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2020시즌 광주FC 직관일지 (1) - 9개월간 기다린 직관 그리고 기적적인 승리 (vs 인천 유나이티드)

시험도 끝나고 너무 심심해서 오랜만에 진지한 씹덕 컨셉으로 개축 칼럼 써봤습니다.

 

 

2019년 군복무를 하면서 사회에 나가면 가장 하고싶은 위시리스트를 적은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여친 사귀기,자격증 따기,학점 잘받기같은 20대초중반의 남성이 흔히 쓸만한 내용들을 썻지만 나의 위시리스트는 뭔가 좀 유별났다. 나의 위시리스트 1번은 여친도,학점도 아닌 2021시즌 광주FC의 전경기 직관이었다. 단순히 생각만 했던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었다. 2020시즌 K리그의 일정이 나오고나서 전국 경기장 근처의 교통편과 숙박 시설들을 알아보았으며, 군적금 3개중에 1개는 직관갈 때 교통비,숙박비로 쓸 용도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싶이 코로나로 인해서 리그 일정이 미뤄지게 되었고 나의 계획도 어그러지게 되었다. 5월달에 K리그가 무관중으로 개막을 하면서 축구를 다시 볼 수 있게된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그래도 경기장에서 직접 축구를 보고싶다는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K리그 팬이라면 직관과 집관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잘 알기에 내 기분이 이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코로나는 조금씩 안정되었고 드디어 K리그에서도 유관중 경기를 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첫 유관중 경기가 홈경기였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유관중 첫 경기는 우리집에서 대중교통으로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의 원정경기였다. 제한적 유관중이었기 때문에 원정 유니폼을 입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원정팀을 응원하는 것도 금지되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 중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직관하는데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첫 번째 장애물은 경기날의 날씨였다. 8월 1일 수도권에는 올해 중 가장 심한 폭우가 예보되었다. 나와 방송을 같이 했던 광주팬 한분도 인천까지 직관을 갈 예정이었으나 경기 당일날 수도권 날씨를 보고 직관을 취소했다고 했다.(날씨에 겁먹어서 올 시즌 최고의 경기를 놓치다니.. 아마 이때 인천에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겠지?)

하지만 나에게 이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비가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축구경기는 열린다. 비록 날씨 때문에 오고가는게 조금은 불편할 수 있어도 직관이라는 본질은 흐려지지 않기 때문에 우산과 슬리퍼 그리고 여분의 옷을 챙겨서 가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Screenshot_20210102-040719_Gallery.jpg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우산을 쓴다고 괜찮을 수준은 아니었다...)

 

 

두 번째 장애물은 바로 내 현생이었다. 복학 후 학교는 가지 못했지만 나는 2020년 여름 계절학기를 2과목 신청했었고 이 두 과목의 기말고사 일정은 경기 이틀 뒤인 8월 3일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중요한 시험을 2틀 앞두고 5시간걸려서 축구장에 가는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가기로 했다. 그래도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기에 나름대로의 타협안을 생각해냈는데, 버스가 아니라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기차는 버스보다 멀미가 덜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데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대신 무궁화호를 타고 광주송정역->용산역->도원역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다행히 시험은 2과목 모두 A학점이나왔다. 덕질로 인해 현생이 꼬이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인천 가는 길 기차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 것 같다.)

 

오전 9시 반에 집에서 나와서 송정역까지 가서 10시 40분 기차를 탔으며 용산역을 거쳐서 도원역으로 도착하고보니 시간은 오후 5시 반 장장 7시간이 걸렸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었기에 일단 도원역 근처 식당에서 첫끼를 해결하고 그때쯤 도착한 지인들과 함께 경기장에 일찍 들어가서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보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를 기다렸다.

 

뒤늦게 쓰는 2020시즌 광주FC 직관일지 (1) - 9개월간 기다린 직관 그리고 기적적인 승리

(9개월만에 본 선수들의 모습)

 

뒤늦게 쓰는 2020시즌 광주FC 직관일지 (1) - 9개월간 기다린 직관 그리고 기적적인 승리

(이날 인천유나이티드 책자의 주인공은 광주FC 프랜차이즈 출신 김호남이었다.)

