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한일전의 재구성② : 실험, 격렬, 그리고 정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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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을 보고 느낀 걸 한 번 가감없이 써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느낀 점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만의 축구 철학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다만 여건상 빠른 피드백은 어려울 수 있다는 점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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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이었다. 상황이 어떻든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런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0 대 3으로 패했다. 벤투 감독의 말대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일전은 손흥민, 김민재, 이재성, 김문환, 손준호, 황인범 등이 없다고 해서 패배가 용납되는 경기가 아니다. 원정경기라고 해서 패배가 용납되는 경기도 아니다. 참혹했던 90분, 무엇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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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과 실험

벤투 감독은 한일전에서 '이강인 제로톱'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제껏 아무도 실험하지 않았던 전술이었다. 미드필더 이강인이 최전방에 위치하다니. 공격수 없이 한일전에 나서다니. 대담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모를 선택이었다. 더욱이 대표팀은 22일 소집돼 25일 경기를 치렀다. 실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벤투는 실험을 강행했다.

실험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평가전에서 실험을 하는 건 성공 여부를 떠나 생산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한일전은 그냥 평가전이 아니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결과로 증명해야하는 경기다. 한일전에서만큼은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패배를 가릴 수 없다.

 

출처 : KFA

 

결국 벤투 감독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경기에 출전한 45분 동안 이강인은 잊혀졌다. 경기 후 벤투 감독은 인터뷰에서 "상대 수비라인에 균열을 꾀하고자 했다. 상대가 압박해올 때 상대 수비를 끌어낼 수 있다면 2선에 있는 양 측면 윙어와 섀도 스트라이커 남태희가 뒷공간으로 침투해 공격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출처 KFA)"라고 밝혔다. 설득력이 아예 없는 설명은 아니나, '과연 대한민국에 상대 수비를 끌어내는 데 이강인보다 적합한 최전방 자원이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설명이기도 했다.

상상해보자.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최전방에 미드필더 아르투르를 배치하는 브라질을. 상상해보자. 잉글랜드를 만나 최전방에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를 배치하는 프랑스를. 라이벌과의 경기에서 이런 충격적인 선택을 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 라이벌과의 경기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닌 증명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있다면 그 경기가 가진 의미를 모르는 것이리라.

벤투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한일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마치 한일전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는 것마냥 전술을 짰다. 한일전의 의미를 알았는지 여부는 벤투 감독만이 알고 있겠지만, 경기 양상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마치 벤투 감독이 한일전의 의미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더 거칠게 했다면 어땠을까.

경기가 끝나자 언론과 네티즌은 매너에서도 졌다며 한국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매너에서 졌다? 웃기는 말이다. 경기에서 이기고 매너에서 지면 비기는 것인가. 매너에서 진다는 말은 애당초 모순이다. 축구는 원래 거칠게 하는 스포츠다. 고의가 아닌 이상 거친 플레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축구는 지난 수십년간 한결같았다. 패스 위주의 축구로 상대의 압박을 벗겨내는 게 주 전술이었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일본의 축구는 세계적인 강팀들조차 긴장하게 만들었다.

 

출처 : FIFA

 

이번 한일전에서의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빠른 패스로 한국의 압박을 뚫어냈다. 한국도 나름 열심히 일본의 빌드업을 막아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우리가 이제껏 일본과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은 일본보다 패스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무리해서라도 일본의 공격을 끊어냈기에 일본을 이길 수 있었다. 공을 돌리는 속도가 빠르면 사람을 막았고, 사람이 빠르면 다리라도 걸었다.

이번 한일전에서의 한국은 달랐다. 우리 대표팀은 전반 초반부터 무너졌다. 패스 줄기를 막는 모습은 보였으나 사람을 막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일본의 기세에 눌리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일본이 한국보다 더 거칠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누구 한 명이 거친 태클을 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면 어땠을까.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거친 몸싸움은 순간적으로 선수들의 정신력을 끌어올려줄 수 있는 좋은 카드 중 하나다. 어차피 한일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이 말하는 매너에서 져야 한다. 그게 축구니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실력에서 안되니까 반칙이나 쓰는 거 아냐!" 미안하지만 반칙도 실력이다.

