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슈퍼 리그 망한 얘기를 국내축구 갤러리에서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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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 리그는 '슈퍼' 리그가 되지 못했습니다. 슈퍼 리그는 계속될 수도 있지만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의 정상권 클럽이 합류하지 않는 이상 그 대회는 유럽 최정상 클럽 대항전이라고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즈Florentino Perez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행보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가 의도하던 대로 상황을 끌고 가지 못했습니다. 파워 게임에서 완전히 밀린 것이죠.

 

 그렇다고 15개 팀을 고정하고 5개 구단만 계속 변화를 주는 리그 모델 자체가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이미 볼 수 있었던 시스템이었습니다. 유럽 대륙 농구 대항전인 유로리그EuroLeague 역시 18개 팀으로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를 포함한 11개 팀은 고정적으로 매년 나오고 각 국가의 리그에서 우승하거나 특별한 조건에 충족하는 7개 구단이 매년 추가로 초청됩니다. 매 시즌 18개 팀이 풀리그로 각 상대 클럽과 홈, 원정 각 1경기씩, 총 34경기를 소화합니다. 당연히 주마다 유로리그 일정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축구는 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 유럽 농구 리그 역시 승강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축구는 아예 결이 다릅니다. 애초에 축구가 발현하고 그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모여 팀이 꾸려졌습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영국입니다. 영국은 축구를 그렇게 시작했고 그렇게 축구와 함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축구와 함께하는 이해당사자들이 전국 방방곡곡, 동네 구석구석까지 퍼진 것입니다.

 

'낭만' 위에 올라탄 '산업'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까지 영국 축구단은 셀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 많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잉글랜드만 해도 영어 위키백과에서 40,000개가 넘는다는 언급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축구계에 풀타임, 파트타임, 혹은 취미로 활동하고 있는 국민들이 영국 내에 엄청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표본 조사를 실시하면 약 200만 명의 시민이 잉글랜드에서 축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결과도 나옵니다. 잉글랜드 지역 인구가 5,600만 명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단과 그 축구단을 사랑하는 팬들이 잉글랜드 동네마다 존재하고요.

(근거 자료 :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934866/football-participation-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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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그 환경을 경험했습니다. KBS 2TV에서 방영된 '으라차차 만수로'에서 김수로 구단주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첼시 로버스를 운영하는 과정을 다뤘습니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노력도 알 수 있었지만 동시에 경제적인 부분을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과장 조금 보태면 숨 쉬는 것에도 돈을 들 정도였습니다. 축구장을 빌리는 것도 돈이고 직원을 고용하는 것도 다 돈이 필요합니다. 그 비용을 해결하고자 첼시 로버스가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스폰서를 구합니다. 그런 것이 다 축구로 일어난 경제 행위고 그 경제 행위가 뭉쳐 산업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축구 산업은 주로 연고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로컬 비즈니스의 성격을 가집니다. 대부분의 축구단도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난 것이며 구단이 연고지에서 돈을 쓰고 연고지에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슈퍼 리그의 부상으로 흥행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슈퍼 리그에 참가하지 않는 구단들은 수익의 파이가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빅클럽이 영국 축구계에 분명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기에 유럽 축구, 특히 잉글랜드 축구에서 로컬 비즈니스의 판이 깨질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에 비해 슈퍼 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빅클럽은 그 위기를 타개할 카드가 존재합니다. 이 팀들은 연고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내기도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으며 돈을 버는 빅클럽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유럽 축구를 선도하는 구단입니다. 이들은 연고지 밖에서 충분한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로컬 비즈니스의 비중이 타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슈퍼 리그에 계속 잔류하는 구조라 미국의 프로 구단처럼 안정적인 운영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유럽 클럽들은 그 방법을 쓰기 어렵습니다. 빅클럽이 아무리 리그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주중에 상당히 많은 경기를 소화하게 되면 상당한 문제를 초래할 것입니다. UEFA의 챔피언스리그 개혁안과 별 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이 두 대회에서 슈퍼 리그가 만드는 결정적 차별성은 빅클럽의 무조건적인 참여를 보장한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참여하려면 자국 리그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야 하지만 슈퍼 리그에 참가하려는 팀들은 그럴 유인이 없습니다. 자국 리그에 덜 신경을 써도 된다는 의미고 그 말은 곧 자국 리그보다 슈퍼 리그에 전력을 쏟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국 리그의 중요성도 떨어지고 그만큼 산업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빅클럽이 코로나 대유행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빅클럽이 아닌, 유럽의 보통 클럽, 아니 전 세계에 활동하는 거의 모든 구단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코로나는 빅클럽이 겪고 있는 위험 요소지만 빅클럽만이 겪고 있는 위험 요소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팀들이 무너지고 지역 상권 역시 몰락할 여지가 있습니다. 지역이 무너지고 산업이 무너지는데 팬들은 물론이고 정치권이든 어디든 거기에 개입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반발이 유독 심했던 영국은 더욱 더 그렇겠고요.