 

오랜만의 직관이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도 크긴 했지만 사실 긴장감도 매우 컷었다. 이 경기 전까지 광주는 최하위 인천과 승점 6점차인 10위였으며 이날 경기에서 졌다가는 강등권 경쟁에서 불리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부리그 생존이 달린 중요한 경기었기 때문이다. 상황도 좋지 않았다. 최근 6경기 1무 5패로 시즌 초반 3연승의 기세가 꺾인 상황이었던 광주와 달리 인천은 초반에 7연패를 할 때와 달리 강팀들을 상대로도 승점을 가져오면서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유관중 경기이기 때문에 홈팬들 앞에서 첫 승을 하고 싶은 인천 선수들의 간절함까지 더해지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의 에이스 무고사가 관중들에게 호응을 유도하고 인천 장내아나운서가 팬들에게 반가움의 인사를 하면서 경기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렸으며, 팬들의 박수와 응원은 인천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된 것 같았다. 전반 초반 광주는 완벽한 찬스를 2차례 놓치면서 달아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인천은 돌아온 아길라르가 원더골을 넣으면서 전반전을 0대1로 뒤진채 마무리 지었다.

하프타임에 축구 커뮤니티의 반응들을 보니 대다수의 축구팬들이 인천의 홈 첫승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축구팬들에게 인천의 '잔류왕' 스토리는 친숙하고 인천팬이 아닌 타 K리그 팬들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지만, 우린 갓 2부에서 올라온 팀이며 언론과 타팀팬들의 관심 바운더리에 있는 팀은 아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 팀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아보고 싶어서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어그로를 끌어봤지만 아무리 어그로를 끌어도 광주FC라는 팀이 관심 밖에있는 비인기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ㅠ

'제발 지지만 말자.. 인천이랑 승점차만 좁혀지지 말자'라는 간절한 바램으로 시작된 후반전 몇 차례의 찬스는 있었지만 인천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이러다 강등되면 어떻하지'라는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고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가면서 후반 25분을 넘어갔다.

 

금방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이 조금씩 놓이고 경기가 끝났을 때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 받기 위해서 조금씩 마음을 비우려고 한 그 순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후반 26분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은 엄원상이 눈앞에 있는 모든 수비수를 다 제치고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제한적 유관중의 특성상 원정팬의 응원이 금지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경기장에서 퇴장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가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나온 득점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득점이어서 그런지 환호나 리엑션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고 주변 광주팬과 아이컨택을 한 것이 내 첫 번째 골의 유일한 리엑션이었다.

 

 

 

 

동점을 만든 이후에는 인천에 몰아붙이는 분위기였다. 아길라르의 위협적인 슈팅은 윤평국이 날아오르면서 막아냈고 인천의 새 용병 구스타보의 돌파는 베테랑 풀백 김창수가 잘 막아내면서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잘 버티던 후반 43분 인천의 공격을 끊어낸 후 광주의 역습 상황에서 광주FC 유스 역대 최고의 아웃풋 엄원상(나상호 아니다)이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서 광주의 2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두 번째 골을 넣고 많이 흥분했었다. 첫 번째 골을 넣고는 혼자서 주먹을 쥐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두 번째 골이 들어간 다음에는 아무 말 없이 옆에있는 광주팬과 주먹을 부딪혔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테이블석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그리고 2분뒤 펠리페의 추가골까지 나오면서 3대1로 경기는 사실상 끝났고 설렘과 활기로 시작했던 경기장 분위기는 침울함과 분노로 가득차게 되었다. 박수를 쳐주면서 선수들을 응원해주는 팬도 있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에 야유를 보내는 팬들도 있었다.

