바래본다.

https://m.blog.naver.com/gyun823/221923792859

최근에 광주FC 구단의 홈페이지를 가보니 광주FC의 10주년을 기념해서 그동안 광주FC에서 뛴 선수들 ...

 

 

 

댓글 7

No.20이동국 2020.04.24. 14:48
이승기가 전북으로 온 이유도 최강희감독이 시상식장, 국가대표때 가리지 않고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것그리고 광주와 전주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부모님이 경기장 찾아오시기 편하다는 이유라던데
댓글
No.20이동국 2020.04.24. 14:49
 No.20이동국
근데 승기 13억밖에 안됨? 당시에 서정진급으로 받는다 해서 15억+@( 마철준 ) 보내는걸로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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