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문화 수필)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것은

  가끔 어릴 때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갑자기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대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거나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을 한 15세 관람가의 영화―주로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틀어주는―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5~6살의 나이에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일단 영화니까 보고, 무언지도 모르면서 정체모를 감명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그 시절부터 내가 어떤 이야기를 창조해내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일을 선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모르는 이야기를 한다는 걸 좋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영화감독이나 작가라는 직업이 대체 어떤 일을 해야만 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가는 잘 몰랐지만―사실 이건 지금도 잘 모르긴 매한가지다―아무튼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동네 아이들이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면 나는 이상하게도 승자가 된 것만 같았다. 계속 그 승리감에 취하기 위해 잘 몰라도 일단 답을 일일이 해주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는 어딘가 잘못된 이야기들이 조금 많은 편이였고, 설령 내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도 전후 사정을 잘 모른 채 어딘가 뚝 떼어놓고 단편적인 부분만 언급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머리를 싸매가며 누군가에게 만족할만한 답변을 준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람찬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제아무리 꼬맹이가 한 짓이래도 많이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계속 이러한 꿈들을 안고 살아갔던 건, 스토리텔링이란 요소는 자신의 재능을 눈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요소가 컸다. 그 시절엔 누구나 다 그랬겠지만 주말에 다들 비디오가게에 가서 비디오를 빌려보곤 했었고, 내 경우는 주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이웃집 토토로」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 배달부 키키」같은 것들 말이다.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세계문학전집’느낌을 풍기는 그림체가 예쁘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그림을 그려 실제 움직임처럼 만드는 게―물론 그땐 저런 부드러운 실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초당 24개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걸 몰랐다―신기했고, 나도 그런 것을 한번 만들고 싶어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이리저리 끄적거리지만 기껏해야 6~7살짜리 꼬맹이가 뭘 그리겠나. 당연히 재능의 한계를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나이 대에선 정말 당연한 건데도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라는 요소에 더 빠져들지 않았을까. 내가 직접 플롯을 짜내어 글을 쓴 다음에 뽑아보며 실제 작품들과 내용을 비교해본대도 그 땐 어떤 요소가 부족하고, 어느 작품을 본받아야 할지 몰랐으니까. 예컨대 6살짜리 아이에게 자신의 일기와 영화 「타이타닉」 중에서 어느 게 더 나은지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날 기분 가는 대로 고를 것이다. 학부생 신분으로 나름 전문적인 요소를 맛보기라도 하는 지금도 작품의 우열을 함부로 논하지 못하고, 어느 작품의 어떤 요소가 객관적으로 좋고 나쁜지에 대해 말하질 못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 대체 뭘 논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살면서 그 꿈을 단 한 번도 짓밟혀본 적 없이 평탄하게 유지해올 수 있던 것 같다. 6살 남자아이가 자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할 때 어느 부모가 한숨만 나오는 현실을 직시하겠는가? 그래서 그 나이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밖에서 뛰어 놀기보단 독서와 영화 감상을 조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 기껏해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던 신림5동 반지하 집에서의 기억이다. 초등학생이 되고 온라인 게임이라는 걸 접하는 순간 누가 그런 작품들에 관심을 가질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며, 유감이게도 나는 그 일부에 포함되지 않은 대다수의 거의일 뿐이었다. 『걸리버 여행기』같은 흥미로운 이세계 모험담도 전혀 와닿지 않았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같은 무언가 교훈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는 당연했다. 그 또래의 아이들처럼 무언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에 이끌렸고, 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액션영화에 눈이 가는 건 당연했다. 「트랜스포머」같이 변신하는 로봇과 「핸콕」처럼 어딘가 덜떨어진 초능력자들에게, 「밴드 오브 브라더스」같이 보통 사람들이 모여 영웅이 된 이야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꾸준히 영화를 본 기억은 나지만 막상 그 시절에 정말 기억나는 작품을 뽑자면 딱히 없다. 정확하겐 어릴 때 본 영화들처럼 언제든 장면을 눈앞에 그려낼 수가 없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엔 사춘기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온 나머지 마치 내가 성인이라도 된 마냥 기존에 내가 좋아했던 걸 어린 애 같다며 하나하나 부정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봉건주의의 잔재라며 죄다 때려 부수던 문화대혁명 때의 홍위병 같았다. 내 인생에서 쪽팔린 일의 한 70%는 그 2~3년 동안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름대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생각하지만, 결국 그때 본 영화들도 결국 기존과의 완벽한 단절을 꿈꾼 나머지 짐 자무쉬, 웨스 앤더슨, 노아 바움벡, 코엔 형제 등 예술영화 감독들의 작품이었고, 마찬가지로 어릴 때 본 영화들처럼 언제든 그 장면을 상상하진 못한다. 단지 내 안목을 좀 더 넓혀준 걸로 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눈앞에서 흩어진 1500피스 퍼즐 같은 필름 쪼가리들을 일일이 이어붙일 수 있는 건 전부 어릴 때 봤던 영화들이다. 「타이타닉」이나 「인생은 아름다워」, 「스타쉽 트루퍼스」같은 작품들 말이다.

