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명승호 인터뷰①] 월드컵, 삼수, 그리고 청춘FC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109756&memberNo=6525744

청춘FC 출신의 명승호 선수 인터뷰 1편입니다.

링크 많이 클릭해주세요!

조만간 1편보다 더 재미잇는 2편이 나옵니다.

기대해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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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서클 | 서건 대표] 2015년 여름, 한 TV 프로그램이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하 청춘FC)>. 좌절을 경험했던 축구선수들을 모아 청춘FC라는 이름의 팀을 만들고, 그 팀으로 훈련 및 경기를 진행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청춘FC 공식 포스터

 

청춘FC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청춘FC 공식 포스터엔 '축구 미생(未生)들의 완생(完生) 도전기'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미생, 죽지는 않았으나 살아있지도 못한 상태 혹은 돌을 일컫는 바둑용어다. 미래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불안정한 상태, 그게 바로 미생이다. 활로가 막혀도 죽지 않는 완생과는 다르다.
 
우리는 모두 완생이 되고자 하는 미생이다. 시청자들이 청춘FC를 응원한 이유도 미생에 대한 감정이입 때문이리라.
 
센터서클이 청춘FC를 구성했던 22명의 선수들 중 한 명이었던 명승호 선수를 만났다. 완생을 향한 명승호의 걸음걸음을 인터뷰에 담을 수 있었다. 월드컵을 보고 축구를 시작했던 어린 시절부터 삼수, 청춘FC, 대학원 입학, 크리에이터 도전까지, 그의 걸음 속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청춘FC에 빠졌던 시청자들처럼, 명승호 선수와의 인터뷰를 읽으며 완생을 향한 그의 걸음에 빠져보길 권해본다.

 

 

* 인터뷰 1편엔 축구를 시작한 시점부터 청춘FC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 인터뷰

축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내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축구를 좋아하게 됐다. 나도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축구를 좋아하게 됐다.
(주 : 명승호는 1994년생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려고 했으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엔 축구부가 없었다. 그래서 동네 축구를 하다가 5학년 때 축구부가 있는 무원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지금은 축구부가 없어진 걸로 안다.
 
2002년 월드컵에서 기억나는 선수가 있나.
 
당연히 박지성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물론 청춘FC를 생각하면 안정환 감독님
(주 :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주역 안정환은 청춘FC 감독을 맡았다.)이 기억에 남지만, 당시엔 박지성이 기억에 남는다. 포르투갈전도 기억에 남는다. 다만, 그 때 난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축구를 좋아하긴 했지만 골 넣은 선수 누군지만 아는 수준이었다.
 
2002년 월드컵 하니까 이런 기억도 난다. 정확히 무슨 경기인지는 모르겠는데, 동네 슈퍼에 갔다 오는 길에 한국이 골을 넣으니까 아파트 전체에서 “와!” 하는 소리가 났다.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땐 어떤 포지션을 봤나.
 
초등학교 땐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봤다. 9번 밑에서 많이 움직이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중학교 땐 미드필더도 봤고 고등학교 땐 스트라이커랑 측면 수비수까지 맡아봤다. 성인축구에 와서는 미드필더나 센터백을 봤다.
 
이 정도면 엄청난 멀티 플레이어 아닌가.
 
좋게 말하면 멀티 플레이어고 안 좋게 말하면 빈자리 채우는 선수였다. 내가 축구를 엄청 잘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일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은 어디인가.
 
성인이 돼서는 중앙 미드필더를 많이 맡았다. 다른 포지션을 미드필더를 소화하는 것만큼 잘 소화할 것 같지는 않더라. 축구 게임에서 적합한 포지션이 아닌 곳에 선수를 배치하면 능력치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래도 수비형·중앙·공격형 미드필더가 잘 맞는 것 같다.

 

출처 : 고양시민축구단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ㅋㅋㅋㅋ)

 

그는 평범한 유소년 축구선수였다. 남들처럼 축구를 시작했고, 보통의 축구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평범하다고 해서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도 그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곧 평범함 속에 녹아있는 특별함이다.
 
명승호는 자신이 학창시절 동안 어떤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이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했다. 그만의 특별한 이야기였다.
 
