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문화 수ㅡ필 - 누아르 미슐랭

요즈음 길거리를 거닐 때 자주 보이는 게 있다면 첫 번째로는 동그란 안경일 것이며, 두 번째로는 호떡을 파는 노점상일 것이다. 물론 저 둘은 몇 년, 더 오래 가자면 몇 십 년 전부터 꾸준히 봐온지라 내 눈엔 너무나도 익숙하며 당연한 모습이다. 하지만 언제 봐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있다면 바로 군데군데 접히는 자국이 눈에 띄는 롱패딩들이다.

 

왜 하필 흔히 볼 수 있는 롱패딩이 익숙하지 않은가에 대해서 추측을 하자면 아마도 어릴 때부터 종종 보곤 했던 미슐랭의 마스코트가 생각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올록볼록 튀어나온 사지와 몸뚱이를 가진 그 괴물 말이다. 멈춰있는 그림으로 보면 그러려니 하지만, 진짜 움직이는 놈으로 봤을 땐 사람같지 않은 오묘한 느낌에 기분이 나쁜 것처럼, 롱패딩을 입은 사람을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을 은연중에 받곤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검은 색을 입은 쪽이 나에게는 유독 거부감이 강하게 비춰진다. 정말 미슐랭 타이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이 좋아 무난함이지 그냥 칙칙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검은 롱패딩을 입은 사람을 보면 항상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검은, 누아르 미슐랭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당연히 따듯하니까 입을 것이다. 그런데 그거밖에 없어 보인다.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소맷자락은 언제 봐도 묵직한 느낌을 주고, 목을 타고 뺨까지 올라오는 옷깃은 보는 내 숨이 턱턱 막힌다. 대체 안에 뭘 입고 있는 건지 알 수도 없고 말이다. 게다가 대개 검은 색이라 뭐가 묻으면 의외로 눈에 잘 띈다. 대부분의 얼룩은 진한 색이라 티는 안 나겠지만, 가끔 담뱃재같이 하얀 색을 띄는 얼룩도 있으니까.

 

그래서 누아르 미슐랭들이 돌아다니는 12월의 길거리를 걷자니 나는 펭귄 사이에 서 있는 카메라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미슐랭 타이어를 차고 달리는 많은 차 사이에 놓인 인력거처럼만 느껴진다. 무언가 최신 문물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만, 딱히 사고 싶은 맘은 없다. 하지만 거부하자니 너무 뒤처지는 기분이다. 내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나 싶은 기분이 든다. 그냥 두터운 코트 하나 입고 그거마저도 추워 양 손으로 반대쪽 옆구리를 잡아 당기며 담배 연기로 옥수수차 색이 은은하게 번져간 치아가 메트로놈 역할을 한다.

 

나 홀로 이러는 와중에 누와르 미슐랭들은 유유히 따스한 커피 한 잔 들며 횡단보도를 거닌다. 길 건너 보이는 버거킹과 전북은행, 대학병원은 코트 자락 사이로 몰아치는 바람의 세기만큼 멀어지기만 한다. 추워서 그런 것일까. 그럴 때마다 이번 겨울엔 싼 거라도 하나 장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꼭 신호가 바뀌고.

 

아무튼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거킹을 지나칠 때, 낑낑대며 롱패딩을 벗는 한 여자의 옷자락 사이에 부끄럽다는 듯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하얀 셔츠를 봤는데, 너무도 빛났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 속에 잔뜩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 놓고, 왜 스스로 누아르 미슐랭이 되길 택하면서 자신다움을 꾹꾹 눌러 담을까. 정말 실용적이라 입는 걸까, 아니면 다들 입으니까 입는 걸까. 실용적이라면 그렇게 속을 꾸밀 이유가 있을까 등등.

 

단과대로 가는 길에 여러 불확실한 생각을 입 안에서 오물거리지만, 내가 바로 입 밖에 낼 수 있는 확실한 것은 내가 이걸 살 때는 유행이 완전히 지나고 나서라는 점이다.

댓글 4

이치너굴 2019.12.03. 00:34
오 이런 느낌 좋은데욤

확실히 배워서 그런가 지난번 단편과 수필은 또 다른느낌이 나는구나 ㅋㅋㅋㅋ
댓글
츠바쿠로 작성자 2019.12.03. 00:37
 이치너굴
헉... 감사합니다ㅠㅠㅠㅠ
댓글
이치너굴 2019.12.03. 00:41
 츠바쿠로
비전문가적이고 짧은 독서인생이라 그런가
개인적으로 지금 이런 수필느낌의 소설이 좋더라구요
너무 다크하거나 어려운 표현을 쓰는것보단
이런 친숙하고 가벼운 소재와 표현으로
풀어나가는 그런 ㅋㅋㅋ
화이팅입니다!
댓글
츠바쿠로 작성자 2019.12.03. 00:42
 이치너굴
제가 원래 그냥 짧막하게 쓰는 건 이런 걸 선호해서...ㅋㅋ 암튼 고맙습니다 아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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