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인터뷰] '축구판 투머치토커', '하나님 바라기' 김상엽을 만나다① (선수 김상엽 上)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573442&memberNo=6525744

[BY 센터서클] [센터서클 | 서건 대표] 한 축구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6월 16일 축구선수 김상...

생애 처음으로 축구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많이 봐주시고 재미있게 봐주세요!!

링크도 많이 찾아주시고,

김상엽 선수 많이 응원해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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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6월 16일 축구선수 김상엽이 SNS를 통해 은퇴 소식을 전했다. 19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이제 축구 지도자로서 새 출발을 할 예정이다.
    
사연 없는 축구선수는 없다. 어떤 선수든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김상엽’이라는 선수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19년의 시간 동안 쌓인 사연의 내용과 그 두께, 그리고 그 사연에서 나는 향취가 궁금했다. 기록을 뒤져봤다. 그는 한국은 물론 일본과 태국, 호주에서 뛴 적이 있는 글로벌 선수였다. 또한 그는 측면 수비와 측면 공격, 최전방 공격수 등 꽤나 많은 포지션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 흥미로웠다. 하지만 딸랑 팀 이름 몇 개와 포지션 몇 개에서 ‘축구선수 김상엽’만의 사연을 온전히 읽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사연을 꼭 알고 싶었던 나는 기어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행히도 그는 인터뷰를 기꺼이 수락해줬다. 그렇게 만난 ‘전직 축구선수’ 김상엽. 그는 질문 하나에 20분짜리 대답을 하는 ‘투머치토커’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굳게 믿으며 신앙의 힘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크리스찬(기독교인)이었다.

 

서건(좌)과 김상엽(우)

 

경복궁 역 근처 작은 카페 2층에서 진행된 두 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 그 속에는 ‘축구선수 김상엽’의 사연들이 녹아있었다. 그 길고 긴 사연들. 요약하고 다듬어서 일부만 공개하기에는 너무 아까웠고, 한 번에 보여주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고민 끝에 ‘선수 김상엽’ 두 편과 ‘지도자 김상엽’ 한 편, ‘알쓸신잡’ 한 편으로 인터뷰를 나눠 발행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선수 김상엽’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 늦은 시작, 다양한 경험, 대학 진학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제는 지도자로 발을 딛게 된 서른 살의 ‘전(前) 축구선수’ 김상엽이다.
    
서른 살이면 빠르게 은퇴한 것 아닌가.
    
빠른 은퇴일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적기를 채운 은퇴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 하고 싶기는 했는데, 더 이상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서 마무리를 하게 됐다.
    
조사를 하며 알게 된 건데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렇다. 초등학교 입학은 한국에서 했는데, 아버지 사업 때문에 6학년이 될 때쯤에 일본에 갔다. 오래 있지는 않았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다. 사실 (일본 내) 중학교 진학이 결정된 상황에서 입학만 남겨두고 있었는데,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나만 한국으로 가게 됐다. 그 때부터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축구는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
    
5학년 10월 달부터 시작했다.
    
그럼 시작은 한국이었던 것인가.
    
그렇다. 늦은 감이 많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 교육에 있어 차이점이 있었나.
    
한국의 경우, 어릴 때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뛰는 양도 많고 여러 가지 강압적인 훈련들도 많았다. 일본의 경우엔 기본기 위주의 훈련이 되게 많았다. 그리고 실수를 했을 때 욕을 하기보다는 반복해서 실수를 하더라도 그게 고쳐질 때까지 이야기를 해주더라. 그래서 부담감이 적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좀 더 자신감 있게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한국축구가 풀뿌리부터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압과 폭력, 과학적이지 못한 훈련은 선수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한 '실점에 대한 두려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필연적으로 '재미없는 축구'를 양산한다. 이 부분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 축구는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지도자들의 교육방식이 바뀌고는 있다지만 아직 한국 축구는 갈 길이 멀다. 일본을 앞서기 위해서는 일본보다 더욱 선진화된 훈련을 진행해야 한다. 언제까지 악과 깡으로만 버틸 수는 없는 법이다.

냉정하게, 한일전에서는 한국이 이길지 몰라도 축구계 내에서의 국제적인 위상은 일본이 더 높다. 이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차근차근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의 문제점을 고쳐나가야 한다. 김상엽 지도자는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 축구 발전의 역군으로 작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학교에 진학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일본에 계시다보니까 고등학교 감독님께서 일본에 있는 대학교를 가는 게 어떻겠냐며 학교를 추천해주셨다. 그래서 그 학교와 접촉을 해봤는데 시험을 봐야 한다고 하더라. 한국어로 시험을 보는 것도 힘든데 일본어로 시험을 보는 건 더 어려운 일 아니겠나. 그래서 일본 학교 진학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3학년 경기도 들어가서 뛰고 그랬었는데, 오히려 정말 중요한 3학년 때는 경기를 많이 못 뛰었다. 부상으로 3개월 정도를 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좋은 대학교에 가지는 못했다.
    