 

승리를 확정짓고 선수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기 며칠 전부터 설레면서 기다렸던 순간, 저녁 8시 경기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하루를 통채로 바쳤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가면서 온 몸에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뒤늦게 쓰는 2020시즌 광주FC 직관일지 (1) - 9개월간 기다린 직관 그리고 기적적인 승리

 

단언컨데 나의 2020년 최고의 순간이었다

 

인천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경기 종료 후 쓰레기통에 화풀이를 하는 인천팬, 경기장 밖에서 오늘의 경기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야기들, 도원역까지 걸어가는 무거운 발걸음과 침울한 분위기 이 모든게 나에게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나의 다소 변태적인(?) 취향이기도 한데 나는 원정경기를 가는 중요한 이유 중에 '우리가 광주정도는 이기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홈팬들의 기대가 엇나가면서 소위 멘붕이 된 홈팬들을 보는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도원역을 나가는 순간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였기에 아무 일도 없었으며, 지하철에서 같이 직관한 친구와 승리의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경기장에서 기쁨을 표헌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경기 끝나고 11시에 광주를 가는 버스를 타서 집에는 새벽 4시에나 도착했지만 집까지 가는 5시간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 대해 축구 커뮤니티에 나온 다양한 반응들도 천천히 살펴보고, 전반전까지만해도 절망과 비판이었지만 후반전 역전한 이후 우디르급 태세전환을 한 올댓광주FC 단톡방도 읽고, 광주FC의 승리를 알려주는 기사들도 읽어보고 그래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엄원상의 득점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보고 또 돌려보면서 이 짜릿한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면서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하루 교통수단에만 10시간 이상을 있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광주가 이겼는데 그것도 극적인 역전승으로 이겼는데 그깟 피로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날 무리해서 그런지 다음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시험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나의 첫 직관은 이렇게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껏 축구를 보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참 많았지만 이날 인천에서 느꼈던 행복감은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것 같다. 이맛에 축구팬한다.

 

원본

https://m.blog.naver.com/gyun823/222192874848

 

댓글 3

주시은 2021.01.02. 08:50
 침투하는아린
저 원본 블로그 주인이 글쓴이 아녀...?
댓글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정보/기사 2025 FA예정 명단 18 김태환악개 5165 31
츄르토토 국내축구갤러리 츄르토토 규칙 + 국축갤 토사장 명단 42 Lumine 5166 27
정보/기사 2024 시즌 K리그1-K리그2 유니폼 통합정보 10 뚜따전 6539 11
자유 2024년 국내 축구 일정(K리그1~K4리그) 11 미늘요리 14974 36
에펨/로스터 국내축구갤러리 FOOTBALL MANAGER 로스터 공지 (7월 7일 베타업데이트) 120 권창훈 27496 57
가이드북 K리그1 가이드북 링크 모음집 13 천사시체 16635 39
자유 ❗이것만 있으면 당신도 프로 플스인! 개축갤 뉴비들을 위한 필독서 모음❗ 31 뚜따전 41868 45
자유 국내축구갤러리 2024 가이드 7 권창훈 30243 27
인기 창원 시의원 "경남FC를 창원으로 가져와 기초자치단체 최초 3개 스포츠구단 보유 도시 만들어보는건 어떤가" 10 창원축구센터 115 12
인기 개좆앰뒤씹기새끼들땜에 깸 3 애빙 117 9
인기 여름 어디갔냐 3 김병지의꽁지머리 80 6
칼럼/프리뷰/리뷰
기본
안양스피런 84 0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롤페스 19 4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Nariel 90 5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whwnsw 31 3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안양스피런 65 2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롤페스 38 5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도움이필요한동혁 162 3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럭키금성황소 172 13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롤페스 41 6
칼럼/프리뷰/리뷰
기본
안양스피런 97 4
칼럼/프리뷰/리뷰
기본
감자감자감자 183 11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롤페스 23 5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롤페스 26 2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롤페스 24 1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Nariel 140 5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whwnsw 52 2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whwnsw 55 3
칼럼/프리뷰/리뷰
기본
고독한아길이 150 3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와룡이나르샤 119 5
칼럼/프리뷰/리뷰
이미지
안양스피런 9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