 

  지금은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읽을 때마다 내가 그 장면을 상상해 재구성할 수 있지만, 영화는 모든 장면이 실시간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내 상상력이 거세당한 것만 같아서다. 물론 글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영화보단 소설이나 시를 읽는 게 더 중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면 그냥 전주 영화제가 하는 5월 초에 아카데미 뱃지를 발급받아 일주일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열댓 편의 영화를 몰아서 보고 작품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나는 왜 저런 플롯을 생각하질 못했던 걸까?’하는 심정을 입에서 천천히 굴리다 슬며시 내뱉는다. 롤리타라는 이름은 혀가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 째에 가볍게 앞니를 톡 건드리지만, 나에게 영화라는,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이제 가슴에 무게추를 얹고 발목엔 모래주머니를 단 채 간신히 한 발짝 내딛는 학부생으로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과제로 제출하고 공모전에 낼 글을 쓰기 위하여 억지로 좋아하는 음반을 메들리로 들으며, 혹은 ASMR을 들으며, 가끔은 연설을 잘 한다는 모 정치인의 연설 전문을 들어가면서까지 쥐어 짜내지만, 늘 그렇듯이 나를 만족시키지를 못한다. 6살 무렵의 나는 ‘오늘은 OO를 했다, 참 재미있었다’로 도배된 일기장을 쓰고 마치 부커상이라도 탄 마냥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다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재능을 잘못 알아본 게 아닐까?’하는 고민에 잠긴다.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선택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만 하는 생각이지만, 문제는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그 질문을 통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한다―더 정확하겐 얻을 생각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도 결국 어디서 본 듯한, 무언가 뻔한, 진부한, 판에 박힌, 괴상한 등등 남들이 좋게 봐주긴 힘든 것들로 넘쳐나고, 전개도 늘 오목판화 홈에 담긴 물감처럼 제 위치를 지킨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담배를 계속 입에서 놓지 못하고 발기부전이 되면 다른 걸로 바꿔 끼우며 2~30분을 허비한다.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없었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타에코가 방학때 그 어디도 가지 못하는 게 이런 심정이었을까?’하는 생각들을 하며 말이다. 어릴 때 봤던 영화들을 떠올리며 나에게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사유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다보면 결국엔 그 먼 과거의 나에게 묻고픈 질문 하나를 혀가 계속 굴리다 슬쩍 뱉어본다.

 

 

 “너에겐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생각해내며 전달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니?” 하고 말이다.

