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제주 2-3 대전: 약한 고리의 반격

 



남기일의 압박 모델

 

2라운드 아산전에서 대전이 노출한 문제점은 명료했다. 밀착 수비 때문에 안드레 루이스가 앞을 바라보면서 볼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자 팀 공격의 정교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콤팩트한 대형을 유지하며 공간을 제어한 아산을 상대로 대전은 자기 진영에서 볼을 돌리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치명적인 패스 미스를 범하며 아산에 역습 기회를 제공했다. 세트 피스 수비에서도 종종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제주 역시 볼이 없을 때 아산과 유사한 스탠스를 취했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플레이로 대전의 실수를 유도해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남기일이 준비한 팀 단위 대응의 가장 큰 목적은 안드레를 무력화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대전의 불안한 빌드업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압박의 시작 지점은 높지 않았다. 대신 볼이 하프 라인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제주의 압박 모델에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했는데, 다음과 같다.

 

1)대전의 풀백이 볼을 잡았을 때 달려들지 않는다. 대신 윙어가 볼을 받고 돌아서지 못하도록 윙백들이 근접 마크한다. 2)측면 통로를 상실한 대전은 두 미드필더들에게 볼을 보낸다. 3)이창민과 김영욱이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하고 조재철과 박진섭은 백패스로 위기를 피하려 한다 4)패스를 가로채면 곧바로 역습을 시도하고, 무사히 센터백들에게 볼이 전해지더라도 따라붙는다. 5)대전은 급하게 볼을 차내고 소유권을 잃는다.

 

위 모델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가뜩이나 대전의 백 포 라인과 윗 선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볼을 가로채고 역습을 시작하면 이렇다 할 방해를 받지 않고 파이널 서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이지솔의 도전적인 수비가 결과적으로 무리한 플레이가 되어 프리킥 기회를 헌납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는데, 결코 선수 개인의 실수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운을 활용한 빌드업

 

이 날 홈 팀의 포메이션에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이 사항이 있었는데, 바로 정운이 백 스리의 왼쪽 스토퍼로 출전한 것이다. 오른쪽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민첩한 안드레를 의식했을 수도 있지만, 역시 정운의 스토퍼 기용 이유는 백 스리를 좀 더 공격적으로 쓰는 데 있었다. 정운은 상대가 완전히 자기 진영으로 물러나면 기회가 될 때마다 하프라인 위로 올라갔다. 90분 동안 정운은 6개의 공격 진영 패스와 25개의 전진 패스를 기록했는데, 팀 내에서 가장 많았다.

 

후방에서 4명(센터백 3+미드필더 1)의 선수들이 침착하게 빌드업을 하는 동안 정우재와 박원재는 상대 백 포와 거의 동일 선상까지 올라가 공격의 폭을 넓혔다. 공민현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좁혀서 대전 수비진에 혼란을 야기했다. 그의 변칙적인 움직임에 대전은 좀처럼 대응하지 못했다. 전반전에는 어느새인가 박스 안에 들어와있다가 자신에게 날아온 세컨드 볼을 바이시클 킥으로 마무리했고, 후반전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 다음 주민규에게 키 패스를 보내 팀의 두 번째 득점을 만들어냈다.

 

경기가 2-0에서 변동 없이 끝이 났다면, 제주의 팀 전술은 찬사를 받아 마땅했을 것이다.

 

대전의 백 스리 전환과 O 링의 반란

 

1-0 리드(슛이 골대에 맞는 두 번의 행운이 따랐지만)당한 채로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 시작하자마 황선홍 감독은 최재현을 김승섭 대신 넣어 백 스리로 체제 전환했다. 이규로와 이웅희, 이지솔이 일자로 서고 최재현과 이슬찬이 좌우 측면을 담당했다. 불리한 전황을 극복하기 위해 변화를 준 것은 좋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실점 과정에서 백 스리 숙련도 부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지솔과 이웅희가 주민규의 오프사이드를 유도하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가는 타이밍에 이규로가 함께 따라나오지 못하면서 허무하게 득점을 허용했다.