 

 물론 그것도 다 낭만이겠죠. 슈퍼 리그가 그 판을 키울 수 있습니다. 허나 그 낭만을 가지고 사람들은 축구와 생활했습니다. 그 낭만 속에서 사람들은 축구로 경제 활동을 합니다. 그 낭만으로 발현된 경제 활동이 축적되어 하나의 산업이 되었습니다. 축구는 유럽의 기간 산업이 되었습니다. 잉글랜드는 더 그러겠죠. 낭만 위에 산업이라는 꽃이 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정서입니다.

 

그래서 이걸 한국 축구와 엮는다고요?

 

 당장 K리그를 포함한 한국 축구를 떠올려 보면 축구단 하나 없어진다고 정부는 물론이고 힘 있는 주체가 나설지도 의문입니다. 당장 우리 팀이 없어진다면, 내가 열렬하게 사랑하고 응원하는 팀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경주시민축구단이 사라질 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 글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축구에 양적 팽창이 이뤄지고 있지만 축구단도 사라지면서 어딘가의 일자리는 없어지고 있습니다. 낭만이 없고 따라서 그 위에 개화한 산업도 없는 것이겠죠.

 

 경제적 논리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축구라는 스포츠가 지금보다 위축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물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여전할 수 있지만 굳이 K리그를 비롯한 한국 축구를 봐야하는지 그 근거가 미약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할 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축구를 볼 시간에 야구를 관람할 수도 있지만 넷플릭스를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시간에 쇼핑몰을 갈 수도 있습니다.

 

 '나의 축구'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다른 구단 하나 망해도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대부분의 축구팬들과 관련 없습니다. 유럽, 특히 잉글랜드는 빅6 축구단이 나가면 자신이 보는 축구는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엉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건이 나왔던 것이지만 적어도 한국은 다릅니다. 저 팀 망하면 그 동네가 힘들게 된다는 것도 없습니다. 축구가 진정 사람들에게 소구되는 지점이 어디 있나요?

 

 물론 국가대표팀과 K리그를 통틀어 한국 축구가 한국 고객한테 어필할 수 있는 차별성은 몇 개 있습니다. 하나는 애국심이죠.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을 응원하고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라는 것은 굉장한 마케팅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이겼을 때 그 효과를 다 누리는 것입니다. 지면 욕 먹고 특히 라이벌전 같은 경우 그 내상이 워낙 심합니다. 슈퍼 리그처럼 본격적으로 클럽 간 경쟁을 붙여서 애국심 마케팅으로 가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유리하든 불리하든 도박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비즈니스가 개입하기 힘든 환경 요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장에 가서 관람하는 행태, 이른바 '직관'은 확실히 해외 축구에 비해 유리하지만 그 갭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습니다. 향후 통신 기술 등의 발전으로 '집관'과도 같은 원격 관람이 더 쾌적해질 예정입니다. 중계 카메라 성능은 더 좋아져서 점점 눈으로 보는 듯한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청자한테 구현할 수 있는 초실감 미디어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튜브를 켜서 들을 수 있는 ASMR보다 더 좋은 음질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경량화된 VR 기기로 그 세계를 구현할 수 있으며 증강현실로 다른 곳에 있는 축구장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https://www.skysports.com/football/news/11095/12158210/sky-worlds-to-show-premier-league-matches-live-in-virtual-reality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완벽하게 우리의 눈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집관'과 '직관'의 간극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물며 집관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로 할 게 많아졌다는 것은 축구에 굉장히 부정적인 요소입니다. 그야말로 예전엔 축구의 대체재를 물어보면 상당수는 야구라고 대답했지만 이제 다른 답을 내놓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축구는 어떤 방식으로 가야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이것은 생존과 성장의 문제입니다.

 

 

댓글 10

COSMO 작성자 2021.04.21. 12:25
 아방뜨
댓글
프리드 2021.04.21. 12:52
아저씨.......를 사랑하는진 모르겠고 아저씨 글은 사랑해여 헤헷
댓글
COSMO 작성자 2021.04.21. 13:12
 프리드
댓글
COSMO 작성자 2021.04.21. 13:12
 프리드
댓글
COSMO 작성자 2021.04.21. 13:12
 욕구불만
댓글
야탑역3번출구 2021.04.21. 14:50
언제나 느끼지만 선생님 글은 추천 1개만 드리기 부족해요...
추천 여러개 주는 기능도 있어야함미다...
댓글
COSMO 작성자 2021.04.21. 15:04
 야탑역3번출구
과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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