대학교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교에) 갈 때까지만 해도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몰랐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숙소 상황이 정말 열악하더라. 옛날에 학원이었던 건물을 헐어서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샤워시설이 베란다처럼 되어있었는데 뜨거운 물은 정말 엄청 뜨겁고, 차가운 물은 정말 엄청 차가웠다. 그래서 정수기에 설치하는 큰 통에 물을 섞어서 샤워를 했었다. 그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었다. 2000년대에 피난민 수준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그런 학교였다. 물론, 몇 개월 뒤에 생활관 기숙사로 옮겨지기는 했지만...

 

학창시절의 김상엽

 

그런데 졸업한 형들을 보니까 프로팀이나 내셔널리그(실업리그)로 가는 형들보다 군대를 가는 형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아, 내가 여기서 과연 좋은 곳을 갈 수 있을까? 난 실력적으로 빼어난 선수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다.
    
그러다 2학년이 될 때쯤에 우연찮게 기회가 와서 프로팀에 테스트를 보러가게 됐다. 그 때 테스트를 보러 가면서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스스로 나를 돌아봤을 때 그 정도 실력이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까, 물론 2군 선수들이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프로의 수준이 엄청 높을 줄 알았는데 ‘어? 뛸 만 하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느낀 게 ‘낮은 곳에 있더라도 분명히 기회는 찾아온다.’라는 교훈이었다.
    
※‘낮은 곳에 있더라도 분명히 기회는 찾아온다.’ 새겨야 할 말이다상황이 힘들어질수록 사람은 체념을 하게 된다체념의 유혹을 벗어나는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나도 그런 교훈을 바탕으로 글을 적고 있다언젠가는 김현회 기자나 서호정 기자가 내 글에 댓글을 달아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에서.
    
문제는 우리 집 형편이 그다지 좋지가 못했다는 것이었다. 등록금에 회비도 내야 하니까 돈이 많이 들었다. 집에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을)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결국 (대학)감독님께서 직지FC(현 청주FC)를 추천을 해주셔서 그 팀으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두 달 정도 운동을 하다가 감독님께 또 다시 전화가 왔다. 감독님께서 태국에서 테스트를 하는데 할 생각 있냐고 하시더라. 며칠 전에 TV로 태국 축구를 보면서 '저런 더운 곳에서 어떻게 축구를 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전화를 받아보니 ‘갈게요’라고 답했다. 그 당시에 친구 아버님께서 에이전트를 하셨는데 그 아버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셨고, 테스트 참여에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 때 휴학을 하고 태국으로 갔다.
    
알겠다. 궁금한 게 있는데, 대학교 시절 입단 테스트를 본 프로팀은 어디인가.
    
대구FC였다. 갔으면 되게 좋았을 것 같다. 지금 (대구FC가) 엄청 잘됐으니깐.



#. 태국에서의 새로운 도전

※ 그는 재학 중이던 영동대학교를 휴학하고 태국으로 떠났다. 2012년의 일이었다. 태국에서 그는 여러 번의 테스트 끝에 ‘파툼타니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에 들어가서 반 시즌 간 경기를 뛸 수 있었다.

태국 생활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태국 공항에 갔을 때는 그리 덥지 않아서 ‘이 정도면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주차장에 가서 차 문을 열고 나왔는데... 찜질방 가면 소금방 있지 않나. 거기서 나는 엄청 더운 열기가 나라 전체에서 느껴지더라. 순간 ‘여기서 축구 어떻게 하냐. 집을 가야하나.’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테스트를 봤다. 태국에는 프리미어리그가 있고 그 밑에 디비전1, 디비전2가 있다. 난 우선 디비전1에 속한 어떤 팀에 테스트를 하러 갔다. 다만, 테스트에서 잘하지는 못했다. 이후 두 군데인가 테스트를 더 봤다. 막상 테스트를 보고 나니 ‘이젠 돌아가야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시기가 애매해서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 여기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인터뷰에서의 그는 마치 하나님이 이끄시는 선수같았다혹여나 기독교에 과도하게 심취한 이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거부감 느낄 일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전하고 싶다거리에서 흔히 보는 예수천국 불신지옥과는 결이 달랐다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오만함을 버리고 불안함을 내쫓는 겸손한 선수내가 이야기한 하나님이 이끄시는 선수는 바로 그런 선수를 말하는 것이다.
    
기도를 했다. 내가 크리스찬이라서 기도를 자주 한다. 꼭 합격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테스트를 봤는데 합격을 했다. 같이 간 세 명이 모두 합격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 포함 두 명이 팀과 계약을 했다. 난 그렇게 디비전2에 용병으로 들어가게 됐고, 축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월급도 받고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도 받았다. 축구선수로서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태국 시절의 김상엽

 

태국생활은 만족스러웠나.
    
