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서건 칼럼] 전설 이동국의 은퇴,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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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선수 관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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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서클 | 서건 대표] 장편소설을 읽는다. 한 권이 끝난다. 책장에서 다음 편을 꺼내든다. 새로운 내용이 눈을 수놓는다. 눈을 통해 머리에 전해진 새로운 내용은 곧이어 감동으로 바뀐다. 감동은 우리를 책 속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읽어나간다.

그러나 가끔은 다음 편을 읽기보다 이미 읽은 편을 다시 읽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비록 만화로 본 삼국지였지만, 유비의 촉나라가 서천을 얻어내는 <만화 삼국지 7편> 은 두고두고 다시 읽는 나만의 하이라이트다.

이동국이 그렇다. 그의 23년 축구인생은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그런 이야기다.

전설을 뜻하는 영단어 legend(레전드)는 읽는 행위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legere(레게레)의 손자뻘 되는 단어다. legere는 ‘반드시 읽어져야 하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 명사 legenda(레겐다)를 낳았고, legenda는 전설이라는 뜻의 legend를 낳았다.

이동국이 그렇다. 그의 23년 축구인생은 반드시 읽어져야 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전설이다.

 

 

이동국은 전북현대의 전설이자 K리그의 전설이며 한국축구의 전설이자 아시아 축구의 전설이다. 전북 소속으로 뛴 공식경기에서 198골을 넣었다. K리그 단일팀 소속 최다득점 기록이다. K리그에선 228골을 넣었다. K리그 통산 최다득점 기록이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무려 59골을 넣었고 이 중 A대표팀에서 넣은 골은 33골에 달한다. A매치 최다골 공동 4위 기록이다.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에서는 37골을 넣었다. ACL 최다골 기록이다.

수치만으로 상산 조자룡이 기병들을 뚫고 유비의 갓난아기를 구해온 일화를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다. 이동국도 마찬가지다. 수치만으로 이동국의 선수인생 23년을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다. 그의 선수인생을 표현하기 위해선 기나긴 서사가 필요하다.

이동국의 서사는 각종 매체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축구선수 이동국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축구선수 이동국의 은퇴가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서사를 넘어 의미와 변화를 다루는 매체는 보기가 힘들다. 이 글에선 축구선수 이동국이 가진 의미와 축구선수 이동국의 은퇴에서 볼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설명해보려 한다.



#1. 이동국의 은퇴

11월의 첫 날이었다. 전설 이동국이 은퇴식을 가졌다. 한국 나이 42살의 이동국은 그렇게 그라운드를 떠났다. 대구와의 2020시즌 K리그1 최종전에서 풀타임 출장한 이동국은 4개의 슈팅과 2개의 유효슈팅을 쏘며 자신의 은퇴경기를 마무리했다.

은퇴식은 성대했다.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회장과 전북현대의 허병길 대표이사, 김승수 전주시장과 박성일 완주군수가 참석했다. 이동국이 12년간 달았던 등번호 20번은 영구결번이 됐고 이동국 본인은 전주시 명예시민증과 완주군 명예군민증을 수여받았다. 5명의 ‘오둥이’는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르며 아빠의 은퇴식에 감동을 수놓았다.

 

 

이동국의 은퇴로 많은 게 바뀌었다는 걸, 그리고 바뀔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축구도, 문화도.


#2. 전북 : 최강희 시대의 종언

전북은 이동국의 은퇴와 함께 본격적인 ‘포스트 최강희’ 시대를 열게 됐다. 최강희 전 감독은 2018시즌을 끝으로 전북을 떠났으나 그가 남긴 최고의 선물 이동국은 전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2년간 지속된 최강희 시대의 연장선은 이동국의 은퇴로 막을 내리게 됐다.

약 12년 전, 그러니까 2009시즌 직전, 이동국과 김상식이 전북에 입단했다. 팬들은 최 감독을 비판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불을 끄기 위해 물이 필요한 것처럼 비판을 꺼트리기 위해선 실력이 필요하다. 이동국과 김상식에게 실력이 있었다. 실력으로 날선 비판을 꺼트린 그들은 전북을 2009시즌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창단 첫 리그우승이었다. ‘전북천하’와 ‘닥공(닥치고 공격)’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상식은 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했고 지금은 전북의 수석코치로 제 2의 축구인생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음 시즌부터 감독을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김상식이 있는 한 전북의 ‘닥공 DNA'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북에 몸을 담고 있기는 하나 선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김상식 코치는 ‘닥공 DNA'를 이식하는 데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팀의 중심이 되는 골잡이 공격수가 없다는 것은 전술 및 선수기용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고, 김상식 코치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동국의 은퇴가 최강희 시대의 종언을 뜻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이동국은 최 감독이 슈퍼리그의 상하이 선화로 떠난 뒤에도 2년 동안 전북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안정적인 축구를 축구하는 모라이스 감독이었으나, 이동국을 중심으로 선수들에게 심어진 ‘닥공 DNA’는 전북의 공격성을 일깨웠다. 코칭스태프에 김상식이, 선수단에 이동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선수 이동국은 없다. 축구선수로서 ‘닥공’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한 공격수 이동국은 더 이상 축구선수가 아니다. 이동국의 부재는 ‘닥공DNA’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의 부재이자 언제 어디서든 해결할 수 있는 골잡이의 부재다. 크나큰 전력누수다. 이동국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 전북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3. 정통 스트라이커의 종언

이동국의 은퇴로 K리그에서 토종 정통 스트라이커를 찾기는 어려워졌다. 골보다도 연계나 빌드업, 움직임에 좋은 모습을 보이는 공격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득점은 외국인 공격수들에게 맡기는 추세다. 2020 K리그1 득점랭킹 상위 5명이 모두 외국인 선수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통 스트라이커의 종언은 한국 축구 전체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황선홍, 최용수, 이동국, 안정환으로 이어진 정통 스트라이커의 계보가 사실상 끊겼다. 공격수에게 골 이외의 역할이 부여되는 현대 축구의 트렌드가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 이동국의 뒤엔 누가 올까

이동국이 찍은 마침표, 그 뒤에 올 문장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특정 선수를 콕 집어 후계자로 지목하는 것은 어렵다.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어떤 유형의 공격수가 앞으로의 K리그, 그리고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지 예측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 유형의 선수엔 누가 있는지 간추려 보는 것도 가능하다.

