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괴담/공포 노트


1.

여름 어느 날, 오랜만에 외할아버지 댁을 방문했다.

오래 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아서 짐을 정리하려고 왔는데, 워낙 넓은 집이라 쉽지 않았다.


그 중 가장 큰 방인 안방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였다.

책상 구석, 어두운 틈새에 껴있는 노트 한권이 보였다.

종이가 변색되고 주름투성이인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것 같았다.


그것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군데군데 검붉게 변색한 부분이 있는 것이었다. 표지뿐만 아니라, 속지에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변색한 피 같기도 했다.

게다가 변색한 부분의 양으로 보아, 마치 피 속에 담가져 있었던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몹시 불쾌하고 알 수 없는 기분 나쁨이었지만,
 
반대로 호기심도 들어 페이지를 넘겨 갔다.
 
노트에는 문자로 보기에 힘든 복잡한 선과 의미불명한 그림들이,
 
그리고 검붉은 얼룩에 의해 전부 칠해져 있었다.


외할아버지께는 내가 10살 때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께는 연세가 많으셔서 어느 시설에서 지내고 계시다.

이미 걸을 수도 없으시고 와병생활로 돌아가실 날만 기다릴 뿐, 말도 없으시고 일어나 계시는지 주무시는지 구별도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외할아버지 댁을 처분해야 된다는 의견이 나와서 대학생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던 내가 짐의 정리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노트를 어머니께 물을지 생각했지만,
 
이런 기분 나쁜 걸 가족들에게 묻는다는 건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가족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좋은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다.
 

2.

문득 창밖을 보니 건너편 댁의 할머니께서 지나가시는 게 보였다.

외할머니만큼 연세가 있으셨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밭일을 하고 계실 정도로 건강하신 모습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세를 졌던 분이라 혹시 뭔가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는 때를 기다려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뵙는 터라 외할머니의 근황을 섞어 노트의 일을 이야기했다.

노트를 보시마자 기분 나쁜 기색이 가득하셨지만, 한참 바라보시더니 뭔가 생각해 내신 것처럼 이야기를 해주셨다.


외할아버지의 부모님, 즉 증조외부모님께서는 외할아버지께서 젊을 때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린 남동생을 혼자 키우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생에겐 선천적인 장애가 있어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말도 잘 할 수 없었고,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불명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이상한 곳이 있었다고 한다.


대화도 잘 통하지 않았고 동생의 기행이 점점 심해져서 혼자서 일과 동생을 돌보는 생활을 할 수 없어 서서히 동생을 꺼림칙하게 느껴 갔다고 한다.

동생은 집에 거의 연급 상태로 자신의 의사나 감정을 전하려고 열심히 노트에 적고 있었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점점 동생에게 소홀해졌고…….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동생은 당시 기르고 있던 닭을 한마리도 빠짐없이 죽인 후에 자신의 양쪽 귀에 젓가락을 찔러 넣어 죽었다고 한다.

젓가락은 마치 망치로 박은 것처럼 두개골을 관통해 뇌까지 달하고 있었고, 귀는 물론 눈, 코, 입 등등 엄청난 출혈이 있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의 증언에 의해서, 자살이로 처리되었지만, 스스로의 자살인지 정신착란의 자살인지,
 
혹은 타살 즉 외할아버지가 죽인 건 아닌가,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즉 할머니 이야기로는 외할아버지 동생의 노트가 틀림없다고 한다.

날이 어두워져서 외할아버지 댁으로 돌아왔지만, 이 노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되었다.
 
그러던 중 익숙하지 않은 육체노동의 피로가 심했던 지, 내일 생각해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해 노트를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곧바로 잠에 빠졌지만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려 깨어났다.

 
 

끼이익……. 스으으윽…….

끼이익……. 스으으윽…….
 
 

뭔가 바닥을 기는 소리다.

그리고 바로 옆, 머리맡에서 들렸다.

미지근한 공기도 느껴진다.


간신히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어두운 방 안을 돌아보니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노트, 노트에서 홀쭉한 팔이 하나 나오고 있었다.

마치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솟아오르고 있었고,

그리고 그 팔은 팔꿈치를 굽혀 바닥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끼이익……. 스으으윽…….

끼이익……. 스으으윽…….
 

여태까지 느낀 적 없는 공포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신히 방구석으로 구르듯 도망쳤지만 그 팔의 행방을 보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팔은 어느새 내가 자고 있었던 베개까지 와있었다.

그리고 그 노트에서는 두 개의 눈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서서히 머리가 보이면서,
 

"으오으우우오으……."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뭔가 입에서 토하는 것 같았다.

아마 피는 아닐까.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정신을 바로 잃었다.
 

3.

깨어나니 익숙한 침대다.

누군가에게 옮겨진 것인가.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머니께 그 날 봤던 걸 이야기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무도 보지 못하셨던 것 같다.

핏자국, 바닥이 세게 긁은 자국 등등.


아, 노트.
 

"방에 있던 노트 못 봤어요?"

"아무것도 없던데? 연락이 없어 갔더니, 쓰러져 있길래 집으로 데려왔지."


혼란스러웠다.

꿈? 현실?


다시 한 번 가서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 날 재차 방문했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함께.


내가 잤던 그 방에는 노트나 핏자국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이불은 어머니께서 정리했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남은 짐을 정리했다.


반년 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와병생활이 워낙 길었던지 나나 어머니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서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장례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행해졌다.


그 때의 기묘한 경험은 거의 잊고 있었지만, 외할아버지 댁에 오자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그 할머니께 노트를 보여드린 일.

그 분께 한 번 더 이야기를 하고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으신 분이니 장례식에도 오셨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뵐 수 없었다.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께 들은 말은 놀라운 일이었다.


"아, 그 할머니는 벌써 돌아가셨는데? 몇 년 전이지, 5년 정도 전인가."
 

계속해서 들은 말은 한층 더 놀라웠다.
 

"그 할머니 지병이 있었는데 아마 자살이었던 것 같아. 양쪽 귀에 젓가락을 찔러 죽었다고 하나……?"
 

외할아버지 남동생과 그 할머니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 노트는 무엇인지,

결국 알지 못한 채 끝났다.


마지막으로 근처 할머니 댁에 가봤지만 그 집은 벌써 해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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