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역사 3.1운동과 아나키즘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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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에 이르러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등지의 허무당(나로드니키) 활동은 조선으로 흘러들어와 한성순보를 비롯한 신문과 이미 사회주의가 전파되어있던 중국과 일본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1910년 국권상실 이후, 일제에 항거하는 지식인층에게는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면서 민족해방을 위한 새로운 이념을 추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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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반제국주의를 바탕으로 점차 수용되기 시작하였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지식인들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를 민족해방의 노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은 한국인의 사회주의 수용을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바로 3.1운동을 통해 민중이 가진 힘이 지식인층에게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지식인들은 민중이 지닌 폭발적인 힘을 주목하게 되었고, 민중해방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에 주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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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아나키즘은 이러한 사회주의의 한 갈래로써 소개되었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활동하기 어려워진 국내를 뒤로하고 일본과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거나 망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박열의 경우, 3.1운동에 참여하며 느낀 일제의 폭압적인 진압에 대한 증오감과 인간 사이의 자유·평등 의식을 바탕으로 오스기 사카에(*) 등과 같은 일본의 아나키스트들과 교류하며 아나키즘을 수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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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기 사카에(大杉栄, 1885년 1월 17일~1923년 9월 16일), 일본의 아나키스트, 노동운동가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인 고토쿠 슈스이 등과 교류하였다. 고토쿠 슈스이와 오스기 사카에는 모두 아나키즘 사고를 바탕으로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의 직접행동론을 주장하였으며, 박열의 지배계급에 대한 직접행동론 또한 이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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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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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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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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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근 류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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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 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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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 정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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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김종진)

 

 

  중국의 경우, 3.1운동 이후에 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경 및 상해, 만주로 망명한 한인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망명해있던 우당 이회영의 경우, 영웅이나 지도자 같은 능력 있는 인물보다는 다수의 보통사람들과 같은 민중을 중요시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수립될 독립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배신감과 새로운 독립운동 방략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이회영은 아나키즘을 수용하게 된다. 또한 3.1운동 이후 민중의 힘을 자각하게 된 단재 신채호의 경우에도, 일제에 맞서는 독립운동 방략으로써 민중해방을 자신의 목표로  아나키즘을 수용하게 되었다. 단주 유림의 경우, 3.1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유림은 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아나키즘을 수용하였고, 중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파금과 만나 교류하면서 아나키즘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류자명, 백정기, 정화암, 김종진 등 또한 3.1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아나키즘을 수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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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암 고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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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석과 부인 배숙경)


 

  또한 국내에 남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 민중해방운동을 전개한 아나키스트들도 있었다. 고순흠·나경석 등의 아나키스트들은 1920년대 초 조선노동공제회 결성에 참여하여 강연회 개최와 계몽·선전활동 전개, 노동자 투쟁, 민중직접행동 등을 주장하는 등의 아나키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3.1운동은 아나키즘 수용의 기반이 되었고, 국내외 아나키스트 활동의 배경이 되었다. 

 

 

 

참고문헌

 

이호룡, 「일제강점기 국내 아나키스트들의 조직과 활동-노동운동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2002

이호룡,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45-아나키스트들의 민족해방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이호룡, 「이회영의 아나키스트 활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009

전상숙, 「박열의 무정부주의와 민족의식」,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2008

김영천, 「단주 유림의 아나키즘과 독립운동」,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2008

박걸순, 「신채호의 아나키즘 수용과 동방피압박민족연대론」,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011

김명섭, 「1920년대 전반기 북경지역 한인들의 아나키즘 수용과정과 활동」, 《한국근현대사연구》, 2014

 

출처 - 펨코 

댓글 5

버러지같은후손 2023.09.25. 18:44
일제강점기에 활동한사람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다 단순하게 낙인찍어버리면 정말 그사람이 그렇게 무식해보이는 이유
댓글
탱구는여신이다 2023.09.25. 19:15
저 시기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이 유행했었고 마르크스 주의 이런거 공부하거나 책 읽어본 사람들은 천재라고 부를 수준이었다는데 ㅋㅋㅋㅋ 그만큼 저 시대에 설득력도 있고 납득할 만한 사상이었다는 거지 그게 아니면 전세계적으로 저렇게 유행할 이유가 없음 심지어 미국도 사회주의랑 공산주의 유행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댓글
88번이태석 작성자 2023.09.25. 19:17
 탱구는여신이다
그땐 대혼돈이었지
댓글
오구라유카 2023.09.25. 23:48
지금도 아나키즘이 필요하다 생각하는대 그때 당시 아나키즘은 못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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