학창시절 배운 것들 중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게 있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같은 감독님 밑에서 축구를 했다. 지금은 파주시민축구단(이하 파주)의 감독을 맡고 계신다. 그 감독님께선 기본기를 엄청 강조하셨다.
(주 : 이언노 감독) 리프팅, 자세, 패스 등 기본기 위주의 축구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 때 배운 기본기가 성인 무대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난 잘하는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경기에 많이 못 들어갔다. 다른 친구들은 월반을 하는데 난 월반을 하지 못했다. 3학년이 돼서야 3학년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3학년이 되니까 힘도 늘고 키도 컸다. 어릴 때 배운 기본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공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보니 잘하는 선수 축에 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체력적인 부분에서의 훈련을 많이 했다. 덕분에 체력이 많이 늘었다. 기술적인 부분도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아산에서 코치를 맡고 계신 이정규 코치님께서 기술을 가르쳐주셨다. 길게 가르쳐주시진 않았지만 많이 가르쳐주셨다. 순간적인 움직임, 손의 활용방법 등에 대한 가르침들이 기억에 남는다.
 
유소년 축구선수를 졸업한 그를 기다리던 건 대학도 프로도 아니었다. 삼수였다. 축구선수가 대학입시를 위해 삼수를 하는 걸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 상상하기 힘든 삼수, 명승호는 했다. 공부하는 축구선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입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 N수생인 걸로 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난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고민이 많았다. 학교 자체가 성적을 그리 잘 내지 못하기도 했다. ‘인서울 대학
(주 :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이르는 말)’에 가려면 전국대회 4강 정도는 가야했다. ‘나도 실력이 뛰어나지 않는데 팀 성적까지 좋지 못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출처 : 여주세종축구단

 

다만, 난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따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축구부 학생들은 보통 시험을 보면 한 줄로 찍고 자는데 나는 풀 수 있는 문제는 풀었다. 그러면서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포츠뉴스에서 경희고등학교 출신의 김현 선수가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가 가야할 길은 저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게 됐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포텐’이 터졌다. 성장을 많이 했다.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경기권 대학들에서 연락이 왔다. 고민을 많이 했다. 서울대를 준비했는데 어떻게 할까... 부모님께서는 그래도 서울대에 도전할 것을 권유하셨다. 나 역시도 서울대 간다고 프로 무대에 못 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서울대에 원서를 제출했다. 근데 원서를 제출한 후에 아시아 학생축구 선수권대회 대한민국 대표로 발탁됐다. 그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고,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됐다. 이미 원서를 낸 상태라 서울대 입시엔 그 스펙이 반영되지 않았고, 결국 1차 서류평가에서 탈락했다.
 
고민 후 재수를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국가대표 스펙도 있는 터라 1년 기다리자는 생각을 했다.
 
재수생활은 수능 공부 위주로 했다. 운동은 몸을 만드는 정도로만 했다. 국가대표 스펙이 적용돼서 1차 서류평가를 통과했다. 2차 평가는 실기시험 및 면접이었다. 실기평가에서는 제일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면접에서도 할 말 다했다. 수능 최저등급 기준도 맞췄다. 부모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붙었다고 생각했다.
 
결과 발표 당일에 보니 탈락이었다. 수능 점수가 부족해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저등급만 맞추면 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수능 점수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긴 한다더라.
 
부모님께서 ‘안전빵’으로 원서를 넣어보자 해서 넣었던 명지전문대학교 체육학과엔 합격을 한 상태였다. 고민이 많이 됐다. 명지전문대학교를 갈까, 아니면 1년 더 준비할까... 재수학원 가서 제대로 공부해서 체대에 지원하자는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삼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삼수 때는 재수학원에 들어가서 운동은 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 서울대에 원서접수를 하되, 체대 입시를 준비했다. 서울대 입시엔 결국 실패했다. 재수생이나 N수생들은 잘 안 뽑는다고 하더라. 어쨌든 수능을 보고 우여곡절 끝에 상명대학교(이하 상명대)에 일반학생으로 입학했다.

 

출처 : 내셔널리그

 

재수삼수 2년 동안 축구를 쉬었다고 봐도 무방하다선수생활에 영향은 없었나.
 
경기감각과 체력이 굉장히 많이 떨어졌다. 웨이트 트레이닝, 조깅을 할 때의 체력수준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당장에 90분을 예전 같은 퍼포먼스로 뛸 수는 없었다.
 
