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국군의 날] 영창 썰 : 간부 수용자 편

  • Everton
  • 499
  • 6
  • 9

난 헌병으로 복무했고 주요 임무지 중 하나가 영창이었다. 많은 군필들이 알다시피 징계 차원에서 입창하는 징계수용자는 최대 수용 기간이 15일이다. 그러나 징계 차원을 넘어서 구속 수사 및 재판을 받기 위해 들어오는 수용자들이 있다. 이들을 미결수용자라고 하는데, 원칙적으로는 구치소에 가는 게 맞겠지만 부대 내에서 구치소를 따로 운용하기에 제약이 있으므로 편의 상 영창 내에서 징계수용자와 미결수용자의 방을 따로 나눠서 관리한다.

 

문제는 미결이란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답게 수용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해당 사건의 수사나 재판의 결과가 날 때까지 또는 보석으로 나갈 때까지 영창에 머물게 된다. 일반병이 미결수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리니지 아이템을 사기쳐서 들어 온 놈도 있었고, 구체적으로 뭔 행위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성군기 위반으로 재판까지 간 녀석도 있었다) 간부들이 미결수로 오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내 자대가 상급 부대였던만큼 간부들이 입창하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물론 개중에는 여군도 있었다) 미결수는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몇 개월(내가 본 수용자 중에는 무려 10개월을 영창에서 지낸 중위도 있었다)을 지내다보니 수용자 개개인마다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서는 간부 미결 수용자들과 있었던 썰을 몇 개만 엄선해 살짝 풀어보고자 한다.

 

 

# 갓파 대령
 

만년 대령(동기라는 사람이 면회하겠다고 대뜸 영창을 찾아왔었는데 계급이 투스타... 당시 내가 조장이었는데 사전 절차없이 들어올 수 없다고 더운 날씨에 입구 밖에 10분을 세워놨었다ㅋㅋㅋ) 하나가 뇌물수수로 입창해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에 영창 내부로부터 다급한 인터폰이 울려왔다. 실내로 부리나케 들어가보니 대령이 반라 상태로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근무에 투입된지 얼마 안된 이병 애송이는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고 나도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놀라 식겁했었다.

 

정신을 차리고 지통실에 보고하기 위해 사태를 파악했는데, 알고보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쭈그려 앉아 세수하는 것에 익숙하잖음? 멀쩡한 샤워기를 두고 바닥에서 50cm 남짓 높이에 있는 수도꼭지에다 머리를 디밀고 머리를 감다 고개를 들면서 수도꼭지에 정수리 부근이 찍혀 두피가 찢어진 것이었다. 안 그래도 원형탈모로 정수리 부근이 훤했었는데 상처에 붙인 거즈가 더더욱 두드려져 보이면서 그날 이후로 그 대령은 우리들 사이에서 "갓파"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 사람은 반년 가까이를 영창에 수용되어 있었다가 보석으로 나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진상이었다. 근무자들의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 것은 기본이오, 근무자가 원칙대로 근무를 하지 않았다며 웃전에 일러바치겠다 협박조로 딜을 제안해오는가 하면, 맛있는 반찬 좀 많이 가져다 달라는 사소한 밥투정, 비치되어 있는 베개가 불편해 잠이 안 오니 사제 베개를 반입해달라, 월드컵인데 밤 10시 경기에 있는 경기를 보게 해달라(덕분에 월드컵 원정 첫 승을 영창에서 지켜봤다) 등 오랜 시간이 지나 전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수많은 요구와 땡깡을 시전해 진상으로 분류되었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지위가 제법 있는 사람이라해도 영창에 들어오면 인간 본연의 욕구에 충실해진다. 먹는 것 가지고 병사와 말다툼이 있는가하면 툭하면 어린애처럼 삐치기를 잘했다. 그리고 수틀릴 때마다 대대장과 면담을 하겠다고 윽박질렀는데, 헌병대대장이 기껏해야 중령이기 때문에 사소한 요구들은 거의 다 들어 준 것은 안 비밀이다.

