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이정협은 어떻게 2선 플레이어를 도울까?

이정협은 국가대표팀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스트라이커 자원 중 한 명이지만

스트라이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 득점력에 있어 뛰어난 선수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편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의 압박 속에서 볼을 유려하게 지켜낼 수 있는 선수도 아니라는 평이 주되다.

이정협보다 더 득점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들이 있음에도 왜

국가대표 감독들은 이정협을 선호하는 것일까?

'활동량과 적극적인 전방압박'은 이정협을 대표하는 장점이다.

하지만 단순히 많이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될 리는 없다.

많이 뛸 수 있는 선수는 얼마든지 있다.

관점을 바꿔보면 득점력과 기술력이 부족한 이정협이 묘하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건

그 활동량과 압박능력에서 다른 선수들의 그것을 상회하는 퀄리티가 있고

그 퀄리티는 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경기 중 여러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데 가시적인 기여를 하리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이정협의 가장 두드러지는 경기스타일은,

연계움직임과 침투움직임을 아우르는 지속적인 활동성에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들은 대체로 90분 경기가 치뤄지는 동안 집중력있게, 적절하게, 헌신적으로 이뤄진다.

부산이 공격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최전방의 이정협이 대구의 후방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모습이다.

침투움직임은, 침투하는 선수 스스로 패스를 받아 공격을 시도하는 데 우선적인 목적이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가지 효과를 가진다.

보다시피 이정협이 침투움직임을 시도했기 때문에 상대팀 수비수들의 수비라인도 그 침투를 막기 위해 후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상대의 미드필더라인과 수비라인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고 공간이 발생된다.

수비전술의 목적이 상대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 공격전술의 목적이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걸 감안하면

침투움직임은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자체로 전술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고,

이런 침투움직임을 시작으로 공격전술의 다음 수를 진행시킬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스트라이커만이 아니라 윙어들에게도 이런 침투움직임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이정협의 침투움직임을 더 살펴보자.

이번에 부산의 공격은 롱볼이 아니라 상대 미드필더 라인을 돌파함으로서 진행되고 있다.

역시 전방에는 이정협이 보이고 이정협은 상대 수비라인 사이로 또 뛰어들어 갈 것이다.

상대 수비수들이 이정협의 침투움직임에 유도되고 순간적으로 상대 수비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에 공간이 발생한다.

부산의 왼쪽 윙포워드는 이 안쪽 공간을 향해 좁혀 들어온다.

부산의 왼쪽 윙포워드는 상대 센터백의 견제로부터 순간적으로 자유로워 졌고, 상대 윙백과 일대일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빠른 타이밍의 좋은 슈팅을 시도했다.

이정협의 이런 침투움직임은 박스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박스 안쪽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부산의 중앙미드필더가 왼쪽으로 침투하는 동료선수에게 스루패스를 시도할 찰나이다.

이정협은 전방에 있고 스루패스가 시도되면 역시 상대 수비라인 뒷공간을 뛸 것이다.

스루패스가 침투하는 선수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정협의 위치를 주목해 보자.

이정협은 스루패스가 시도될 것을 예측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 수비수들보다 먼저 반응해서 뛰어들어갈 수 있었다.

이정협이 앞서있기 때문에 상대 수비수들은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다.

순간적으로 이정협에게 강하게 집중되고 주변에서 움직이는 이동준에 대한 움직임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상대 미드필더들은 미처 자신들의 수비라인을 보호하러 내려와 주지 못한 모습이고

이 공간을 오른쪽 윙포워드 이동준이 차지한다.

이동준의 헤딩슈팅이 빗나갔지만 프리헤더 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 이정협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로는 침투&공중볼경합으로 직접적으로 공격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정협의 움직임은 종적인 움직임에 그치지 않는다. 이정협은 좌우로도 폭넓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라인을 흐트려 놓는다.

이정협이 오른편 사이드라인을 향해 폭넓게 움직였기 때문에 상대 센터백들이 박스 바깥까지 끌려나온 모습이다.

그리고 상대 수비수 간 간격이 넓게 벌어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부산의 미드필더는 2선 침투할 수 있는 박스 안 공간을 얻었다.

상대 수비수 간 간격을 벌이지 못했을 때는 크로스 공격 시 수비수와 공격수 간 직접적인 높이 경쟁, 파워 경쟁, 높은 레벨의 반응 경쟁이 발발하지만

이렇듯 상대 수비수 간 간격 사이를 벌어지게 만들 수 있다면 작고 파워가 떨어지는 선수라도 박스 안에서 찬스를 잡아낼 수 있다.

이정협의 이런 움직임은 또 다른 효과를 만들어 내는데 그건 연계움직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상대 수비수들은 이정협이 지속적으로 침투를 노리는 선수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해 두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정협은 상대 후방으로 침투할 것처럼 패인팅 모션을 주고 반대로 자기진영쪽으로 내려와 주면서 연계움직임을 취할 수도 있게 된다.

팀이 후방에서 상대의 강한 압박에 맞닥뜨렸을 때 이정협은 빠르게 내려와 주면서 패스선택지를 늘려주고 압박을 풀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

상대를 등진 상태에서 강한 신체조건과 간결한 플레이로 연계를 돕고 다시 전방으로 침투하여 상대의 어그로를 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공격가담하는 동료 2선 플레이어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런 움직임들은 대부분의 공격수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임의 지속성이 떨어지면 그만큼 동료 2선 플레이어들이 그 다음 플레이를 취하는 데 있어 혼선이 발생하고

타이밍이 늦고 움직임이 밋밋하다면 상대 수비수들은 주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여력과 수비를 성공시킬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협의 움직임과 활동성이 수비수들에게 주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정협은 득점기회에서 직접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스코어러로서의 에고도 부족하다.

따라서 결정적인 기회에서 그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팀플레이어로서 이정협은 90분 간 헌신에 집중할 수 있는 선수고,

적어도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스타일에 있어서는 기복없이 경기장에 풀어낸다.

그만큼 동료 2선 플레이어들은 이정협의 다음 플레이를 계산해 넣어두고 자신의 플레이를 확실하게 가져갈 수 있다.

좀더 깊게 생각해 보면,

이정협의 지속적인 움직임은 상대 수비수들의 체력에 부담을 줄 것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력과 반응에 틈을 발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전방압박에 대한 적극성과 필요 시 미드필더들을 대신해 수비에 가담해 주는 수비가담능력은 그만큼 2선 플레이어들을 체력적으로 돕고, 수비수들의 수비판단을 쉽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수비마인드와 체력을 갖춘 스트라이커를 갖고 있다면 경기상황이나 선수구성에 따라 더 다양한 컨셉의 수비전술을 펼쳐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타 팬들이 내리는 평가처럼

특히 득점력있는 2선 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라면 이정협 카드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정협 같은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는 2선 플레이어들의 개성과 장점을 희생시키지 않고 충분히 발휘하게 해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스코어러 한 선수에게 기대는 것보다 팀케미를 맞춰나가고 공격진의 전체적인 동기부여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알맞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