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경남 전남전 후기(설사커에 대한 미련)

아직도 설사커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오늘도 후반 실점 이후 경기 종료까지 40분 동안

설기현은 이때다 싶어 설사커를 꺼내들었고 그렇게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전반은 설기현이 하려는 설사커가 아니었다. 아주 심플한 컨셉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빌드업을 시작할 때 풀백들은 최전방까지 미리 전진해 있지 않았다. 센터백(이광선)과 볼란치(채광훈) 옆에서 풀백(김주환)은 그들은 지원했다.

또 풀백들은 후방에서 전방으로 직접 롱볼을 시도하기도 했다.

압박에 몰리면 센터백들이 리턴을 받아 앞으로 길게 때려넣었다. 이건 현장에서 선수들 콜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수들끼리 뒤에서 쉽게 앞으로 찔러주자는 콜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정협과 에르난데스의 전방 비비기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높은 확률로 전방경합을 이겨냈다.

또한 둘은 투톱으로서 전방압박 역할 역시 훌륭히 해줬다. 이 압박도 효과를 받고, 이런 잘 갖춰진 전방압박 대형은

전남의 골키퍼 박준혁이나 수비수들이 킥미스, 패스미스를 했을 때 숏카운터를 치는 데도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볼란치들도 굳이 중원에서 볼을 오래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전방으로 길게 찔러주고 세컨볼 싸움에 주력했다.

김동진과 채광훈은 본 포지션이 윙백인 선수들로서 이날 경기 투볼란치로 경기에 나섰는데

둘 모두 볼을 잘 키핑할 수 있는 선수들은 아니지만 기동력만큼은 상대를 충분히 압도할 수 있었다.

세컨볼 싸움을 영리하게 해주는 공격진과 기동력이 우수한 볼란치들의 조합은 심플한 축구에서 힘을 발휘했다.

작년부터 늘 전남의 맞춤형 수비전술에 고전만 했던 경남은 오늘 전반전 어느때보다 많은 횟수의 공격을 시도했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나온 경남에 전남은 당황했고, 전술이 들어맞지 않자 공격적으로도 흔들렸다.

전반 전남의 공격은 매우 답답했다. 

하지만..

박희성을 타겟형 윙어로 활용한 전경준 감독의 전술에 코너킥을 내준 경남은

결국 전남이 잘 준비한 세트피스 전술에 당하며 실점한다.

오늘 전남은 다채로운 세트피스 전술을 선보였고 위력이 있었다.

후반 실점 이후 설기현 감독은 변화를 시도한다.

바로 풀백의 전진배치라는 기존 설사커의 모습으로 회귀. 답습.

후반 5분 경부터 풀백들이 이전 설사커에서 했던 것처럼 빌드업 과정에서 센터백과 볼란치를 돕지 않고 전방으로 올라가 위치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투볼란치 채광훈과 김동진은 전반전과 달리 중원에서 상대를 등지고 패스를 받아 볼을 키핑하고 직접 전방으로 전진패스를 넣어줘야 하는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채광훈과 김동진을 볼을 머금고 있다가 위험한 순간을 마주쳤다.

풀백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센터백들은 후방빌드업에 또다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상대의 압박에 아주 자연스럽게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기현 감독은 설사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장혁진을 후반 이른 시간 조기 투입하는데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왼쪽 풀백 유지훈이 벤치로 가고, 볼란치를 보던 김동진이 왼쪽 풀백 자리로 돌아왔다.

볼란치 포지션은 장혁진이 위치했다.

다시 갑자기 설사커를 꺼내들면서 센터백과 볼란치들은 물론 공격수와 풀백의 동선에도 혼란이 온다.

백성동과 김주환이 침투하려는 공간이 겹친다.

스스로들 공간을 좁혀버리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면서 풀백들의 역할도 애매해져 버렸다.

전방으로 침투하는 것도 아니고, 센터백들을 도우러 내려가는 것도 아닌 이상한 위치만 점하고 있게 된다.

오히려 풀백(김주환)이 전방에 알을 박고 있을 때보다 자연스럽게 후방에서부터 오버래핑해 나갈 때 좋은 장면이 만들어 졌다.

윤주태가 상대 윙백 올렉에게 마크를 당하고 있지만

김주환에게 볼이 연결되면서 윤주태를 마크하던 올렉이 김주환에게 끌려나가고 그러면서 윤주태가 프리로 풀린다.

이 장면 이후 김주환은 윤주태에게 패스를 찔러줬고, 윤주태의 크로스가 에르난데스에게 향했다.

비록 상대 골키퍼 박준혁의 방해로 골을 넣는 데 실패했지만 후반 가장 좋았던, 어쩌면 유일했던 그럴 듯한 장면이었다.

풀백들을 전방배치하면 볼란치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볼을 가장 잘 다루는 장혁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풀백 김주환과 김동진의 전방 배치..

설사커의 문제점 중 하나는 풀백들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다시 내려와서 패스를 받아주는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당연히 설사커의 부분전술 때문이다.

설사커는 풀백들이 전방에 배치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부분전술을 펼치는 축구라 볼란치와 센터백들이 후방에서 고립되도 풀백들이 잘 내려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중원에서 볼을 끊겼을 때 이 풀백들의 뒷공간은 상대의 먹잇감이 되어버리는데..

장혁진의 컨디션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오면 바로 이런 위험 상황을 쉽게 맞닥뜨리게 된다.

이 부담감을 안고 뛰어야 하는 센터백들은

공격상황에서의 상대 압박에 대한 부담도 큰데, 이런 크디큰 수비적인 부담감까지 안아야 하기 때문에 멘탈이 나간 상태로 경기를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센터백들의 패스에 대한 판단과 수비상황에서의 냉정함 중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고 무너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런 부담감에서 오는 센터백들의 불안감은 볼란치와 풀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순간순간 경기를 놓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전반전 이광선은 적극적으로 콜을 하며 수비진을 리딩했다.

라인을 기민하게 컨트롤했고, 공격과 미드필더 진의 집중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렸으며, 커버플레이에도 스스로 집중했다.

후반전 이광선은 말이 줄어들었다. 할 일이 많아지자 본인 하나 챙기기에도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경남과 전남 모두 전반과 후반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다.

경남은 설사커를 버린 이후 최근 경기 빠르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들 스스로 경기를 조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면서 움직임도 활발해 지고 공격적으로 좋아졌다.

오늘 전반전 수비조직도 어느때보다 뛰어났다. 늘 고전하던 전남전 박스 안으로 가장 공격을 많이 가한 전반전이었다.

다만 설사커를 버린 이후 나아지고 있는 팀의 모습을

감독만은 왠지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감독은 설사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눈치다. 경기는 질 수 있다 생각 들지만

또다시 설사커로 인해 낭비되고 있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는 건 이제 견디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