 

 

# 영창에 핀 해바라기


특공여단 중사가 구타 및 가혹행위로 들어왔다. 특공여단 출신답게 그는 이따금씩 한 손 푸쉬업이나 물구나무와 같은 기행을 보이거나 팀 케이힐에 빙의한 듯 허공에 섀도복싱을 하곤 했다. 원칙대로라면 그러한 행동이 허용되지 않지만 당시에 수용자가 많지 않아 거실(수용자들이 묵는 넓은 방)을 독방으로 써 다른 수용자들에게 위협이나 피해를 주지 않았고 운동 꽤나 했을 사람이 하루종일 앉아만 있는 게 안쓰러워서 정도가 지나치지 않으면 편의를 봐줬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제법 많은 푸쉬업을 하고 땀범벅이 되어서는 샤워를 하고 싶다며 날 불렀다. 샤워실로 들어간 후 물줄기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별안간 그가 벌거벗은 몸으로 샤워실 입구로 나와서는 비누가 다 떨어졌으니 새로 불출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내 시선은 비누가 없어 난처한 그의 표정이나 탄탄하게 자리 잡은 잔근육들보다도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그곳에 먼저 닿고 말았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영창에도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 시노비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사가 있었다. 근무자의 통제에도 잘 따라주어 대부분의 근무자들이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죄명은 폭행이었다. 누군가를 때리고 다닐만한 인상으론 보이지 않았으나 여차저차해서 후임이나 휘하 병사를 때렸겠구나 지레짐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의 실체를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재판 정병(재판관의 명령을 받아 수용자를 인도하고 법정의 정돈 및 재판 진행에 필요한 업무를 보조)을 나가서였다. 범죄사실 여부에 대해 중사에게 질문하며 확인하는데 그 질문들이 가관이었다. "부인에게 갈보년(수 많은 욕설이 있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고 갈보년이 가장 임프레스 했음)과 같은 모욕적인 언행을 한 사실이 있습니까?", "목을 조르고 수차례 구타를 한 사실을 인정합니까?", "부인을 향해 부엌칼을 2차례 던진 바 있습니까?"...

 

사건을 종합하자면 부인이 외간 남자와 관계를 가진 것을(부인 측은 애무 내지 유사성행위 수준이었다고 주장. 유사성행위까지는 간통죄에 포함되지 않으니...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알게 되어 부인에게 욕설과 폭행을 가한 듯 했다. 누구나가 그 상황이 되면 폭발하겠지만 부엌칼까지 집어 던졌단 사실에 모두 그를 다시보게 되었다. 칼을 내던졌다는 점에 포커스가 맞춰져 그의 별칭은 "시노비"가 되었다.

 

 

 

본래는 국군의 날 이벤트인만큼 국군의 날에 겪었던 썰을 풀고 싶었지만, 한달 전부터 휴가제한 당하고 예행 연습과 근무를 병행하느라 고생한 것 외엔 딱히 풀만한 썰이 없었다. 남들이 많이 쓴 유격이나 혹한기도 하루면 끝나거나 하는 듯 마는 듯한 부대였으니... 대신 일반부대와는 다른 특이한 에피소드들이 넘쳐나긴 하지만ㅋㅋ

 

암튼 얼마전에 영창제도가 폐지되고 군기교육대로 대체한다는 기사를 본 게 생각나서 영창 썰을 풀어봤다. 회상에 빠졌을 땐 피식했는데 써놓고 보니 글 재주가 없어서인지 재미가 없네ㅋㅋ 질문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든지 질문과 관심은 환영!!

댓글 6

이요코 2018.09.30. 21:0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갓파찡 아팠겠다
댓글
Everton 작성자 2018.09.30. 23:53
 이요코
머리카락이 없어서 환부 치료하기는 용이했을 거에요ㅋㅋㅋ
댓글
리바이탄 2018.09.30. 22:01
해바라기가 뭔가요 정말 모르겠습니드..
댓글
Everton 작성자 2018.09.30. 23:54
 리바이탄
크흠...
댓글
Everton 작성자 2018.09.30. 23:58
 리나군
늘 밝은 모습이어서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곤 아무도 몰랐죠... 나중에 어떻게 됐을지가 궁금하네요.
댓글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사항 안녕하십니까 관리자 김유연입니다 8 김유연 393 21
공지사항 안녕하세여 관리자 조자룡조영욱입니다 30 조자룡조영욱 512 48
이벤트 [5월 10일~6월 10일] 1달 간 추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3 조자룡조영욱 334 14
공지사항 앞으로 타사이트의 게시글을 업로드 할 경우 출처를 남겨주세요 조자룡조영욱 391 15
공지사항 미스터리/역사 갤러리 통합 공지(2023.05.29) 88번이태석 1961 13
밀리터리
이미지
김유연 202 24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228 12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614 17
밀리터리
이미지
김유연 190 20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171 14
밀리터리
이미지
김유연 208 17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104 9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95 8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243 20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97 9
밀리터리
기본
조자룡조영욱 89 7
밀리터리
이미지
김유연 112 9
밀리터리
파일
Sso! 100 6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123 7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107 7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154 8
밀리터리
이미지
조자룡조영욱 132 9
밀리터리
이미지
김유연 133 12
밀리터리
이미지
김유연 100 7
밀리터리
파일
Sso! 7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