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김진야의 생일을 맞아 써보는 잡글. (근데 이런 글도 칼럼탭에 넣을 수 있나?)

타팀 경기도 챙겨볼 정도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신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 선수의 존재에 대해 잘은 몰랐습니다. 

 

첫 번째 기억은 두 해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저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축구팬들이 체력왕이라는 타이틀 하에 김진야 이름 석 자를 알고 좋아하게 된 아시안게임 때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선수보다 김문환을 더 선호했습니다. 양쪽 윙백을 맡았고 둘 다 오른발을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김진야가 체력과 스피드는 정말 잘 갖췄지만 김문환이 종합적으로 공을 더 잘 다루고 공격적이랄까? 그런 느낌이었어요. 물론 그때 SBS 해설위원을 맡았던 우리 감독님은 김진야한테 보약 한 첩 지어주고 싶다고까지 칭찬했지만. 그래도 거의 매 경기 풀타임을 치르고 깡마른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끝까지 뛰어다니는 게 적잖이 인상깊었습니다. 때가 때인지라(2018) 서울에 그런 선수가 고요한 말고는 잘 안 보였으니까요. 주세종도 그랬잖아요? 죽기살기로 뛰는 선수가 요한이 형 말고는 잘 안 보였다고.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런 조금 투박할지언정 90분, 혹은 120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는 선수가 서울에서 죽기살기로 뛰는 또다른 한 명이 될 줄은.

 

반 년 전, 그러니까 작년이 거의 끝나갈 즈음 ACL을 대비한 첫 번째 영입이 발표됩니다. 그게 아시안게임 때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던 선수였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저도 그렇고, 적잖은 서울 팬들이 '이적료가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도 들어온 것 자체는 정말 잘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선수는 팀이 최악의 상황으로 갈 때 가장 든든한 동아줄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더구나 최용수식 스리백에서 가장 중요한 체력이 되는 윙백(욘스 352에서 이 자리는 진짜 몸을 갈아서 뛰는 급인지라...)이라서 느낌도 좋았어요. 뭔가 이 팀이 가진 환경에서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인천에서는 윙백으론 괜찮았는데, 포백에서의 풀백과 윙어를 계속 오가느라 정체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지금은 경기에 들어서는 순간마다 이 선수를 가장 좋아합니다. 원래는 당연히 박주영이나 주세종 같은,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좋아하지만 킥오프 휘슬이 울릴 때마다 김진야가 가장 돋보여요. 아시안게임 때의 그 선수가 맞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투입될 때마다 진짜 죽어라고 뛰거든요. 하다못해 10명짜리 울산전에서도 그나마 득점에 가장 가까운 찬스를 순전히 자신의 스피드와 끈기로 만들 뻔한 걸 보고 느꼈습니다. 이 팀에 가장 필요한 선수는 공 좀 잘 차고 예쁘게 차는 선수가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불살라가며 뛰어다니는 선수라는 걸요. 예전에 곽태휘에게 중동 인스타 팔로워가 그렇게 많다는 얘기를 하니까 친구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곽태휘가 그냥 잘생겨서 저렇게 인기가 좋을까?

나 : 물론 알 힐랄에서는 축구도 잘 했지.

중동 40도짜리 날씨에서 보는 사람이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할 만큼 뛰니까 인기있는 거 아니야?

 

친구도 막연히 추측하면서 던진 말이니 중동 팬들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곽태휘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잘생긴 게 크겠죠. 하지만 저런 이유도 조금은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기는 해요. 여튼, 지금의 제가 김진야를 보면서 느끼는 게 그겁니다. 우리가 지난해에 박동진을 좋아했던 이유는 다음 경기를 생각하지 않고 뛰어다니는 근성과 그로 인해 팀에 전해지는 에너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박동진이 빠진 뒤부터 서울은 구단 역사에 남을 내리막을 타고 말았죠. 부침이 좀 있었지만 이제는 김진야가 팀의 모터 역할을(엔진은 당연히 고요한이고 스티어링 휠은 당연히 박주영이지만, 지금의 힘든 서울은 그 두 선수만으론 버거운 것 같습니다. 시동을 걸어줄 누군가가 하나 정도는 더 필요해요) 넘겨받는 느낌입니다. 이 선수도 군대를 가야 하고 계약기간이 정해져있지만, 정말 오랫동안 보고 싶은 이유가 그겁니다. 고요한도 투박하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소리 예전엔 자주 들었잖아요?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려는 활동량과 근성으로 리빙 레전드가 됐습니다. 서울에서 오래간 이 선수와 함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팀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갖게 될 겁니다. 7억은 전혀 비싼 돈이 아니었어요.

 

기량이 좋은 선수는 팀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실히, 열심히 뛰려고 노력하는 선수는 팀이 쓰러지지 않게, 버텨낼 수 있게 합니다. 미래는 모르는 일이죠. 특히 선수를 자기들 아랫것으로 간주하고 윤상철부터 기성용까지 집어던진 서울에서는 절대 미래를 알 수 없죠. 하지만 이 선수만큼은 오래, 그리고 끝까지 보고 싶습니다. 반 년만에 이렇게까지 호감을 산 선수? 정말 오랜만입니다.

 

팀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마음, 아무리 힘들어도 상대 선수는 이기려고 끝까지 뛰는 김진야의 존재가 서울을 더 강하게 만들 거라고 믿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다들 아시겠지만 김진야의 인천 시절 등번호는 13번입니다. 만약 고요한이 은퇴하고 영구결번은 안 된다면(좀 제발 됐으면 좋겠지만, 축구판에 영구결번이 워낙 드물기도 하고 상대가 북런트인지라...) 이 선수한테 꽤 어울리는 번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죽어라 뛰는 것만큼 고요한과 닮은 특성이 없으니까

댓글 2

엄마는북패믿어 2020.06.30. 10:50
진짜 처음 이적료 비싸게 줬다고 생각했는데 헌신하는게 너무 보기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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