축구인들의 말말말

한때 한일전의 주인공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축구인들조차 격렬하고 거친 한국 특유의 축구가 사라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공한증을 지운 일등공신 조 쇼지는 우리 대표팀을 두고 "지금까지 한국이 보였던 파워와 격렬함과는 멀었던 모습이었다.(출처 : OSEN)"라는 평가를 내렸다. 멋진 바이시클킥으로 일본의 골망을 갈랐던 황선홍은 "단순하고 격렬하게 부딪치는 팀이 기술적인 팀을 이길 수 있는 게 축구다(출처 : 엠스플뉴스)”라는 멘트로 이번 한일전에 대한 일침을 가했다. 한일전 해설을 맡은 '판타지스타' 안정환은 경기를 앞두고 “죽기살기로 뛰었다. 그게 한일전이었다.(출처 : MBC)”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출처 : KFA

 

격렬함 그리고 죽기살기. 죽기살기로 뛴다는 것은 심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시청자가 알 수 없다. '격렬함'은 다르다. 통계를 통해 어떤 팀이 더 격렬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번 한일전에서 25개의 프리킥을 얻어냈다. 일본이 얻어낸 프리킥은 11개였다. 통계로 봐도 일본이 더 격렬하게 축구를 했다.

사람은 탄수화물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탄수화물은 몸의 필수 영양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탄수화물만 먹어도 죽는다. 탄수화물 외에도 단백질, 지방 등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몸을 더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게, 체질에 맞게 영양소를 섭취해야 한다. 면역기능이 약화된 사람은 비타민c를, 근육을 더 많이 키우고 싶은 사람은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다.

축구에서 빌드업은 필수적인 요소지만 빌드업만으로 축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선수 구성에 따라 유연하게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예로부터(?) 일본을 상대할 때는 격렬한 몸싸움과 거친 태클이 정답이었다. 벤투호가 빌드업을 주축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고려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 심리학, 멘탈코칭의 중요성 느끼는 경기 됐길

혹자는 0대3 패배를 두고 선수들의 정신력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정신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없기에 확언할 수는 없으나, 축구를 본 대부분은 아마도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합리적인 판단이다. 정신력은 중요한 전력요소다. 로봇을 가지고 축구를 하면 전략과 전술만으로 이길 수 있겠지만, 축구를 하는 건 인간이다.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천차만별이 된다. 이번 한일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보다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다. 격렬함의 차이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출처 : KFA

 

80번째 한일전은 이미 끝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오답노트'다. 단순히 "정신력이 부족해서 졌으니 너희들은 자격 미달이고 욕 먹어도 싸다!"라는 식의 말은 정신력을 키우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정신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축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신력은 더 이상 스스로 함양하면 끝나는 단순한 전력요소가 아니다. 더욱 좋은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멘탈코칭, 스포츠심리와 같은 개념이 세계 축구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만큼은 이겨야해!'라는 생각만으로 한일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바램에 보답해야해!' '네티즌한테 욕먹기 싫어!'라는 생각만으로 월드컵에서 선전할 수는 없다. 정신적인 부분을 학문적으로 분석해 선수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멘탈코칭과 스포츠심리학에 대한 축구인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게 앞으로의 한일전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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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전술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기엔 나보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축구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전술에 대한 논쟁은 '이게 더 옳아!'와 같이 이분법적인 논쟁이 될 수 없다. '이런 건 어떨까?', '이게 좀 더 적합할 것 같은데?'와 같은 다각적인 논쟁이 될 뿐이다. 감히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를 구한다.

90분 동안 화면을 응시했다. 가슴아픈 90분이었다. 앞으로는 가슴아픈 90분이 아닌 기분좋은 90분이 한국 축구팬들 앞에 펼쳐지길 간절히 바란다.

댓글 1

센터서클 작성자 2021.03.28. 23:35
마지막에 쓴 것처럼 전술적인 부분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 자체가 이분법적으로 변해서 그런지
인터넷 상에서의 글을 보면 정답을 자꾸 찾는 것 같아요.
저도 저 나름대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만,
이번 글에서는 제 나름대로 최대한 제가 말한 게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니라는 걸 강조해봤습니다.

제 글솜씨가 부족해서 제 의도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을 거라는 노파심에
이렇게 끄적여봅니다.

거듭 퇴고해보니 급하게 쓰느라 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 있긴 하네요...ㅎㅎ
시간이 없어서 양해 부탁드립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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