댓글 16

rraccoon 2020.03.20. 09:36
창작가의 입장에 서본 경험 없이 그저 감상을 하며 감상평 몇 줄만을 남기는 수용자 입장인지라...
댓글
케이팝모델섹스머신 작성자 2020.03.20. 09:37
 rraccoon
사실 느낌가는대로 쓴거라 뭔가 오글거리는 거 없이 내용 괜찮을지가 제일 걱정이라..ㅎㅎ
댓글
이치너굴 2020.03.20. 12:19
이런 생각을 거치면서 발전해 가는것이 아닐까 싶음 ㅇㅇ

내가 잘못 전달하진 않았을까?
내가 과거엔 어떤 생각으로 그랬을까 하면서욤 ㅋㅋㅋㅋㅋ


질문은 보통 다른사람에게 하는 것 인데
과거의 나도 분명 나였지만
과거의 나에게 질문하고픈 생각이 들거나
부끄럽거나 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나름 변화하고 발전한것이 아닐까도 문뜩 생각이 드네ㅋㅋㅋ
댓글
이치너굴 2020.03.20. 12:36
 케이팝모델섹스머신
화이팅입니다 자까님
등단하면 저 싸인해주셔야되요.
찜꽁해놧음 휴가내고서라도 싸인회 갈거임
댓글
이치너굴 2020.03.20. 12:48
 케이팝모델섹스머신
괜찮습니다 ㅇㅇ
어릴때 친구들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것을 즐기고
승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꼈슴다 ㅋㅋ

개인적으론 끝 맺음이 좋다고 생각해요
수필이고 문맥상 글쓴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질문이지만

독자인 저에게도 질문하면서 마무리 짓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앞쪽에서 공감대를 형성했기때문에 맨 마지막의 한 마디가 좀 더 와 닿은 느낌 ㅋㅋ
댓글
동티 2020.03.20. 19:25
창작을 해본 경험이 논문뿐인지라... 쥐어짜면 안나오고 어느날 편하게 쑥 나오는게 좋지만 그게 맘대로 되나
댓글
동티 2020.03.20. 19:30
 케이팝모델섹스머신
ㅋㅋㅋ 근데 아무생각없이 자고 일어낫을때 아이디어가 나오는경우가 잇음... 부담이 생기면 아무래도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고 다양한 생각이 안되는 경향이 잇는덧
댓글
케이팝모델섹스머신 작성자 2020.03.20. 19:31
 동티
이건 맞음... 그래서 항상 생각을 해둬야하는데 난 항상 까먹음 ㅎㅎ
댓글
동티 2020.03.20. 19:31
 케이팝모델섹스머신
ㅋㅋㅋ 그게 쉽게되지않지...
댓글
Broken_Matt 2020.03.21. 16:59
한때 작가를 꿈꾼적이 있었다
지금도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이벤트성으로 지인들 아무도 읽지 않을 몇백권 모음출판이 아닌, 서점-그게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에 신간 안내로 내 이름이 찍힌 책이 올라오는 거다, 그게 문학이 됐건, 비문학이 됐건.

그래도 한떄는 국교과에 재학중인 동기들한테도 '말이랑 글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작성자가 나에게 틀딱이네 아재네 할 게 뻔하지만, 싸이월드 시절 다이어리 같은데 몇 줄 휘갈겨 쓴 글이 그런 평가를 받았던 때였다.
우리 아버지는 글을 잘 쓰시기에, 언변이 뛰어나시기에, 아버지가 나에게 중요하게 가르치신 것의 대부분이 말과 글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나도 나이가 먹어가며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처럼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깨달은 건, 말과 글에서 중요한 건 경험보다 그 사람의 멘탈이 정상이냐는 것이었다
군대를 거치며 '유리에 금이 간 채로' 들어갔던 내 멘탈은 '가루가 되어서' 나왔고
20대 초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던 글은 20대 중후반을 거치며 조잡해지고, 논리가 빈약해지고, 좋은 평가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

교육을 전공하고 교육에 몸담는 사람으로써 선천적 재능과 환경의 영향 중 무엇이 더 크냐는 문제는 오랫동안 교육계의 화두였다
그리고 선천적 재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들이 속속 드러난다

하지만 난 확실히 말할수있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환경에 막혀 무너진 사람들이 많듯이
결국 재능을 빛나게 하려면 내 스스로가 좋은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기에 약 좀 잘 챙겨먹고 후로레쓰 봐라, 주니어 1호기인지 2호기인지
내 어린 시절을 보는거같은 글쟁이 새끼야
댓글
Broken_Matt 2020.03.21. 17:04
 케이팝모델섹스머신
너네 자꾸 진짜 이렇게 안보면 영구은퇴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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