선수 이동국은 골잡이였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측면 플레이를 펼치기도 했고,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일이었다. 결국 골을 노리는 게 이동국의 가장 큰 목표이자 역할이었다.

측면 플레이와 수비 가담은 더 이상 공격수의 부가적인 업무가 아니다. 필수적인 업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K리그와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선수는 ‘윙어를 소화할 수 있는 공격수’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런 선수로는 프랑스 리그1 보르도에서 뛰는 황의조와 전북에서 뛰는 조규성을 꼽을 수 있다. 이 둘은 소속팀에서 윙어와 공격수를 모두 소화하며 현대 축구에 안성맞춤인 공격수로 성장 중이다. 특히 조규성은 이동국의 은퇴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전통 골잡이’를 잇는 ‘신유형 골잡이’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들이 앞으로의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이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있다.

 

 


#5. 전설을 대하는 태도

이동국의 은퇴식은 전설을 대하는 태도의 새 지평이었다. 개방된 1만 석의 좌석은 애당초 매진됐고, 10만원에 달하는 암표까지 돌아다녔다. K리그와 암표. 전혀 어울릴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두 단어였다.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보이던 두 단어는 이동국이라는 섬유유연제를 통해 서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경기 당일에 비가 왔음에도 10,251명의 인파가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거리두기로 인해 띄엄띄엄 앉다보니 4면이 관중으로 메워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풀 땐 영화 <라이언 킹>의 OST 'Circle of life'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라이언 킹은 이동국의 별명이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동국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정표 장내 아나운서는 이동국을 소개할 때마다 '영원히 기억될 그 이름'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완산벌 라이언 킹'이라는 낯익은 수식어가 태연히 들리던 평소의 전주월드컵경기장이 아니었다.

 

 

전반 20분, 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는 2분 동안 계속됐다. 전북의 20번 이동국을 위한 박수였다. 이 때 뿐만이 아니었다. 경기장을 채운 관중들은 이동국이 공을 잡을 때마다 손을 모으거나 일어서며 골을 기원했다.

전북의 K리그1 우승컵 시상이 끝나고 이동국의 은퇴식이 열렸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은퇴식은 성대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은퇴식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11월 1일의 전주월드컵경기장의 주인공은 이동국이 유일했다.

 

은퇴식은 성대했다.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회장과 전북현대의 허병길 대표이사, 김승수 전주시장과 박성일 완주군수가 참석했다. 이동국이 12년간 달았던 등번호 20번은 영구결번이 됐고 이동국 본인은 전주시 명예시민증과 완주군 명예군민증을 수여받았다. 5명의 ‘오둥이’는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르며 아빠의 은퇴식에 감동을 수놓았다.

-#1. 이동국의 은퇴식 中

 

K리그는 이제껏 전설에 대해 제대로 된 예우를 하지 못했다. 전설이 생기는 일도 드물었다. 계약문제로 팀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지정된 김주성의 16번이 이동국을 제외한 유일한 영구결번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수원 윤성효의 38번은 간헐적으로 비영구결번화 됨에 따라 제외했다.)

이동국의 브랜드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선수 이동국과 전북의 동행이 해피엔딩으로 끝났기에 그 브랜드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이동국이라는 단어를 통해 수 만 명의 팬들이 뭉쳤다. 그 팬들은 이동국을 찾기 위해 경기장을 방문해왔고, 이동국을 기억하며 '포스트 이동국'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우리 민족이 고구려의 역사를 배우며 가슴을 달구는 것처럼, 전북 팬들은 이동국의 역사를 배우며 가슴을 달굴 수 있다.

 

 

다른 팀들이 이러한 선수를 품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다른 팀들이 이러한 선수와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조건만 갖춘다면 언제든 제 2의 이동국이 생겨날 수 있다. 조건만 갖춘다면.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것은 선수의 의지 뿐 아니라 팀의 의지도 필요하다. 팀의 의지. 제 2의 이동국, 혹은 제 1의 누군가를 품기 위해선 팀의 의지가 필요하다.

이동국의 은퇴는 전설을 대하는 K리그 구단들의 태도를 바꾸기에 충분하다. 이동국이라는 성공사례를 통해 다른 팀들도 전설에 대한 수요를 느낄 것이다. 구단 이외에도 연맹 역시 규정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전설 이동국이 써내려온 이야기를 통해 강제이적 규정 등의 악법을 개정할 필요성을 느꼈기를 바란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해외파만 주목받는 작금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K리그에 대한 애착을 가로막는 장벽 하나가 없어진 셈이다. 전설로써 예우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목도한 K리거들은 전설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으면 한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 전설에 대한 예우는 달라질 것이고 K리그는 분명 크게 바뀔 것이다. 이동국이 그 변화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



에필로그

23년간의 뜀박질이 이제 마무리됐다. 우여곡절의 선수인생이었다. 21살에 불과한 필자가 감히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마디 정도는 하고 싶다. 정말 고생했다.

 

 

 

사진출처 : 프로축구연맹

댓글 1

아이어른 2020.11.03. 19:18
휴...
이제 동궈형한테 골 먹을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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