솔직히 되게 힘들었다. 내가 있던 곳은 ‘파툼타니’라는 곳이었는데, 방콕과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차로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내가 차가 있는 게 아니라서... 태국의 환경 자체가 수도권·시내가 아니면 다른 곳은 옛날 느낌이 난다. 쌀국수 먹으러 가면 안에 나방 들어가 있고 그런다. 날씨도 엄청 덥다보니까 숙소에서 식당까지 걸어가도 땀이 쏟아졌다. 그래서 옷을 벗고 다니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도 컸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좋은 경험이었다. ‘그 때 거기서 좀 더 잘 버텼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던 게, 태국에는 갑자기 계약을 해지해버린다거나 월급을 주지 않아버린다거나 하는 팀들이 많았다. 우리 팀은 그래도 다달이 월급을 줬었다. 대신 팀에서 미리 이야기를 해주더라. 자기들이 사정상 돈을 더 이상 줄 수가 없다고. 그래서 같이 뛰던 동료 형과 나는 알겠다고 하고 그냥 한국으로 바로 넘어와 버렸다. 그 때 좀 더 있던지 아니면 다른 현지 팀이라도 알아봤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그 당시에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별 고민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당시에 한 연습경기에서 내가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일본 분이 그 경기를 보고 계셨다. 경기가 끝나고 보니 그 분이 내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알고 보니 그 분은 일본축구협회 직원이었고, 활약이 괜찮으니 디비전1같은 곳에서 테스트를 보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는 다음 경기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러 오겠다고 한 그 경기에서 내가 출전을 못했고, 그 분이 ‘일본을 갔다 오고 나서 다시 한 번 보러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일본 분과 이야기를 나눈 바로 다음날에 팀에서 월급을 못 준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분의 (일본에서 돌아오면 경기를 보러 오겠다는) 이야기는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생각이 났다. ‘그 사람 번호라도 알아놓을걸...’하면서 후회가 되기는 했지만, 동시에 ’인연이 아니었나보네...‘라는 생각도 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회가 오는구나.‘라는 교훈을 느끼기도 했다.
   


#. 한국 복귀, 성장 그리고 성과

※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2년 하반기부터 3년 반 동안 K3리그(2013년까지는 '챌린저스리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K3리그 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고또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춘천(2012)과 고양(2013-2014), 경주(2015)는 앞으로도 김상엽 선수에게 큰 의미를 가진 도시로 남을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한국에 왔을 때가 6월 말이었다. 후반기부터는 K3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중랑코러스무스탕(현 서울중랑축구단)’이라는 축구팀에서 운동할 기회가 생겨 우선은 그곳에서 운동을 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춘천시민축구단에 들어가게 됐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K3리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참 운이 좋았던 게, 춘천 선수들이 정말 잘해서 팀이 준우승을 했는데 나도 덩달아 준우승 멤버가 됐었다.
    
준우승이라는 좋은 경험을 한 나는 경기를 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듬해에 고양시민축구단으로 이적했다. 내가 원하던 대로 정말 많은 경기를 뛸 수 있었다. 그 때 경기감각도 확실히 좋아졌고, 경기에 많이 출전하다보니 실력도 늘었다. 그리고 거기서 (라)대관이 형을 만나기도 했다.

 

고양시민축구단의 김상엽

 

사실, 고양시민축구단의 환경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수당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입단 후 1년 동안은 숙소생활을 했는데, 더 이상 숙소생활이 안된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는 집에서 통근을 했다. 조부모님 댁이 인천에 있어서 인천에서 일산까지 통근을 해야 했는데, 두 시간 반을 잡고 통근을 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한국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 최인영 코치님을 만났다. 전북 현대에서 10년 동안 코치 생활을 하시다가 재능기부 차 우리 팀으로 오신 것이었다. 사실, 그 때 한창 (하나님께) 드리던 기도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내가 혼자서 클 수가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 최인영 선생님께서 오셨다.
    
※ 모르는 길을 홀로 걸으면 목적지를 찾기 힘들다지도가 있어야 비로소 길을 찾을 수 있다선생님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길잡이가 있어야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선생님이 있어야 목표를 보다 정확하고도 수월하게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선생님만 있다고 해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다시 길찾기의 비유로 돌아가 보자지도를 가지고 있어도 끝끝내 지도 없이 길을 찾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과연 그는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을까아마도 못 찾을 것이다찾더라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도가 있음에도 길을 못 찾는 이가 생기는 것처럼 배울만한 선생님이 있음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선생님이 제 능력을 발휘하려면 제자 역시 적절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축구선수 김상엽은 제자로서 적절한 자세를 갖춘 선수였다그는 겸손함과 열정이 있는 선수였다최인영 골키퍼 코치를 통해 김상엽 선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최 코치 뿐 아니라 김 선수의 덕도 있었다.