물론, 입시를 준비하며 ‘나이키 더 찬스’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 다 최종에서 떨어졌다. 남들이 대학 축구 수준까지 올라갈 때, 난 고등학교 축구 수준에서 멈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후회되진 않나.
 
엄청 후회하지는 않는다. ‘삼수 때 한만큼 재수 때 공부할 걸’하고 후회를 하긴 한다. 그랬다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서울대 말고 평범한 대학에 진학했으면 프로에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수능 과목 중 어떤 과목이 제일 어려웠나.
 
국어가 제일 어려웠다. 한국말인데 정말 어렵더라. 점수도 국어가 제일 안 나왔다.
 
나도 국어가 제일 어려웠다대학은 상명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건가.
 
정확한 명칭은 ‘스포츠건강관리학과’다. 천안캠퍼스엔 농구부와 태권도부가 있었는데, 서울캠퍼스엔 운동부가 없었다. 난 일반학생이었다.
 
대학교에선 축구를 했나.
 
체대는 처음 입학하면 동아리를 고르게 돼있다. 축구, 배구, 농구 동아리 중에서 어디를 들어갈지 물어보고 손을 들게 했다. 난 일반학생이었고, 축구를 그만하자고 생각했다. 또, 그 당시 NBA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농구동아리에 들어갈 사람을 물어볼 때 손을 들었다.
 
근데 내가 삼수를 했다는 것과 선출이라는 걸 거기 선배들이 알고 있었다. 축구동아리 회장이 잠깐 쓱 불러서 말을 걸더라. 왜 농구 동아리 했냐고... 축구를 오랫동안 해서 이번엔 농구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안 된다더라. 무조건 축구동아리 들어와야 한다고 하더라.
 
체대는 선배가 얘기하면 “네 알겠습니다.”하는 곳이다. 그래서 축구동아리를 하게 됐고, ‘캐논’이라는 축구동아리에 들어갔다. 선수가 아니니까 편하게 축구를 했다. 대회나 리그에 나가기도 했다.
 
그럼 축구 관련 진로를 생각하지 않은 건가.
 
1학년 1학기 땐 막연하게 체육 쪽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1학년 1학기 학점을 물어봐도 되나.
 
된다. 내가 과 수석을 했다. 다들 1학년 들어오면 다 논다. 난 도서관 가서 공부를 했고,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근데 그 때 이후 성적이 떨어졌다. 1학년 1학기 성적이 제일 좋은 성적이었다.
 
축구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없던 시절, 청춘FC가 명승호에게 다가왔다. 대외활동으로 시작한 청춘FC가 명승호를 다시 축구계로 이끌었다.
 
청춘FC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1학기를 마무리하던 시점에 페이스북에 청춘FC 광고가 뜨더라. 1학기 방학 땐 다들 논다. 누가 공부할 생각을 하나. 근데 난 학교를 늦게 들어갔으니 스펙이라도 쌓자는 생각을 했다. 이력서에 방송출연 스펙을 쌓고 싶었다. 다시 선수의 꿈을 키우겠다는 게 아니고, 방학을 알차게 보내려고 지원했다. ‘대외활동’을 신청하는 마음이었다.
 
청춘FC 입단 테스트날이 학교 종강날이었던 게 기억난다. 전날 밤새 공부를 했다. 시험보고 입단 테스트를 봤다.
 
청춘FC, 왜 뽑혔다고 생각하나.
 
제일 큰 건 어린 나이였던 것 같다. 성치호, 남하늘, 임근영 선수가 제일 막내였고 그 다음이 최원태, 이도한, 그리고 나였다. 청춘FC의 주 목적 중 하나는 선수를 발굴해서 좋은 팀에 보내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의 가능성을 봤던 것 같다.
 
당시 방진규 선수가 떨어졌는데,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 선수였다. (방)진규 형은 능력 면에서 나보다 뛰어났는데도 떨어졌다. 차이가 월등하지 않았으니 그래도 어린 나에게 기회 준 거 아닌가 생각한다.

 

 

청춘FC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나.
 
천안에서 이름을 불렸을 때가 기억이 난다. 뽑힐지 몰랐다. 뽑혀도 뒷번호일거라 생각했다. 쟁쟁한 미드필더들이 많았다. 그런데 8번을 받았다.
 