 

다행스럽게도 부작용만 초래하지는 않았다. 후방에 인원 한 명을 늘리면서 조재철과 박진섭의 빌드업 부담을 줄이고 두 선수가 더욱 전진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두 번째 실점 이후 5분도 안되어서 갑자기 조재철이 하프 스페이스로 뛰어 들어갔고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임덕근은 당황한 나머지 손을 써서 그를 잡아당겼다. 조재철이 얻은 귀중한 PK를 안드레가 성공시켰고 2-0 직후 급격히 무너질 수 있었던 대전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파트너 조재철과 함께 1~2라운드에서 팀의 O 링(약한 고리)으로 지목되었던 박진섭은 이 경기에서도 순탄하지 않았다. 팀에서 가장 많은 백패스를(15회) 기록하는 동안 겨우 11개의 전진 패스를 시도했는데, 정확도가 44%로 결코 좋지 않았다. 이창민이 발바닥을 높이 들고 그에게 거친 태클을 시도하기 전까지 제주 원정이 반등의 모멘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주심은 처음에 옐로카드를 꺼내들었지만 VAR이 적용되어 이창민은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퇴장을 이끌어낸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윤승원이 이규로의 크로스를 정확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면서 흘러나온 세컨드 볼을 뒤에 서있던 박진섭이 잡자마자 먼 포스트 하단을 향해 때려 넣었다. 놀랍게도 대전의 두 약한 고리들이 차례대로 만회골과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포메이션 변화와 상대 미드필더의 퇴장이라는 변수가 합쳐져 경기는 드라마틱 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측면을 장악한 정희웅과 이규로

 

수적 우위에 놓인 대전은 예상대로 윙어 정희웅을 교체 투입했다. 그의 역할은 강점인 일대일 능력을 활용해 내려앉은 제주 수비라인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정희웅의 드리블과 크로스의 정확도가 기대만큼 높지는 않았지만, 제주 수비수들의 발을 바쁘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오른쪽 측면 통로가 회복되면서 전반전 내내 고군분투했던 박용지와 이규로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박용지가 득점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하면서 이규로가 사실상 왼쪽 측면을 전담했다.





팀의 두 번째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이규로의 정확한 크로스가 없었다면 2-0의 스코어가 2-3이 되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제주는 남아있는 힘을 다해서 이규로가 편하게 크로스를 시도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후반 45분 동안 대전이 성공시킨 4번의 키 패스가 모두 왼쪽 측면에서 만들어졌고, 그중 두 개가 이규로의 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말이다. 김영욱이 다리를 들어 올려 방해 동작을 취하긴 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이규로의 크로스는 휘어져서 윤승원의 머리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날아갔다. 그렇게 승점 3점의 주인이 뒤바뀌었다.

 

총평

 

제주는 이창민이 퇴장당하기 전까지 완벽하게 경기를 장악했고 약간의 행운이 따랐다면 3-0으로 전반전을 마칠 수도 있었다. 물론 2-0 리드도 그들에게 결코 나쁘지 않았고 차분하게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남기일 감독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겠지만, 남은 시즌 운용을 위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었다. 좋은 감독과 좋은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곧 해답을 찾을 것이다.

 

대전은 바이오와 채프먼, 구본상 등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든 승점 3점을 획득해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플랜 B가 잘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키 플레이어들이 건강하게 돌아올 때까지 지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 경기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백 스리 전환이 꽤 괜찮은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 5

돼지헨리 2020.05.26. 00:56
잘 봤습니다 ㅎㅎㅎ 좋은 분석 감사합니다!
댓글
shunske,boucha 2020.05.29. 00:09
이 경기를 보면서 이규로의 왼발에 굉장히 놀랐고 그만큼 열심히 노력했다는걸 보여줬다고 보네요 하지만 이것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규로 뿐만 아니라 반대발 사이드백 뛰는 선수들은 더 그렇네요
댓글
CurvaSud_DCFC 작성자 2020.05.29. 02:53
 shunske,boucha
계속 왼발로 크로스 시도하길래 이규로 주 발을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나 싶더라고요. 그러고보니 박수일도 크로스는 오히려 왼발이 더 정확하다고 자평하던 모습이 기억이 나네요.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서 생존하려고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새삼 존경스러워짐.
댓글
shunske,boucha 2020.05.29. 02:58
 CurvaSud_DCFC
그러기에는 박수일은 왼쪽에서 뛰었을때 오른발 의존도가 너무 심해서 답답하더군요 그렇게 뛸거면 오른쪽사이드백에 집중하는게 좋다고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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