 

문제는 그 분이 나와 '갭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분이라는 점이었다. 최인영 코치님은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에 전북현대 골키퍼 코치 출신이었다. 선뜻 가서 말을 거는 게 안 되더라. 그래서 며칠 동안 훈련만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 먼저 와서 “네가 가지고 있는 피지컬이나 스피드는 프로에 가도 충분히 통한다. 그런데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네가 조금 떨어진다. 그 부분을 좀 더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 분이 먼저 훈련시간이 10시인데 9시까지 나오라고 하셨다.
    
나로서는 원래 훈련 두 시간 반전에 집에서 출발을 하는 거니까 정말 일찍부터 나와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더욱 중요했던 건 이 분에게 축구를 배우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분을 나에게 보내주셨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9시까지 가서 한 시간동안 무료로 축구를 배웠다. 크로스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려주시더라. 그 때 훈련을 하면서 축구에 대해 ‘트였다’. 당시 내가 사이드 윙이나 포워드를 봤었는데, 어느 타이밍에 크로스를 올려야 되고, 어느 지점에서 크로스를 올려야 되고, 또 어떻게 공을 차야 하는지 정말 디테일하게 알려주셨다. 축구를 오래 했었음에도 그 좋은 것들을 그제서야 배웠다는 게 정말 안타까웠다. (최인영)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
    
그렇게 최인영 선생님께 배우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고, 그 성장을 바탕으로 경주시민축구단에 입단 테스트를 보러 갔다. 하위권이던 고양에서 상위권 팀인 경주로 테스트를 받으러 갔는데,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이틀 동안의 테스트에서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공이 와서 때리면 다 들어가더라. ‘야, 이거는 될라나부다.’이런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잘됐다.
    
그렇게 경주에 가서 연습경기를 뛰었는데, 뛸 때마다 골을 넣었다. 경주가 참 좋은 선수들로 이뤄진 팀이었던 게, 날 빼면 거의 다 프로 출신이거나 내셔널리그 출신이었다. 대학 출신들 역시 나보다 더 좋은 대학교를 나왔더라. 그래서 ‘내가 여기서 한 경기라도 뛸 수 있을까.’이런 생각을 했다.

 

경주시민축구단의 김상엽

 

그럼에도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늘 수요예배 가서 예배드리고, 금요 철야예배가고, 낮에 훈련하면 혼자 저녁에 옥상 가서 줄넘기하고 그랬다. 그랬더니 첫 경기에서부터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잘 돼서 연습경기마다 골을 넣고 하니까 감독님께서 ‘얘가 한 방이 있는 놈인가보다.’라고 생각을 하신 것 같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너무나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엔트리에 든 거니까. 그런데 그 때 7분인가 6분 남겨놓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데뷔전 데뷔골을 넣었다. 그래서 ‘정말’ 감사했다.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이라도 경기에 어느 정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뛰면서 배우기보다도 형들이 워낙 공을 잘 차서 그 형들에게서 축구를 배웠다. 되게 여유 있게 차더라. 그러다가 거기서 플레이오프 준우승까지 하고, 난 호주로 가게 됐다.
    
최인영 코치님을 만난 게 선수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봐도 되나.
    
그렇다.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만난 셈이었다.
    
최인영 코치님은 골키퍼이신데 다른 부분(필드플레이어로서의 역할)까지 가르쳐준 것인가.
    
편견이라는 게 진짜 크다. 포지션이 골키퍼다보니까 ‘손을 쓰는 일이 더 많은데, 어떻게 다른 포지션을 코칭(coaching)해줄 수 있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골키퍼라서 뒤에 있다 보니 전체를 볼 수 있었던 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더 넓은 시각으로 선수들을 볼 수 있도록 한 것 같다는 이야기다. 물론, 골키퍼라고 해서 누구나 넓게 볼 수 있고 잘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분은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도 더 많이 하시고, 생각도 더 많이 하신 것 같다.
    
그리고 골키퍼들이 킥이 되게 좋다. 그러다보니 크로스에 대해 임팩트를 맞추는 부분도 디테일하게 알려주셨다. 내가 공격수라서 골키퍼들이 막기 어려운 각도를 알려주시기도 하셨다. 무조건 세게 차고 후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디 부분을 차야하는지 알려주시더라. 또 그 외에도 많은 걸 알려주셨다.

 

선수 시절의 최인영 골키퍼

 

이제 나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야한다. 최인영 코치님의 가르침이 선수로서도 도움이 됐지만, 지도자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2편에 계속...

댓글 2

아시아챔프케리그 작성자 2020.06.19. 11:07
널리 널리 퍼가주셔도 좋습니다~~
(출처 표기 해주시면 더더더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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