유럽 전지훈련 당시 낭시전에서 어시스트를 한 것도 기억이 난다. 벨기에로 넘어갔는데 눈에 다래끼가 났다. 벨기에 병원에선 단순 다래끼라고 괜찮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알겠으니까 빨리 째달라고 했다. 거기는 칼을 절대 들지 않더라. 먹는 약도 아니고 바르는 약을 처방해줬다. 얼마면 낫냐고 물어보니. 3주 정도 꾸준히 바르면 나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다래끼는 3주 정도 있으면 자연스럽게 낫는다.
 
낭시전 때가 다래끼가 절정에 이른 때였다. 심지어 경기 중 눈에 축구공을 맞아서 다래끼가 조금 터졌다. 오성진 선수(당시 득점자)를 보고 패스한 게 아니고, 실루엣을 보고 패스를 했다. 마침 오성진 선수가 있었고, 골이 들어갔다.
 
입국할 때도 기억이 난다. 기자 분들이랑 팬 분들이 많더라. 놀랐다. 외국에 갔을 때 청춘FC 1화가 시작돼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모르는 상태였다.
 
이외에도 K리그2 올스타와의 경기, 성남전 등 많은 관중들이 입장한 경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청춘FC에서 맞이한 상대팀들 중 가장 힘들었던 팀은 어디였나.
 
K리그2 선발팀이 가장 힘들었다. 난 한국에 와서 경기를 많이 못 뛰었다. 서울 이랜드FC와의 경기 때 잠깐 뛰었고, FC서울전은 못 뛰었고, 성남FC전 때 또 잠깐 뛰었다. K리그2 올스타팀과의 경기에선 전반전 45분 동안 뛰었다. 뛰어보니 벨기에의 AFC 투비즈보다 K리그2에 더 수준 높은 선수들이 많다고 느꼈다. 프로는 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안정환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축구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셨다. 우리들은 그냥 축구를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면 안 감독님은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시더라. 모든 열정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또, ‘국가대표 선수는 축구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볼 터치를 할 때 몇 가지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큰 틀은 비슷하더라.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디테일함을 가지고 있었다. 패스를 받는 몸동작 하나에 엄청 신경을 썼고. 몇 센티미터 정도 거리를 벌려놓는 것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했다. 끊임없이 축구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국가대표는 다르더라.
 
안정환 감독지도자와 예능인 중 뭐가 더 어울리나.
 
지도자... 근데 이건 쉽게 말하기 어렵다. 지도를 하셔본 적이 별로 없으시다. ‘뭉쳐야 찬다’에서 감독을 맡고 계시긴 하지만 실제 축구선수를 지도한 건 청춘FC가 유일하다. 청춘FC가 리그나 대회에 나간 것이 아니기에 쉽게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예능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대단하시다. ‘넘사’다.
 
청춘FC 출신 선수감독코칭스태프 등과 연락 많이 하나.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근처에 사는 선수들끼리는 종종 모인다. 이웅재 선수는 굉장히 근처에 살아서 함께 촬영도 자주 한다. 감독님 같은 경우, 난 연락을 자주 드리지 않는다. 대신 형들이 연락을 드리더라. 난 명절에 인사드리는 정도로 연락을 드린다.
 
친했던 선수가 있나.
 
청춘FC 할 때는 동갑인 이도한 선수와 친했다. 청춘FC가 끝난 뒤로는 서로 사는 곳 다르다보니 그렇게 자주 만나진 못했다. 청춘FC가 끝난 후엔 가까이 사는 이웅재 선수와 친해졌다.



1편 에필로그
 
축구를 시작했던 시절부터 청춘FC까지, 20여년의 시간 동안 명승호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연맹 주관으로 국가대표팀에 봅히기도 했고, 삼수를 하기도 했으며, 서울대 입시에 도전하기도 했다. 학점으로 과 수석을 하기도 했고, 일반 학생들로 이루어진 축구동아리에서 공을 차기도 했다. 벨기에에서 유럽의 프로팀들과 경기를 치르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K리그2 선발팀과 자웅을 겨뤄보기도 했다.
 
평범으로 시작한 그의 축구인생은 점점 특별해졌다. 오는 2편에서는 대학원생으로서의 명승호와 세미프로 축구선수로서의 명승호,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의 명승호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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